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렬 약력 : 연변대학조한문학원 비교문학연구소 소장‧교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박사생 도사(导师), 연변작가협회 이사. [연구방향] : 중조일문학연구. [주요 강연 과정]: 글쓰기 기초, 문학 개론, 미학 개론, 문학 비평 방법론 등. [저서] : 2009년 조류와 한류의 비교문학 연구(한국학중앙연구원 2009년 7월~2009년 12월) , 2015년 국가사회과학원기금 중점입찰사업 20세기 동아시아 항일서사정리 연구 자과제(子课题) 담당자 등 10부.
우상렬 약력 : 연변대학조한문학원 비교문학연구소 소장‧교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박사생 도사(导师), 연변작가협회 이사. [연구방향] : 중조일문학연구. [주요 강연 과정]: 글쓰기 기초, 문학 개론, 미학 개론, 문학 비평 방법론 등. [저서] : 2009년 조류와 한류의 비교문학 연구(한국학중앙연구원 2009년 7월~2009년 12월) , 2015년 국가사회과학원기금 중점입찰사업 20세기 동아시아 항일서사정리 연구 자과제(子课题) 담당자 등 10부.

30. 한국노래와 조선사람

 

조선 카라OK 갔다가 한국노래 <아침이슬>,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있어 은근히 놀랐음. 가만히 보니 아침이슬은 한국대학생들 데모할 때 부르는 투쟁의 노래라 부르게 하는 것 같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통일의 열망을 나타낸 노래라 부르게 하는 것 같다. 이런 노래들은 조선노래 메뉴첩에 섞여 있는데 조선사람들은 거저 조선노래로 알고 있는 듯하다. 한국 자본주의 것을 배격하는 조선에서 한국노래가 조선노래로 둔갑해 있을 줄을 일반 조선사람들이 어찌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조선에서 아침이슬은 그리 알려지지 않은 것 같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많이 알려진 것 같다. 조선사람들이 아침이슬을 흥얼거리거나 부르는 것은 못 들었어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흥얼거리거나 부르는 것은 많이 보았다. 이것은 통일의 열망이 그 만큼 강하다는 것을 말해 주리라. 

한번은 전문 우리에게 차를 몰아 주는 함경도 아바이가 운전을 하면서 노래카세트를 띄웠다. 「그토록 사랑을 하건만…」  <사랑의 미로>. 뛸 데없는 <사랑의 미로>다. 나는 두 눈이 데꾼해 졌다. 저 아바이 정신 있는 거야? 노망은 아니겠지? 여기서 한국노래가 다 뭐야. 그것도 애짭짤한 사랑의 노래를 말이다. 아니, 한국노래 어디서 났지? 우리 외국 교환교수나 유학생들한테 얻은 건가? 함경도아바이 좋다고 코노래까지 흥얼. 아바이, 이 노래는 어디서 났스꾸마? 이렇게 들어도 일없어꾸마? 도무지 궁금증을 금할 수 없어 한마디. 나기는 어디서 나. 우리 조선꺼지. 들으라구 나온건데 왜 못 듣는다 말이야? 좀 억울하다는 듯이 무뚝뚝한 대답. 아바이 반동이꾸마. 이거 남조선 노래꾸마. 나는 시치미를 떼고 정색을 하며 연극을 놈. 뭐? 남조선 노래? 이게 어찌 남조선 노랜가 말이야. 이거 우리 노래야. 선생 알기는 개떡이나 알고 그러우. 내가 함경도사람들이 많이 사는 연변에서 온 것을 알게 되면서 나하고 스스럼없이 자별나게 친해진 함경도아바이. 그러자 내 옆에 앉았던 당돌한 러시아 교환교수가 그거 남조선노래 맞다고 장훈을 쳤다. 맞기는 뭐가 맞다 말이요? 선생들 다 반동이다 말이요. 거저 듣기 좋은 노래는 다 남조선 꺼라니 말이요. 워낙 고집이 센 함경도아바이인지라 고분고분 동감을 표시할 사람이 아니였다. 그래서 나는 못 이기는 척 아바이 말 맞스꼬마 하고 맞장구를 쳐 주었다. <사랑의 미로>는 어느새 지나가고 이제는 <서울이여, 안녕!> 노래의 은은한 멜로디.

후에 안 일이지만 함경도아바이가 듣던 카세트의 한국노래는 일본조총련계통의 예술단체가 조선을 방문하면서 부르고 연주한 곡이란다. 이 예술단체에서 부르고 연주한 곡인 만큼 별로 문제될 것이 없는 줄로 판단되 조선에서 카세트에 담아 공개 발행한 것 같다. 조선에서 일반 백성들은 무릇 국가에서 공개 발행한 것은 절대적으로 다 좋은 것으로 믿는다. 그럴 진대 함경도아바이가 무리를 부린 것은 아니다. 조선사람들은 <사랑의 미로>를 매우 좋아하는 것 같다. 한번은 우리 유학생기숙사에 동숙생으로 있는 조선학생이 이 노래를 슬슬 부르며 내 옆으로 지나간다. 그런데 가사가 좀 이상했다.  <사랑의 미로>의 원래 가사하고는 좀 다른 거 같았다. 그래서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그 노래 참 듣기 좋으니 노래 가사 좀 베껴 달라고 했다. 그토록/사랑을/… 그 친구가 베껴준 노래가사. 그럼 그렇겠지. 가사가 조선 식으로 많이 개변되어 있다. 가벼운 순정적인 「애모」가 사회의무감이 가미된 무거운 사랑노래로 둔갑했다. 조선 식 사랑노래로 말이다. 좀 구체적으로 말하면 조선에서 가장 많이 불리우는 <휘파람> 식. <휘파람>은 개인적인 사랑의 미묘한 감정을 잘 엮어 가다가 매 절마다 부지중 「혁신자」, 「꽃다발」라는 말이 튀어 나와 사랑의 사회적인 가치판단을 내비치고 있다. 순 개인적인 사랑 감정보다는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공동의 가치판단에 뒷받침된 조선 특유의 사랑노래. 조선에서는 이런 가사 개작을 잘 하는 것 같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도 2, 3절에서 각기 조선에서 가장 많이 외우고 있는 자주, 민주를 바라는 내용으로 둔갑하고 있다. 

조선사람은 한국노래를 좋아한다. 물론 사회주의 조선에서 자본주의 한국노래를 부르게 하거나 제창하지 않는다. 오히려 통제하고 금지하는 편이 낫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조선사람들은 한국노래에 절로 빠져들어 가는 것 같다. 그 인정에, 그 순정에, 그 진실에…

조선에서 교환교수 생활 정말 무료. 책보는 일 외에 하는 일 별로 없음. 그런데 생각밖으로 한국노래 들을 수 있어 참 좋았다. 여기 유학하고 있는 중국유학생들이 어떻게 가져 들어 왔는지 한국노래 카세트를 많이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책보는 일 외에 내가 좋아하는 한국노래 카세트 빌려 듣기.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가 한국노래를 들을 때마다 문밖에 투박하게 생긴 청소하는 아줌마가 청소하는 척하고 서성거렸다. 처음 나는 더럭 겁이 났다. 남조선 노래 듣는다고 고발하자고 그러는 건가? 남조선 노래 듣는다고 감시하는 건지? 나는 불길한 생각이 갈마들며 녹음기를 순간적으로 탁 꺼 버렸다. 그러자 그 아줌마는 천천히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그럼 그렇겠지. 나는 밖에서 잘 들리지 않도록 소리를 작게 다시 틀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그 문제의 아줌마가 또 내 방 부근에서 물걸레질을 하는 척 하며 서성거렸다. 무더운 여름철이라 문을 열어 놓다보니 밖에서 아무래도 들리는 모양이다. 나는 벨이 왈칵 나 녹음기를 탁 꺼 버리고 문을 쾅 닫아 버렸다. 그런데 그 얄미운 아줌마는 이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거저 수걱수걱 그 모양 그 대로임. 그래서 나는 그 아줌마가 얼마나 더 미워났는지 몰랐다. 그 후에도 아줌마와 녹음기를 켜고 꺼고 하는 신경전을 몇 번 더 벌렸음. 그러다가 나는 정말 더 참을 수 없었다. 신성한 인권이 침해당하는 모욕감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푸르딩딩 해서 내 문밖에서 서성이는 아줌마에게 다짜고짜로 물었다. 아줌마, 아줌마는 왜 내가 노래 들을 때마다 감시하는 거지? 어리뻥뻥해 하는 아줌마. 감-시는 무슨 감시 말입니까? 나는 거저 노래가 좋아 들을 뿐입니다. 어디 노래입니까? 이번에는 내가 어리뻥뻥. 노래가 좋아? 정말? 어디 노래인가구? 나는 어리뻥뻥한 속에서도 한 가닥 의심은 사라지지 않아 우리 연변 조선족노래라고 둘러 맞췄다. 그러자 아줌마는 노래가 참 듣기 좋다고 연신 혀를 찼다. 나는 멀어져 가는 아줌마 뒤 모습만 머리를 갸웃하고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 후 내가 한국노래 카세트를 띄울 때마다 아줌마는 여전히 그 모양 그 대로 문밖에서 서성거림. 나는 아줌마의 진실을 믿었다. 투박하게 생겼으나마 아줌마는 노래를 잘 부를 것 같고 노래를 좋아하는 것 같다. 청소할 때도 혼자 코노래를 잘 흥얼거리지 않던가? 고발했으면 언녕 했지 않겠나. 도적이 괜히 제 발 저린 격. 나는 아줌마가 고와 보였다. 그래서 내가 노래를 띄울 때 그렇게 서성거리지 말고 들어 와 들으라고 권했다. 그러자 규정상 그래서는 안 된다고 살며시 말하는 것이였다. 그래서 나는 카세트를 빌려 줄 테니 집에 가지고 가서 조용히 실큰 들으라고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런 노래를 집에서 들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한국노래 카세트를 띄울 때마다 아줌마가 잘 들을 수 있도록 언제나 문을 열어 놓았다. 추운 겨울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귀국하기 며칠 전 나는 아줌마를 조용히 불렀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했다. 아줌마가 이때까지 들은 노래는 한국, 아니 남조선노래입니다. 나는 진실을 말해 주고 싶었다. 순간 사색이 되여 멍하니 나만 쳐다보는 아줌마. 심판관 앞에 선 죄진 사람처럼 말이다. 나는 아줌마에게 미안한 감이 들었다. 괜한 말을 해 가지고 말이다. 일 없습니다. 거 잘난 노래 좀 듣는데 뭘 합니까? 듣기 좋으면 듣는 거죠 뭐. 아줌마에게 얼마만큼 위안의 말이 되겠는지…

내가 침실에서 한국노래를 들을 때 때로 동숙생들이 찾아 왔다. 나는 이들에게도 나는 연변조선족 노래를 듣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은근히 알고 있는 듯하다. 그들은 연변노래도 남조선노래를 많이 닮아가고 있다고 슬쩍 비꼬아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쩍 하면 나하고 조선노래가 어떻소, 남조선노래가 어떻소 하며 쟁론을 벌렸다. 결국 조선노래는 혁명사상으로 무장되 힘이 있고 건전, 남조선노래는 퇴폐사상으로 가득 차 있어 사람들을 타락하게 한다는 것이다. 나를 교육하자는 것이다. 나는 슬그머니 벨이 꼬였다. 괘씸해 났다. 이른 바 조선의 최고 지성이고 정수라는 선택된 놈들의 이렇게 단순한 아이들의 흑백논리에 나는 분노한다. 무식쟁이 투박하게 생긴 아줌마보다도 못한 자식들. 노래 하나 용납 못하는 주제에 통일이 다 뭐냐 말이다. 정말 못 봐 주겠다. 다 뒈져라!   
 


31. 쌍소리

 

내가 조선에 있을 때 제일 재미나는 때가 어느 때인고 하니 창광원에서 사우나 하기. 토요일은 외국인 특별봉사-창광원 사우나. 외국인 특별봉사라 하지만 외국인 따라 다니는 조선사람에, 사회적으로 괜찮은 조선사람도 우리와 같이 사우나를 하게 된다. 

외국인, 외국인이래야 중국사람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외국인과 조선에서 잘 나간다는 조선사람들 올망졸망 사우나 칸에 앉는다. 조선사람들 앞의 것을 수건으로 슬쩍 가리고 땀을 뻘뻘 흘리며 니 한마디 내 한마디 걸죽한 쌍소리 시작. 그러면 다른 조선말은 잘 못 알아듣지만 이런 조선말은 잘도 알아들어 하하하- 앞의 것 들렁이며 재미나다고 들어주고 웃어주는 중국사람들. 쌍소리 경연장을 방불케 하는 조선의 사우나. 조선사람들은 이 벌거벗은 사우나 칸에서 제일 진실한 것 같다. 그리고 이 칸에서만은 존귀, 고위를 벗어나 니네 없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도 니 한마디 내 한마디 잘도 받아 주고받아 넘기는 쌍소리의 재치가 흘러 넘친다. 나는 조선사람들의 이 쌍소리 묘미에 빠져 120도를 웃도는 사우나 칸에서 오래 견딜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배꼽이 뒤번져 지도록 웃어보기도 했다. 

전문 우리에게 차를 몰아 주는 함경도아바이 쌍소리 걸작. 우리는 모두 이 아바이를 좋아했다. 유학생들은 웃음 속에서 조선어를 배울 수 있어 좋다고 이 아바이를 더 잘 따랐다. 함경도아바이는 운전을 하면서도 곧 잘 쌍소리를 했다. 이 쌍소리 때문에 차안은 항상 웃음판. 함경도아바이 쌍소리 빼 놓지 않고 듣겠다고 차 앞자리를 차지하기에 바쁜 유학생들. 꼬토리는 왜 꼬토리라 하는지 아냐? 학생들 앞에서는 항상 질문으로 부터 시작하는 함경도아바이의 쌍소리. 고우니깐 꼬토리. 누구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제 흥에 겨워 대답해 버리곤 하는 함경도아바이. 불알은 왜 불알이라 하는지 아냐? 부러우니깐 불알. 자지는 왜 자지라 하는지 아냐? 자고 싶으니깐 자지. 뽀대는 왜 뽀대라 하는지 아냐? 포대니깐 뽀대. 보지는 왜 보지라 하는지 아냐? 보고 싶으니깐 보지… 처음 이런 쌍소리를 들을 때 나는 저 아바이 나이 먹어 노망들어 학생들 앞에 주책머리 없이 노는 거 아니야? 하고 내 쪽에서 오히려 얼굴이 붉어지고 달아올랐다. 사실 함경도아바이는 나름대로 대상을 봐 가며 쌍소리를 한다. 그는 우리 선생들에게 쌍소리를 들려 줄 때는 항상 정색을 하고 소리를 죽여 가며 은근한 말투로 한다. 그리고 뛸 데 없는  남녀관계 얘기다. 우리는 항상 자기도 모르게 귀가 솔깃해진다. 자기 자랑도 잘 한다. 자기가 한창 젊었을 때 소련홍군이 쳐 나왔는데 소련처녀위생병 하나가 자기네 집에 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처녀가 내일 죽을지도 모르니 밑에 거 좀 시원하게 해 달라고 자꾸 졸라 국제주의정신과 인도주의정신을 발휘하여 자기가 책임지고 열심히 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처녀 밑에 거 다 째져 피가 흐르는데도 시원하다고 하며 자꾸 더 해 달라고 해서 자기가 그때 정말 죽을힘을 다 냈다는 것이다. 이거 함경도아바이의 진한 쌍소리의 하나. 아무리 외국사람 따라 다니는 조선사람이라 할지라도  외국사람과 쓸데없이 이것저것 말하는 것을 조선에서는 그리 허용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와 접촉하는 조선사람들은 대개 말수가 적어 보이다 못해 근엄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쌍소리에 한해 조선사람은 쉽게 흥분하고 공감하는 것 같다. 쌍소리만은 무람없이 허용되는 것 같다. 쌍소리에 대한 일종 관용이라 할까. 함경도아바이가 쌍소리를 할 때 외사지도원도 옆에 있을 때가 많다. 그런데 이 외사지도원은 종래로 함경도아바이의 쌍소리를 제지시키거나 핀잔하지 않는다. 자기도 좋다고 우리와 같이 따라 웃는다. 

조선사람과 술상에 같이 앉았을 때도 쌍소리는 둘도 없는 훌륭한 안주. 사실 조선사람과 술상에 앉으면 할 얘기 그리 없다.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많은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정치 얘기하다가는 얼굴 붉히지기 쉽다. 그러니 쌍소리 얘기로 뻗는 것이 제일 무난하고 재미있다. 조선의 술상은 립섹스의 주색이 어우러지는 곳이다.

조선에서 쌍소리는 여자들도 걸작. 하루는 어느새 친해진 우리 기숙사 옆의 남새 파는 상점의 아줌마들과 술을 나누게 됨. 조선에서 일반 조선사람이 단독으로 외국인을 만나는 것은 엄금이지만 여럿이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것은 허용되는 듯. 그날 나는 조선말을 배우러 온 다른 한 한족 선생과 같이 갔다. 여자들 술상도 어디까지나 쌍소리 꽃 만발. 야, 중국자지 좀 보여 줘. 음욕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눈길들. 자기네들은 과부들이라 오래 동안 남자 냄새 못 맡아 굶어 있다는 것이다. 우물거리다가는 아래 도리를 벗기울 거 같았다. 안 그래도 더운 여름이라 맨 살에 거저 바지 하나다. 나는 좀 당황한 속에서도 예봉을 슬쩍 돌렸다. 나는 조선족이니 집에 세대주들하고 같은 종자라 그리 볼 거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눈을 찔끔해 보이며 내 옆의 한족 선생을 가리켰다. 아줌마들 흥분된 눈 일제히 한족 선생한테로 쏠린다. 참, 조선의 아줌마들 눈치 하나는 빠르다. 어리뻥뻥해 하는 한족 선생. 한족 선생 코가 크고 털이 많다는 둥 야단법석을 피운다. 코가 크니 자연히 그것도 클 것이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족 선생 그곳을 눈여겨보는 흉내를 내기도 한다. 한족 선생 마침 반바지를 입고 갔는지라 어떤 아줌마들은 정말 털이 많이 자라 있는 아래 도리를 살살 만져 보기도 한다. 한족 선생 낯이 지지 벌개지며 비지땀을 죽죽 흘린다. 조선말 좀 해 보겠다고 와 놓고는 아줌마들 공세에 첫날 새 각시처럼 몸둘 바를 몰라 하며 말문을 열지 못한다. 나는 한족 선생 난감한 처지에서 구하기 위해 반격을 가했다. 우리는 오래 동안 굶어 여자 거 못 봤으니 먼저 보여 달라고 했다. 먼저 보여 주면 우리도 보여 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세상에 여자가 먼저 보여 주는 법이 어디 있는가고 하며 야단법석을 피운다. 남자라는 게 그렇게 쫄짝하게 놀지 말고 빨리 벗어라는 것이다. 조선 남자들은 안 그런데 중국 남자들은 참 째째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래도 뻣쳤다. 먼저 보여 줘야 우리도 보여 주겠다고 고집하며. 이것이 우리 중국식이야 하며 말이다. 그날 서로 니 먼저 벗어라 네 먼저 벗어라 밀고 당기고 한바탕 싱갱이질 하다가 결국 우리가 꼬리 빳빳이 내 빼는 바람에 그런데로 무사했다. 이 일이 있은 후 한족 선생 말. 세상에 조선여자 제일 무서워!

쌍소리에 들어서 조선의 새파란 처녀들도 아줌마들 못지 않해. 우리 교환교수 식탁을 써빙하는 예쁘장하게 생긴 처녀동지 두명. 이들과 쌍소리를 주고받는 것도 우리의 식탁 별미. 애순동무, 남자는 여자들보다 왜 더 빨리 뛰지요? 중간 다리까지 합해 다리가 셋이기 때문. 영숙동무, 여자는 남자보다 왜 말을 더 잘 하지요? 입이 하나 더 있기 때문. 옳지, 백점. 추호의 주저도 없이 거침없이 대답하는 백퍼센트 짜리 백점. 

조선에서는 그야말로 남녀노소 다 쌍소리를 잘 하는 것 같다. 쌍소리 천국. 사회가 막히면 막힐 수록 쌍소리는 만발. 꽉 막힌 사회에서 이것은 일종 삶의 방편이고 지혜다. 사실 이것은 우리 누구에게나 적어도 웃음  거리는 되는 좋은 보약이다. 그럴진대 현재 나는 조선에서 수집한 쌍소리를 편찬해 내려고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많은 애용 기대. 많이 웃길 바람.

                         
                          32. 쌀독에서 존엄    

      

거지가 없는 나라. 세상에 부러움 없는 나라. 다 잘 먹고 잘 사는 나라. 다 잘 먹고 잘 사는 나라, 뒤집어 말하면 다 못 먹고 다 잘 못 사는 나라라는 역설이 성립된다. 쌀은 공산주의란 김일성의 말 진리. 그러나 조선은 지금 쌀독이 비여 있어. 그래서 아무리 듣기 좋은 주체요, 자주요, 자립이요, 자위요, 자력갱생이요 하고 천백번 외우도 그것은 빛 좋은 개살구. 빈 강정에 지나지 않음.

평양시내를 거니느라면 심심찮게 부딪치게 되는 각양각색의 비럭쟁이들. 그래서 그런지 외국인들 자기 마음대로 거리를 싸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는 당국자들. 선심이나 베푸는 듯 외국인들 꼭 안내를 받도록 되여 있음. 비럭쟁이들 어떻게 아는 지 외국인들 묘하게 알아본다. 사실 조선에서 외국인은 김일성부자의 빼지를 달지 않은 이방인이니깐 쉽게 가려 볼 수 있다. 외국인들 다 부자로 보이는 조선. 하긴 외국이들 다 부자로 보일 수밖에. 어제까지만 해도 거지었던 중국사람들도 조선에서만은 조선사람들이 엄두도 못 내는 몇백 딸라 짜리 똥차를 끌고 다니며 흔들거릴 수 있으니 말이다. 조선의 비럭쟁이들은 좀 특수해.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사람과 전혀 구별이 안됨. 때국이 꾀죄죄 흐르는 전문 비럭쟁이인 중국비럭쟁이들과는 전혀 다름. 조선에서 이런 전문 비럭쟁이는 유일하게 나진-선봉 경제개발특구에서 떼지어 다니며 외국인들한테 구걸하는 거지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음. 조선에서 이런 전문 비럭쟁이는 단속하는 듯 해. 나진-선봉의 그 거지아이들도 수용소에서 달아 나왔거나 피해 다니는 그런 처지란다. 조선의 비럭쟁이들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게릴라식이 많음. 

한번은 심심해서 거리를 빈둥거림. 말동무를 찾아 아무 얘기나 했으면 했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을 걸어 봄. 그런데 조선사람들 조심하고 경계하며 피하는 눈치. 그렇게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이것은 외국인에게 대하는 항시적 태도. 그런데 좀 가노라니 군용혁띠에 전투가방까지 매고 똥별 네댓 개 단 인민군소대장쯤 되여 보이는 군관 하나 옆에 따라 붙는다. 안녕하십니까? 얘, 안녕하십니까? 서글서글한 사나이 같은 인상 좋다. 인상 좋아 한번 더 쳐다보는 순간 그는 어느새 비굴해 졌다. 얼굴은 어느새 난감한 표정을 짓고 울상이 되여 있다. 짐작은 가면서도 짐짓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몸이 불편합니까? 좀 당황해하는 군관아저씨. 아니, 실은 지금 우리 애들이 배를 곯고 있어서… 자기네들은 함흥에서 올라 왔는데 그만 돈이 다 떨어져 밥은 고사하고 돌아 갈 차비가 문제라는 것이다. 알았어. 나는 두 말 없이 조선돈 200원을 꺼냈다. 돈을 보는 순간 군관아저씨는 두 눈이 반짝 빛났다. 그리고는 돈을 받는 즉시 연신 허리를 굽실  거리며 고맙다는 말 연발하더니 곧 바로 돌아서 줄행랑을 놓는다. 조선돈 200원, 조선에서 중등 수준의 한달 노임. 그러나 중국에서 거지에 불과한 나에게 있어서조차 이것은 부담스러운 것이 아님. 워낙 중국돈과 조선돈 암거래 환율차 20배인지라 중국돈 조선에서는 가치 대단해. 조선돈 200원을 꺼내주는 순간 나는 어느새 노임을 주는 사장 혹은 돈 많은 신사가 되여 있었다. 

조선에서는 현재 先軍정치를 하느라 군인들에게는 대우가 괜찮겠는데 이런 군인비럭쟁이가 심심찮게 눈에 띠이는 데는 이해가 안 감. 한번은 중국에서 무역하는 친구가 와서 평양에서 경치가 제일 좋다는 모란봉에 들놀이를 갔다. 맥주 상자 쌓아 놓고 한 상 가득 차려서 부어라 마셔라 할라니 속이 좀 안 내려 감. 조선인민은 굶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술 한잔 들어가니 그런 알량한 고운 마음 언제 있었는가 싶게 내 멋에 마시고 떠들며 지랄을 했다. 한참 흥이 나 마시는데 어디선가 애젊은 군인 둘이 나타나더니 우리 술상으로 다가 와 차렷 자세를 하고 군인 경례를 올려 부친다. 그러면서 자기네는 임무 집행을 나와 지금 집행 중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어리뻥뻥해 났다. 좀 겁이 나기도 했다. 임무 집행이면 하면 되는 거지 우리하고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우리 같은 서민나부랭이한테 보고는 무슨 보고인가 말이다. 우리는 풀길 없는 의문을 품고 똑 바로 서서 계속 거수 경례를 하고 있는 두 애티 나는 군인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았다. 그 얼굴은 전형적인 군인들의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우리와 동행했던 외화벌이를 한다는 조선사람이 쑥 나서며 근엄한 표정을 짓고 여기는 외국사람들 모임이니 그런 줄 알라는 것이다. 그러자 두 군인은 곧 바로 알았다는 듯이 이구동성으로 미안합니다하고 부리나케 달려간다. 그 다음 외화벌이 조선사람은 우리와 얼굴이 마주치는 순간 좀 어색한 표정에 어줍은 웃음을 짓는다. 우리도 덩달아 어색한 표정에 어줍은 웃음을 짓고 말았다.

후에 안 일이지만 군인들도 배가 고프기는 마찬가지인지라 선군정치를 턱 대고 서민, 아니 인민들로부터 얻어먹을 기회만 있으면 그렇게 당당히 나서며 뭘 좀 얻어먹는다는 것이다. 

조선에서는 군인들도 담배를 곧 잘 피운다. 길거리에 서 있는 군인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부랴부랴 갈 길을 재촉하는 군인들조차  담배 연기를 내뿜기에 여념이 없다. 마치 너도나도 담배 피우기를 경쟁하는 듯하다. 선군정치라 달달이 담배까지 무료로 공급한다니 안 피우는 놈은 상머저리. 공짜면 양재물도 들이마시는 게 사람.  그런데 묘한 것은 조선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이 담배라는 것을 배고플 때 피우면 그 만큼 배고픔을 덜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 원인에 대해 조선사람들은 담배를 피우면 위액이 어떻고 하며 독특한 일가견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조선에서는 정말 배고픔을 들기 위해서 군인들에게 담배를 공급하는지, 나로서는 알고도 모를 일이다. 

무엇이나 군인들 우선이라는 선군정치를 한다는 조선에서 군인들이 이 꼬라지니 일반 서민, 아니 인민들은 더 말 할 여지도 없다. 인민들은 더 말 할 여지가 없으니깐 그만 제치두고 이른 바 조선에서 잘 나간다는 그래도 사람 대접을 받으며 산다는 외사일군이나 대학교수들을 좀 보도록 하자. 

조선에는 학위취득을 위해 공부하는 유학생들이 더러 있다. 이들이 제일 골치 아파하는 것은 공부보다도 사람관계 콘트룰하기다. 우선 직접 유학생들을 관리하는 지도과장을 잘 삶아 놓아야 한다. 많은 일은 이 지도과장을 통해야만 해결되는 법이니 말이다. 그러니 유학생들 이 지도과장 코밑치성하기에 바쁘다. 그러면 지도과장은 날름날름 잘도 받아먹는다. 그러다가 때로는 무슨 일을 처리하는데는 무엇을 준비해, 가져와 하고 공공연하게 요구하기도 한다. 조선에서는 시시껄렁한 담배 같은 거로도 일 처리가 척척 잘 된다. 학위를 하자면 지도교수도 잘 삶아 놓아야 한다. 지도교수들은 대개 다 근엄한 표정에 노골적으로 코밑치성을 요구하는 경우는 적다고 한다. 니가 알아서 할 판이다. 그런데 어떤 지도교수는 묘하게 코밑치성 압력을 가해 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스승의 날인데… 혹은 다음 달이 우리 딸 잔치인데…하고 힌트를 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힌트를 주는 지도교수는 그래도 점 찮고 마음이 약한 편이란다. 좀 고약한 지도교수들은 논문 수정을 잘 안해 주거나 질질 끌며 애를 먹여 빨아 낼 것을 빨아낸다는 것이다. 지도교수를 잘 삶아 놓으면 논문은 절반 다 된 셈. 어떤 경우에는 지도교수가 거의 다 써 주는 정도란다. 그러니 울며 겨자 먹기로도 부지런히 코밑치성을 해야 한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조선말을 꺽꺽 거리는 주제에 논문은 잘도 통과되. 

일단 논문만 통과되면 뒤에서 죽어라고 지도과장이며 지도교수를 욕하는 유학생들, 이렇게 욕하다가도 워낙 없으니깐 그렇겠지 하고 이해심을 발동하는 유학생들 심심찮게 눈에 띤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에서 최고 월급을 받는다는 박사, 교수의 월급이 조선돈 300원밖에 되지 않으니 말이다. 배급이 안 되는 상황에서 이 돈은 야매로 계란 30개 값. 

워낙 없으니깐 세상에 부러운 것이 많을 거다. 그런데 조선 사람들 입만 살아서 한결같이 세상에 부러움 없다고 외운다. 한껏 존엄을 살리려는 귀맛 좋은 소리에 불과하다. 빈 강정에 불과하다. 세상에 부러움 없다는 소리는 나에게 있어서 그 역설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쌀독에서 존엄이 나는 법이니 말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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