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소빈

[서울=동북아신문]이런 된장!

아침 대바람부터 못볼 꼴을 보고 말았다. 배가 고파 주방을 어슬렁거리다가 먹을것도 마땅치 않고 그냥 잠이나 더 자자 싶어 내 방으로 돌아간다는것이 그만 주인집의 방문을 열어버렸던것이다. 거금을 주고 내 인생에서 어느 한순간의 기억을 지워준다면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지금 이순간을 선택할것이다. 방에는 상의탈의한 바깥주인이 배를 깔고 침대에 드러누워 책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욕실에서는 물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죄송합니다!”

나는 사장이 고개를 돌리기전에 황급히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이럴땐 누가 피해자인걸까?

나는 방에 돌아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안 그래도 더운 날씨에 숨막혀서 질식할것 같았다. 식전아침부터 이게 무슨 꼴이람!할수만 있다면 오늘 하루종일 방에만 있다가 내일 아침에 바로 출근하고 싶다.

그런데 본능이란게 참으로 추잡스러운것이여서 어떠한 창피함도 결국 본능앞에서는 두손을 들수밖에 없는건가보다. 점심때가 되자 나는 결국 배가 고파 더이상 참지 못하고 1층으로 뛰여내려갔다. 식당 주방은 한창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했다.

“아깐 죄송했습니다. 방을 헷갈려서...”

“어유 괜찮습니다.그럴수도 있죠 뭐.”

사장은 아무렇지 않다는듯 태연하게 웃었다.

“뭐 드시겠습니까?”

“냉면 주세요.”

“아침부터 냉면이요?어제 저녁에도 드셨잖아요? 냉면 무지하게 좋아하시나봐요?”

“그게 아니라 너무 더워서”

“속 버려요.식사하세요. 밥 다 됐어요.”

“네...”

사장은 주문사항을 여자친구한테 영어로 전달했다.

“여기 온지 6개월이 다 돼가는데 아직 베트남어를 한마디도 못해요. 제니퍼한테 물어도 안 가르쳐주더라구요. 식당도 얘 명의로 되여있어요. 외국인은 여기서 장사를 못해요. 그래서 모두들 현지인의 명의를 빌리죠.’

사장은 맞은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더니 묻지도 않은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오셨죠?”

“저 미국 시민권자예요.여기 다큐 찍으러 왔다가 변수가 생겨서 잠깐 눌러 앉게 된거예요. 제니퍼는 그때 제 통역으로 처음 만났구요.”

“그럼 미국에 이민 가신거예요?”

나는 왠지 알고 싶지 않은 그와 그녀와의 이야기가 줄줄이 소시지처럼 딸려나올것 같아 이내 화제를 다른데로 돌렸다.

“처음엔 주재원으로 발령 받았어요. 처음에 리포터로 시작했어요. 작은 아버지가 S방송사 이사장인데 1년쯤 됐을때 ‘너 여기 말뚝 박을래?’하시는거예요. 그래서 그냥 눌러앉았어요. 이후엔 쭉 교양국 PD로 근무했어요.”

배경이라는것이 좋긴 좋은건가 보다.어느 나라든 그거 하나면 만사형통이니.사장은 본인를 다큐감독이라고 소개했다.

"다큐요? 재밌겠는데요?"

“재미요? 우리 촬영팀에 덩치가 나정도 되는 스탭이 한명 있어요. 미국 여자인데 촬영이 막바지에 달할때 수염이 다 나더라구요. 몇십키로 되는 장비 들고 움직이는거 쉬운 일 아니예요.”

“그럼 여기에 다큐 찍으러 오신거예요?”

"네.지금 제작비땜에 촬영이 잠시 중단됐어요. 베트남 전쟁때 이곳으로 오게 된 중국할머니가 한분 계세요.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 오지 마을에 남아서 혼자 살고계세요.그 분의 일상을 담은 다큐를 제작중이예요."

“그럼 지금은 프리로 활동하시는거예요?”

한국 드라마나 시사프로에 워낙 다양한 사기군들이 등장하는지라 그의 말이 별로 미덥지 않았지만 아직 주문한 음식이 나올 기미는 보이지 않고 뭐라도 대꾸는 해야 할것 같아서 나는 그와 기계적인 문답을계속 이어갔다. 그는 어느새 나의 맞은편 의자로 옮겨 앉았다.

“아니요.아직 적은 두고 있어요.”

“그거 위험부담 되게 크지 않아요?모두 사비로 제작해서...”

“네,마지막엔 카메라 몇대밖에 안 남아요.망하면 깡통차고 길거리로 나 앉을수도 있어요. 미국에선 만 65세가 되면 연금과 조그만 집을 한채 줘요. 내가 믿는 구석은 그것밖에 없어요. 지금 쉰셋이니까 한 12년만 버티면 돼요. 그동안 깡통을 차고 길바닥에서 빌어먹든 노숙을 하든.”

“열정이 대단하시네요.”

“그래도 죽기 전에 하고싶은걸 한번은 해보고 죽어야죠.제 평생의 꿈이예요.사실 지금도 많이 늦었죠.”

“김종학 감독처럼 되는거 두렵지 않아요?”

그때가 마침 한국의 한 유명한 드라마 제작자의 자살뉴스로 한국의 포털이 도배가 되던 시기였다.

"누구요?"

"김종학 감독이요."

“......”

그의 대답이 한 템포 늦었다.

"아...그분은 사전제작 때문에 그렇게 된거고. 저는 지금 얘기하고 있는 방송사가 있어요. 다행히 거기 아는 CP분이 사주겠다고 약속하셨어요. 마케팅도 하고 외국 필름시장도 갈거예요. 원래 다큐감독은 배고픈 직업이예요.대신 잘되면 후손 몇대가 먹고 살죠.난 자식도 없으니 그런 걱정도 없어요."

"그럼 지금 이 식당도 제작비를 마련하려고?...."

"네. 한 6개월전쯤 촬영이 중단되였을때 어떻게든 제작비를 벌어야 했어요. 그때 제니퍼는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잠깐 아르바이트로 제 통역을 해주다가 지금은 서로 남자친구, 여자친구 하는 사이로 발전했어요. 얘랑 사귄지 얼마 안됐을 때인데 같이 가겠냐고 물으니까 가겠다는거예요.그래서 남은 돈 다 털어서 여기다 식당을 오픈했죠.처음 왔을때는 이 건물밖에 없었어요. 하다못해 숟가락 하나까지 다 우리가 장만한거예요.그런데 얘가 온지 한달만에 자기 몫을 요구하기 시작하는거예요. 그래서 식당을 경영해서 얻는 수입을 반반씩 갖기로 했어요. 친구들이 저보고 모두 제정신이냐고 그랬어요. 근데 제가 얘랑 한방 쓰는데 제가 얘한테 월급을 주면 직원들 앞에서 얜 뭐가 됩니까?.”

“그럼 제작비가 채워지면 식당을 그만두시는건가요?”

“네.그게 지금 여자친구와의 갈등요소인데요, 얘한테 다큐얘기는 아직 안했어요.얘는 제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정확히 몰라요. 미국사람이라는것 말고는요. 그래서 식당을 그만두면 얘는 나를 따라 미국에 가겠대요. ‘식당 너 줄테니 니가 경영해라’고 해도 싫대요.수입의 절반을 주겠대도 말을 안 들어요. 이 식당도 얘 명의로 돼있어서 막말로 얘가 지금 통장을 들고 튀여도 저는 어찌할 방법이 없어요. 솔직히 식당 자금상황도 정확히는 몰라요.얘가 일절 안 가르쳐줘요. ‘그런건 뭐하러 묻냐?’면서...”

긴 대화가 오고 가는 동안에도 여자는 나와 사장을 빤히 쳐다볼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근데 여자친구는 한국말 못하나 봐요?”

“독학으로 배우고 있긴 한데 아직 읽을줄만 알고 말은 못해요. 어휴 얘가 한국말까지 하면 제가 골치아파져요. 지금도 머리가 아픈데...”

이때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근데 미스 리는 왜 이런 곳까지 온거예요.”

겨우 한술 뜨려는데 사장이 또 말을 걸었다.

“네?그냥...월급이 쎄더라구요.외국에 나와 보고 싶기도 하고.류학도 가고 싶고...”

내가 받기로 약속한 월급은 이곳 같은 직종에 있는 사람들 평균월급의 두배에 가까운 수치다. 중국내 대졸 평균초임의 몇배가 되는것은 말할것도 없고 심지어 근무경력이 몇년씩 되는 이곳 경력직들의 월급보다도 더 높았다. 그러나 세상에 눈 먼 돈이 없다는것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디로 류학가고 싶은데요?”

“미국이요.”

“생각해 놓은 대학은 있어요?”

“네.”

“어딘데요?”

“버클리 음대요.”

이래서 사람들이 사기를 당하나보다. 나는 뭔가에 홀린듯 사장의 질문에 술술 대답하고 있었다.

“아~ 음악공부 하려구요?”

“네.”

“미국 물가 높은데...그 학교 학비가 얼마인지는 알죠?”

“네...”

‘언어는 머리싸움이 아니라 시간싸움이예요.류학은 될수록 어린 나이에 가는게 좋아요. 우리 조카도 고등학교때 미국에 왔는데 적응하기 힘들어 하더라구요.제 친구 와이프들도 처음와서 백이면 백 거의 다 울어요. 여자들이 맨 처음 와서 영어도 안되고 학위도 못땄을때 제일 많이 하는 일이 네일인가 뭔가 그거잖아요, 남들 손톱 발톱 만지는거... 내가 말이야 그래도 한국에서는 4년제대학 나왔는데 여기와서 남의 손,발 만지고 있으니 다들 힘들어 하더라구요.’

"..."

"부모님이 학비랑 생활비 대주는 류학 그거 아무 의미 없어요. 진짜 류학이 목적이면 한 반년정도 생활비만 갖고 들어가면 돼요. 뉴욕 원룸 월세가 한 천불정도 하니까 딱 만불이면 되겠네요. 아르바이트해서 생활비 벌고 학비 대고 돈 모자라면 휴학하고 그래야 목표의식이 뚜렷해서 성공할수 있어요. 그리고 미쓰 리는 음악하기엔 너무 늦었어요. 그래도 참 용기 있네요.저는 그 나이때 류학 갈 생각도 못했는데. 저는 순전히 도망 온거예요. 대학가서 공부는 안하고 남들 따라 데모하러 다니니까 부모님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대로 두면 죽을수 있겠다 싶어 외국으로 피신시킨거예요.”

"사장님도 용기 있으시네요."

"하하,저는 그냥 남들 뒤에 숨어 다니는 그런 학생이였어요. 다행히 작은 아버지가 미국에 계셔서 1년만에 빼돌렸죠."

“PD 하다가 식당하기 쉽지 않았겠네요?진상 손님도 많을테고...”

“괜찮습니다.저는 제가 지금 겪는 모든게 제 작품의 소스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하다보면 대처요령도 생겨요.예를 들면 말 많은 손님을 만나면 휴대폰을 들여다 본다든가 하는, 하하”

“아,식사하세요.”

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멀리 떨어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책을 펼쳤다. 겨우 몇술 떴는데 사장이 또다시 말을 걸어왔다.

“관광은 좀 하셨어요?”

“아니요.”

지금 그럴 기분이 아니였다.이곳에 관광지가 있는지도 몰랐다.

“서쪽으로 조금만 가면 동굴이 하나 있어요. 금방 여기 도착했을때 제니퍼랑 함께 갔었는데 한번 가볼만해요. 계속 가면 바다도 볼수 있구요.그 근처에 괜찮은 리조트들도 꽤 있어요.”

(리조트 같은 소리...)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가볼게요.”

지금 나에게 관광은 언감생심이다.

“여기 생활 힘들텐데 버틸수 있겠어요.?”

“괜찮겠죠 뭐.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여기 사람 사는 곳 아니예요.”

사장이 씁쓸하게 웃었다.하긴 나도 태여나서 이렇게 외진 곳은 처음 보았다.

하띤성에 위치한 이곳은 베트남에서도 개발이 덜 된 오지였다. 이곳으로 오려면 호치민이나 하노이에서 비행기를 타고 3시간 정도 걸려서 하띤성의 주도인 빈(Vinh)이란 곳로 온 다음 다시 차를 타고 량옆으로 푸른 들판만 보이는 도로를 따라 2시간 반 정도 달려야 한다. 그럼 여기가 최종 목적지냐?천만의 말씀! 그렇게 도착한 곳은 생필품을 사고  식사를 할수 있는 식당이 있는,한마디로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한 자그마한 마을이다. 여기에서 차로 또 30분 정도 더 가야 비로소 대만 포모사가 원청업체로 있는 현장에 도착할수 있다.사무실이란것도 벽돌로 만든 건물이 아니라 컨테이너 박스를 주위다가 책상, 걸상과 노트북 몇개를 들여놓고 림시로 사무를 볼수 있게 만든 공간이다. 내가 앞으로 일하게 될 곳은 포스코사 말단 하청업체 N사, 말이 회사이지 실상은 직원 몇명 없는 사무소였다. 이곳에는 여기말고도 이런 식의 현장이 여러군데 있었는데 전부 대만 포모사의 소유였다

현장 근처에는 한국식당 세개가 있는데 전부 이 현장의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있었다. 회사마다 식당 한개씩 지정해놓고 자기 회사 이름으로 된 장부를 하나씩 만든 다음 월말에 한달치 식비를 한꺼번에 계산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었다.내가 묵은 하숙집도 원래는 식당이였는데 한국이나 호치민에서 출장 온 손님들한테 빈 방을 며칠씩 내주기 시작하다가 본격적으로 2층에 있는 빈 방들로 하숙을 받게 된것이였다.

“아무쪼록 잘 견디시기 바랍니다. 저도 두달 뒤면 여기를 떠나요. 꿈 꼭 이루시기 바랄께요.”

사장은 신나보였다.

“네.사장님도 다큐 성공하시길 바래요.”

나는 어렵게 찾은 숙소를 또 잃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되였다.

밥을 다 먹을때까지도 사장은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마치 말에 걸신이 들린 사람처럼.

“아 그리고 제니퍼한테 여권을 주세요. 호텔에 묵으면 상관없는데 일반 가정집에 머물면 기관에 등기해야 돼요. 비자기한을 넘기면 얘네들이 들이닥쳐서 잡아갈수도 있어요.여긴 무법천지예요. 야매(불법)로 얼마 찔러주고 돌려 보내기도 하지만요. 요즘 더군다나 중국과 관계가 좋지 않아서 더 그럴거예요.”......

길고 긴 아침식사가 끝나고 김과장과 잡힌 약속때문에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사장이 나한테 책 한권을 건넸다. 출간 된지 얼마 안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베스트셀러 소설 «나미야잡화점의 기적»이였다.

“여기 있으면 딱히 할일이 없어요.특히 정전되면 더하구요.시간 보내기 좋으실거예요.”

사장의 말대로 하숙집은 적어도 하루에 한번은 전기가 나갔다.

“감사합니다.올라갈때 가지고 갈게요.”

“어디 나가게요?”

“네.친구 만나러요.”

“미스 리가 여기에 친구가 어딨어요?”

(별 싱거운 사람이 다 보겠네.남이야 누굴 만나든?)

“있어요.오기 전부터 알고 지낸 언니예요.”

나는 처음보는 사람이 그런는게 썩 달갑지 않았다.모르는 사람한테 사적인 얘기를 시시콜콜 하기 귀찮아서 나는 적당히 둘러대고 하숙집을 빠져나왔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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