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신문주간 뚜웨이(杜玮) 펑딴니(彭丹妮) 양청천(杨程晨)기자

[서울=동북아신문]2003년 사스(SARS)가 끝난 뒤 중국은 한 차례 감염과(感染科) 발전의 열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17년 후, 지금의 코로나19 요격전에서 본래는 주력군이어야 하는 병원 감염과가 오히려 힘에 부친 듯 보였고, 인원과 장소, 설비가 모두 크게 부족한 등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병원 감염과는 새로운 감염, 돌발 전염병 및 기타 중대한 공중위생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제일선에서 달리고 있는 과실(科室)이다. 그러나 꽁쭤지옹(龚作炯) 우한대인민병원(武汉大学人民医院) 감염과 주임은 우한시 현지의 여러 시립병원에서 감염과를 개설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초기 전염병 발병 초기에 많은 환자들이 모두 전염병 환자를 전문적으로 수용치료하는 진인탄병원(金银潭)에 몰리면서 이 병원은 오랫동안 감당할 수 없는 압력을 받았다.

2003SARS가 끝난 뒤 중국은 한 차례 감염과(感染科) 발전의 열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17년 후, 지금의 코로나19 요격전에서 본래는 주력군이어야 하는 병원 감염과가 오히려 힘에 부친 듯 보였고, 인원과 장소, 설비가 모두 크게 부족한 등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중화의학회 감염병학분회 주임위원, 베이징대 제1병원 감염질환과 주임 겸 간질환센터 주임인 왕꿰이치앙(王贵强)< 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전염병 상황으로부터 엿볼 수 있듯 국가는 다시 감염과의 발전을 중시해야 하고 감염학과의 발전은 응당 대감염학과(大感染学科)’ 건설의 경로에 되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병에 따라서 변하는 감염과(感染科)

왕꿰이치앙(王贵强)의 사무실은 북대제일병원(北大第一医院) 외래환자진료 빌딩 남측의 회색나는 낡은 3층에 있는 행정동에 위치해 있다. 행정동 1층은 올해 123일부터 발열외래진찰을 개설하여 그가 소재한 감염과의 전원이 투입됐다. 개설 초기에는 매일 수백에 달하는 외래 진료량이 있었는데, 가장 최근의 외래 진료량은 하루 20, 30건이었다. 북대제일병원도 국내에서 비교적 일찍 감염과를 설립한 의료기관 중 하나였는데 그때만 해도 감염과를 전염과라고 불렀다.

 

1950년대, 흑사병,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 주혈흡충병 등 고전적인 전염병이 중국에서도 아직 유행하고 있었다. 1955년 당시 국가위생부가 <전염병 관리방법>을 내놓으면서 각 대학부속병원에서 잇달아 감염과를 설립하였다. 북대제일병원 전염과는 1955년 설립되었는데 설립자는 현임 병원 부원장, 대내과 주임인 우차오런(吴朝仁)이다. “당시 전염과의 힘이 매우 막강했고 국가의 중시를 받았는데 전염과는 엘리트들로 구성이 됐었다고 왕꿰이치앙이 말했다.

이런 전문적으로 전염병을 치료하는 학과모델은 소련모델로 불리는데 이것 역시 중국내 병원의 절대 다수가 감염과를 만들어 사용하는 최초의 방식으로 전염과에 격리병동이 설치되어 있다. 이와 함께 당시 중국 내에는 또 전염병 전문병원이 여러 지역에 세워졌다. 베이징 최초의 전염병 전문병원은 지단병원(地坛医院)으로 1946년에 건립되었다.

소련모델에 상응하는 서방국가모델이다. 당시 중국 내에서 유행하는 전형적인 전염병은 미국 등에서 비교적 드물었고, 의사 진료는 비전염성인 감염성 질환 위주로 진행됐다. 예를 들어 신경계 감염, 패혈증, 요로 감염 등 이러한 발전모델을 감염과(感染科)라고 불렀다.

중국 감염과의 발전 경로는 서방이 걸어온 길을 복제하였다. 하버드대학 의학문화학 교수인 데이비드 존스는 <중국신문주간>에 말했다. “1950년대 이전 유럽과 미국의 거의 모든 의사들은 실제로 모두 전염병학 전문가이다. 왜냐하면 전염병을 다루는 것이 그들이 가장 많이 한 일이기 때문이다. 당시 의사들의 주된 업무는 가벼운 감기, 설사, 엄중한 천연두, 폐렴, 소아마비 등 각종 감염성 질환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20세기 초, 감염병은 인류질병의 최전방과 중심이었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서방 사회는 각종 전염병을 정복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찼었다. 거의 매주, 의료 기관들은 모두 인간과 전염병의 전쟁에서 또 하나의 기적과 같은 돌파를 선언했다. 1940년대 초 항생제의 발견으로부터 1965년까지 25,000여 종의 항생제 종류 약물의 연구개발, 1955년 대규모 급성 회백수염 예방접종 등의 사건은 이런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1967년 미국 공중위생부는 감염성 질병에 대한 전투에서 이미 승리를 거두었다고 발표했다. 당시 심지어 어떤 사람은 전염성 질환과를 따로 둘 필요가 없다는 주장까지 했다. 그러나 뒤이은 에이즈의 출현은 이 분야에 따끔하게 경고하여 깨닫도록 하였다.

중국의 사정도 비슷하다. 1980년대에 이르러 중국인 전염병의 질병보(疾病谱)도 변화가 발생하여 콜레라, 주혈흡충병 등이 점차 역사무대에서 물러나면서 바이러스성 간염이 가장 발병률이 높은 감염성 질병으로 떠올랐다. 1970년대 농촌의 위생조건이 낙후된 데다 인구의 출산율이 높아서 B형 간염이 중국에서 급속도로 폭발하였다. 1975B형 간염 백신의 개발로 중국의 B형 간염 발병률이 현저히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2019년까지 전국적으로 8,600만 명의 B형 간염 감염자가 있었다. 간염 예방과 제어 정세는 여전히 심각하다. 병원 감염과의 주요 고객은 장기간에 걸친 다양한 종류의 간질환자이다.

간병대국의 모자를 매우 늦도록 벗지 못하는 가운데 에이즈, 유행성출혈열 등 새로운 전염병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1985년에 중국에서 첫 에이즈 환자가 보고된 이래 중국의 에이즈 감염자 수는 이후 10년간 더디게 증가했다. 그러나 1995년부터, 특히 21세기 이래 급성장기에 접어들어 20189월까지 전국에 현존하는 살아있는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자와 환자는 모두 85만 명에 이른다.

1984년 왕꿰이치앙은 대학 졸업 후 랴오닝성 푸신시(辽宁省阜新市) 전염병 병원에 배치됐다. 처음 그는 유행성 뇌막염, 이질, 장티푸스 등의 전염병을 접하다가 후에 만성 B형 간염 병례가 점차 늘었다. 1980년대 중화의학회 전염병과 기생충병학 분회(中华医学会传染病与寄生虫病学分会)가 성립되었고, 바이러스성 간염이 그 주된 예방 치료 내용이었다. “바이러스성 간염은 상대적으로 치료가 간단하고 간 피로 위주로 진행돼 출혈이 커서 구조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치료에 큰 어려움은 없다.”

1990년대 이후 백신 등 예방 치료 수단이 등장하면서 고전 전염병의 발병률은 더욱 낮아졌고 환자는 줄고 전염병의 병종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올해 82세인 웡신후아(翁心华)는 푸단대 부설 화산병원(复旦大学附属华山医院) 종신교수이자 국내 감염학과의 권위자이다. 그는 지난 세기 90년대 전후 전염병 환자 수의 감소로 의사들이 다른 직업에 종사하게 되었고, 많은 병원들이 전염과를 폐지하여 전염과 규모가 위축되었다<중국신문주간>에 말했다.

후베이성 샤오간시 윈멍현(湖北省孝感市云梦县) 인민병원은 현지 코로나19의 지정치료병원으로 감염과 주임 양요우밍(杨友明)이 이 과실(科室)에서 의사로 일한 지 31년째다. 그가 처음 전염과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40개의 병상이 남아 있었는데 이후 다른 과실의 병상이 점차 늘어나고 전염과는 점차 감소해 2003SARS 전후 15개의 병상만 남게 됐다. 그러나 그는 이 또한 사회 진보의 한 표현이라고 이해했다.

미우샤오훼이(缪晓辉)는 중화의학회 감염병학 분회(中华医学会感染病学分会) 부주임위원, 상하이 장정병원(上海长征医院) 부원장, 감염과 주임을 지냈다. 1998년 그가 장정병원 감염과를 넘겨받았을 때 이것은 논문이 없고, 기금이 없으며, 성과가 없는” 3무 과실이었다. 2000년에 병원은 골과를 대대적으로 발전시키려고 병원지도자들은 30여 개의 병상이 있는 감염과 병실을 골과 병실로 전환하여 감염과를 없앴다. 과실 인원의 일부를 없애 신장병과로 가게 하였고, 다른 일부는 장해병원(长海医院)으로 옮겨갔으며, 미우샤오훼이는 소화기내과 주임으로 가게 했다. 미우샤오훼이는 이에 동의하지 않고 병원 영도자를 찾아서 이치를 따져 힘을 다해 수호하여 비로소 감염과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과실은 병원으로부터 3킬로미터 밖에 떨어진 모방적공장(毛纺厂)을 개축한 재활과로 옮겨야 했다.

생존 위기에 처한 것은 종합병원의 감염과뿐이 아니다. 2003SARS 발생 직전 전염병 환자가 크게 줄면서 지단병원(地坛医院)은 전에 한동안 베이징의 또 다른 전염병 전문병원인 우안병원(佑安医院)으로 옮겨갈 운명이었다. 당시 베이징시 보건국은 우안병원은 700여개 병상이 있는데 평소 치료를 받는 환자는 단지 3, 4백명이고, 지단병원은 500개 병상이 있으며 연간 환자를 수용 치료하는 규모도 2, 3백명밖에 안 되어 두 병원 모두 노동력이 남아돌아 자원을 낭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SARS 때 지단병원에서는 329명을 수용 치료하였는데 중증 환자가 50% 이상을 차지했고 전염병 차단에 큰 역할을 했다. 이것이 어느 정도 영향을 줘 지단병원의 목숨을 했다.

전염병이 크게 줄어든 것도 업계 내에서의 학과발전방향의 변화를 생각하게 했다. 1999년 제6차 전국전염병과 기생충병 학술회의(第六届全国传染病和寄生虫病学术会议)에서는 만장일치로 중화의학회 전염병과 기생충병학 분회(中华医学会传染病与寄生虫病学分会)감염병학 분회(感染病学分会)’로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북대제1병원(北大第一医院)의 쓰총원(斯崇文) 교수는 그 당시 주임위원이었다. 3년 전 북대제일병원은 이미 감염과를 감염질병과로 바꿨었다. 2002년에는 상하이화산병원 전염병과(上海华山医院传染病科)의 웡신후아(翁心华) 교수가 제7기 분회주임위원으로 있을 때 분회가 정식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전국 각급 병원도 잇따라 전염과를 감염과로 바꾸었다.

17년간의 후퇴

원저우의과대학 제일부속병원(温州医科大学第一附属医院) 감염과 주임 천용핑(陈永平)2003SARS에 맞서 싸웠을 때에 대한 기억이 인상 깊다. 그것은 설비창고를 임시 개조한 격리병동을 벽돌담으로 쌓아놓고 격리시킨 뒤 한 병실에 4, 5명을 입원시켰고 입원 구역에 한 개 작은 문만 열어 의사를 출입시켰으며 세 구역 두 통로가 없었는데 근본적으로 우렁이 껍질 속에서 법사를 하는 것이었다. SARS가 발생한 뒤 천용핑과 병원 간부들은 모두 감염과 건설을 강화해야겠다고 느꼈다. 2012년 병원 감염과는 대지 1만여 평방미터의 새 건물로 입주해 건물 전체를 음압 설계하고, 160여 개의 병상을 제공했고, 이동CT 등 설비가 있었다. 의사와 환자가 각각 지하 1층과 지상 1층에서 입원 구역으로 진입했다. 코로나19 전염병 유행 중 온의대 제1부원(温医大第一附院)은 저장성(浙江省)급의 거점지정병원으로 의심환자와 확진환자를 모두 백명 가까이 수용했다.

웡신후아는 그때 SARS가 발생하자 원 보건부 관리들이 상하이에 가서 3급병원의 감염병과 발전 상황을 알아 본 것을 기억하고 있다. “저는 그에게 병원에서 가장 낡았고 사람이 적은 곳이 감염병과라고 말했고, 이 관리는 돌아가서 바로 상하이시의 병원에 돈을 지급하여 감염과 건설을 강화했다. 2004년 원위생부는 전국 2급이상 종합병원에 반드시 감염성질병과(感染性疾病科)와 함께 열증진찰실 및 장외래진료(肠道门诊)를 개설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 두 외래진료는 절대다수 병원 감염과가 담당하는 직책이 됐다.

하지만 천용핑과 같이 이렇게 발전한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2003년 자오훼이(赵晖) 소재 저장성 웨칭시 인민병원(浙江乐清市人民医院) 감염과에서 격리병동을 새로 지었는데 당시 저장성 내에서도 선진적이었다. 하지만 17년이 지나도록 병원의 다른 과실 병실이 계속해서 새롭게 바뀌었지만 자오훼이가 있는 감염과는 그대로여서 신종 플루 H1N1, 수족구병 등 전염병이 들이닥쳤을 때 병실은 매우 부족하였다. 전에 여러 차례 원저우와 주변 시현 병원을 둘러본 천용핑은 SARS 발생 후 17년간 많은 병원의 감염과가 거의 발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번 전염병 사태에 대비한 격리병실이 없는 병원도 있었다.

양요우밍(杨友明)이 근무하는 후베이성 샤오간시 윈멍현 인민병원(湖北省孝感市云梦县人民医院) 감염과는 70개의 병상이 있지만 병실은 1990년대에 지어져 격리요건에 맞지 않는다. SARS 이후 병원은 전에 20개의 병상을 갖춘 표준격리병실을 지었는데 이번 코로나19 전염병 사태에서 급증하는 환자를 맞이하여 병원은 단지 외과계 병실을 전반적으로 개조하여 400개의 병상을 비울 수밖에 없었다.

상하이교통대학 의과대학 부속 루이진병원(上海交通大学医学院附属瑞金医院) 감염과 주임, 중화의학회 감염병 분회(中华医学会感染病分会) 부주임위원 시에칭(谢青) 등은 전에 상하이시의 57개의 2(二甲) 및 그 이상 종합병원 감염병학과 현황을 조사한 바 있다. 20199, 그들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서는 상하이시 종합병원 감염과 설치율은 100%였으나, 2급병원 감염과 병실 설치율은 단지 20%에 불과하여 전체 병상 수는 328개였고, 3급병원의 병실 설치율이 다소 높지만 절반을 조금 넘기는 55.56%이며 전체 병상 수는 799개임을 보여줬다.

우한시 어느 2급 종합병원인 적십자병원 원장 시옹니앤(熊念)<중국신문주간>과의 인터뷰에서 감염과 인원이 3명뿐으로 병원 규모가 비교적 작은 과인 셈인데, 현지의 다른 2급 병원도 감염과 인원이 적십자병원과 비슷하다. 적십자병원 감염과는 일반적으로 호흡계 감염병 환자를 수용 치료하지 않고 그를 진인탄(金银潭)이나 폐과병원(肺科医院)에 입원시켜 치료한다고 했다.

상하이교통대학 부총장, 의과대학 원장 천꾸어치앙(陈国强) 등은 그들이 발표한 신형코로나바이러스감염 전염병 상황에 따른 사고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우한시의 전염병 의료자원 비축은 부족하다. 우한 호적 인구 및 상주인구는 모두 1,400만명이다. 두 전문 감염병병원-진인탄병원과 폐과병원의 병상은 모두 900여개인 0.64병상/만명으로 중국 전염병 병상의 수는 도시 비농촌인구 1.2-1.5병상/만명 설치 표준보다 훨씬 낮다. 동시에 우한시 종합병원 내의 전염과 규모는 매우 제한적이다.

1990년대 이래로 의료가 시장화되기 시작했고 감염과는 돈을 벌지 못하는 과실이 되었다. 왕꿰이치앙은 비록 SARS 이후 전염과가 감염과로 바뀌었지만 적지 않은 병원의 감염과가 여전히 간질환, 결핵 위주 질병을 보고 있으며, 전염병 발생률이 낮아지면서 과실 업무량이 줄어 효율이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인기 열증 진찰실, 장 외래진료의 경우 계절성, 발열 환자는 겨울과 봄 계절에 많고, 장 질환은 여름과 가을에 집중돼 발병하는데 두 외래진료 모두 환자 수가 많지 않다. 그가 있는 북대제일인민병원의 경우 약 4년 전, 1년간의 장 외래진료와 열증 진찰실의 총량은 각각 1만 건 남짓이며, 평균적으로 하루에 30~40건에 불과하다. 저장성 웨칭시 인민병원의 연간 외래 진료건수는 7만여 건으로 이것은 동등급의 현급병원에서 이미 앞자리에 속한다. 이 중 간질환이 50%, 결핵이 15%, 원인불명 발열이 20%, 또 에이즈 등 기타 질병을 포함한다. 양요우밍은 후베이성 샤오간시 윈멍현 인민병원 감염과의 1년 총 외래진료 수는 1만 건 전후 정도이며, 열증 진찰이 많을 때는 하루에 몇 십 명의 환자가 있고, 적을 때는 몇 명으로 작업량이 훨씬 불포화 상태라고 말했다.

자오훼이는 감염과의 일을 손해 보는 장사라고 표현하면서, 한편 환자는 격리조건을 만족해야 하기 때문에 감염과의 병실 설치는 단독적이고 비교적 큰 공간 요건을 충족해야 하며, 일부 다른 질병의 종류 환자는 같이 배치하지 못하여 병상의 이용률이 100%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감염내과는 약물치료 위주여서 외과처럼 각종 기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약품의 값을 제로 할증 가격으로 하는 정책이 시행되면서 결핵과 에이즈까지 약품이 모두 무료로 제공돼 감염과의 수익이 극히 제한적으로 변했다.

예를 들어, 장 외래진료는 하루에 한 명의 의사가 단지 10명의 환자만을 볼 수 밖에 없고, 발생한 이윤으로는 병원이 당신에게 월급을 주기에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간질환 외래진료에 하루 나가면 대략 120~150명 정도 환자가 있는데 약간의 검사서, 화학 검사서를 떼면 조금 더 벌 수 있는데 다른 곳에서 이윤이 발생하기 어렵다.” 자오훼이는 의사가 회진하는 데 겨우 3, 5위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과실에 비해 감염과에 꼭 필요한 의료용 방호용품은 또 일부 적지 않은 지출로 병원들이 감염과를 발전시킬 동력이 없게 한다. 양요우밍은 감염과 진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경제여건이 좋지 않고, 가난한 사람이 비교적 많다. 일부 만성질환, 예를 들어 간염 등은 지출이 많이 필요하며 일부 사람들이 병 때문에 가난하게 된다. 치료비용을 감당하지 못할까 봐 심지어 병을 보러 오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수익이 좋지 않은 것은 종합병원의 감염과뿐이 아니다. 간염, 결핵 위주의 전염병 전문병원이 살아남는 것이 더 어렵다. 2007년 전국 보건재무연보 데이터에 따르면 전국 148개 전염병원의 63.51%가 적자를 냈고, 전체 감염병 병원 중 그 해 잔액이 전체 지출의 5% 이상인 곳은 단지 12곳으로, 재정전문 항목잉여를 감한 후 148개 전염병 병원의 적자는 5.98억 위안이었다.

병상이 있는 종합병원의 감염과와 전염병 전문병원 사이에는 또 이것이 내려가면, 저것이 올라가고 서로 경쟁하는 관계도 있다. 종합병원 감염과가 잘될 때 전염병 전문병원은 경영이 더 어렵다. 2007년 데이터를 보면 감염병 전문병원은 동급 종합병원보다 경제적 효율이 떨어지고 인적 소득수준도 종합병원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왕꿰이치앙은 전염과 전문병원에서는 매출을 늘리기 위해 본래 입원할 필요가 없는 환자가 입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미우샤오훼이는 의료 서비스가 시장화 된 이후, 감염과 의사들의 수입은 일반적으로 병원의 각 과실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자오훼이에 따르면 감염과실의 간호사는 2019년 몇 달간 보너스가 매달 3,000여 위안이고, 기본급은 12,000위안으로 청소부 수입과 비슷했다고 한다. 자신의 몇 달 동안 보너스가 월 6,000위안이었는데 이것은 그의 대학 동기생 보너스 수입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31년간 일한 양요우밍은 해마다 5% 안팎의 수입 신장률을 유지했고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감염과 의사들의 수입은 심내과(心内科), 외과 의사들의 1/3에서 1/4에 불과하지만, 평균 15만 달러의 연봉을 받을 수 있다. 왕꿰이치앙은 중국 감염과 의사들도 그에 대해 일정한 기본급을 보장해야만 학과가 순조롭게 발전할 수 있다고 여겼다.

대우가 너무 낮고 감염과의 발전이 어려운 데다 전염병에 대한 사회 보편적 배척까지 겹쳐 의대 졸업생들은 보편적으로 감염과 근무를 기피하고 있다. 양요우밍이 있는 과실은 4~5년째 신입사원이 들어오지 않고 있고, 과실은 단지 20여 명의 규모에 불과해 일단 과실 인원이 외지로 나가 연수를 받으면 일상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 2000년을 전후해 감염과에서도 대우가 너무 낮아 떠난 사람이 있었으며, 지금은 왕훙(网红)의사, 화산병원 감염과 주임인 장원홍도 박사 졸업 후 웡신후아에게 다른 일을 찾고 싶다고 말했었다.

중국 감염학과 발전의 거점인 왕꿰이치앙이 있는 베이징대 제1병원 감염과의 병상수는 오랫동안 늘지 않다가 최근 건물 개조로 절반인 30개로 줄었다. 감염과의 인재대오는 2003SARS 이후 2명의 신인을 충원한 뒤 최소 12년간 더 들어오지 않아 이는 학과 전체의 후세대 건설에 객관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왕꿰이치앙은 말했다.

 

평화 시기와 전쟁 시기의 결합대감염학과건설

이번 코로나19 전염병 발생에서 전염병 전문병원이 질병 종합 치료 방면에서 역량이 박약해 보였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우한 진인탄병원의 경우, 중환자실(ICU)는 의사 5명뿐이며 전체 병원의 각종 산소치료 기기를 합쳐도 20대에 불과하다. 한 달 동안 밀려드는 환자들을 위해 병원 4개 일반 병동이 ICU 병동으로 개조됐고 우한시의 여러 병원과 전국 여러 곳에서 의료진을 보내 지원했다. 후베이성 황강시(湖北省黄冈市)에서 SARS 후 세워진 황강시 전염병병원은 평소 환자가 충분히 많지 않아 여러 해 만에 폐허가 됐으며 이번에 전염병이 퍼지자 황강시는 그것을 긴급 개조했고 또 대별산(大别山)지역 의료센터를 조기 가동했다.

왕꿰이치앙은 중국 감염학과가 직면한 현 상태는 평소 전염병 대유행이 없었고, 감염과는 중시되지 못하였으며, 전염병이 오자 막아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여겼다. 감염학과의 발전은 평화 시기와 전쟁 시기를 결합해야 하며, 감염과 의사는 간염, 결핵 외에 또 각종 비전염성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원인 모를 발열은 감염과 의사의 기본기를 단련하는 중요한 손잡이다.” 그러나 간염은 예견 가능한 미래에 발병률이 더 낮아질 것이다. 동시에 감염과 의사는 임상미생물병인 진단과 병원감염 예방제어에도 개입해야 한다. 왕꿰이치앙은 이런 삼위일체의 발전 모델을 대감염학과(大感染学科)’ 건설이라고 불렀다.

장원홍이 있는 화산병원은 상하이시 첫 코로나19 확진 사례 전 게놈 검사 순서결정 작업에 참여했다. 감염과와 임상미생물과는 병원체의 감식, 질병 조기인식의 사명을 부담하고 1차 방어선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웡신후아는 감염성 질환의 경우 병원체의 진단이 각별히 중요하다며 반드시 조건이 되는 3급 병원에 실험실을 꼭 지어야 한다<중국신문주간>에 말했다.

대양 건너 미국에서도 감염과 의사는 또 다중 역을 맡아 한다. 왕꿰이치앙은 평소 미국 감염과 의사들이 감염성 질환 치료에 참여하고 병원 여러 학과의 합동 진찰에 참가해 항균제 사용을 지도하며 병원 감염을 겸해야 한다고 말했다. 감염과 의사는 본업 외에 미생물 전문가, 또 공중위생방면에서 실적을 쌓은 사람도 있다. 중대한 전염병 상황이 발생하면 감염과 의사가 나서서 공중위생 정책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

감염병 진료, 미생물 병원체 검측, 병원감염 예방 제어를 결합해 삼위일체를 구축하는 대감염학과가 미국 모델의 구현이다. 왕꿰이치앙은 비교적 박약한 지위에 놓여 있는 학과 3개 학과와 과실을 유기적으로 통합해 효율성을 높이고, 감염과 의사의 능력을 높이며, 과실 수입도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감염과는 중대한 전염병 상황이 닥쳤을 때 호흡기과, ICU 등 다른 과와 연동할 수 있다. 왕꿰이치앙이 보기에, 이것은 종합 병원이 감염과를 강대하게 하는 필요성 소재 및 발전 경로이다.

웡신후아는 전염병 전문병원을 소방서에 비유했다. “소방대원은 매일 불을 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화재를 진압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이 대오는 바로 이끌고 가서 사용할 수 있다.” 그는 전염병 전문병원이 만약 평소에 전염병만 치료하면 업무량이 너무 적어 이어가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런 유형의 병원은 종합병원처럼 다른 과실을 늘려 자신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예를 들어, 난퉁시 제3인민병원(南通市第三人民医院)은 그 지방 원래의 전염병 전문병원으로 전염병 환자를 수용 치료하는 병상이 삼백여 개 있다. 하지만 병원들은 평소 외과수술, 내과의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 업무를 하며 평화 시기와 전쟁 시기를 결합한다. 이 방면에서 구조를 바꾼 모델로는 베이징 지단병원(北京地坛医院)도 있다. 2010년 지단병원은 전염병을 특색으로 하는 3급 갑등(三级甲等) 종합병원의 발전 목표를 세우고 선후로 소아과, 안과, 구강과, 심내과 등 과실을 만들었다.

왕꿰이치앙은 현재 추가로 대규모 전염병 전문병원을 새로 지을 필요는 없지만 기존 전염병 전문병원을 종합병원 쪽으로 전환해 이들 병원의 종합적인 치료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전염병 전문병원은 전염병 수용 치료 요건에 맞는 격리병동을 갖추고 있는 것이 하나의 큰 장점이다. 미우샤오훼이는 이번 전염병 사태 이후 국가 차원의 투자를 늘려 각급 종합병원마다 일정량의 음압격리병동을 설치해야 하며 평소에 음압병동은 가동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병상이 남아도는 경우 다른 환자를 치료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

이번 전염병으로 후베이에서는 3,000명이 넘는 의료진이 감염됐다. 이 중 40%가 병원 감염이었고 또 비감염과 의사가 대부분이었다. 미국에선 병원감염 작업에서 임상경험이 있는 감염과 의사가 책임지는 것을 더 선호하는데, “이것은 하나의 전문적 관리이며 매우 강한 임상지식의 축적과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왕꿰이치앙은 중국의 SARS 이전에는 원내 감염 부서의 자리가 간호사들이 대부분이었다고 분석했다. 우한시 적십자병원장 시옹니앤은 그들 병원에서 병원감염부서는 병원감염 지식이 있는 간호사들이 맡았다고 전했다. SARS 이후 일부 병원의 병원감염과 담당자는 감염과 주임이 겸임하고 있었다.

왕꿰이치앙은 대감염과의 건설과 관련해서는 의료기관 내의 감염 관련 몇 개의 과실과 질병 예방 통제 부서가 좋은 융합과 상호 작용 메커니즘을 갖고 있으며, 인원이 서로 왕래할 수 있도록 하고, 가장 좋기는 미국처럼 병원의 감염과 의사가 동시에 공중위생전문가가 되어 정부의 정책에 의견을 제기하는 경로와 권력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구상했다. 2003SARS 이후 당시 보건부 부부장 왕롱더(王陇德)는 전에 이런 생각을 언급하며 토론을 벌였는데 왕꿰이치앙도 참석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흐지부지됐다. 이번 전염병 발생 후 왕꿰이치앙은 관련 부서가 이 제의를 재고하기를 희망했다.

오늘날, 새로 전염병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고, 오래된 전염병에도 새로운 문제가 생기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다중 내성 결핵(多重耐药结核病)의 출현이다. 감염의학이 인간과 미생물의 싸움에서 져야 할 책임은 경감되지 않았고 점점 무거워져 간다. 항생제와 백신의 승리는 우리에게 더 이상 감염병 전문가가 필요 없다는 생각을 갖게 했었다. “나는 오늘날 아무도 더 이상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하버드대학의 의학문화학 교수인 데이비드 존스는 말했다. 전세계 공중위생시스템의 일부로서든 아니면 면역이 손상된 사람들에 대한 돌봄에서 비롯되었든 감염의학이 왕성하게 발전하고 있다. 그 운명은 오로지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폭발하면서 더욱 흥성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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