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동휘

김동휘 약력 : 1955년 연길시 팔도 출생. 전 연변 로교수병원 중의과 주치의.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수필, 칼럼, 시, 가사 등 다수 발표.
김동휘 약력 : 1955년 연길시 팔도 출생. 전 연변 로교수병원 중의과 주치의.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수필, 칼럼, 시, 가사 등 다수 발표.

요즘 한국에선 마스크 때문에 참 난리가 났다.

마스크 공장이 폴 가동에도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주간5부제 판매를 실시한단다.

참 기막힌 것은 어제 아침 TV 보도에서 한 괴한이 낫을 들고 약방까지 쳐들어가 마스크 내 놓으라고 난리 피우는 사건까지 일어났다고 한다. 마스크가 아무리 귀하기로 심지어 선물용으로 까지 쓸 수 있다. 이런 저런 운동을 하다가 이제는 마스크 양보 운동까지 나왔다.

오늘 아침에는 마스크 전쟁이라고 까지 보도 되는걸 봤다. 참 가관이다. 마스크 때문에 온 지구가 들끓고 있을 줄 누가 생각이나 해 봤을까?

홀연, 어릴 적 생각이 나면서 아버지의 누런 마스크가 떠올랐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지만 우리 집 벽에 못으로 된 옷걸이 한쪽에는 늘 색이바랜 누런 마스크가 장식품처럼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아버지는 밖에 나가실 때면 잊을세라 꼭 마스크를 하고 나가시 군 했었다. 가끔 아버지의 가래가 섞인 기침 소리는 듣기는 했지만 그때는 잘 몰랐었다

늦잠을 자는 나를 깨우는 헛기침 소리로 알았고 내가 뭘 잘못할 때마다 경고성 귀띔으로 들리는 헛기침 소리로 생각했으며 내가 학교에 지각 할까봐 독촉하는 벨소리로 들렸을 뿐이었다.

말없이 무뚝뚝한 아버지가 어머니와 자식들에게 당신의 건재를 알리는 신호로 착각하고 지내온 것이었다.

내가 아버지가 많이 아프신걸 알게 된 때는 중학교 다니던 시절 아버지가 영영 돌아오지 못 할 곳으로 떠나가신 뒤였다.

빛바랜 나의 기억의 창고속의 아버지의 모습은 늘 누런 마스크를 끼고 마당 빗자루를 만들어 이웃에게 나누어 주시던 광경이다

비 오는 날, 내가 학교에서 돌아 올 때면 빼놓지 않고 비닐을 들고 나를 찾아오신 누런 마스크를 끼고 계신 아버지셨다.

아버지는 참 말수가 적은 분이셨다.

간혹 가다 내가 뭘 잘못해도 언제 한번 큰 소리 치시거나 질책하는걸 보지 못했었다.

아버지 기침 소리만 날이 갈수록 거칠어 갔었지만 동네에 누구네 집 이엉 얹는 날이면 지붕위에 색이바랜 누런 마스크 끼고 계신 아버지의 모습이 늘 보이군 했었다.

 어느 날, 내가 학교에서 돌아 왔는데 누런 마스크 쓰신 아버지 모습이 안 보였다.

엄마에게 들어서야 아버지는 꿀벌 몇 통 가지고 우리 동네 피파골로 양봉을 떠나셨단다.

 그 후로 거의 한 달에 한번 정도 아버지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해쓱해지고 무척 야윈 아버지 얼굴을 보는 나의 어린 마음에도 참 측은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 후 거의 5년 동안 시름시름 아프시던 아버지는 끝내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셨다.

폐결핵으로 많이 아프셨다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때에야 나는 알았다, 300호나 되는 큰 마을에 유독 아버지만 마스크를 끼고 사셨던 이유를. 그때는 마스크 낀 사람을 보자면 병원 같은데 수술 의사들이나 꼈을 정도로 드물 때였으니까 말이다.

, 지금 세월 같았으면 얼마든지 치료를 받아 나을 수 있는 병이었는데 그때는 우리 집 상황으로는 어쩔 수 없었던 걸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간혹 가다가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몸보신 시킨다며 닭곰을 해서 대접했는데 그때마다 닭다리 하나를 떼어서 내 앞에 놓아 주시던 아버지의 그때 모습이 떠오르면서 참 가슴이 먹먹해 난다.

내 평생 잊지 못할 광경을 꼽으라면 누런 마스크 끼시고 나를 데리고 강변에 목욕하러 갔을 때 얇아질 대로 얇아진 아버지의 등목을 밀어 드릴 그때였을 것이다.

내 평생 지금도 생각하면 내 가슴을 울리게 하는 것이 있다면 누런 마스크 끼신 아버지의 폐를 파먹는 기침 소리였을 것이다.

 내 평생 지금 생각해 보면 제일 후회 되는 것이 아버지한테 효도 한번 못해 드리고 너무 일찍 아버지를 잃은 슬픔 일 것이다.

 마스크 한 장도 새것으로 사드리지 못했으니 말이다. 불효의 극치였다.

 지금도 아버지께서 하늘나라에서도 마스크를 끼고 계실까? 새 마스크로 바꾸셨을까?

 생각할수록 눈물이 앞을 가린다.

 마스크 한 꾸러미 사들고 아버지 계신 곳으로 달려가고 싶다.

 아버지의 누런 마스크를 새 것으로 바꿔 드리고 싶다.

(본 수필은 친구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2020426  서울 독산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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