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배문상 사장이 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자서전을 연재한다. 부모님의 정신적 유산을 이어받아 줄곧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길을 걸어온 배사장의 감동적인 스토리가 엮어졌다. 많은 애독 바란다. -편집자-

글/ 배문상

12. 적군묘지(敵軍墓地)

 

저자 배문상 사장
저자 배문상 사장

여직원 아들이 중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웬만한 곳은 모두 다녀서 더 이상 갈 곳도 없었고, 여직원 얼굴에는 눈에 띄게 서운함과 근심이 쌓여갔다.  그렇게 아들과 원 없이 놀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고, 이렇게 놀다가 중국에 가면 아들이 공부는 잘 할지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가족여행의 구도(構圖)는 교육으로 정했다.  주중에 남편과 아들에게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을 관람하도록 하고 주말에는 경기도 파주의 적군묘지로 안내했다.

  적군묘지는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한국의 적군(북한군, 중국군)의 유해를 모셔놓은 묘지로서, 한국군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하다가 함께 발견된 적군의 유해를 모셔 두었다가 양국의 합의에 의해 주기적으로 송환하고 있다.

  한국군 전사자는 국립현충원에 모시고 있고, 중국도 국가영웅을 모시는 묘지가 있으나 이렇게 중국으로 가지 못하고 타국에서 머물고 있는 중국군들의 초라한 묘지를 아들에게 보여주며 헌화(獻花)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중국의 영웅들이 초라한 모습으로 중국의 송환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리도록 했고, 앞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되고, 이렇게 방치되어 있는 국가영웅들을 잘 모시는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교육했다.

  나의 아버지도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훈장을 수여 받은 관계로 혹시라도 아버지의 총탄에 사망한 중국군이 있을 수도 있을까 싶어서 나도 함께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그 시절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정치적인 선동으로 전쟁이 발발(勃發)하여 이유도 모른 채 숨져간 수많은 젊은 영혼들의 넋을 달래며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랐다.  나의 영광이 누군가에겐 슬픔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며...

  얼마 후 여직원 아들은 “나는 중국가면 할아버지,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하고 잘 지내고 있을 테니 엄마는 내 걱정이나 아무 걱정도 말고 건강하게 돈 많이 벌어서 빨리 중국으로 오쇼”라며 어른 같은 소리로 우는 엄마의 눈물을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닦아주고 달래더니 씩씩하게 중국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씩씩했던 아들은 비행기에서 내내 펑펑 울었다고 친척이 전했다.  얼마나 울었는지 양팔의 소매가 물에 빠진 듯 흥건히 젓고, 얼마나 코를 풀었는지 코가 헐었다고 한다.  8살 밖에 안 되는 어린 녀석이지만 생각이 크고 마음이 곧은 것을 보아 크게 될 녀석임이 분명하다.

  어미는 땅에서 비행기가 푸른 하늘에 점이 될 때까지 가슴을 치고 잡으며 피를 토하듯 울었고, 아들은 구름에 땅이 가려질 때 까지 눈물을 바람에 뿌리듯 울어야 했다. 

  서로가 아플까봐 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모자(母子)는 서로가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처럼 그렇게 생이별을 했고, 어쩔 수 없는 생이별의 현실을 저 어린것의 가슴으로 참아내야 하는 현실이 매우 안타까워 내 가슴도 먹먹하기만 했다.  그리고 이것이 대물림되지 않기를 바랐다.
 

13. 방임(放任)

 

  2018년 여름에는 여직원과 같은 사유로 남직원 아들이 한국에 왔으나 상황은 좀 달랐다. 

  남직원은 아내의 불륜으로 이혼을 하게 되었으나 아내가 중국의 친정부모에게 아들을 빼돌려 양육권을 빼앗겨 수년 동안 만나지 못했고, 이번에 아들이 한국에 있는 기간에도 주말에만 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주말에만 남직원과 함께 아들을 데리러 가고 데려다 주면서 놀이공원을 다니며 아들과 즐기도록 안내해 주었다.

  그런데 남직원 아들의 상태가 이상했다.  남직원, 친모, 장인, 장모 모두 아이가 이상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남직원 아들의 상태가 이상 없어 보였겠지만, 내가 늦둥이 아들을 낳으면서 아동심리와 아동교육에 관한 공부를 하였기 때문에 이런 나의 눈에는 남직원 아들의 상태가 매우 심각해 보였다. 

  반말을 하고 인사를 안 하는 행동, 타인의 물건을 갑자기 빼앗는 행동, 지속적으로 떼를 쓰거나 짜증내는 행동, 놀이공원에서 놀면서도 장난감 자동차에 극도로 집착하는 행동,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사줘도 밥과 김치만 먹는 행동, 먹고 싶은 음식을 물어봐도 대답을 못하는 행동, 상대의 눈을 맞추지 못하는 행동, 자신의 피부를 뜯는 행동, 무조건 싫다고 거부하는 행동을 보이고 있어서 문제가 매우 심각했다.

  원인은 장인, 장모의 방임적(放任的)인 양육(養育)과 면접(面接) 방해에 있었다.  양육비를 딸인 친모에게는 받지 않고 아빠에게 받은 양육비로 아이를 양육하다보니 양육비가 부족하여 학원도 보내지 않고 있었고, 아빠에게 추가 양육비를 요구하고 이를 응하지 않으면 전화통화도 시켜 주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수년 동안 면접을 방해하고 있었다.  이번에 한국에 있는 동안에도 돈을 요구하며 면접을 방해하였다.

  외식도 장인, 장모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외식을 하다 보니 아이가 싫어하거나 먹지 못하는 음식이어서 외식을 하러가도 밥과 김치만 먹었던 것이고, 보통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햄버거나 피자 같은 음식은 먹어보지 못해서 먹고 싶은 음식이 전혀 없었던 것이었다.

  동행하기 귀찮아서 친구 집에 데려다 주지 않거나 귀찮다고 하여 친구를 초대하지 않았고, 학원을 다니지 않아서 늘 혼자 놀았기 때문에 친구들과의 사회성이 떨어져 있었다.

  아이가 놀이를 하면서 어질러 놓으면 뒤 처리를 하기를 싫어해서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였고, 양육비 부족으로 장난감도 사주지 않아서 놀이 감이 거의 없었다.  집안을 어질러 놓지 않고 어른을 귀찮게 하지 않는 컴퓨터 게임이 유일하게 허락된 놀이 감이었기 때문에 하루에 장시간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남직원 아들이 이렇게 방임적인 환경에서 생활하는 관계로 여러 가지 문제가 발견되었고, 사람들과 눈을 맞추지 못하는 자폐증(自閉症)으로 발전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남직원에게 아들의 심각성을 알려주고 한국에 있는 동안 아들의 문제를 고칠 수 있도록 하였으나, 중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방임적인 환경에서 생활해야 하므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아동관찰보고서(兒童觀察報告書)를 작성하여 주었다.  이 보고서를 학교 교사에게 보내고 상담하도록 하였으며, 남직원에게 아동심리와 아동교육에 관한 지식을 교육해 주었고, 학교 교사와 수시로 연락하여 교육에 관심을 가지도록 지도했다.

  친모는 나에게 연락을 하며 아들이 정상이라며 항의도 하였으나, 학교 교사가 장인, 장모, 친모에게 직접 연락하여 아들을 아동전문병원에서 심리치료, 미술치료, 음악치료 등의 다양한 방법을 이용하여 치료하도록 강하게 설득과 지도를 하였다.  결국 자신들의 행동을 반성하게 되었고 친모가 적극적으로 아들의 양육에 관여하면서 아들의 상태가 상당히 호전되었다.  그러나 가끔씩 아빠의 면접을 방해하는 것은 지금도 여전하다.

  나는 다양한 체험활동을 제공하여 남직원에게 아들과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주었고 아들의 새롭고 밝은 모습도 찾아 주었다.

   그러나 친모의 방해로 작별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급작스럽게 중국으로 떠난다는 연락을 받아야 했다.  남직원은 손가락이 잘려나가고 심장을 꼬집히는 고통을 느낀다고 호소했다.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올라오는 고통과 울분을 뜨거운 눈물이 조용히 떨궈진 소주 한잔으로 위로하고 치료하며 괴로워했다.  피가 물보다 진한데 천륜(天倫)이 갈라짐을 느끼는 아비의 고통을 공감하며 나는 남직원의 가슴을 위로했다.  그리고 남직원은 나의 남동생이 되었다.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인들에게 자식을 맡기고 한국에서 근로하는 조선족의 경우 배움이 부족하고 아동교육과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방임적인 양육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고, 이혼 가정의 경우는 부모가 서로 아이를 돌보지 못하고 양육비와 면접에 대한 마찰이 있어서 아이에게 정서적(情緖的)으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혼하지 않은 부부도 함께 한국에서 근로를 하는 경우에도 방임적 양육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한 부모가 중국에서 양육하고, 한 부모가 한국에서 근로를 하는 경우에도 불륜에 의한 이혼 발생의 가능성이 양쪽 모두에게 있어서 이혼으로 발전할 수 있는 문제점들이 잠재되어 있었다.

  한국에서는 방임적인 양육을 아동학대로 규정하여 처벌하고 있다.  아동이 신체적⦁정서적 학대를 받지 않으며 부모가 양육하는 안정된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성장해야 하지만,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궁박(窮迫)한 상황에 직면(直面)하고 중국에서 교육을 받아야 하는 상황 때문에 부득이하게 어린 자녀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조선족의 현실이 한탄(恨歎)스러웠다.

  나는 이 일을 계기로 아동학대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본지는 배문상 사장이 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자서전을 연재한다. 부모님의 정신적 유산을 이어받아 줄곧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길을 걸어온 배사장의 감동적인 스토리가 엮어졌다. 많은 애독 바란다. -편집자-

글/ 배문상

 

∎ 배문상 (裵文祥) 약력

• 1992 ~ 2006 : 저축은행(구, 상호신용금고) 금융시스템 개발
⦁ 금융 시스템 개발 : 계정계, 자동화기기 등
⦁ 은행공동망 연계 시스템 개발 (국민은행, 주택은행, 동남은행 등)
⦁ 저축은행 중앙회 자료전환 프로젝트 수행 (삼성SDS 협력)
⦁ 농협 채권관리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 참여
⦁ 마케팅, 연체관리 콜센터 시스템 개발
⦁ 관리회계 시스템 개발
⦁ HP(휴렛팩커드) SE, CE, RC Manager 자격 취득
⦁ 데이터베이스 (ORACLE, Informix, MS-SQL) 관리자

• 2007 ~ 2011 : 미래저축은행 전산정보팀
⦁ 시스템 운영 및 관리 (계정계, 네트워크, 보안 등)
⦁ 대출심사시스템 구축

• 2011 ~ 현재 : 외식업(한식) 대표

• 2019 ~ 현재 : 케어솔루션 대표
⦁ 외식업 경영, 창업 컨설팅 - (사)한국외식업중앙회 서초지회 협력

• 2018 ~ 현재 : (사)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 정기후원, 서명운동, 피해자 법률 지원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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