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인 소설가, 월간 국보문학 제140기(4월호), 141기(5월호), 142기(6월) 문학상 시상식에서 소설 부문 신인상 수상

월간 국보문학 임수홍 이사장(왼쪽)이 서가인 소설가 대리수장자 이금실 선생에게 상패를 수여하다.
월간 국보문학 임수홍 이사장(왼쪽)이 서가인 소설가 대리수장자 이금실 선생에게 상패를 수여하다.

월간 국보문학 제140기(4월호), 141기(5월호), 142기(6월) 문학상 시상식이 지난 7월 25일(토) 오후 2시 서울 일자산 생태공원에서 개최됐다. 이번 시상식에서는 재한동포문인협회 이가인 소설가의 '철새'가 신인상을 받았다.

이날 시상식에는 코로나19로 수상자가 시상식에 참석할 수가 없어 재한동포문인협회 이금실 이사가 참석해서 대리 수상을 했다.  

[소설] 철새

서가인

 

자욱한 안갯속에서 현철민은 오랫동안 강가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점심쯤에 인재시장에서 나왔을 적에는 강우에서만 맴돌던 안개가 지금은 그가 앉아 있는 곳까지 다가와 그의 몸을 에워싼다. 습기가 몸으로 서서히 배어 든다.  으스스 떨린다.  현철민은 털고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얼른 손 씻고 오세요” 아내는 밥상을 차려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현철민이 집문을 열고 들어서자 썰어 놓았던 돼지고기와 배추를 차례로 프라이팬에 넣고 볶는다. 기름과 고기와 배추에서 나오는 물이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가 현철민의 귀를 자극했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밥상에 가 앉았다. 결혼한지 20년이 넘었다. 하루에 대화는 세 마디를 초과 안 한다. 아내 왕미는 현철민의 비위를 맞추느라고 노심 초사한다. 그들은 아이가 없었다.

현철민은 아홉 살 나던 해에 부모를 따라 무한에 왔다. 나라의 3선 건설을 지원하는 제1기로 그들은 상해를 떠났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상해에 계신다. 고향이 조선 평안북도 순천군인 할아버지는 독립운동하려 중국에 왔다가 연안에서 대갓집 규수인 할머니를 만나 결혼하였다. 일어와 여러 나라말을 할 줄 아는 할아버지는 조직의 수요로 집이 상해인 할머니와 상해 조계지로 왔다. 현철민의 할아버지는 1957년 반우파 운동 때 몇 번 조직의 심사를 거쳤다. 할머니 집안이 대자본가였기에 샹양난루(襄阳南路)의 큰 대문이 있는 독립 주택에서 쫓겨 나와 푸쟝호텔 뒤쪽 좁은 길을 사이에 둔 집으로 이사 가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낙천적이었다. 교화 농장으로 쫓겨 가지 않은 게 감사하다고 했다. 일층에는 조그마한 거실과 부엌이 있었고 이층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고 3층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침실 4층 다락방은 현철민 방이다. 지붕에 비스듬히 난 창문으로 내다보면 바이두교 (白渡桥)가 내려다 보였다. 해가 뜰 때면 부드러운 빛이 유리창을 뚫고 들어와 현철민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빨리 일어나라고 재촉한다. 바이두교를 오고 가는 차량들과 사람들의 목소리가 하늘을 향한 창문으로 혼잡하게 들린다. 좀 시끄럽긴 하지만 현철민은 이 다락방이 너무 좋았다.

서가인 소설가
서가인 소설가

언제 지은 집인지 나무계단은 몹시 삐걱 거린다. 예쁜 치포를 입은 할머니는 일층 소파에 앉아 있다가 현철민이 계단을 뛰여 내려오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면 한숨을 쉰다.

“조용히 다닐 수 없겠니?” 엄마는 부엌에서 밥을 짓다가 할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현철민에게 다가와 귀에 대고 가만히 속삭었다. 귀가 간지럽다. 현철만은 키득거리며 집 문을 열고 나가며 할머니에게 “갔다 오겠습니다 “하고 머리를 꾸뻑하였다. 할머니는 쩍하면 샹양난루의 집 얘기를 한다. 그곳을 떠날 때 현철만은 너무 어려서 기억에 없다.

현철민의 할아버지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그를 데리고 산책했다.

"할아버지, 조선은 여기서 먼가요.”

“멀지 않다. 배로 가면 이틀이면 간단다.”

“아--이틀이요 너무 멀어요.”

할아버지는 손자의 손을 잡고 바이두교를 거닐다가 북쪽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현철민도 할아버지 옆에 서서 바이두교의 난간을 잡고 먼곳을 응시하다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철 난간 사이로 황포강으로 흘러가는 강물이 보였다. 거품상자 같은 온갖 잡동사니들이 소주하를 덮고 있다. 물 위에 떠있는 쓰레기을 걷어 내는 배가 저 멀리 보인다. 혼탁한 물은 멈춰 선 것 같다. 물 위에 떠있는 나뭇잎이 움직이지 않는다.

1964년 무더운 여름에 현철민은 부모를 따라서 큰 배를 탔다. 장강을 거슬러 72시간을 배에 있다가 무한에 도착했을 때는 처음 배에 탔을 때의 즐거움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모두 무척 지쳐 있었다. 강을 끼고 있어서 무한의 공기도 습했다. 여름이면 40도의 열기로 에어컨을 켜놔도 별로 소용없는 날이 많았다.

엄마 아빠가 돌아가시고 만난 아내 왕미는 천식이 있어서 에어컨을 켰는데도 창문을 반쯤 열어 놔야 한다. 북풍이 부는 겨울도 마찬가지다. 현철민은 이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왔다.상해에 있는 대학에 갔다면 지금쯤 아침에 바이두교의 소음을 들으며 잠에서 깼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상상뿐이다.

현철민은 매년 여름 방학과 겨울방학을 철새처럼 상해로 날아가 오매불망하던 다락방에서 보낸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몇 번이고 비여있는 3층 침실에서 지내라고 하였으나 그는 다락방이 좋았다. 화장실이 3층에 있어서 약간 불편하기는 했다.고등학교 마지막 한 해는 평생에서 잊을 수 없는 슬픈 한 해였다.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르려 상해에 갔다 온 지 한 달 만에 자애로운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따라가셨다. 할아버지만 살아계셨써도 현철민은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상해로 돌아갈 수 있는 명분이 있었다. 이제는 돌아갈 명분이 없어졌다. 할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돌아갈 서류도 만들기 전에 이 길은 영원히 막혀 버렸다.

대학 시험을 며칠 앞두고 어느 날 부모도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돌아가셨다. 너무 큰 충격에 현철민은 3년을 페인처럼 살았다. 살고 있는 집 가두 위원회에서 정기적으로 들여다보지 않았으면 그는 바보가 되여 있었거나 죽었을 것이다. 질긴 것이 사람의 목숨이다.몇 년 후 가두에서 세운 공장에 억지로 끌려다니기 시작했다. 그 시기에 만난 여자가 왕미였다. 통통한 몸매에 얼굴은 작았는데 젊음이 차고 넘쳤다. 집을 거두어 주고 밥을 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현철민이 웅크리고 있던 집은 사람 사는 집 같아졌다. 가두 위원회의 주임이 엮어 주어서 그들은 결혼하였다. 결혼 후에야 현철민은 왕미가 천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 번 건넌 물은 다시 건널 수 없다.

할아버지는 손자가 좋은 사주를 타고났다고 했다. 이미 40이 넘은 현철민은 할아버지가 하시던 말씀이 귀에 쟁쟁했지만 살아온 나날들을 뒤돌아 보면 상해의 좁은 집에 있을 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다. 그 후의 운은 개판이다. 현철민은 자신의 사주를 좋은 자동차라고 비유하면 운은 자동차가 달리고있는 좁은 비탈길이라고 생각했다. 비탈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현철민은 날이 갈수록 우울해졌다. 아침 햇볕이 비쳐드는 다락방과 활기가 넘치는 바이두교에는 언제나 갈수 있겠는지….

다니던 공장이 부도가 났다. 돈 나올 곳이 없다. 왕미는 현철민만 바라본다.어제는 장강이 바라보이는 인재 시장에 갔다. 기업마다 젊은 사람만 뽑는다. 상해 모모 기업 무한 지사에서 근무할 직원을 뽑는다는 대자보인데 나이는 35세 이하로만 면담을 할 수 있었다. 그는 무작정 다가갔다. 외자 기업이었는데 한국 기업이었다. 저도 모르게 이 회사에 취직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앉아있던 두 명은 그를 올려다보더니 현철민의 구직서는 보지도 않고 대자보에 쓰여있는 나이를 가리켰다.

“저는 잘할 수 있습니다.” 현철민은 애원하는 눈길로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한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곤란합니다. 나이가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사람만 뽑습니다.” 다른 한 사람이 그의 구직서를 훑어보며 말했다.최종 학력이 고등학교라는 것을 본 모양이다.

“학력은 과거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건강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고된 일도 할 수 있습니다.”

현철민은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평시와는 달리 침착하게 그들을 설복했다. 그러나 면접관 두 명은 그의 구직서를 한편에 놓고 다음 구직자를 면담하겠다고 자리를 비켜 달라고 하였다. 그는 좀 떨어진 곳에 가서 기다리다가 면접관들이 서류를 정리하고 일어설 때 또 다가갔다.

“저의 할아버지는 한국의 독립군입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저의 할아버지를 봐서라도 꼭 부탁합니다.” 두 사람은 놀란 듯 동시에 그를 바라보았다. 현철민은 갑자기 할아버지가 생각나서 엉뚱한 카드를 저도 모르게 내밀었다. 그중 한 명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상해 본사에 돌아가서 회보하겠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라는 말은 드릴 수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현철민은 그들에게 어렸을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하던 절을 꾸뻑하였다. 면접관 두 명은 몹시 놀라 하였다. 착잡한 심정으로 인재 시장에서 나와, 점심도 굶은 채 강가의 벤치에 오후 내내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열흘이 지난 어느 날, 상해 지역 번호가 찍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여자 목소리다

.“현철민인가요?”

“네, 누구신데요”

"나 박사장이오. 저번에 내신 구직서 보았는데 우리 회사의 요구 사항에는 부합되지 않지만 할아버지님의 정황을 고려해서 현철민 님과 먼저 일 년 계약을 할 수 있습니다. 내일 상해로 오셔서 입사 전 교육을 받기 바랍니다."

현철민은 몹시 기뻤다. 그런데 눈물이 자꾸 앞을 가린다. 비탈길이 없어지고 자동차가 달릴 수 있는 운명의 도로가 보이는 것 같았다.

생각밖으로 상해 본사는 바이두교 건너편의 건물에 있었다. 본사에서 제공한 숙사에는 이유를 설명하고 집에 가서 잤다. 오랫동안 비워놓은 집은 먼지가 두껍게 싸여 있었다. 다락방만 치웠다. 다행히 할아버지의 오랜 부하가 한 번씩 왔다 가서 창문 유리는 온전했고 거미줄도 없었다.일주일이 금방 지나갔다. 유리로 만든 생활 용기를 파는 회사인데 뚜껑을 닫으면 물이 새 나오지 않는 새 제품이다 가격이 비싸서 매장마다 판촉원이 상주하여 제품에 대하여 손님들의 물음에 상세히 설명한다. 현철민은 현지에서 판촉원을 뽑고 교육해 각 매장으로 보내고 본사에서 내려온 임무를 완성하면 된다. 현철만은 물 만난 고기처럼 매달 임무를 초과 완성하였다.

“오늘도 바쁘셨군요.”

“응” 왕미는 매일 늦게 집에 들어오는 현철민을 기다려서 밥상을 차린다. 천식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왕미는 집에 있으면서 세월을 보낸다. 그러니 현철민에게만 매달린다. 생활비는 왕미에게 매달 꼬박꼬박 준다. 현철민은 돈을 조금씩 모으기 시작했다. 기회가 생겨 상해에 돌아간다면…….

현철민은 인생에 다시없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미친 듯이 일에만 매달렸다. 후에는 후베이성 전체를 책임져서 출장이 잦아졌다. 출장에서 돌아오면 왕미는 현철민의 여행 가방에서 옷을 꺼내 코로 냄새를 맡아 본다. 현철민은 어쩌다가 왕미의 이상한 행동을 발견했다.

“뭐 하오?” 왕미는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그 자리에 목석처럼 서있다. 왕미도 여자인 걸 현철민은 외면하고 지내왔다.

숲이 크면 무슨 짐승들이 다 있다. 일 년 후, 한국의 유리 생활용품은 특허가 있는데도 여전히 모조품이 나왔다. 중국은 모조품 세상이다. 막을 수 없는 것이 모조품이다. 사업 허가증이 있는 큰 매장과 백화점에는 못 들어 가지만 한정 스트리트(汉正街) 같은 데서는 얼마 든지 가능하다. 전국에 한정 스트리트 같으데가 열 곳이나 있다. 제품은 똑같은데 가격은 한국 제품의 절반이다. 매상고가 깎아지른 절벽처럼 떨어졌다. 창고의 제품이 나가지 않는다.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인 제품과 팔리지 않아서 반품되는 제품 때문에 현철민은 골머리를 앓았다. 하루는 반품된 제품을 끌어않고 엉엉 울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울어서 해결되면 울지 않는 사람이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세상은 잔혹하다. 세상의 모든일이 울어서 해결되면 울지 않는 사람이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사람을 위주로 해서 돌아간다. 더 편안한 생활과 안위를 추구하는 인간들 때문에 사람은 괴로워 하고 슬퍼하고 환호한다.

박사장은 연말 총회 때 24개 성에서 영업 일등 한 현철민에게 감사패를 수상하였다. 그리고 단독 담화 때는 현철민이 무한에서 5년만 근무하면 상해 본사로 이동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현철민은 나이 때문에 본사에 돌아오면 창고지기도 괜찮다고 박사장에게 말하였다. 그는 추억이 담긴 집에 돌아와서 살면 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영업액이 걷잡을 수 없게 하락하자 임기도 끝나지 않은 박사장은 한국으로 돌아갔고 새로 사장이 부임돼 왔다. 박사장은 한국으로 가기 전에 현철민에게 전화하여 아무리 힘들어도 꼭 견지하라고 하였다. 현철민은 그를 잊지 않고 있는 박사장이 너무 고마웠다. 박사장같이 정이 많은 사람은 한국인이어서 그런가 생각했다. 새로 온 사장은 몹시 까다로웠다. 판촉원들을 대거 정리하고 각 성으로 돌아다니는 게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였다. 어느 날 들이 닥칠 사장 때문에 지사 책임자들은 서로 전화 통화를 하며 동정을 살폈다. 현철민은 항상 창고를 깨끗이 청소하고 장부도 잘 기입하였다. 그는 회사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려고 두세 사람의 일을 혼자서 맡아 하였다. 그리고 전단지를 만들어 각 기관과 공장을 찾아다니며 돌렸다. 수입제이고 품질이 뛰여 나다는 것을 강조했다. 아이디어는 현철민이 냈고 중국 본사 영업팀에서 동의하에 현지에서 전단지를 찍었다.

발품을 판 덕인지 쌓여 있던 창고의 제품이 추석 상품으로 다 팔려 나갔다. 현철민은 보람을 느꼈다. 5년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왕미는 현철민이 휴식 날 기분이 좋아서 베란다에 기대서서 하모니카를 부는 것을 보고 점심때 채를 두 가지 더 만들었다. 현철민은 종래로 술을 안 마시는데 근처 슈퍼에 가서 맥주 한 병을 사 왔다.

“한잔하겠소?” 현철만은 맥주 고뿌를 왕미에게 내밀었다

.“아니요.”왕미는 실눈으로 현철민을 쳐다본다. 갑자기 현철민은 왕미한테는 알코올이 들어 있는 것은 금물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즐거울 때같이 기뻐해 줄 상대가 없는 게 서러웠다. 왜서 왕미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현철민 자신도 몹시 괴로웠다. 맥주 한 병을 다 마시니 혓바닥이 굳어지더니 입술 주위가 파르르 떨린다. 의식이 점점 몽롱해진다. 침대에 겨우 다가가 꼬구라졌다.

그는 꿈을 꾸었다. 할아버지와 같이 큰 배를 타고 할아버지가 가고 싶어 하던 조선으로 간다.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다. 현철민은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배의 갑판에 서있다. 갑자기 바람이 일더니 파도가 덮친다.

“철민 씨, 얼른 전화받으세요.”현철만은 비몽사몽간에 가까스로 일어났다.

“어디요. 나 없다 하시오. 난 휴식도 못하나” 그리고는 다시 누워 버렸다.

“상해에서 오신 사장님이라고 하시던데요.” 하필이면 휴식 날 그것도 술을 마신 날이다.

현철민은 일어나 앉았으나 머릿속은 여전히 흐리멍덩하다

.“네. 전화 바꿨습니다.” 현철만의 혀는 아직 정상에 돌아오지 않았다.“나 김사장이오. 지금 무한 공항에 내렸는데 한 시간 후에 사무실에서 만납시다.” 분명 켜놓은 전화로 현철민이 휴식 일이라는 혀 꼬부라진 말을 들었을 텐데 기어이 만날 모양이다.샤워를 하고 왕미가 떠다 준 꿀물을 마시고 새 옷을 갈아입고 한참 야단법석 하다가 집문을 나섰다. 다행히 사무소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김사장이 사무소에 도착하기 전에 문 앞에서 기다릴 수가 있었다.

그 해 구정이 다가오는 한 달 전 현철민은 회사에서 보내온 속달 우편을 받았다. 원 계약이 끝나면 새해에는 계약을 하지 않는다는 통보였다. 이 회사와의 인연은 4년 만에 끝이 났다. 현철민은 구질구질하게 박사장이 승낙한 일로 회사와 협상하기가 싫어졌다. 아직 건강한데 일을 또 찾아보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김사장같이 인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런 회사에는 다니지 않아도 아쉬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최선을 다한 4년의 세월이 아까웠다.

어느 날 현철만은 처음 왕미와 진지한 대화를 하려고 했다.

“구정 쇠고 우리 같이 상해에 가는 게 어떻소”

“혼자 갔다 오세요."

“내 말은 아예 상해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이요”

왕미는 너무 급작스러운 질문을 받아서 입을 반쯤 벌리고 현철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시골에서 온 판촉원들도 큰 도시에 들어와 사는데 우리라고 상해에서 살지 말라는 법은 없소”

현철민과 왕미는 결혼 후 처음으로 저녁 늦게까지 이야기를 이어 갔다.

 

서가인 소설가
서가인 소설가

서가인 수상소감


생각지도 않았다가 이번에 월간 국보문학 소설 부문 신인상을 받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우선 월간 국보문학의 이사장님과 심사위원 모든 분들께 부족한 저의 소설부문 신인응모작인 단편 소설 「철새」를 잘 봐주셔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직접 가서 인사를 드리지 못해서  미안하게 생각을 합니다.

저는 소설을 쓰면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치고 또 고치다 보니 어떤 작품은 원래의 생각과 많이 달라지곤 하였습니다. 이번 등단을 출발이라 생각하면서 마음이 가는대로 쓰고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군더더기가 없는 원숙한 작품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평소 가슴에 새기고 있는 어느 작가의 말을 여기에 옮기며 소감을 마칩니다.

"글을 쓰는 것은 이름을 날리기 위해서도 아니고, 특정한 독자를 위한 것도 아니다. 그저 글을 쓰는 것이 세월이 덧없이 흐르더라도 마음이 편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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