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소빈

[서울=동북아신문]사람이 절박하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그날 이후 나는 하숙집 사장의 소개로 밥 먹으러 오는 손님들이나 동포언니를 통해 몇군데 일자리를 소개 받았고 면접도 여러군데 봤었다. 심지어 식당주인한테 다큐촬영현장은 인력이 필요하지 않냐고 묻기까지 했다. 하지만 내가 통역으로 일할수 있는 회사들의 대부분은  포스코의 하청업체들이였고 그 마저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숙소를 제공하지 않았으며 제공한다고 해도 전부 베트남식 ‘별장’이였다.

그날 밤, 저녁식사후 나는 방으로 올라와 가만히 침대에 누웠다. 인생은 경험이라 했던가? 그럼 나는 이곳에 머물렀던 일주일도 안되는 시간동안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것이다. 정신이 없었고 속이 울렁거렸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한창 드러누워 지난 며칠동안의 시간들을 되새김질하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나는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릇 깨부수는 소리, 물건 던지는 소리와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한데 뒤엉켜서 내 고막을 어지럽혔다.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가다가 이내 발걸음을 멈추었다. 하숙집주인이 여자친구와 비 오는 날 먼지나게 싸우고 있었다. 구경중에 최고는 불구경이랑 싸움구경이라 했던가?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아래층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개같은 년. 뭘 원해? 도대체 나한테 뭘 원하냐고?”

암, 원래 욕이랑 싸움은 자기 나라 말로 해야 제맛인법!

“…”

여자는 씩씩거리기만 할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못 알아들은 모양이다. 외국어는 욕부터 배운다던데 한국어 교과서에 욕은 써있지 않았나보다.

“뭘 원해 어? 왓 두유 완? 뭘 어떻게 해줄까? 이런 썅년!”

사장은 영어로 같은 내용을 다시 한번 반복했다.

“나 니 아이 갖고 싶어!”

쯧쯔, 뒤의 내용을 알아들었으면 저런 대답을 못할텐데.

오디오만 들으면 비디오가 더 궁금해지는 법이다. 나는 계단을 살금살금 내려가서 얼굴만 빼꼼 내밀고 아래층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가끔 뜬금없이 발동되는 못된 심리에 나 스스로도 당황할때가 있다.

식당안은 이미 쑥대밭이 되여있었다. 땅바닥엔 깨진 접시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여자는 이미 봉두난발을 하고 있었다. 직원들은 모두 밖에 멀뚱멀뚱 서서 이 상황을 보고만 있었다. 싸움에 정신 팔린 커플은 누구도 내가 내려온걸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말했잖아? 지금까지 번 돈 반 준다고! 가게가 팔리면 그것도 너 반 줄게.너 카페 하는게 꿈이라며? 그 돈으로 니가 하고싶은 일 하면서 살어.아니면 니가 계속 식당 하든가.”

남자가 영어로 설득했다.

“아니 싫어. 나 너랑 같이 미국 갈거야. 날 미국에 데려가!”

여자가 남자의 팔을 잡아당겼다. 남자가 홱 뿌리쳤다. 여자는 저만치 나가 떨어졌다. 이번엔 여자가 무기를 찾아들더니 다시 남자한테로 달려들었다…..

우당탕탕!
……

한참 육탄전을 벌이던 두 사람은 진이 빠진듯 서로 멀리 떨어진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안더니 각자 아무말없이 한참동안 앉아있었다. 긴 침묵뒤 남자가 냉장고를 열고 맥주 한 캔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했다. 말없이 그 모습을 한참동안 쏘아보던 여자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너 진짜 나쁜 새끼야. 니가 호치민에 온후부터 내가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했는데, 어떤 여자도 나보다 너한테 잘하진 못했을꺼야!”

“미안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나 이제 쉰세살이야. 니가 원하는건 불가능해! 아무 의미가 없다구!”

"그래도 너 아직 남자잖아?"

"……"

여기까지 들은 나는 방으로 올라왔다. 재미가 없었다. 저질 치정드라마 한편을 본 느낌이였다. 찜찜했다. 이곳에 온 후 못볼꼴을 하도 많이 봐서 이젠 해탈의 경지에 달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볼게 남아있었다.

방에 돌아온 나는 동포 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실패자라고 손가락질 당해도 상관없다. 하루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꿈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어졌다.

"어디 가요, 이 밤중에?"

내가 짐을 챙겨 내려오니 사장이 게슴츠레 풀린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발음을 들으니 웬만큼 취한것 같았다.

"아는 언니네요."

"미스 리가 여기 아는 사람이 어딨어요?”

"있어요. 여기 계산해주세요"

나는 숙박비를 내밀었다. 여자도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술이 떡이 되여 있었다.

"숙박비 안 받습니다"

나의 사정을 옆에서 지켜본 사장은 돈을 받지 않으려 했다.

나는 카운터에 돈을 올려 두고 밖으로 나왔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였다. 나는 언니가 보낸 택시를 타고 그들 내외가 묵는 숙소로 향했다. 그곳에서 하루밤 묵은후 이튿날 아침, 나는 언니의 도움을 받아 호치민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호치민에서 트렁크도 버려둔채 여권만 들고 도망치듯 호텔을 빠져나왔다. 비상용으로 가지고 온 돈이 다 떨어져 숙박비를 낼수가 없었기때문이였다. 그리고 화교인 호텔 맞은편 식당주인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공항까지 무사히 갈수 있었다. 만약 그때 그 할아버지가 아니였다면 내가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번 일을 겪으면서 90년대에 외국에서 불법체류로 돈벌러 다녔던 우리 부모님들의 당시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보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나는 어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직 결론을 내지는 못했지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그저 나이가 많다고 어른인것은 아니라는것이다. 그곳에는 어른이 없었다. 그저 추악한 령혼들만 있었을뿐.

에필로그

내가 이 글을 쓴 이유는 사회초년생들과 외국에서 직장을 찾고자 하는 젊은 여성들, 또 류학생활을 꿈꾸는 학생들한테 경종을 울려주기 위함이다. 최근까지도 소설에서 김과장으로 표현된 인물은 여러 업체들을 위해 모이자 같은 구인사이트에 채용광고를 대신 내주고 있다. 많은 동남아지역의 회사들도 듣기에 그럴듯한 조건으로 ‘사무직’을 구한다고 광고를 내건다. 류학,이민 광고도 심심찮게 볼수 있다. 그런데 세상에는 눈먼 돈이 없다. 내가 겪은 일을 일반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외국으로의 류학이나, 이민 또는 취직을 희망하는 젊은이들이 부디 인터넷에 올라오는 거짓정보에 현혹되지 않길 바란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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