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소빈

[서울=동북아신문]왕청이 고향인 이 언니는 여기 온 후 함께 밥 한끼 먹은게 전부지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타지에서 큰 의지가 되였다. 남편과 함께 호치민의 시공업체에서 근무하던 중에 포스코 프로젝트 때문에 1년정도 하띤 현장에 잠깐 내려와 있는 부부는 남편은 시공, 안해는 재무담당이였다. 내가 일을 그만두게 되니 식당주인이 연락을 한 모양이다.

“언니는 여기 온지 얼마나 됐어요?어떻게 이런 오지까지 오게 된거예요?’

"류학사기를 당했어. 원래는 영국으로 가기로 했는데 수속 해주는 사람이 우리를 말레이시아에 버리고 간거야. 그래서 말레이시아 한식당에서 설거지 하다가 어떻게 흘러흘러 여기까지 왔어."

"24살에 나왔으니까 한 8년 됐나? 베트남에 온지는 5, 6년 정도 돼."
"고생 많이 했겠네."
"그래도 남편이랑 같이 있어서 괜찮았어. 지금이야 웃으며 얘기하지만 그땐 일 끝나면 손님들이 남긴 소주에 불판에 남긴 고기 몇점 먹는게 유일한 낙이였다."

"사장님 여기 소주 세병이랑 맥주 5병 주세요. 이제 가면 언제 볼지도 모르는데 오늘 실컷 마시자. 술값은 장부에 달아놓으면 돼."

언니와 함께 온 필리핀 여직원과 함께 우리는 폭탄주를 원샷하기 시작했다. 주인은 가끔 자리를 잡고 앉아 우리의 수다에 끼기도 했다.

"그럼 언니 부부는 월급이 얼마나 돼?"

"3000불."

"3000? 한 사람이?"

"응."

"와. 김과장보다도 많이 받네. 그 여자는 자기는 실습생 애들이랑 같은 돈 받으면서 너무 많은 일을 한다고 불만이던데."

"무슨 소리야. 그 여자도 3000 받아 .내가 그 여자 회사 재무담당을 잘 아는데. 그 여자 세금이 600불인데. 그럼 400불은 누가 먹는건데?"

자존심때문이든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든 수입은 누구한테나 민감한 문제라 100퍼센트 솔직한 사람은 없다. 다만 추측은 가능하다. 베트남에서는 수입이 3000달러 이상인 사람들한테 600불의 세금을 부과한다고 한다. 모이자에 내붙은 포스코 베트남지사의 중-한통역의 초보 월급은 2000달러 정도다. 나는 그때 누구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다만 몇개월후 뉴스에서 포스코 베트남 지사의 높으신 분들이 본국의 검찰에 줄줄이 출석하는것을 봤을뿐이다. 이것과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나중에 내가 하숙집 주인한테 전해 들은데 의하면 부부내외의 월급은 두사람이 합쳐서 3000불이였다.

"그럼 돈 많이 벌었겠네. 그럼 집에 돌아가도 되잖아? 뭐하러 계속 여기 있어?"

"야, 우리 이제 막 기여다니는 애가 둘이다. 부모님두 모셔야 되구. 집에 가서는 또 뭘 하게?"

"식당이든 슈퍼든 하면 되잖소?"

"그게 생각처럼 잘 안 된다. 내 친구들도 일 벌려놨다가 다 안돼서 다시 외국 나가더라. 그리구 나나 남편이나 말레이시아의 졸업장을 누가 인정해주니? 들어가서 친구들 통해 일자리 알아봤는데 괜찮은 일자리가 없더라. 저번달에 친구들이랑 요 근처 바다가 리조트에서 5만원 썼다. 돈이란게 벌기는 힘들어두 쓸때는 되게 빨리 없어지더라. 그저 해마다 열흘 휴가 받아서 집에 한번씩 갔다오고 그런다. 하는데 까지 하자는 생각이다."

"그래두 부부가 같이 있으니까 덜 힘들겠네."

"어, 어느 날은 자고 있는데 새벽이 군인들이 들이닥치더라. 빨리 짐 챙겨서 나오라구. 그러더니 장갑차에 태워가지고 어느 호텔로 우리를 데리고 가는거야. 알고 봤더니 베트남사람들이 중국사람들을 상대로 폭동을 일으켜서 모든 중국사람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무차별로 공격하는 바람에 베트남 정부에서 무장한 군인들로 외국인들을 보호하는거였더라구. 그 호텔에 다른 외국인들이랑 사흘동안 갇혀있었어.나중에 군인들이 호치민 공항까지 우리를 전부 실어날랐고 그때 몇달간 중국에 들어갔다 다시 나왔어. 그때 진짜 무서워 죽는줄 알았다. 그러니까 니네 회사 사람들 참 개자식들이다. 너두 베트남 숙소 봤지? 나야 남편이랑 같이 있으니까 괜찮지 만약 여자 혼자 그런데 있으면 어떻게 됐겠니? 이렇게 험한곳에 여자애 혼자 놔두고.에휴~"

조용히 듣고만 있던 주인이 입을 열었다.

"미스 리가 우리 집에서 한달 묵으면 비용이 1000불 정도 나와요. 만약 호텔에 묵으면 따블로 나오겠죠? 그런데 그 사람들 숙소에 들어가면 추가비용이 발생하지 않아요. 숙소는 통째로 빌려도 한달에 몇백불 밖에 안해요. 그냥 거기 비여있는 방을 쓰면 되니까.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미스 리가 숙소에 묵길 바라죠. 그런데 호텔에 묵겠다고 하니까 그때부터 계산이 안 맞는거예요."

"한국 방송국은 모두 sky출신이라면서요? 사장님도 S대 나오셨어요?"

언니가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네. S는 맞는데 다른 S입니다."

"서강대 나오셨어요?"

이번에 내가 끼여들었다.

"네."

사장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래도 대단하세요. 이사까지 하셨다면서요?"

"이사요?!! S방송국이요?!!"

나는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아휴, 그럼 뭐합니까? 지금 여기서 고기 굽구 있는데."

주인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민망한지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뒤로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들여다보면서 술이 떨어지면 눈치껏 알아서 다시 채워주고 가곤 했다. 조금 지나자 세사람 모두 취기가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웃고 떠들며 수다를 떨었다. 말이 룸이지 우리 테이블은 천 하나로 옆 테이블과 분리돼 있었다. 그후로도 우리는 여자 셋이서 몇시간동안 술을 마셨다.

나는 중간중간 필름이 끊겼다. 그후 한참동안 나의 머리속에 남아있는 기억은 셋이서 웃고 떠드는 그림만 생각날뿐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한참 신나게 마시고 있는데 두 사람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영문도 모른채 덩달아 일어났다.

"엇! 차장님!"

언니네 회사 상사였다. 그러고 보니 나도 현장에서 한번 마주친적이 있었다. 차장이란 사람은 뚱한 표정으로 우리 세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우리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선채로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마침 술을 가지러 갔던 주인이 들어오더니 차장을 밖으로 떠밀었다.

"자자 나갑시다. 이러지 말고. 에헤이~"

잠깐의 소란이 있은 후 우리는 아무일 없었다는듯 계속 술판을 벌였다. 그후로도 나는 기억과 망각을 반복했고 마지막으로 정신을 차렸을때 두 사람은 자리에 없고 나만 남겨져 있었다.
얼마후 언니가 식당 직원들과 주인과 함께 자리로 돌아왔다.

"일어나. 방으로 올라가자."

언니가 나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응? 왜 더 마시자."

"너 취했어."

"나 안 취했어. 언제 다시 볼지도 모르는데 벌써 일어나자구? 좀 더 마시자."

"우리 차장님 너랑 술 마시잔다."

"그래."

술이 웬수다.

"우리 차장님 46살이다?"

"근데?"

"싱글이구."

"응?"

"에휴, 미친 년, 빨리 올라가! 너 취했다."

언니는 나의 팔을 잡아 끌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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