글/ 손봉금

손봉금 약력 : 흑룡강성 화남현 출생. 조선족소학교 다년간 근무. 목단강시작가협회 회원. 한국 '좋은 생각' 문학상 수상. 영남문학상 수상.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손봉금 약력 : 흑룡강성 화남현 출생. 조선족소학교 다년간 근무. 목단강시작가협회 회원. 한국 '좋은 생각' 문학상 수상. 영남문학상 수상.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제1편

호수가에서

 

가끔씩 힘들고 지칠 때 마다 나는 조용한 곳을 찾아서 나만의 시간을 가진다. 침묵과 함께 황홀한 자연 속에 기대여 있노라면 무거운 마음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벼워 지군 한다. 한여름과 달리 공원안의 작은 호수는 고요하고 잠잠하다. 잔잔한 호수는 낙엽만이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처럼 여유롭게 떠돌아 다니고 있다. 파란 하늘과 유유히 흐르는 흰 구름 까지 껴안은 호수를 바라본다. 온갖 욕심과 근심에 쌓여있든 나의 마음도 호수마냥 평안과 고요가 찾아온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호수 가에 얼마나 앉아 있었는지 모른다. 아무생각 없이 멍하니 있는 것도 나의 삶에는 필요한 것 같다. 사랑도, 미움도, 욕망도, 욕심도 모두 버리는 시간들이 어쩌면 자신에게 충전을 해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즐기는 시간마저 나에게는 사치 인 것이다.

호수는 왜 이렇게 평안하고 자유롭고 여유가 있을까? 나에게 앞으로 주어진 시간들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떨어지는 낙엽 하나도 기꺼이 받아서 행복해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맑고 깨끗한 호수는 분명히 보이지 않는 곳 어디에선가 흘러나오는 한줄기의 가느다란 샘물줄기가 만들어낸 것이다. 내 마음도 조용한 호수처럼 정화가 필요한 것이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살려는 생각을 해보지만 세속에 빠져 항상 나의 의지와는 다른 삶을 살았다. 현대문명의 인파속에 껴들어 허황한 생각에만 부풀어 삶의 안식처도 잃어버린 채 허둥지둥 다닌 시간이 많이 흘렀다. 샘물로 깨끗해진 호수 앞에서 느낄 수 있었다. 걸어온 발자국들을 돌아볼 사이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래서 내가 걸어온 발자국은 너덜너덜하고 삐뚤어져있다. 마음 한구석이 시리고 허무함이 자리를 잡고 철지난 후회가 있다.

마음속에 샘물이 흐르면 어제 핀 들꽃처럼 바람에 찢어지더라도 불평 불만을 하지 않을 것이다. 또 누군가의 발에 짓밟혀도 다시 일어나는 잔디마냥 담담했을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을 잃어도 누구를 원망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야 와서 돌이켜볼 수 있는 것이 또한 다행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은 마음의 위안이 된다. 지난 세월속의 추억을 더듬어보면 걷다가 벼랑을 만나서 되돌아온 적도 있었다. 도대체 무엇에 끌려 다니고 무엇에 집착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돈의 노예, 생활의 노예로 되였다. 욕심에 끌려다니면서 살아온 지금에 와서야 무엇을 잃어버렸고 무엇을 얻었는지도 생각해본다.

가끔은 뉴스에서 직위, 명예, 돈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들이 수갑을 차고 경찰에 연행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나름대로 그 사람들을 평가하고 자축(自祝) 하면서 살아왔다. 한줄기 한줄기의 샘물로 깨끗해지는 잠잠한 호수 앞에서는 경찰이 아닌 나 자신이 스스로 묶어놓으면서 너무 오랜 세월을 미세 먼지 속에서 살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삶의 묘약을 몰라서이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꿈과 현실, 희망과 좌절, 기쁨과 슬픔, 웃음과 눈물, 명상적순간과 광기의 순간으로 무한히 얽혀 있다. 좌절과 슬픔과 미움 등 마음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어둡고 어지러운 것들을 흘러 보내야 한다. 맑은 생각과 꿈, 그리고 희망과 명상의 샘을 만들어 내야만이 진정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부화되고 곰팡이가 생겨도 꼭 잡고 버리기를 싫어하는 것이 내가 지나온 삶의 길 이였고 발자국 있었다.

식구들이 오손도손 살아 갈수 있는 작고 아담한 집이 아니라 궁궐 같은 집을 꿈꾸어왔고 얼굴대고 웃으면서 식사 할 수 있는 식탁이 아니라 길고 큰 식탁을 꿈꾸면서 살아왔다. 지금 남은 것과 마련한 것 이란 덩그러니 비여있는 큰 집, 슬픈 음악이 흐르는 승용차, 식구가 멀리서 바라보고 서로를 걱정 하는 것 밖에는 없다. 따뜻한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도 시간도 없다. 각자 삶의 선택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충실 한답시고 살아가는 것이 언제면 화기애애한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지 그 길이를 측정 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나의 마음 밭에 샘물이 흐르지 않고 사리사욕에 빠져있는 마음이 씻기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있는 욕심, 미움, 원망과 불평을 맑고 깨끗한 샘물이 흘러나와 씻어 낼 수 있다면 행복과 기쁨이 마음을 채워 줄 것이다.

누군가 떠나 보낸다는것은 무엇을 얻는 것이다라고 했다. 정말로 욕심으로 무거워진 마음을 떠나보내고 고요하고 여유 있는 호수의 샘같이 흘러드는 마음의 샘물로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현명한 삶이다. 버려야 채울 수 있고 아픔이 있어야 기쁨을 알 수 있다. 불혹의 나이까지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모르고 살았다. 묵묵히 자신만의 자리를 지키면서 조용하게 살아가고 있는 인생선배들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그들은 순간순간 마음에 샘물이 흘러나와서 삶에 윤택이 난다. 늦가을 바람이 훑고 지나 싸늘하기만 했던 나의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으로서 욕심이 생기지 않고 괴로움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음속의 샘물로 정화하고 순간순간 깨달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나의 인생목표라고 잔잔한 호수 앞에서 말해본다. 바람에 예쁜 락엽이 나의 머리위에 내려앉는다. 잔잔하던 호수물이 찰랑거리며 나에게 다가와 발끝을 치고 간다.

 

제2편

제비처럼

 

화사한 해빛을 떠이고 노란 개나리꽃이 봄바람에 한들거린다. 길옆에 연푸른 나뭇잎 사이의 제비 소리가 귀맛 좋게 들리는 것이 완연한 봄이다. 졸졸 흐르는 개울물 량쪽에는 하늘하늘 버드나무가지가 춤을 추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떠나버린 고향이여서 쓸쓸한 기분은 어쩔 수 없지만 여전히 고향의 봄은 싱그럽고 아름답기만 하다.

엄마가 계신 곳, 내가 태여 난 곳,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담하고 따뜻한 우리 집이다. 깔끔하게 치워진 앞마당에는 말라버린 풀 한포기 없다. 벽돌사이사이에 노란 꽃을 떠인 민들레가 고향의 냄새를 풍긴다. 겨우내 집안에만 있던 화분들도 제비들 마중하러 엄마의 앞마당에 줄을 서있다. 여러 가지 꽃들로 하여금 꽃집을 방불케 한다. 엄마는 아마도 계절의 바뀜과 함께 즐기면서 여생도 고향집에서 계실 것만 같다. 도시로 모시고 싶지만 누구도 엄마의 고집을 어쩔 수 없다.

엄마의 집 처마 밑에는 나뭇가지와 흙으로 빚은 크고 작은 제비둥지들이 여섯 개나 있다. 둥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제비들은 부지런히 서두른다. 나무 가지를 물고 오는 제비, 흙을 물어오는 제비들이 시합을 하고 있었다. 저들만의 대화로 고개를 끄덕이며 지지배배 수고 많다고 격려해주고 있다. 자세히 보니 다른 둥지도 아니고 원래의 둥지를 보수작업하고 있었다. 일을 많이 해서 힘든 제비들은 둥지에서 고개만 밖으로 내 놓고 쉬고 있다. 다복한 제비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릴 때 자라던 모습이 떠오른다. 가난하지만 형제들이 제비들처럼 모여앉아 화기애애하게 숙제도 하고 그림책도 보면서 이야기하면서 놀던 어린 시절이 그리웠다.

제비들은 엄마가 보고 싶어서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온다. 가만히 앉아서 제비들의 분주한 움직임을 바라보니 옛터를 떠나지 못하는 것도 부지런한 것도 왜소한 것도 모두가 엄마를 닮은 것 같았다. 제비들은 엄마의 빨래줄 우에 줄지어 앉아서 노래하고 아름다운 봄을 마음껏 즐기면서 엄마의 친구가 되기도 한다. 고향을 등지고 떠난 지도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났는지 손가락으로 세여 보았다. 살다보니 어쩌다 한번 씩 엄마 집에 다녀가는 나 자신이 제비 앞에 서있으니 부끄러워진다.

제비는 길가에 널려져있는 작은 나뭇가지와 흙을 이겨서 만든 둥지 하나만으로 만족하고 매일과 같이 자신의 삶을 노래하며 살아간다. 그들은 남방과 북방을 오가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즐긴다. 제비들은 주로 해충들을 잡아먹고 3월과 9월에 9월과 3월에 수자가 겹치는 날에 강남을 오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조상들은 제비를 길조라고 했었다. 흥부전에서 은혜 갚은 제비와 구원받은 제비도 나오는데 여기에는 하늘의 심부럼 꾼과 부지런한 민중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고 보니 제비와 엄마만이 인연이 아니라 모든 우리 인류가 옛날부터 깊은 인연이 있는가보다.

제비들은 한 알의 곡식에도 탐내지 않는다. 어쩌면 조물주가 그들을 만들 때부터 청렴결백을 삶의 신조로 태여 나게 했을지도 모른다. 실버세대의 주인공인 우리들이 욕심과 탐욕의 유혹에 날로 삭막해지는 인간관계가 아닌가. 그래서 나는 오늘 제비를 한 번 더 노래하고 싶어진다.

푸른빛이 도는 검정색 같은 등에는 반짝반짝 빛이 나고 하반부에는 흰색으로 되여 더욱 돛 보이고 아름답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듯싶지만 그들의 근면함과 선의에 또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제비처럼 해마다 한번씩 이라도 우리조상들이 피땀을 흘리면서 마련한 보금자리의 아름다움을 찾아보았으면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 진다. 제비는 고향을 지키고 있다. 현재 우리의 삶에는 부족함이 없다. 앉아서도 세계와 소통하는 정보화 시대에 살지만 지금 고향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날로 황폐 해지고 많은 것이 한족들의 소유가 되어 버리는 고향마을을 보면서 안타깝기만 하다. 해외에서든 연해지역에서든 고향을 잊지 않는 사명감이 투철한 주인들이 필요하다. 제비처럼 때가되면 한번 씩 와서 고향을 미화하고 별들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옛 추억을 되살려 보는 것 또한 우리가 할인데 말이다. 우리 선조들이 땀 흘려 마련한 아담한 고향을 보존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 마음만 먹으면 전도가 휘황찬란한 현시대일군들은 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고향과 고향의 제비들은 우리가 돌아가기를 학수고대하고 기다리고 있다.

제비의 일편단심, 청렴결백, 그리고 근면과 우아함으로 다시 한 번 처마 밑의 둥지를 보면서 고향의 원래의 모습을 련상해 본다. 붉게 물들어진 추억 속에 잠겼다가 조선 후기 학자 정약용의 시를 떠올려본다.

제비는 지혜로워
집 지을 때 반드시 뱀을 피하니,
예쁘고 고운 바탕은 없지만
이렇게 지극한 정성을 어찌하랴.
나의 은정이 야박해도 연연해하여
근심 걱정하며 보호해 주길 바라누나.
만물이 생성하는 이치를 여기서 보나니
떠돌이 신세라 집조차 없는 내가 부끄럽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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