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아, 미스 스타킹-치마

 

 

우상렬 약력 : 연변대학조한문학원 비교문학연구소 소장‧교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박사생 도사(导师), 연변작가협회 이사. [연구방향] : 중조일문학연구. [주요 강연 과정]: 글쓰기 기초, 문학 개론, 미학 개론, 문학 비평 방법론 등. [저서] : 2009년 조류와 한류의 비교문학 연구(한국학중앙연구원 2009년 7월~2009년 12월) , 2015년 국가사회과학원기금 중점입찰사업 20세기 동아시아 항일서사정리 연구 자과제(子课题) 담당자 등 10부.
우상렬 약력 : 연변대학조한문학원 비교문학연구소 소장‧교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박사생 도사(导师), 연변작가협회 이사. [연구방향] : 중조일문학연구. [주요 강연 과정]: 글쓰기 기초, 문학 개론, 미학 개론, 문학 비평 방법론 등. [저서] : 2009년 조류와 한류의 비교문학 연구(한국학중앙연구원 2009년 7월~2009년 12월) , 2015년 국가사회과학원기금 중점입찰사업 20세기 동아시아 항일서사정리 연구 자과제(子课题) 담당자 등 10부.

  하얀 스타킹, 까만 스타킹… 엇갈려 안겨오다가 하나로 융합되어 안겨 오는 스타킹… 하얀 스타킹-조선미스들이 많이 신는 것, 까만 스타킹-한국미스들이 많이 신는 편. 조선미스들, 한국미스들 스타킹 좋아하기는 마찬가지임. 추운 겨울에도 스타킹 하나로 견디는 미스들. 스타킹 하나에 천쪼박 같은 치마 하나면 다다. 치마에 스타킹, 특히 미니치마에 스타킹이 잘 어울린다. 푸른 장딴지에 미니치마만 달랑 입은 또는 스타킹 신고 바지 입은 정상 참 꼴볼견. 촌놈! 그래서 조선미스들, 한국미스들 치마를 좋아하기도 마찬가지임. 단지 무릅을 기준으로 그 길이의 차이가 좀 날뿐. 조선미스들은 무릅을 약간 덮을 정도, 한국미스들은 전형적인 미니치마-무릅 위로 올라가 있을 정도. 조선, 한국여자들은 전통적으로 바지라는 것을 모르고 통치마바람으로 살아 왔음. 치마는 우리 여자들거야! 무슨 스커트 같은 것은 근간의 얘기고… 미니치마를 스커트라고 우기는 사람은 뛸 때 없는 우리 중국에서 골빈 놈을 많이 비꼬아 말하는 崇洋媚外. 조선에서는 전반 사회적 분위기가 여자들의 치마 바람을 제창. 여름에 여자바지 입는 것을 단속하는 규찰대까지 활약. 미스들은 이런 것에 편승하여 아래로 내려 처지는 전통통치마바람을 위로 올리붙는 현대적인 미니 치마 바람으로 승화시켰음. 미스의 젊음을 잘 살렸다. 미스의 미가 톡톡 튄긴다.

  나는 미스 스타킹-치마를 따라 다니기 좋아한다. 평양, 서울 가서 아무 할 일 없이 거저 미스 스타킹-치마뒤만 따라 다닌게 바로 나다. 잘록한 허리에 애처롭게 걸려 하늘거리는 보자기만한 천쪼박 하나, 그리고 이 천쪼박 하나에 팽팽히 묻어나는 율동적인 사과두쪽-향긋하다. 그리고 위로 바싹 올리붙는 미니치마에 돋보여 퉁퉁할 지라도 미끈하고 훤칠해 보이는 다리… 너는 분명 다 내여 주고 드러낸다. 그러나 너는 분명 또 감싼다. 갸날픈 미니치마에 스타킹이나마! 그래서 너는 적나나하고 원색적이 아닌 보일락말락, 알릴락말락한다. 여기에 삼촌(세치)짜리 빼딱 구두 신고 일자걸음으로 딱딱 걸어가면 너는 도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럴 때면 나는 미친다. 도고한 너를 꺾어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환상의 소나타를 펼친다. 미스, 잠간만… 저 치마, 스타킹 속 밑은 무엇? 순간적인 나그네의 엄큼한 생각. 그러다가 터지는 감탄! 자기도 모르게 연발적으로 터지틑 감탄! 아, 너는 미의 화신 비니스! 미스 스타킹-치마, 보기에 시원하다. 무더운 삼복철 여름에 얼음 동동 띄운 시원한 냉수 한 그릇 마신 듯 하다. 미스 스타킹-치마 좋다, 좋아!

  그런데 까딱 잘못하면 속살 드러나 미는 깨여지고 미스는 실격하기 삽함. 미스 스타킹-치마의 옥에 든 티. 그 누가 말했던가? 미는 한순간이고 지키기 어려운 것이라고! 시내 버스나 지하철 걸상 같은 데 앉은 미스 스타킹-치마들, 미를 지켜려는 몸부림 사뭇 치열하다. 평양의 미스들 누가, 특히 엄큼한 나그네들 볼새라 눈을 살풋이 내리 깔고 긴장하게 올라가 붙는 미니치마를 가다듬은 두 다리 위로 팽팽하게 끌어내린다. 서울의 미스는 좀 앙큼하다. 속은 얼어들면서도 겉으론 아무런 척도 하지 않음. 무릅 위 속살을 좀 드러낼지라도 두 다리를 포갠다. 이것이 좀 편한 편이다. 그리고 허리를 꼿꼿이 펴고 도고한 체 앉아 있는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는 평양미스, 서울미스 같은 행위자세. 미니치마 깃을 살짝 내리누르며 스프링 튕기듯 순간적으로, 폭발적으로 일어남.

  그리고 추운 겨울 미스 스타킹-치마 춥기는 마찬가지. 평양, 서울 시내 버스역에서 차를 기다리며 낯이 새파래 오돌오돌 떨고 있는 미스 스타킹-치마. 애처로와! 한 떨기 봄날의 꽃이 눈서리 속에서 몸서리치는 것 같은 그 애처로움에 어느 사나이들 무심하랴! 달려가 안아 주고 덮어 주고 싶은 미스 스타킹-치마. 그러나 나는 그 꽃이 스르질라 차마 그러지 못한다. 나는 알고 있다. 너희, 미스 스타킹-치마들은 그 가냘픈 몸이나마 퍼포먼스-행위예술을 출연하고 있음을! 유미주의 경지를 펼쳐 보이고 있다. 미의 신념, 의지의 강자들. 꽁꽁 얼어붙고 닫히고 스러진 삭막한 죽음의 계절에 너희들은 미를 환기시키고 삶의 희열을 안겨 준다. 아, 미의 사절, 미의 여신들!

 

 

                   13. 조선사람과 푸른색

                                                           

   벌린과 케이라는 학자가 <Basic Color Termes>란 논문에서 세계 여러 민족의 「푸른색」이란 말이 차지하는 색역(色域)의 폭을 면적으로 그려놓은 것을 볼 때 우리 조선민족의 푸른 색역이 유별나게 넓음을 알 수 있다. 푸른색을 중심으로 색상의 추이를 보면 황(黃), 황록(黃綠), 취(翠), 녹(綠), 청(靑), 벽(碧), 회(灰), 흑(黑)의 8단계로 조금씩 옮아간다. 이런 색상의 추이각도에서 중국, 일본, 미국, 조선사람이 푸른 색 하나를 두고 느끼는 색역을 보면 다른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중국 사람은 록, 청의 2단계 10단위 면적을 뜻하고, 일본 사람은 록, 청, 벽의 3단계 25단위 면적을 뜻하며, 미국 사람이 황록, 취, 록의 3단계 50단위의 면적을 의미한데 비해 우리 조선 사람은 황록, 취, 록, 벽까지 4단계 1백13단위의 면적으로 가장 광역의 색상을 드러내고 있다.
    이로부터 우리 조선사람은 무지개에 관한 현대과학의 칠색 스펙트럼이라는 물리적 지식이 보편화되기 전 전통적으로는 무지개의 일곱 빛깔 가운데 청색좌우에 있는 녹과 남(藍)이 푸른빛에 포함되어 오색 무지개라 불렀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 조선민족이 푸른색으로 여러 색깔을 아울러 지칭하는 데서도 나타난다. ‘푸른 하늘 은하수‘하듯 우리는 하늘색도, ‘청산에 살으리랏다‘하듯 초록색도, ‘두만강 푸른 물‘하듯 물빛도 푸르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를 보면 중국인이 많이 사용하는 어구인 ‘靑山綠水‘, ‘藍天碧海‘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중국 사람은 우리 조선사람들처럼 초목의 록은 청에 포함시키지만 물빛은 록이나 벽으로 청과 분명히 구별시키고 있다. 그리고 하늘색도 남으로 청에서 분명히 구별시키고 있다. 이외에 중국어에서 ‘靑牛‘를 ‘黑牛‘, ‘靑眼‘을 ‘黑目‘로 인지하는 것을 보아 푸른색에 검은 색을 포함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靑い空‘, ‘黃綠色の山‘, ‘藍色の海‘에서 알 수 있다시피 하늘색은 푸른색으로 우리와 공통된 특징을 보이고 초목의 색과 물빛은 각각 초록색과 남색으로 푸른색에서 구별해내고 있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푸른색에 해당하는 ‘blue‘로 우리 조선사람들처럼 하늘색과 물빛을 아울러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green‘으로 초록색을 나타내며 푸른색에서 구별해내고 있다.        

    색채학에서 보면 색채에 대한 매개 민족의 부동한 이미지 및 느낌은 그 민족이 살고 있는 기후, 풍토와 밀접히 관계되고 있음이 입증되고 있다. 매개 민족의 생존환경에 있어서의 색채의 분포는 그 민족의 색채 이미지 및 느낌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위도가 높은 중부 구라파, 북부 구라파는 대체로 기후가 춥고 음산한데다가 태양열이 약해 나무나 숲 등 초목이 흑청(黑靑)색으로 음산하다. 그래서 그런지 구라파사람들에게 있어서 ‘blue‘란 말의 이미지는 음산 일변도다. 악마를 나타낼 때 ‘blue devil‘라 하고 여자들의 우울한 생리일을 ‘blue day‘라 하며 휴일 다음 우울한 출근일에 해당하는 월요일을 ‘blue Monday‘라고 한다. 그리고 어떤 색깔에 대한 민감도 및 선호도 등도 주변 생존환경의 색채상황에 의해 절대적으로 좌지우지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푸른 색-녹색이 전혀 없는 중앙 아시아나 아랍 지역에서 그들의 회교사원을 청록색으로 한 것은 바로 녹색에 대한 갈망의 표시인 것이다. 약 1백50여 개의 유엔 가입국가들 중에서 자기네 국기에다 녹색을 쓴 나라는 40여 개 국으로, 국기에 쓰는 빛깔가운데 녹색은 가장 높은 선호도를 보이고 있다. 붉은 빛이 20개인데 비해 배나 많은 셈이다. 그 녹색 국기사용 국가의 분포를 보면 인도, 아랍 국가들 그리고 아프리카 제국 및 중남미, 소수의 지중해연안 국가에 집중된 것으로 녹색과 인연이 먼, 그래서 녹색갈망의 건조기후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또한 색맹과도 관련되고 있음이 확정되고 있다. 이를테면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의 녹색 결핍은 녹색맹 비율 9프로로 이어진데 반해 상대적으로 녹색이 풍부한 조선, 일본의 경우는 4프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다. 

  푸른 색-녹색은 분명 생명의 색이다. 우울하고 신경불안을 촉발하는 ‘blue‘의 세계에서 녹색은 그 반대 효과를 가져다주고 있다 한다. 이를테면 자살 명소인 런던 템즈강 다리에 녹색 칠을 했더니 자살자가 감소했다는 사실이나, 운송 회사에서 종전의 암회색(暗灰色) 컨테이너를 녹색으로 바꿔 칠했더니 사고가 줄었다는 등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당구대나 서양 장기의 바닥이 녹색이며 야구장이나 축구장을 녹색으로 한 것도 녹색 효과를 높이기 위한 녹색결핍풍토의 고육책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반도의 색채분포를 보건 데 푸른 색-녹색이 차지하는 비율은 여느 다른 색깔보다 크다. 산이며 들판이며 온통 녹색으로 뒤덮인 자연 속에서 가장 자주 접하고 살고 있는 것이 녹색이다. 그 만큼 천혜의 은총을 받고 있다고 해야 하겠다. 바로 이 풍부한 녹색 때문에 조선사람은 정신질환이나 알코올중독자의 비율이 구라파에 비해 현저히 낮게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것도 이 녹색이 톡톡히 한몫 하는 줄로 알고 있다.

  조선사람이 녹색을 갈무리한 가장 광역의 푸른색을 누린 것은 알게 모르게 푸른색의 효용을 그 만큼 잘 알고 있었다는 말이 되겠다.
    

                                                               

                      14. 풍산개와 진도개


  내가 조선에 교환교수로 가 있을 때다. 매일 하는 짓이란 거저 밥 먹고 책보는 일이다. 그러니 심심하기 마련. 그래서 심심풀이로 하는 짓이란 뒤 울안을 지켜보기. 눈에 비쳐드는 것은 항상 한데 얽혀 돌아가는 똥개 두 마리-숫캐와 암캐. 뒤 울안을 잘 지키라고 짝을 무어 준 행운의 개들. 그런데 개는 개라 자기주제도 모르고 하는 짓이란 고작 숫캐와 암캐사이에 하는 그 짓뿐. 낯선 사람을 보면 왕왕 짖어야 될 제 본분도 잊고 말이다. 개짓들을 지켜보노라면 괜히 외로와 지고 쓸쓸해나는 나그네. 개새끼! 정말 개새끼 상팔자로구나. 시샘. 그러다가 경비서는 아바이들이 이놈의 개새끼하며 꽥 소리 지르거나 돌팔매질을 해서 한데 붙은 놈들을 떼여 놓을 때는 깨고소하기도 했으라!

  그러다가 남조선의 김대중대통령이 북조선을 방문하고 6.15공동선언이 발표되고 북남정상이 그 유명짜한 북남코리아의 풍산개와 진도개를 교환했다는 소식에 접했을 때 개, 그 똥개도 단연 나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아니 나는 그 똥개에게 나름대로의 신성한 시대적 의미를 부여했다. 나의 그 백일몽적인 히스테리 발작. 나의 영혼은 둥둥 뜨고 환상에 놀기 시작…

  내 눈에는 똥개, 그 보잘것없는 똥개가 분명 풍산개와 진도개로 안겨왔다. 그래서 나는 이름지었다. 숫캐는 풍산, 암캐는 진도. 그리고 그 상징적 메시지는 숫캐는 북조선, 암캐는 남조선. 미국 같은 것을 우습게 보며 우리식 대로 사는 북조선은 분명 숫캐. 꼬리를 사리면서 제 살도리를 잘 하는 남조선은 분명 암캐. 어느 조선-한국학국제학술토론회에서 한 유명한 학자는 말했다. 북남코리아는 이혼한 아버지, 엄마사이. 그리고 우리 해외 교포는 장가들고 시집가 성가한 그 자식들. 일리가 있는 말. 나의 관점과 통함.

  풍산, 진도는 통일의 사자로 돋보였다. 그래서 그들이 그 짓을 할 때도 나는 더는 시샘을 보이지 않았다. 누구도 그들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였다. 오히려 통일의 현장을 눈앞에 보는 듯하여 마음은 흐뭇하기만 했다. 자기도 모르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흥얼거렸다. 나는 식당에서 사람들이 먹는 고급음식을 많이 훔치다가 풍산과 진도에게 주곤 했다. 그러니 그들도 나를 잘 따랐다. 그들은 나를 보기만 하면 꼬리를 살살 흔들며 다가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치 통일의 중개자가 된 듯한 기분 속에 그들의 머리를 쓰담아 주었다. 내가 하도 풍산, 진도하니 우리 울안에서 이들에게 붙여졌던 무슨 삐삐요, 무슨 젠젠이요 하던 오구잡탕의 이름들이 삭 가셔지고 풍산, 진도로 통일되었다. 이는 나를 더 없이 기쁘게 했다. 적막한 나의 생활에 활기가 띠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어느 하루 나는 매우 기분 나쁜 일에 부딪쳤다. 그날 어느 동물원에 구경을 갔었다. 철창에 갇혀있는 신세이나마 진짜 풍산개 한 마리를 볼 수 있어서 처음 기분이 좋았다. 정말 풍산개는 잘도 생겼다. 얼굴은 반듯하고 귀는 쫑긋하며 키는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게 적당했음. 그런데 바로 이 풍산개가 진도개와 싸워 이긴 개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의 기분은 잡쳐졌다. 풍산개사육원의 말을 들어보면 언젠가 자기네 동물원에서는 진도개도 몇 마리 키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심심하던 차 북남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북조선 풍산에서 나는 유명한 풍산개를 북조선의 상징으로, 남조선에서 나는 유명한 진도개를 남조선의 상징으로 내세워 싸움을 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풍산개, 진돗개 해도 개는 개라 자기네끼리 서로 물고 뜯고 하더니 결국 달랑 저 풍산개 한마리만 남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보니 아무래도 풍산개 아니, 북조선이 남조선보다 세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 된 것은 원래 풍산개와 진도개를 결혼시켜 통일의 풍산진도를 만들자했는데 지금 저것만 남게 되었으니 일은 허사로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바보같으니라구! 남의 장단에 놀아나는 개들, 사람들. 나는 역겨워서 돌아서 퉤퉤 침을 내 뱉았다. 우리 아버지는 늘 똑똑한 아이 밖에 나가 해본다고 하던데…

  잘 생긴 동물원의 그 풍산개, 그러나 어쩐지 눈에 정기가 없고 쓸쓸해 보이는 동물원의 그 풍산개, 항상 나의 뇌리에 맴돌아 쳤다. 나는 나의 풍산, 진도를 잘 돌보도록 했다. 그런데 나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나의 풍산이 사람들의 올가미에 걸려 데롱데롱 매달리며 찍 늘어지는것을 보고도 막무가내였다. 풍산은 살이 쪘고 진도에게 씨종자도 많이 남겼으니 이제는 사람들의 풍성한 만찬거리로 되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논리로 보아 아무리 지당할지라도 나는 그날, 풍산이 혀를 빼물고 찍 늘어지는 날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 그날 저녁 풍산의 피와 살로 된 국을 대하는 순간 속이 메슥메슥해났다. 임신중독증이 온 것처럼 말이다. 사실 나는 통일중독증에 걸렸다. 이 중독은 좀처럼 가셔지지 않았다. 나는 측은한 눈길을 외로운 진도에게서 뗄 수 없었다. 진도, 너도 바보. 너는 왜 풍산이 사람들에게 끌려가는 날 고함소리 하나 못 쳤지? 너는 약골이야.  한마디로 너는 바보야! 그러다가도 그것이 불쌍해날 때는 은근히 동물원의 그 풍산개가 생각나며 이들 둘의 통일결혼을 꿈꾸어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나는 그만 포기하고 만다. 두 바보의 결혼, 그것은 물에 물타기. 싱거운 것. 그럼 나의 통일의 꿈은 어디에? 나는 통일중독자. 꼭 통일의 꿈을 꾸야 나의 마음은 풀린다. 나의 눈길은 진도의 배에 가 멎었다. 거기에는 풍산과 진도의 사랑의 열매가 태동하고 있다. 이제 여기서 참신한 풍산진도들이 태어날 것이다. 나의 통일꿈은 이 참신한 새 세대들에게나 걸어 볼 판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통일이여 어서… 나의 통일꿈은 끝나지 않았다. 갈라져 외롭게 사는 아버지, 어머니가 하루빨리 만나 두둥실 이 세월이 다 가도록 재미나게 살아 보았으면 하는 것이 이 자식된 사람의 간절한 소망이다.

(다음에 계속)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