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일본 남옥경

제1차 세계조선족문화절이 끝난지도 어언간 일년이 되어 온다. 지난 해 12월 말부터 전 세계를 휩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11월에 그토록 큰 대규모의 이벤트를 어떻게 용케도 진행했나 싶다.

그때 온 내빈 중에 박은화라는 가수가 있다. 박은화가수는 이번 일본행이 처음이다. 현재 그녀는 연변가무단의 독창가수(청년가창가)로 활약하고 있다. 2006년에 중국음악학원을 졸업하고 쭉 문화예술사업에 종사하여 어언간 14년이 되었다. 금년 7월초에는 중국의 국가 1급배우의 칭호를 받았다. 이 칭호는 보통 빨라도 40세가 넘어야 받을수 있는데 지금까지 연변가무단에는 30대의 1급배우가 2명 밖에 없다고 한다. 한분은 연변가무단 교향악단 상임 지휘가이고, 그다음 두 번째로 받은 분이 박은화 가수이다.  

박은화 가수는 여러가지 사회직무에 종사하고 있다. 길림성 정협위원이고 연변조선족자치주 청년위원인데  애심협회와 같은 공익활동에도 참여하여 연변조선족 사회를 위해서 공헌하였으며 중국의 변강소수민족 우대정책 실시를 위해서 조선족향이나 촌민분들을 위해 공연을 해왔다.  

2015년 8월, 박은화가수는 연변가무단의 추천으로,  “제10기 전국소수민족 전통체육운동회”의 조선족 민족형상대표로 선정되어 성화봉송주자로 되었다. 내몽골자치구 얼도스시에서 진행된 운동회에서 박은화가수는 조선족의 아름답고 깨끗하고 고상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한다. 그 때문에 한복도 신경 써서 골랐다.  
 

9월, 연변주 문련의 추천으로, 연변티비에서 <잊을수 없는 그 날>을 부르게 되였다. 박은화가수는 일반가수로 있을  때도 열심이었지만 기회가 오면 더 전력을 다했다. 고생끝에 낙이라고 그녀는 점차 큰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2015년은 그녀의 음악공작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한 해 였다.

2016년에 들어와서, 1월에는 <잊을수 없는 그 날>의 MTV가 중국의 CCTV1과 CCTV2에서 조선어로 방영되었다. 또 3월에는 중국중앙텔레비전방송국의 요청을 받고 민가중국民歌中国에 출연하여 감개무량했었다.

2017년, 박은화가수는 음악전문가의 인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또 조선족의 아름다운 음악 이미지를 전국 나아가서 전세계에 알리고 싶은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전국적인 콩클에 참가하게 되었다.

11월에 제11기 중국음악 금종상(金钟奖) 성악(민족)경연에 참가하여 금종상을 받았다. 금종상(金钟奖)은 중국의 성악전문계에서는 가장 큰 상이다. 길림성으로부터 전국까지 한층한층 시합을 하게 되는거라, 1년동안 준비하여 10번의 시합을 거듭하여 최종적으로 영예가 결정된다. 노래도 7, 8곡은 준비했다고 한다. 광동성 광주시의 광주대극원에서 진행되여 거기서 5곡 내지 6곡을 경연곡으로 불렀다. 

그렇게 길림성에서 1등으로 뽑혀서 전국시합에 나아가게 되었고 전국 준 결승자 상을 받았다. 전국 각지에서 참가한 선수 수만 명중에서 30명 안에 든 셈이다. 여기서는 <새타령>을 신민요식으로 개편하여 불렀는데 심사위원들로 부터도 "굴림에 한족노래랑 다른 뭔가 있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그녀는 잊지 않고 조선족 자랑을 했는데, 조선족 여성의 아름다움과 선량함, 그리고 교육을 중시하고 깔끔한 전통문화를 어필했다고 한다. 

연변가무단에 출근하면서 하향 공익 공연 등 사회할동도 하면서 자기의 꿈을 향해 한발 더 가까이 가기 위해 1년동안 짬짬이 시간을 내여 준비했다. 

2018년은 대규모 활동이 더 많아지는 한 해였다. 대학교 시절의 성악 지도교수님에게서 국제적인 성악시합의 소개를 받았다. 연변가무단의 공연도 많고 주력이라 청가를 맡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 끝에, 미래를 위해 한주일 동안 청가 맡고 북경으로 갔다. 몇년동안 못 만나본 선생님도 만나 보고 콩클도 참가하게 되였다. '第八届全国高等艺术院校暨国际声乐比赛 제8기 전국예술대학 및 국제성악콩클' 은 성악가들만이 참가하는 콩클이다. 박은화 가수는 배우조로 들어갔다. 배우조에서는 동상을 받고, 원창곡상에서는 <어머니 진달래>로 1등상을 받았다. 심사위원진은 세계 여러나라에서 모인 성악전문가였다. 이테리, 프랑스, 독일, 영국 등 나라의 성악교수, 한국연세대학교수, 미국죠치대학의 교수, 중국의 저명한 벨칸토창법 교수님들이 모였다. 이 시합에 참가하기 위해서 박은화 가수는 정성껏 한복을 고르고 피타는 연습을 거쳐 시합의 길에 올랐다.

8월, 할빈에서 거의 한달 정도 진행되는 할얼빈여름(哈夏)음악회에 참가했다. 제13기전국성악전연(展演)이라고 하여, 중앙급 심사 위원인 염유문阎维文,만산홍万山红 등 유명지사들이 심사를 맡았다. 길림성 문화청의 추천에 의해 조선족 가수로 참가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공연인가 생각했다고 한다. 그럼 열심히 해야겠다하고 나갔는데 알고보니 이번도 콩클이었다. 할빈의 제일 큰 극장에서 러시야, 몽골 등 24개국 외교인사분들 앞에서 노래를 하였는데, 여기에서도 그녀는 한복을 차려입고 공연을 했다. 또, 12명에게만 수여하는 중화인민공화국 문화부상을 수상했다. 

9월에는 10년에 한번 길림성 정부에서 조직하는 길림성제2기소수민족문예회연이 열리게 되었다. 중국 조선족 예술의 대표적 단체인 연변가무단의 대표로 박은화 가수가 참가하게 되어 40명으로 형성된 무용팀과 함께 <잊을수 없는 그 날>을 공연하고, 각 민족에 상이 하나씩 주어지는 가운데, <특수공헌상>을 받게 되었다. 또 <어머니 진달래>로 1등상을 얻게 된다.

2018년에는, 상해음향출판사에서 <불망초심 40년정선작품집(不忘初心 40年精选作品集)>이라는 책에 <잊을수 없는 그 날>의 조선어곡을 실었다. 악보 CD와 유명한 노래들이 수록 된 작품집이다. 

2019년은 연변, 전국, 그리고 해외의 공연임무가 가장 많은 한해였다. 요청하는 곳이 너무 많아서 열몇 곳은 하는 수 없이 거절해야만 했다. 국내에서는 주로 심양, 북경, 상해, 심천 등 지역을 돌았다. 

상해에서의 공연이야기를 들어보자. 여기에는 역사적인 스토리가 있다. 상해 지식청년들이 하향하여 농사를 짓게 된 지방중 한곳이 연변이었는데 10년 내지 20년 동안 조선족이랑 같이 지내다가 나중에 공무원이나 간부로 다시 상해로 돌아간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조선족의 문화를 좋아하고 연변가무단에도 기부를 하고, 또 이벤트에도 요청을 했다. 박은화 가수는 상해대극원과 아동극원에서 사과배, 천연적인 산소공급지, 민속촌 등 특색을 예를 들면서 연변을 소개했다. 같이 사회를 맡은 황두두黄豆豆도 "연변은 정말 가무지향이고 조선족노래는 듣기 좋고 민족적 특색이 있다"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11월에는 일본에서 진행된 세계조선족문화절의 요청으로 공연에 참가하게 되었다. 2014년부터 전국 순회공연도 하고 외국의 국제공연에도 참가해 왔지만 일본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문명하고 전 세계 선진국중의 하나라, 일본은 언젠가는 한 번 와보고 싶은 곳이었다 한다. 

박은화 가수에게 일본의 인상에 대해서 물으니 일본사람들은 매너가 좋아서 남한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낮은 소리로 말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공연할 때도 일반관객들과 일본의 조선족들은 관객으로서의 매너를 잘 지켜서 기분이 좋았고 일본의 조선족 가수도 알게 되어서 수확이었단다. 이국타향에서도 전통적인 민족문화의 얼을 이어 받아 마음속에서 우러러 나오는 그들의 노래에 감동을 받았었다. 그리고 민족문화의 계승과 보급, 발전을 위해 분투하는 분들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저자 남옥경씨(왼쪽)와 박은화 가수
저자 남옥경씨(왼쪽)와 박은화 가수

12월에는, 북경 전자음향출판사에서 개인 앨범 <잊을수 없는 그 날>을 출판했다.

2020년, 금년에 들어서, 1월말에 코로나바이러스가 만연되자 길림성 문화예술계연합회(文联)에서 조직한 '코로나19 방역 제1선에서 싸우는 백의 천사를 고무하는 작품 창작(创作抗疫情歌曲鼓励白衣天使)'활동에 참가하여, 제일선에서 노래를 불렀다. MTV도 찍고 제1회길림성창작우수상도 수상하였다. 힘든 기간이었다. 뉴스를 보고 고달프기도 했지만 위험한 제일선에서 노력하는 분들을 응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코로나 영향으로 거의 무대위에 서지 못했고, 몇달동안 출근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사이에 5곡이나 준비했다. 7월 인터뷰하던 당시, 박은화 가수는 월요일 출근, 목요일 교향악 리허설, 금요일 음악회, 토요일과 일요일 온라인 음악 강좌 등 스케줄로 바삐 지내고 있었다.

본문 서두에서 언급했 듯이, 7월 초에 그녀는 중국의 국가 1급 배우의 칭호를 받게 되었다.

박은화 가수는 자신은 노력형이고, 그래서 남보다 몇 배나 노력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었고 그 결과 좋은 기회도 생겼다고 겸손하게 말하였다. 그녀는 동료나 주변사람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기회가 생겨났고, 꿈을 향한 피타는 노력, 그리고 도전이 있었기에 그러한 기회를 헛되이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조선족의 문화예술을 소중히 여기며 조선족 문화예술을 전국을 넘어 전 세계에 알리려는 박은화 가수의 마음, 일 하면서 사회봉사도 하면서 꿈도 이루며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그녀의 모습이 참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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