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렬 시인

허인 약력 : 본명 허창렬. 시인, 평론가. 기자/편집 역임. 재한동포문인협회 전부회장. 동포문학 시부문 대상 등 수상 다수.
허인 약력 : 본명 허창렬. 시인, 평론가. 기자/편집 역임. 재한동포문인협회 전부회장. 동포문학 시부문 대상 등 수상 다수.

바위 /허창렬

 

흥안령
제일 북변 이곳
광야에 와서
죽어도
뉘우치지 않으려는
마음은
고향의 반달이
깨여진
까닭이라 했지요

사람의
날개마저 접어지지
않는 이 하루
까칠한 회오의
그 섧은
앓음때문에
득 그어 올린 성냥 한가치와
스쿨한 담배 한대

속으로만
속으로만
열망과 패망을
끝없이 울었나니
이미 가져온걸 다
저버리고
호읍한 이곳에
알몸으로 우뚝 나는
다시 서리라

사념의 탈주에
하늘은
한 정거장 더
머얼리 진창길에
메아리로
아츠랗게 서 있을
지라도

 

바위

 

나의 피는
암갈색이다
나의 뼈는
하얀 색이다
나의 눈은
파란색이다
나의 심장은
까만색이다
구두는
물가에 고스란히
벗어놓고
맨손, 맨발로 세월과
신나게
물장구 치는 아이들
천년의 년륜에
백년의 수좌승이 또
엉 엉 운다
만년이면 머리털이
죄다 빠지고
옆꾸리에 동전만한
구멍이 숭 숭
뚫릴지라도
먼 하늘 우러러
머언 우뢰소리에
들썩들썩
신들린 어깨춤ㅡ
잠결에도
장구채 휘두르며
전야에서
덩실덩실
탈춤을 추시던
아버지의
그 모습이 선히
머리속에
둥실 떠오른다...

 

인간의 조건

 

어떤 녀자가 말한다
당연히 그래야죠
누구한테서 죽 한사발 달라고
한적도 없고
또한 그럴 일도 없겠죠! 난
당당하게 살거예요
이게 나의 좌우명이고
숙명이고 운명이라고ㅡ
인간으로 살기
너무 힘든 요즘 세월,
나는 자꾸 왜 물 앉았던가?
나는 자꾸 왜 꿇 앉았던가?
나를 밟고 누군가
헤벌죽 웃으며 지나간다!
돌멩이가 되여 쌩하니
그런 자들의 뒤통수 보기좋게
한번쯤은 철썩
후려치고 싶다가도
조금 더 철이 든 내가
그래도 참아야지ㅡ
지긋이 눈을 감는다
눈 감으면 그제야
이 세상이 똑바로 보인다.
내속에 핀 너의 꽃은
날마다 나의 정성과
깨끗한  물로 얼굴이 화안하다

 

사과배

 

사람 냄새가 하도 그리워
서울로 간다
이 세상 어딘가에
기대고 싶어 대림역
지하철 입구에
한그루 나무로 우뚝 선다.
그곳에는
연변 어디선가 온
미스 리의
지분냄새가 있고
흑룡강 어디선가 온
강씨 아저씨의
사발 깨지는듯한
높은 억양도 있다.
사과도 아니고
배ㅡ도 아니고
짜그배도 아닌 내가
사과배로 낯설게
한무리 또 한무리의
하이에나속에
외발로 서 있다!
이제는 강한 펀치가 아닌
향긋한 맛을
보여줘야 하는 때ㅡ
굴리면 세상은
손바닥안에서 똑또그르
달아난다...

 

오늘에 살자 

 

내가
한묶음의 꽃을
당신의
넓은 가슴에 안겨
주었을때
그 꽃 향기를
제일 먼저
맡을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였다

내가
저주의 흙덩이를
님의
먼 발치에
꺼리낌 없이
쥐여 뿌렸을때
제일 먼저
어지러워 지는것
역시
나 자신의
두 손이였다!

오늘도
하루종일 누군가를
흠모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높이
우러러 쳐다볼수
있다는것은 얼마나
이 가슴이 울먹하고
자랑스러운
일인가?

허나ㅡ
불의에 맞서 그렇게
다 이겨놓고서도
결국 인정앞에 다시금
두 무릎
털썩 꿇어야 한다는건
또한 얼마나
비감한
일이였던가?

누가
지는것이야 말로
진정
이 세상을 이기는
방법이라
말을 했던가?

알고서도
모르는 척 살아야
했던 지난 30년,
모르면서도
아는 척 살아야 했던
지난 30년은
죽고 싶도록이
불행하게
행복한 운명의
장난이였다

오늘에 살자!
이제 단 하루 더 살지라도ㅡ
나다운 나가 되여
너다운 너와 함께
마침내
우리가 되여
손에 그 손을 잡자!

이리 흔들리고
저리 또 넘어지고
여기서 부딪치고
저기서 생긴 상처
두손을 홀홀 불어가며
아파하면서라도
무한의 영속성속에
어둠은 걷히고
새날은 까아맣게
밝아 오려니ㅡ

래일은 오늘도
우리들이
마음껏 지껄일수 있는
희망 사항일뿐ㅡ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열리지도 않았으니

분함도 ㅡ억울함도ㅡ
저주도ㅡ 분노도ㅡ
죄다 잊고 우리 지금이라도
오늘에 살자!
비 내리면 찬비속에
눈이 내리면 또 눈보라속에

단 한번도
고장이 없는 저 세월을
지느러미 하나로
평행 유지해가면서라도
너는 너답게
나는 나답게
오늘에 살자!ㅡ
억만년이 지난후
우리들 삶의 흔적이야
보이던지 말던지
죽으러 온 세상
죽기전까지
래일을 희망으로
그렇게 살자!

난 불행하게도
너와
함께라면
오늘도 하루종일
너무
행복하다...

 

바다 1

 

내가 죽어 가야
할 곳은
저 높은 하늘뿐이다.
내가 죽어
기대어 의지할 곳은
바람뿐이다
구름뿐이다
파도뿐이다

미개(未开)의 유풍에
길 들여져
죽어도 뒤 돌아 보려 하지 않는
이 고집은 안으로만 안으로만
삼켰던
그 눈물이 너무
쓰고 짜고
떫기 때문이다

춘신(春信)의 꽃바람에
하얗게
흔들리는 나의
눈동자
나의 손과 발 나의
몸뚱이ㅡ
내가 죽어 갈곳은
결코 부모님이
하얀 뼈로 묻혀 있는 내 고향뿐이다.

철없이 가난하여
목 마른 맨발로
나무를 줍던
내 동년의 사슴처럼
올롱하고
순진했던 두 눈에서는
짐승처럼
사나운 바다의
짠 냄새가
아직 피처럼 흐른다...

 

바다 2

 

아무도 없는 이 곳에 와서
어디냐고
어디냐고
자꾸 되 묻는다는건
아마도 사람이 그립고
인정이 너무 그리운
그런 까닭이리라

목숨보다 거룩한
자연의 숭고함에 고개
푸욱 떨구고
내 깊은 한숨마저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그런 뜨거운 땅
뜨거운 노래가
아직 내 가슴에
남아 있기때문이리라

압록강같이 푸르고
두만강같이 짙푸른
검푸른 소금을 밟고
마지막 한방울의
눈물마저 아낌없이
바다에 보태려는
내 생의 운명이고
숙명이고
사명이기 때문이여라

바다가 일어서면
나는 눕는다
바다가 누으면
나는 비로소
파도로 이랑 이랑
슬프게
다시 일어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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