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경애 수필가

김경애 약력 :   재한동포문인협회 공동회장, 한국문예·한국시사랑문학회 부회장,  한국국보문인협회 공동사무국장, 중국 애심여성 민족공익발전기금회 이사, 중국 제4회 애심여성 컵 은상 수상,  한국국보문학 수필신인문학상 수상.
김경애 약력 : 재한동포문인협회 공동회장, 한국문예·한국시사랑문학회 부회장, 한국국보문인협회 공동사무국장, 중국 애심여성 민족공익발전기금회 이사, 중국 제4회 애심여성 컵 은상 수상, 한국국보문학 수필신인문학상 수상.

어느 무더운 여름 날 오후, 나는 집에 놀러왔던 언니를 배웅하려고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둘이서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며 마트 앞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아줌마, 돈을 잃어버려서 그러는데요. 현금 좀 빌려주시면…”
갑자기 어디에선가 튀어나온 한 남자아이가 말을 걸어왔다.
“아…그래?”
언니가 잠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바지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나는 머뭇거리는 언니의 팔을 잡아당기며 갈 길을 재촉했다.
“언니, 빨리 가요. 이번 버스 놓치면 또 십 여분 기다려야 한단 말이에요.”
나는 한쪽 눈을 슴뻑이며 언니한테 속임수에 걸려들지 말라는 사인을 보냈다.
“제가 돈을 잃어버렸는데요, 현금 주시면 제가 카카오페이로 바로 송금해 드릴게요.”
그 아이는 내 눈치를 힐끔 보더니 또 다시 언니한테 사정했다.

나는 그 아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래위로 쭉 훑어봤다. 반팔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행색이랑 연령대를 봐서는 고등학생 같았다.
‘휴, 돈을 잃어버렸으니 집에 갈 차비가 없나보다….’
마음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여러 번 사기를당해봤던지라 혼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우리도 현금이 없어요!”
그 아이는 매정하게 쏘아붙이는 나를 잠깐 쳐다보더니 포기한 듯 터벅터벅 걸어갔다. 어깻죽지가 축 처진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약간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언니, 저 학생이 교통비 없어서 그러는 거 아닐까요?”
“에이 몰라, 안 엮이는 것이 좋아! 요즘 세월에 사기꾼이 좀 많아야지? 지하철 역 근처에도 허구한 날 '복이 많아 보이십니다.' 그러면서 찻집으로 끌고 가서 사이비 선교하는 젊은 친구들도 있고, 집에 갈 차비 없다고 천원만 빌려달라는 사람들도 가끔 있잖아…” 맘이 약해지려는 나에게 언니가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쑥덕쑥덕 거리며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앞서 가던 그 아이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정류장 의자에 멀뚱멀뚱 앉아있었다.
“언니, 정말 교통비 없어서 저러고 앉아 있는 것 같아, 아무래도 도와줘야겠어요!”
나는 언니한테 귓속말로 속삭였다. 그러는 나를 이번에는 언니가 말렸다.
“신경 끄고 얼른 들어 가, 알았지? 괜히 사기당하지 말고.”
“알았어요.”
언니는 신신당부하고 나서 어서 들어가라고 손짓하며 맞은편 정류장으로 건너갔다.

언니한테 안 엮인다고 약속은 했지만 멀뚱멀뚱 앉아있는 그 아이를 보니 왠지 마음이 짠했다. 나도 그 아이 또래 아들이 있는 엄마인지라 슬슬 노파심이 들기 시작했다.
“학생, 돈이 얼마나 필요 해?”
내가 슬슬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아니오, 됐습니다.”
멍하니 앉아있던 그 아이는 흠칫 놀라며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까는 아줌마가 미안했어, 교통비가 없는 것 같은데…아줌마가 돈 줄께.”
“아니에요. 교통카드는 있는데요?”
“그래? 아줌마는 네가 교통비가 없어서 현금 빌려달라는 줄 알았는데….”
“아니에요. 사실은 아까 생수를 사려는데 주머니에 넣었던 돈이 없어졌지 말입니다… 이젠 됐어요. 마트도 이미 지나왔고 버스타면 금방 집에 도착 하니까요.”
그 아이는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고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뻥긋 웃었다.
“으이그, 그랬구나! 아줌마가 거절해놓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잖아.”
“죄송합니다.”
그 아이는 진심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나는 그 아이의 눈을 다시 보았다. 티 없이 맑고 초롱초롱 했다.

그러는 사이 버스가 도착했다. 떠나가는 버스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며 나는 입속말로 중얼거렸다.
“오늘은 2% 부족한 하루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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