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애옥 시인

천애옥 약력 : 시인, 전연변방송국 문학부 음악부 PD, 한국주재 연변TV방송국 지국장 역임. (현)사단법인효세계화운동본부 본부장. 재한조선족작가협회 이사.
천애옥 약력 : 시인, 전연변방송국 문학부 음악부 PD, 한국주재 연변TV방송국 지국장 역임. (현)사단법인효세계화운동본부 본부장. 재한조선족작가협회 이사.

이년 전 새해 정초, 나는 북한산 정상에 오르는 사람들의 물결에 합류했다. 꽤 쌀쌀한 날씨였지만 유쾌한 웃음소리와 힘찬 발걸음이 산길의 고요를 깨뜨렸다.

계곡을 지나 왼 쪽으로 뻗은 산길에 접어들 때 고양이의 소리가 들렸다. 둘러보니 커다란 바위밖에 없었다. 소리를 따라 가보니 바위 중간 푹 패인 홈에서 유달리 눈이 까만 아기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이마, 가슴, 발끝에 하얀 털 무늬가 있어 마치 턱시도를 받쳐 입은 아기 산랑 같기도 하고 귀여운 팬더곰 같기도 했다.

“안녕?” 나는 저도 모르게 호주머니에 손이 갔다. 마침 우리 집 강아지 샤니와 산책할 때 넣었던 간식이 있어 얼른 꺼냈다. 사람을 두려워해서 멀찍이 놔두고 한 마디 건넜다. “너 생김새 보니 깜돌이 아니야?” 반려견이랑 함께 산지는 꽤 되었지만 냥이와의 살가운 만남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 만남이 나중에 매일 한 번씩 만나게 되는 끈질긴 묘연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 후 몇 달이 지난 어느 여름날, 15년을 함께 한 샤니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을 누르며 하얀 골회함을 들고 북한산 소나무 밑에 수목장을 할 때, 평소 그 애가 좋아하던 장난감들도 같이 묻었다.

슬픔과 추억은 가슴에 묻었지만 그 애가 채 먹지 못하고 간 간식들은 어디에 묻을 수가 없었다. “누구라도 줘야지” 하면서 터벅터벅 걷다가 구기동 북한산 입구에 놓여있는 한 벤치위에 늘어지게 자고 있는 냥이를 발견했다. 살금살금 다가가 보니 삼색 털에 호랑이 상을 한 녀석은 인기척을 느꼈던지 가늘게 눈을 뜨며 “야웅 누구셔?‘ 하고 묻는 듯 했다. 내가 얼른 간식을 꺼내 주니  녀석은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내손에서 날름날름 잘도 받아먹었다. 허전하던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나는 그 애 이름을 ”삼색“이라 부르고 그날부터 그 애 밥을 챙겨주는 집사가 되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삼색이가 이곳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하며 지난지도 거의 7~8 년이 넘는다고 한다. 길냥이 답지 않게 사람을 잘 따르는데다가 호감이 가는 사람을 보면 먼저 말을 걸고 부비부비하는 애교까지 서슴치 않으니 구기동 북한산 공원 입구를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녀석을 기억했다. 심지어 그 애 팬까지 생겨 일부러 먹이를 챙겨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삼색이는 그렇게 구기동 북한산 자락에서 착한 아기 호랑이 같은 모습으로 아주 우아하고 여유 있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와중에 평화를 깨는 한 사건이 터졌다. 바로 이년 전에 등산길에 만났던 깜돌이가 삼색이 구역을 찾아온 것이다. 처음에는 삼색이가 텃세를 부리며 깜돌이를 밀어내려 했지만 젊고 힘이 센 깜돌한테 삼색이가 밀린 거 같다. 결국 깜돌이와 삼색이는 서로 양보하며 같이 밥을 먹는 사이가 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둘은 티격태격하며 나한테 잘 보이려고 애교 경쟁을 벌이는가 하면 깜돌이는 눈치를 봐가며 슬금슬금 삼색이 밥그릇에 곧잘 입을 대군 했다. 그 애는 늘 삼색이 밥이 더 맛있다고 생각하는지 꼭 삼색의 밥까지 먹어봐야 시름을 놓았다. 확실한 것은 삼색이는 깜돌이와 기싸움에서 늘 먼저 배를 땅에 대고 자세를 낮추며 백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한번은 둘이 내 마중을 하려고 앞다투어 달려오다가 다리 위에서 묘하게 딱 마주쳤다. 능청스러운 삼색이는 얼른 깜돌이 뺨에 대고 킁킁거렸다. 간혹 삼색이가 먼저 깜돌이 밥을 허겁지겁 먹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깜돌이는 뒤로 물러나 먼 곳을 쳐다보며 명상을 하는 거 같았다.

간밤에 늦잠을 잔 나는 부랴부랴 냥이 밥을 챙겨 들고 문밖으로 나왔다. 아침부터 새해를 맞이한 사람들이 끝없이 북한산 자락으로 밀려들었다. 하얀 눈이 내린 산길을 사람들 틈에 끼워 가는데 깜돌이와 삼색이는 단번에 나를 알아보고 저만치 맨발로 뛰어왔다. “왜 이렇게 늦었느냐”고 투정 부리듯 삼색이는 부비부비 하고 깜돌이는 눈 위에서 배를 보이며 뒹굴었다. 깜돌이의 애교는 땅에서 뒹구는 거였다. 그것도 반가움이 극치에 달하면 걸음걸음마다 뒹굴었다. 낙엽이며 먼지 등 지저분한 것들이 까마반지르한 그 애 등에 묻는 것이 싫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여 내가 ‘하지 마’ 해도 녀석은 변함없다.

평소 새벽에 밥 주려 가면 어두워도 발걸음 소리 듣고 용케 마중 오나 했는데 지금은 이 많은 사람들 속에 있는 나를 어떻게 금방 알아채고 찾아냈을까? 함께 가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감탄했다. “귀여운 녀석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했다. 지상에서 내 존재의 의미를 하나 더 찾은 듯 싶었다.

삼색아, 깜돌아 너희들은 어느 별나라에서 온 별들이니? 우리는 지금 지상에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먼 훗날 천상에서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혹여 어느 날, 어느 별에서 다시 만나는 그때도 눈짓, 몸짓으로 소통이 가능한 아름다운 만남을 계속할 수 있을까?

얘들아 사랑한다, 엄청 많이^^

2020년 정초 구기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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