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현동화 수필가

현동화 약력:  흑룡강성 수화시 출생, 북경 상해 광주에서 10여년 간 여행업 종사. 2009년부터 한국으로 이주.  현재 화장품 유통업에 종사. 연변일보, 중국조선어방송넷, 해외문학, 대전중구문학 등에 수필 다수 발표.
현동화 약력: 흑룡강성 수화시 출생, 북경 상해 광주에서 10여년 간 여행업 종사. 2009년부터 한국으로 이주. 현재 화장품 유통업에 종사. 연변일보, 중국조선어방송넷, 해외문학, 대전중구문학 등에 수필 다수 발표.

찬 바람이 휘몰아치던 그 겨울날, 갑자기 주방에 지진이 일어났다.
와장창 떨어져 깨지는 그릇 소리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고 다급히 뛰여나가보니 엄마가 아끼던 꽃사발들이 깨여져 사방에 널려있었다. 그 옆에는 우리집 갈색 똥개가 고통스레 낑낑대며 돌고있었다.


태여난 여덞마리 강아지들중 다섯번째로 세상에 나왔던 그 강아지를 받던 엄마는 깜짝 놀랐다.
까만색 회색 갈색 강아지들과 달리 이넘만은 흰 바탕에 큰 까만점이 박힌 애였고 한쪽눈은 선그라스를 쓴것처럼 까만 특별한 넘이였던 것이다.문뒤에 숨어서 훔쳐보던 나는 기뻐서 큰소리를 질렀다. "곱게 생겼다. 얘는 내거야 !이름은 "곱다"라 할거야 "곱다"!


얼마 지나지않아 "곱다" 어미인 갈색 똥개는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강아지들이   안타까워서 우리 삼남매는 엄마가 일하러 나가면 애들이 추울가봐 방위로 올렸고 아끼던 간식도 아낌없이 내놓았다.
엄마몰래 다 퍼준 우리의 잘못된 사랑탓이였는지 어미를 일찍 보낸 약하게 태여난 것인지  결국 우리는 그중 약했던 두 강아지를 먼저 떠나보냈다.
쿨쩍거리는 우리를 다독이는듯 하시더니 엄마는 며칠후 재빠르게 강아지 4남매를 입양보냈다.

우리는 매일 한집한집 마을을 돌아나니며 입양된 4남매가 잘 있는지 확인했고 결국 엄마에게 마을 소란죄로 걸려 그 벌로 난 젤 싫어하던 돼지죽을 두번이나 더 끓여서 돼지를 먹어야 했다.

엄마는 애들을 입양보낼때 생긴게 이상하다며 "곱다"를 보내려 했지만 "곱다"주인인 내가 마을이 떠날갈듯 우는탓에 시끄러워 다른 강아지들이 보내졌다.

그렇게 "곱다"는 까만몸에 작은 흰점이 있는 "깜찍이"랑 함께 우리집에 남게 되였다.
"곱다"와 "깜찍이"는 변함없는 우리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커갔다.
그리고 반년후 우리는 남동생을 위해 나와 아버지가 태여난 고향을 떠나 병원이 있는 버스타고 꽤 오래 가야하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훌쩍 어른이 된 "깜찍이"는 어느날 사라진후 다시는 오지 않았다.
어렴풋이 "깜찍이"가 빵을 던지는 누군가를 따라갔다는 얘기가 들렸고 동생한텐 미안했지만 둘다 따라간게 아니고 나의 "곱다"는 남아있어서 천만다행 이라고 생각하며 "곱다"의 등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이사온지 한동안 되던 날, 난 갑자기 마당에서 부르는 "곱다  곱다 나와봐라" 하는 소리를 들었다 .난 얼마전 "깜찍이"가 없어지던 생각이 나서 후다닥 맨발로 뛰쳐나갔다. "곱다"를 부르던 옆집의 남자애는 머쓱해서 나의 도끼눈을 피하며 중얼거렸다."이상하게 생긴 똥개구만 ,난 또 얼마나 곱게 생긴 개라고..밉다네 밉다 흥."
"야!!!너 머라고 했어!!!"
"............."
놀란 그애는 자전거에 올라 금방 사라져버렸다.
난 씩씩거리며 돌아서서 "곱다"를  토닥여주었다.

난 "곱다"와 못하는 얘기가 없었다.
어릴적부터 책을 나보다도 더 좋아하는 여동생이 책에 파묻쳐 나를 쳐다보지 않을때면 나는 창고앞으로 가서 "곱다"를 찾았다.
전학와서 낯설어 내친구 봉순이가 더 보고싶다는 이야기, 화장실에 갔다오다 반을 헷갈려 다른반에 들어갔다가 창피했던 이야기, 여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시 원래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

"깜찍이"가 빵을 따라간후로 엄마는 "곱다"를 나의 반대에도 상관않고 목에다  작은 쇠목걸이를 채웠고  "곱다"는 그 쇠목걸이를 잘랑거리며 쪽걸상에 앉은 내손을 핧다가  또 조용히 엎드려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했다.
쓸쓸함이 숨어있는 따스한 그 가을날의 해볕아래서 우리는 중얼거리며 그렇게 서로에게 의지했고 난 그렇게 영원히 "곱다"와 같이 살고싶었다.


나의 "곱다"는 총명했다. 방학에 울 집에 우리를 보러오는 삼촌도 바로 알아보고는 짖지않고 꼬리를 흔들며 반겼다.나와 삼촌은 쪽걸상을 들고 "곱다"옆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삼촌은 지금은 입양보낸 4남매도 다 이세상에 없다고 전해주었다.
난 그 많던 남매를 잃은 "곱다"가  불쌍해서 삼촌의 말씀을 끊었고 삼촌은 똥개가 먼말을 알아듣냐고 하하 웃으며 나의 이마에 꿀밤을 날렸다.

엄한 아버지한테 된 꾸지람을 당한 추운 겨울날, 난 맨발로 집뒤의 논밭을 달렸다.
발밑에선 흰 눈덩이와 살얼음이 깨졌고 그날은 나의 마음도 함께 깨지고 있었다.
달리고 달리다 난 무엇에 걸려 앞으로 꼬꾸라졌고 차가운 눈속에 뜨거운 머리를 처박고 엉엉 목놓아 울었다.
난 도대체 왜 태여났을가 하고 세상을 원망하며 울던 나는 갑자기 주위가 캄캄한 논밭이 무서워졌다.
내가 슬며시 제정신이 돌아왔을쯤 나는 갑자기 누구의 꼬리가 내 머리를 스쳐지나가는걸 느꼈다.
아!머야 ?여우? 승냥이? 화들짝 놀라서 머리를 들어보니 언제 따라왔는지 나의 "곱다"가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절반 끊어진 쇠목걸이가 목에 걸린채  주둥이로 내옷깃을 물어당기고 있었다.
멀리서는 내가 달려간 방향을 모르는 아버지와 옆집아저씨의 부름소리가 들렸고 나는 조용히 있으라고 "곱다"를 눌렀지만 그날 "곱다"는 태여나서 처음 나를 배신 때렸다.
온몸의 힘을 다해 어버지쪽에 컹컹 짖으며 "곱다"는 열심히 우리의 위치를 알렸다.

아버지와 아저씨는 번갈아가며 축 늘어진 나를 업고 달렸고 난 그날 밤 처음으로 "곱다"를 원망하며 울고 또 울었다...
언발 한쪽씩 끌어안고 눈가루로 묵묵히 닦고있는 아버지와 옆집 아저씨를 잊은채...


그날은 비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던 그 이듬해 늦가을의 어느날이였다...
멀리 계시는 외할아버지가 놀러오셔서 그때 부엌에서 밥을 짓고 계셨고 나는 사소한 일로 동생과 티격태격 다투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나가려던 때 갑자기 후다닥 "곱다"가 뛰여들어왔다. 난 난생처음 그렇게 괴로워하는 "곱다"를 보았다.
우리가 어떻게 말릴새도 없이 "곱다"는 부엌과 방을 미친듯이 왔다갔다 올리뛰였고 그 꼬리에 맞아 부엌에 엄마가 좋아하던 꽃사발이 와장창 떨어져서 깨져버렸다.
난 갑자기 "곱다"어미가 애들을 낳기전 날치던 생각이 났다 ,물론 그때와 좀  다른 모습이였지만 나는 혹시나 해서 외할아버지를  붙잡고 물었다.
"할아버지 "곱다"가 새끼 낳을려고 저러나요?"
분명 어렸던 나의 눈에도 "곱다"어미가 "곱다" 나을적 행동과 다르게 보였지만 나는 외할아버 입에서 제발 그때와 같다는 대답이 나오기를 빌었다. .아니 난 그 대답을 꼭 들어야만 했다.
외할아버지는 나를 측은하게 돌아보시더니 우리더러 방에 들어가서 문닫고 있으라고 하였다.
날고뛰던 "곱다"의 눈에는 한번도 본적없는 광기가 번뜩이였고 입에서는 거품이 질질 흐르고 있었다.광기가 번득이던 눈이 한순간 살짝 풀리는가 싶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부들부들 떨며 울고있는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길은 미치 제발 좀 구해달라고 애원 하는듯했다.
나는 어디서 머가 잘못됐는지 몰랐다. 그 어느곳에서도 저런 모습은 본적이 없었다 . 난 울며불며 할아버지한데 매달렸다. "제발 구해주세요 !제발요 !당장 의사를 불러주세요! 어서 엄마 아버지 불러주세요! 어서요..."
나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곱다"가 쓰러졌다. 바닥에 누워 쉴새없이 거품을 흘리더니 사지를 떨며 마지막 숨을 힘겹게 토해냈다.나는 외할아버지의 손을 뿌리치고 달려가려 했지만 할아버지의 억센 손아귀에 잡혀 빠져나갈수가 없었다.난 그렇게 몸부림을 치며 이 세상에서 제일 무능한 주인으로 "곱다"의 죽음을 두눈뜨고 바라볼수밖에 없었고 바닥에 떨어진 "곱다"의 눈물과 나의 눈물은 흐르고 흘러 천천히 서로 맞닺았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같이 "곱다"를 멀리 가져다 묻었다...

난 멍하니 바닥에 앉아서 이건 절대 현실이 아닐거라고 위안하기를 반복했지만 곱다는 결국 그렇게 영영 내곁을 떠나고 말았다.

"곱다"가 간후 나는 가끔씩 텅빈 창고앞에 쪽걸상을 가져다놓고 두손으로 무릎을 끌어안은채 머리를 묻고 앉았다.
낯선 마을로 이사와서 깜찍이를 잃고 외로워하던 "곱다"는 내가 위로해줬지만 "곱다"를 잃고 슬픔에 빠진 나는  그 누구의 말도 위안이 되지 않았다...

"곱다"가 답답해  하는거 같아서 목줄을 잠간 풀어줬더니 쥐약을 너무 많이 먹은 쥐를 먹어서 어떻게 할수가 없었어...양재물도 마시게하고 비누물도...다 할아버지 탓이니 할아버지를 원망하렴..."
할아버지는 창고앞에 앉아 두귀를 틀어막고 있는 나의 등뒤에서 오랫동안 중얼거리신다...


수백번의 목메임이 수십번으로, 그리고 아주 가끔씩으로 변하기까지는 꾀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함께 있어준 새로 생겨난 세명의 절친들과 곁에서 묵묵히 기다려준 가족들과 저 하늘의 별이 바라는 뜻대로 이젠 텅빈 창고를 바라봐도 괜찮을정도로 나는 일상으로 돌아오기위해 힘겹게 허우적 거렸다...

일년후...

나는 먼곳에 있는 고등학교로 가게 되였다...
집을 떠나던날 나는 창고앞에 쪽걸상을 놓고 앉았다...
나는 "곱다"를 이젠 그만 놓아주기로 했다...
엄마가 그랬다...
내가 놓지 않아서 "곱다"가 좋은곳으로 못갈수도  있다고...
이제 그만 놓아주라고...


꽃다운 나이를 살짝 지날쯤에 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날,북경 왕징의 어느 양꼬치집에서 헤여질때쯤,  그이는 자신이 어릴적 기르던 흰둥이의 이야기를 꺼냈다.
산통에 괴로워 낑낑거리는 흰둥이를 안고 울면서 엄마와 함께 밤새도록 여기저기 굳게 닫힌 동물병원 문을 두드리던 이야기...결국 난산으로 아끼던 흰둥이를 잃은 이야기...

나와 같은 어두운 침묵을 가슴에 묻고있었던 그이, 친구를 잘 지켜주지 못한 무너진 책임감과 자책감이 자신의 잘못인듯 오랜시간 헤여나오지 못했던 우리 ...

어쩌면, 삶의 온도가 같은 따뜻한 마음으로  상처를 녹이고 치유하며 추억을 그리듯 담담하게 얘기할수 있는 그 날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각자 주어진 인생의 멀고도 가까운 그 길을 최종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른채 오늘도 터벅터벅 걸어가고있다.

삶의 무거운 짐들을 이고 지고 허위허위 가는 우리의 곁으로는 수많은 질병 ,사고와 죽음들이 스쳐지나간다. 어쩌면 사랑과 이별, 아픔과 슬픔, 그 달고 쓰고 떮음을 묵묵히 씹어 삼키며 우리모두는 이런 비슷한 성장통을 이겨내면서 세상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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