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주해봉

주해봉 약력: 흑룡강성 탕원현 조선족고급중학교 교사. 2000년에 한국 입국. 단편소설 '인생은 유희가 이니다', '주소 없는 편지', '변색안경',
주해봉 약력: 흑룡강성 탕원현 조선족고급중학교 교사. 2000년에 한국 입국. 단편소설 '인생은 유희가 이니다', '주소 없는 편지', '변색안경',"외토리' 등과 수필 '생의 이미지', '깍쟁이 반추', '기다림의 멋' 등을 흑룡강신문, 료녕신문, 송화강, 은하수 등 신문과 잡지에 발표. 현재 고양시에 거주.

고향마을의 노교사가 급병으로 갑작스레 돌아가셔서 출상한다는 부고를 받은 나는 놀라운 심정을 붙안고 곧바로 화장터로 향했다. 

아침 일곱시라 퍽 이르다고 여겼었는데 웬걸 하늘을 찌를 듯한 높다란 굴뚝에서는 벌써 연기가 타래쳐 오르고 있었으며 울안에는 시체를 싣고 차례를 기다리는 령구차가 열대나 줄지어 서있었다. 

참으로 사람이 죽고 태여나는 것은 거침없는 운동이며 막을 수 없는 자연의 법칙임을 어느 때보다 절실히 감안했다. 이윽고 시체를 실은 령구차 한 대와 사람을 만재한 대형버스 한 대가 들어섰다. 

낯익은 얼굴들이 차창을 통해 얼핏 안겨왔다.  일가친척을 제외하고도 동행한 마을사람들이 무려 50여 명이나 되였는데  자리가 없어 따라오지 못하고 떨어진 사람도 퍼그나 많다는 것이였다. 

전에도 가끔 화장터에 다녀오면서 목격한 적이 있지만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동행한 것을 접하기는 정말 처음이다.  모두 낯익은 고향사람들이라 스스럼없이 인사말을 주고 받았다.  그들은 저마다 눈물을 글썽이며 로교원이 돌아간 것을 두고 비통함과 아쉬움을 금치 못하였다. 

이윽고 차례가 되자 우리는 흰 광목으로 전신을 칭칭 감싼 시체를 조심스레 화로에로 통한 자동밀개 위에 올려놓았다.  죽음도 역시 존재의 일부분이라고는 한다더라도 잠자는 듯한 시체가 불과 10 분동안에 한 오리의 연기로 저 멀리 하늘로 사라져갔다.

저 하늘 그 어디엔가로 사라져가는 가냘픈 연기 한 오리를 눈뿌리 아프게 바라보며 하나의 인생도 속절없이 지상에서 말소되고 마는 것임을 심히 느꼈다.
 
더불어 살아있는 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조용히 품게 하는 공간, 또한 이곳 화장터임을 처음으로 새삼스레 느꼈다 

그곳을 (화장터)  다녀온후 나는 좀처럼 마음을 평온시킬 수 없었다.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한낱 이름없는 평범한 교사의 죽음을 두고 그토록 진정 애달파하고 슬퍼하며 그를 그리고 있다는 사실은 나로 하여금 오래도록 그 무엇인가를 깊이 사색해보지 않을 수 없게 하였으니 말이다. 

기실 더듬어보면 그에게 그 어떤 화려한 경력이 있거나 또 큰 인물로 되여 뭇사람들의 부러움 같은 것을 자아낸 적도 없었다. 있다면 몇 년간 시골학교에서 교장노릇을 한 것뿐이다. 

그것도 오십줄에 들어서자 젊은이에게 선뜻 자리를 넘겨주고 평교원의 신분으로 제2선에서 조용히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해왔을 따름이다. 

사람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삶을 영위한다.  그 삶이 행복한 삶인지 불행한 삶인지 개개인에 따라 다른 것이다. 

같은 삶이라 할지라도 누구는 만족을 느끼며 행복해하며 누구는 불쌍하다고 탄식하기도 한다.  또 삶에 대한 의욕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 권태를 느끼는 사람, 애착을 갖는 사람 등 모두 각양각색인 것이다. 

그 각양각색의 사람 중에서의 한 사람이 바로 주어진 생활권내에서 투정질없이 가난하지만 넉넉한 마음으로 생활에 애착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버둥질해온 적임자---저 세상으로 너무도 급급하게 떠나간 선배교원님이 아닌가 생각된다. 

자식 셋에 로모 한 분까지 하여 여섯이나 되는 식솔을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월급으로 먹여살려야 하는,  애들의 학비 대느라 저금통장을 가질 여유도 없는 가난한 살림이였지만 그 가정은 그의 현명함과 따뜻한 인간애, 그리고 지혜로 하여 구김살없이 영위되였던 것이다. 

외국나들이로 돈을 뭉치로 벌어들이고 그래서 웃음주머니 흔들흔들해 할적에도 그만은 수걱수걱 학교로 발길을 옮기며 매일매일 글 가르치기에만 전념해온 "괴상한 사람",  

마을에서 생일집이나 잔치집에서 그토록 청해도 이 핑게 저 핑게 대며 얄미울정도로 사양하다가 동네의 장사집에는 그 누구보다도 첫 사람이 되여 꺼리낌없이 시신을 주무르는 사람, 출국, "하해"바람으로 교원이 비게 되자 혼자서 두세몫을 담당하며 얼마 안되는 코흘리개들이지만 그들의 어린 심령에 그늘이 질세라 매일 운동장에서 그들과 숨박곡질하며 웃고 떠들던 그... 

그러고보면 그는 기실 와자자하게 큰 일을 한 것도 아니다. 그누구도 해낼 수 있는 일을 그저 말없이 애착심을 가지고 차곡차곡 해나갔을 따름이다.

"남들이 장에 간다고 두엄지고 따라나서겠소.너무 큰 떡만 바라보면서 욕심을 부려서는 안되오. 자기체신에 맞게 매일매일 제 앞의 일을 어김없이 참답게 하는 것이 결국 큰 일하는 것이 아니겠소. "

20년 전 같은 학교 같은 교연조에 마주 앉아서 나를 포함한 젊은 교원들이 마음을 못 붙이고 들썽거릴 때마다 입버릇처럼 뚱겨주던 일깨움이다. 

오늘 이 시각에도 마냥 그의 말소리가 귀전에 쟁쟁하다. 
그렇다,  어쩌면 오늘을 중히 여기며 매일매일 자기 앞에 놓인 일을 유감없이 착실히 행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큰 일을 하는 것이 아닐까. 

꼭 세인을 놀래우는 굉장한 일을 해야만이 참인간이 되고 돋보이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자질구레한 일일지라도 후회없이 착실히 해나아가는 것으로써 자신의 삶을 살찌워갈 때 또 그렇게 하는 것으로써 동료들에게, 이웃들에게 기쁨과 웃음을 줄 수 있을 때 역시 나름대로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것이며 생의 보람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하루만을 살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라" 고 누군가는 갈파한 적이 있다.  이것은 오늘 이 순간만이 틀림없이 내것 임을 강조해주는 말이며 오늘을 열심히 살라는 말이 아닐까.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은 쉬울 것 같으면서도 어쩌면 어려운 일이다. 특히 산업화의 물결로 심신이 적셔진 특정된 오늘에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많은 사람들은 어제를 돌아보고 한숨 짓기도 하고 래일이 또  있음으로 해서 무의미한 오늘을 살아가기도 한다. 어제도,래일도 생각지 말고 오늘을 우선 잘 살아감으로써 영원한 오늘이 지속되는 것이 아닐까.

오늘  내 가정을 사랑하고,오늘 내 맡은바 수업을 후회없이 끝마치고, 오늘 내 포전을 알뜰히 가꾸지 않으면 오늘을 사는 보람은 없는 것이다. 

밭에서 풀 한 포기 뽑고 주방에서 접시 하나 씻는 일일망정 나름대로 사명을 느끼며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생은 즐겁고 피곤하지 않은 것이다. 

필경 우리는 모두 오늘에 살고 있는 것이다.  지난 날의 이야기가 아무리 화려하고 혁혁한 것이였다 해도 또 래일의 설계가 아무리 방대하고 황홀한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오늘뿐인 것이다. 

영원한 오늘의 연속이 지나간 다음 언젠가는 우리는 마지막 밤을 맞이하게 된다. 그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없이 부끄럼없이 눈감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있다면 오직 오늘을 부끄럼없이 유감없이  열심으로 산 사람들일 것이다.

아무리 작고 보잘 것 없는 하루살이 같은 존재일지라도, 작은 행복을 소중히 받아안고 감사할 줄 아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타인의 아픔과 곤경을 내 것 으로 함께 느낄 줄 아는 인간된 도리를 간직하고 진실하게 자기 삶을 소중하게 여기며 영위해 나아가는 사람, 그런 사람은 시름없이 눈을 감을 수 있는 것이며 뭇사람들의 기억에 메모될 것이다. 

그러고보면 인간의 가치평가는 결국 주어진 생활권내에서 나름대로 삶을 어떻게 영위하고 요리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닐까. 

인생의 행복은 지난 날의 화려한 경력이나 추억에 있는 것도 아니고 황홀한 미래의 꿈에 있는 것도 결코 아닌 것이다. 

오직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의 삶에, 열심으로 진실하게 살아온 삶에 있는 것이다.  그 주어진 삶이 둥글든 모 나든 간에... 

그러고보면 한낱 이름없는 평교사의 죽음을 두고 왜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가슴아파하고 아쉬워하는가를 얼마쯤 알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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