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오기수

오기수 약력:  연변 훈춘시 마천자향 장성자촌에서 출생. 전 훈춘시 정부공무원, 전 훈춘시 방송국 편집 기자. 현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에 거주. 재한동포 문인협회 이사.  수필 초가집 연정, 고향으로 가는 길, 정겨운 그 소리, 잡초, 성에꽃 등 문학상 수상.
오기수 약력: 연변 훈춘시 마천자향 장성자촌에서 출생. 전 훈춘시 정부공무원, 전 훈춘시 방송국 편집 기자. 현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에 거주. 재한동포 문인협회 이사. 수필 초가집 연정, 고향으로 가는 길, 정겨운 그 소리, 잡초, 성에꽃 등 문학상 수상.

[서울=동북아신문] 인간의 발길에 비틀어진 등산로를 따라 어머니 젖가슴 같은 용마산에 올랐다. 헐벗은 나무들이 서로를 위안하듯 수런거리고 그 아래 후미진 곳에선 착한 낙엽들이 모여서 상처 난 나목의 발등을 애무하고 있다. 그 틈새로 노란 꽃 한 송이가 눈에 들어온다. (와~ 벌써 꽃이 피였구나) 저도 모르게 탄성이 터진다.
 
겨울의 허기에 굶주린 나에게는 반가운 풍경이다. 물 만난 고기처럼 감성의 꼬리를 흔들어 본다. 아직 겨울의 설거지도 끝나지 않은 마당에 겁도 없이 옷고름부터 푸는 맨발의 철부지를 마주한 애처로움에 측은한 마음이 일면서 슬며시 어머니 생각이 난다. 겨우 13세 어린나이에 아버지와 결혼하여 맏며느리 시집살이를 시작했다는 어머니 이야기를 가녀린 복수 초에 엮으니 연민의 정이 솟구치면서 가슴속 깊은 곳에서 추억의 개울물이 흐른다.
 
어느 날 어머니는 당신의 어릴 적 별명이 “개똥애”라고 하셨다. 전염병이 몰아치면 온 동네가 쑥대밭이 되던 그 세월 아이들에게 귀에 거슬리는 별명을 지어주면 액운을 막아준다고 하여 어머니에게도 개똥밭에 아이라는 별명이 주어진 것이다. 아무튼 열한명의 자식 중에 겨우 어머니만 살아남았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외동딸의 목숨이 불안하여 서둘러 시집보냈다고 하니 어머니의 운명은 눈 속에 피어난 복수 초 꽃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소담한 꽃처럼 어머니는 싱그러운 순수함이 묻어나는 단아한 여성이였다. 나는 어머니가 화장을 하거나 머리에 염색을 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문화대혁명에 아버지를 잃고 눈물로 세월을 보내던 어머니였다. 하지만 울고 나면 답답하던 가슴이 열린다고 하시던 어머니는 더는 울수도 없었나보다. 조롱조롱 매달린 자식들에게 밥 한술이라도 더 먹이려고 가을이 멀리 떠나간 허허벌판에서 허리를 굽히고 이삭줍기를 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련하다.
 
오직 자식사랑에 사활을 건 어머니는 때로는 찔레꽃 가시처럼 매서운 여성이었다. 어느 여름방학에 아이들과 함께 옥수수 밭에 숨어서 담배를 피우다가 어머니에게 들키는 바람에 회초리에 사정없이 얻어맞았다. 그날 나는 많이 울었다. 종아리가 아파서 울었지만 실은 아비 없는 애라고 늘 머리를 만져주던 어머니가 계모처럼 돌변한 사실이 억울해서 울었다. 자다가 깨여나니 어머니도 울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왜 우냐고 묻지 않았다. 기쁜 일이 있어도 슬픈 일이 있어도 돌아앉으면 아버지의 빈자리가 그리워 눈 굽을 찍는 어머니 모습에 익숙해진 나였다. 그런데 넌지시 나를 바라보던 어머니가 뜻밖에도 엄마생각이 나서 눈물이 난다고 하셨다. 그날 밤 나는 엄마도 엄마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였지만 이불 우에 아버지 사진을 보는 순간 설움이 북받쳐 엉엉 울고 말았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힘든 농촌생활을 그만두고 도시문화를 누리라고 어머니를 시내로 모셨다. 하지만 숲을 잃은 새처럼 마음이 허황했나보다. 높은 담장아래 메마른 골목길을 서성이며 먼 하늘을 바라보던 어머니 뒷모습이 얼른거린다. 그래 돌미나리들이 아가미질 하는 개울이며 배꼽시린 땅 꽃들이 피어나는 고향의 들이며 새들이 지저귀는 사과 배 나무숲이며 조선고추가 빨갛게 익어가는 텃밭이며 온갖 희로애락이 묻어있는 초가집과 흙에 살던 모든 풍경이 그리웠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도 풋풋하고 무던한 시골인심이 더 그리웠을 것이다.
 
귀소본능은 식물이나 동물 모두가 안고 가야하는 숙명인가 보다. 어느 날 산소에서 아버지 옆자리를 가리키며 여기가 내자리라고 하시던 어머니는 몇 년 뒤 아버지를 따라 바람이 잠든 초야에 묻히고 말았다. 세월은 많은 것을 안고 휭 하니 가버렸다. 2월의 싸늘한 바람을 안고 외롭게 피어난 복수 초를 눈여겨보고 있노라니 만고풍상 모진세월을 그렇게 울고 웃으며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막내가 그리워 천리타향 이 땅에 복수초로 환생하지 않았나 싶다.
 
양춘가절 온갖 꽃들의 향연에 취해 느끼한 넋을 흘리며 밖으로 나돌던 그 시절이 부끄럽다. 어머니의 상실감은 얼마나 컸을까? 얼마나 허전하고 얼마나 억울했을까? 오죽하면 딸은 시집가도 내 딸이니 딸자식 하나 낳으라고 하셨을까? 그렇다면 아들은 장가가면 사돈집 자식이라는 말이 아니겠는가? 허나 어머니는 끝내 그 말씀을 가슴에 삼키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아~ 어머니 불쌍한 나의 어머니여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 물렁한 구름이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울먹이고 있다. 비가 올지 눈이 올지 눈 개비가 올지 알 수는 없지만 언 땅을 뚫고 나온 복수 초는 어머니 인생사처럼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갈 것이다. 행복을 주는 슬픈 꽃으로.......
 
2020년 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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