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소빈

호텔 앞에서 김과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입사 첫날 회사 사람들이랑 같이 본 후 두번째 만남이다.

“반가워요. 평일에는 내가 퇴근후에도 저녁 늦게까지 상무님이랑 티타임을 가져야 돼서 시간이 없어요. 오늘 오전밖에 시간이 안돼서 호텔로 오라고 한거예요.”

내가 베트남으로 오기전 미리 연락을 했을때에도 그녀는 상무님과 차를 마시는 중 이라며 길게 통화할수 없다고 했다. 2층 복도에는 노가다 일군들이 웃통을 까고 바닥에 퍼져 않아 땀을 식히고 있었다. 그녀한테는 익숙한 풍경인지 김과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사이를 가로질러 갔다.

호텔의 제일 높은 층에 위치한 그녀의 방은 거의 스위트룸 수준이였다. 상무의 바로 옆방인 그녀의 객실은 다른 사람들의 두배도 더 되는 크기였고 침대 하나와 옷장 하나, 책걸상 하나가 전부인 차장,부장급 직원들의 객실과 비교해도 세탁기와 밥솥등 가전제품과 운동기구까지 갖춰져 있어 과장이라는 직급에 비해 거의 궁굴수준이였다.

“저 오늘 아침 사고쳤어요.”

“뭘?”

나는 방에 들어서자 마자 그녀한데 오늘 아침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아~ 하하 괜찮아요. 나도 처음 베트남에 왔을때는 적응하기 힘들었어. 작은 기업들은 거의 다 그런 숙소일거야. 나도 처음 사무소 들어갔을때 자기랑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어. 아침에 내 방인줄 알고 문을 열었는데 소장님이 옷을 갈아입고 계시는거야. 그래서 ‘죄송합니다.!’하고 문 닫고 나와 버렸어.”

“그러니까요. 여기 숙소가 좀 특이하더라구요.”

“나는 그래도 우리 소장님이 보호해줬어. 내가 처음 회사에 온 날 모든 직원들한테 ‘야, 누구든 얘를 여자로 보면 안된다.’하면서.”

이때 밖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만 출신의 호텔 주인이 과장이 주문한 음식을 들고 문앞에 서있었다. 그녀가 호텔주인과 대화하는 동안 나는 방을 쓱 훑어보았다. 방에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그중에서 제일 눈길을 끈것은 빨래줄에 걸려있는 옷들이였다. 누가 봐도 남자옷인,방주인과 어울리지 않는 옷가지들이 몇개 걸려있었다.

“저 옷들은 뭐예요?”

“어, 호텔 직원들이 가끔 실수로 옷 주인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어. 한번은 상무님이 ‘다 좋은데 웬만하면 여자팬티는 좀 안봤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내가 처음 왔을때는 저 사람들 빨래도 했었어. 그러다가 어느날 상무님이 그걸 보시더니 ‘니들 빨래는 니들이 알아서 해라! 다시 얘한테 빨래 시키면 가만 안둔다’고 얘기를 하니까 그 다음부터 각자 알아서 하더라. 그래서 여러가지로 난 상무님한테 감사해.”

“저기 저 트렁크 보이지? ”

그녀가 방구석에 놓여있는 큰 트렁크를 가리켰다.

“나 이번에 휴가갈때 저것도 들고가야 돼. 내 짐도 아닌데.짜증나 진짜. 저거 자기 먼저 여기서 일했던 왕청에서 온 여자애꺼야. 그 애도 내가 데려온 애인데 한마디 말도 없이 집으로 날랐어. 그리고는 나한테 전화해서 자기 짐을 부쳐달라는거야. 에휴~”

“그 여자애는 원래 우리 회사 소속이였어. 근데 가끔은 하청업체에서 본사에 손을 벌릴때가 있어. 모른척하면 어차피 비용을 청구할걸 아니까 본사에서 가끔 자기회사 소속 직원들을 파견하는데 그 애는 내가 좀 여러번  다른 업체에 파견보냈었어. 자기도 봤겠지만 노가다판 사람들이 성질이 좀 더럽잖아? 걔가 마지막으로 갔던 호치민업체 소장이 좀 심하게 했나봐.여기서는 울면서 나한테 상담도 많이 했고. 그때마다 내가 다독여서 눌러 앉히고 했었는데 거기선 화김에 바로 중국으로 날라간거야. 집에 도착해서야 나한테 전화했더라구.짐 부쳐달라고. 그래서 걔 마지막 달 월급도 못 받았어.”

나는 그 애도 나같은 피해자였다는것을 이튿날 바로 알수 있었다.

“자기도 무슨 일 생기면 나한테 얘기해. 내가 얼마든지 일자리를 구해줄 수 있어. 포모사도 가능해.거기서도 지금 한국어 통역이 필요하거든.자기를 괴롭히는 사람들한테 복수도 할수 있고. 여기선 통역의 역할이 중요하거든. 중요한 사안을 통역안해주면 밑에 회사들은 방법이 없어.아까 그 사람들 통역한테 설설 기는거 봤지?”

포모사공사는 하띤성에서, 아니 베트남전역에서도 제일 큰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다.때문에 이곳의 하청업체들은 자그마한 공사 하나라도 따내려고 혈안이 되여있었다. 그리하여 작은 업체로부터 포스코로, 다시 포스코로부터 포모사로 향하는 먹이사슬이 형성되여있다. 원청업체의 요구사항이나 불만사항도 통역을 통해서 전달되므로 포모사의 통역은 이 먹이사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하여 어떤 업체들은 심지어 뒤돈을 찔러주고 통역을 포섭하기도 한다. 생활환경도 열악하고 공식적인 월급도 많지 않지만 통역의 말 한마디에 적게는 몇백만원(인민폐), 많게는 몇천만원이 왔다갔다 할수 있기에 비공식적인 수입도 적지 않게 올릴수 있다.포모사의 통역 한명이 포스코의 차장, 부장급을 간단히 무시할수 있는 구조라는 얘기다. 반대로 밑바닥에 있는 하청업체들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본인은 호치민의 작은 하청업체 통역으로 시작해서 능력을 인정받아 여러 소장들의 추천을 거쳐 이 현장까지 오게됐다고 한다.

“상무님이 왜 나를 중용하는지 알아? 지금도 조금 그렇긴 하지만 얼마전에 베트남이랑 우리 나라 관계가 안 좋았잖아? 그때 여기 폭동이 일어난거야. 그때 그 사람들 중국사람 한국사람 안 가리고 막 공격해댔어. 가장 심할때는 밤에 자고 있는데 갑자기 무장한 군인들이 군용장갑차로 외국인들을  호송하고 호텔밖에서 시위대와 24시간대치하고 있었으니까. 그때  대부분 통역들은 집으로 돌아갔는데 나만 여기 남은거야. 내가 없으면 우리 회사랑 포모사가 소통이 안되니까 저 사람들은 어떡하나 싶은거야. 그때부터 상무님이 나를 다시 보기 시작한거 같아.”

“안 무서우셨어요?”

“무섭지. 한번은 평소에 몇번 본적도 없는 사람을 붙잡고 잠시만 같이 있어주면 안 되냐고 할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그 덕분에 고향에 집도 두채 장만했고 아들도 상해의 좋은 대학에 다니고. 그럼 됐지 뭐”

내가 베트남에 있었던 기간에도 사람들은 되도록 현장에서 중국말을 쓰지 말라고 했었다.

“근데 제가 쉬는 시간을 뺏은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오늘 하루 밖에 못 쉬는데…”

나는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오후에 상무님이랑 골프 치러 가야돼. 그래도 지금은 예전처럼 자주 가지는 않아. 처음 왔을땐 어휴~ 새벽 3시 반에 출발했어. 상무님이 포모사 사장이랑 골프치는데 거의 매주마다 가는거야. 그 사람들은 재미있지만 골프도 안치고 따라다니며 통역해야 되는 나는 죽을맛이였어. 이번엔 휴가전에 한번만 가면 돼.”

김과장은 골프장에서 찍은 사진을 나한테 보여주었다.

“아, 자기 하숙집의 그 여자애 봤지?”

“누구 제니퍼요?”

“응.”

“걔 몇살로 보여?”

“글쎄 저랑 비슷할것 같은데…”

“맞아. 걔 자기랑 몇살 차이 안나.”

“…….”

“근데 어쩌겠니? 서로 원해서 같이 있는걸. 여자야 돈을 보는거고, 남자는 엔조이 하는거고. 다들 뒤에서 수군대는데 당사자들은 신경을 안쓰니 뭐.”

“…”

참 사람이라는 동물은 남의 일에 관심이 많나 보다. 사람들은 현장에서 수도 없이 하숙집 커플에 대해 수군댔다. ‘능력자다’ 부터 시작해서 ‘엔조이다’ ,‘단물 빨아먹고 뱉는다.’까지. 물론 식당에 밥 먹으러 갈때는 모두 세상 예의 바른 사람들로 변한다. 본인한테 피해 안주고 법이 정한 테두리를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설령 나체로 거리를 활보한들 남이야 무슨 상관이랴? 가끔 법이 사람에 따라 다른 자대를 들이미는게 문제지만.

그날 김과장이 이런 얘기들 말고도 많은 말들을 했던것 같은데 오래전 일이라 그런지, 아니면 대화내용이 영양가가 없었기 때문인지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 말고는 기억나는것이 별로 없다.

"이것봐. 나는 쉬는 날도 공부해야 돼.여기에 이렇게 오래 있었는데도 아직 용어를 다 익히지 못했어."

"어! 저 그럼 가볼께요.제가 너무 시간을 뺐었네요."

"아니예요 ,이담에도 궁금한거 언제든 물어봐요."

"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아, 저녁에 손차장이랑 김차장님이 자기 맛있는거 사주시겠대."

"네."

나는 저녁때가 돼서야 숙소로 돌아 왔다.

"손차장님 오신다네요."

주인이 식당으로 들어오는 나를 발견하고 먼저 알은체를 했다.

"네.아까 김과장님 만나러 갔다가 전해 들었습니다."

"금자씨 만났어요?"

"네."

"그 여자 말 많던데?..."

"그래요?"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냥 웃기만 했다.

"방에 계세요. 오시면 알려드릴께요."

"아래서 기다리죠 뭐."

전기가 나가는 바람에 사실 방에서도 딱히 할일은 없었다. 이놈의 곳은 어찌 된게 수시로 전기가 나간다. 에어컨도 안 돌아가니 방안은 그야말로 찜통이다.
한 30분쯤 기다리니 김차장이 손차장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어서 오세요.”

“조용한데로 부탁드립니다.”

“예, 2층에 방 비워놨습니다.”

우리는 제일 큰 방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저번에 킵 해둔거 주십시오. 소주도 3병 주시구요. 그리구 낙지볶음… 아, 미스 리도 드시고 싶은거 시키세요.”

“전 괜찮습니다.”

날씨탓도 있고 며칠동안 여기저기 치인 탓에 속은 메슥거리고 귀에서는 웅웅 소리가 났다.

“숙소는 지내기 편하십니까?”

방문이 완전히 닫긴것을 확인한 손차장이 나직이 물었다.

“네, 손차장님 덕분입니다.”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이 하숙집에 묵을수 있게 된건 손차장의 공이 컸다. 이 현장에 온 첫날 남자 15명과 베트남 여자 통역 한명, 밥 해주는 아주머니가 함께 묵는 ‘베트남식숙소’를 보고는 기겁하여 호텔을 잡아달라고 딱 잘라 말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축구공처럼 이러저리 떠넘겨지던 차였다. 나중에는 숙소문제를 두고 관련자들이 한데 모여 회의까지 열었고 그 결과 손차장의 제의로 여기 묵게 된것이다.

“예전에도 우리 회사 직원이 몇달씩 묵곤 했습니다. 본사에서 출장와도 며칠씩 묵고가고..지내시기 괜찮을 겁니다.”

"네."

"그럼 그럼, 아가씨 혼자 호텔에 오래 묵으면 안돼, 남자들은 짐승 같아서 미스 리가 혼자인걸 알면 그짓부터 하려고 든단 말이야. 그래도 숙소가 안전하지.”

김차장이 맞장구를 쳤다.
(고양이 쥐생각 하시네, 비용 아끼려고 그러는건 아니고?)

"사장님 참 좋으십니다."

하숙집 주인을 가라키는 말이였다.

“그런것 같습니다.”

“가끔 식당에서 술 마시고 취하면 방에 매트를 깔고 뻗어서 자기도 합니다. 흥이 오르면 사장님이 기타치며 노래도 불러주십니다.”

“재밌었겠네요.”

의외의 모습이였다.
"한잔? 이거 좀 독할수도 있습니다."

손차장이 내 잔에 보드카를 부으려 들었다.

"아니요, 저는 술 못합니다."

고량주 한병으로는 간에 기별도 안가는 나지만 여기서 보고 겪은 모든것들이 나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 탓에 지금 나에게는 눈에 보이는 모든것이 경계대상이였다.

"그럼 소주로 하시겠습니까?"

"아닙니가. 제가 한잔 따라 드릴까요?"

"그럼 안 권하겠습니다. 여자는 밖에서 두가지만 조심하면 됩니다. 남자랑 술. 이거 비싸서 킵 해두고 마십니다."

중국에서 한병에 몇십원이면 살수 있는 보드카가 여기에선 몇십만원씩 하나보다.

"차장님, 한잔 하십시오."

"어. 그래"

손차장은 대신 옆에 앉은 김차장의 술잔을 채웠다.

"아무튼 미스 리 잘 부탁해."

"제가 잘 부탁드립니다."

"미스 리도 김과장님 본 받아서 강인한 여장부로 거듭나기 바랍니다. 그럼 한잔 하십시다."

"네."

나는 맹물만 들이켰다. 음식은 하나도 먹히지 않았다. 그런 나와는 상관없이 두 사람은 앞에 쌓인 음식들을 안주삼아 술을 쭉쭉 들이켰다. 세명이 먹기엔 너무 많은 량의 음식이였다.

"너무 많이 시키셨어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날 위해 차린 술상이 아닌걸 알지만 나는 그래도 예의상 한마디 했다.

"원래 음식 쌓아놓고 먹는걸 좋아합니다. 어릴때 시골에서 자라서, 원래 시골인심이 후합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사람 먹을 밥은 모자라도 개 돼지 밥은 남겼습니다."
(...?)

“현장일 힘드시겠어요?”

입에 발린 말은 죽어도 못하는 성격이지만 말 한마디 없이 입에 밥만 욱여 넣을수는 없는 노릇이라 나는 아무말이라도 해야 할것 같았다.

"힘들어도 이렇게 버팁니다. 호텔이 라면 한박스씩 쌓아놓고 또 사장님네 와서 이렇게 맛있는거 먹고 풀기도 하고,허허."

손차장이 사람좋은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같이 웃을수가 없었다. 하루종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은 탓인지 아니면 더위를 먹었는지 하늘도 땅고 뱅글뱅글 돌고 눈앞에서는 별빛이 반짝였다. 결국 나는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맹물밖에 먹은게 없으니 헛구역질밖에 안 나왔다. 술자리 내내 나는 여러차례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사람들은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갔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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