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길 시인

박장길 시인
박장길 시인

비내리는 창문
 


창문유리에 흐르는 비방울
빠르게 움직이는
올챙이새끼들 같다

올챙이같이 살 오른 추억은
그 까만 눈을 감지 않는다

검은 보자기에 싸들고 와서
거멓게 쏟아붓는다

동글동글 마음 익혀 굴리며
흑진주 알알이 꼬리를 저어
개구리를 입으려고 줄서간다

 

소나무뿌리

 

 

땅을 뚫고 들어가며

등을 보이는 뱀무리들

꿈틀꿈틀 들판에 퍼져서

질정없이 휘젓고 달리며

굴진하는 꼬리 굵은 뱀떼들

 

뱀무리의 등을 짚고

높이 서서 세월을 헤쳐가는

푸른 대오에 입대했다

룡비늘 입고 몸을 비탈며

한마리 꿈이 솟아오른다

 

 

고아배나무

 

 

집을 비우고 떠나간

주인의 버림을 받은

배나무 한그루

 

여위며 거멓게

고아 배나무

열매를 달아본 오래다

 

까마귀 내려앉으면

배나무가지인지

까마귀인지

분간이 안된다

 

대낮에 막을 내린

캄캄한 밤같이

앙상히 땅에 떨어진

그림자도 거멓다

 

이름뿐인 배나무

거멓게 죽어가며

펼친 검은 손가락이

가슴을 찔러온다

 

 

작업복

 

 

로동을 풀어버리고

벗어놓은 옷이

피곤한 기색을 하고

의자에 걸터앉아있다

 

안락을 유혹하고 있는

의자에 피곤을 기대고 앉아있다

 

사람을 벗어버리고

의자에 몸을 부려둔 옷이

피곤한 단내가 묻어있는

하루를 고이 앉히고 있다

 

노동을 내려놓고

사람을 갈아입을수도 없는

로동을 팔지 않을 수도 없는

 

높아지는 나이를

무겁게 어깨에 지고

유혹의 옷을 입은

거대한 욕망의 산을 오르며

 

가난을 두르고 앉은

가난으로부터

출애굽하려고

아무리 소금산을 쌓아도

욕망에는 정상이 없고

 

욕망은 욕망을 욕망해서

욕망의 빈곤을 채울수 없다

고단한 한벌 목숨

 

지친 벗어 걸어둔

나무만이 자리에 있다

 

세상유혹에 지지 않은

나무 아래 하루를 벗어놓고

하루의 로동을 벗어 걸고

피곤한 부려놓았다

하루의 피곤을 내려놓았다

 

 

천둥소리

 

 

수많은 구리북들이

하늘천정을 굴러다닌다

검은 짐승들이 운다

시퍼런 번개불로

목표를 환히 비추고

물채찍으로 후려친다

천만마리 들개 짖으며

비내리치는 호수엔

길다란 털이 나고

비방울은 만나 서로를

안는다 보라 !

 

 

가로수길

 

 

나무는 그리운 저쪽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나무는 그리운 이쪽으로

달려오고 싶은 마음을

 

땅에 튼튼히 붙들어 매놓고

한자리 자리에

그리움의 간격으로 서서

폭포같이 타오르는

눈부신 푸르름

 

나무는 땅에 터져오른

나무는 하늘에 폭발한

내란이다 사랑은

가장 아름다운 내란이여라

 

그리움을 견디다 못해

벌떡 일어선 땅의 모습이다

힘찬 해빛 속에

찬란히 연소하는 용솟음이여!

 

쟁쟁 소리내며

아득히 오고 있는

아득히 가고 있는

천만자루 푸르른 홰불 속으로

 

오고 있다 푸른 풀리는

나의 세월이 가고 있다

 

 

키스의 나비

 

 

이마에 남은 키스의 나비가

그냥 앉아 있다 여름 지나

가을 지나 겨울 넘어

봄을 전령하는

노란 우표로 붙어있으면서

 

실어다 것이다

여름은 가을로 성숙되고

가을은 겨울로 바뀌고

인생도 희여져 백발이 되는

침묵의 계절

죽음에 붙잡히는 날까지

데려다 것이다

 

가장 짧은 느낌에서

가장 여운으로

남아있는 달콤한 흔적

 

봄을 담은 봉투를 나르는

날개여, 함께 눈감아 세상 닫고

몸을 벗을 마음의 마음이여!

 

새벽 이슬 먹고 산다는

나비는 하나의 악기ㅡ

꽃의 악보들을 더듬더듬 찾는

감각이 마음을 만져준다

 

날개로 바람을 읽으며

발끝으로부터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춤추는 악기

나비 하나 있어

꽃의 음자리를 타고

나의 계절이 가볍게 튕겨진다

 

하늘의 별들이 온통 깨져

입안으로 빨려 들어오던

신선한 밤의 키스의 나비가

 

할랑할랑 춤추며 날아오고 있다

눈이 부시도록 그리운

그리움의 그리움아!

 

 

눈이 녹으면 흰 빛은 어디로 가는가

 

 

하늘이 하얗게 지상에 몸을 푼다

서럭서럭 내리는 저녁의 백설

웅크리고 혼자 지는 묻힌다

설폭(雪暴 ) 저녁을 덮고 있다

 

마을에 사는 어둠만이

속절없이 백발이 되여가고

코잔등에 간질간질 내려앉으며

희뜩희뜩 날리는 눈속 들녘을

전보대만이 건너가고 있다

 

한컬레 고독을 두발에 신고

한컬레 즐거운 상상을 타고

겁나게 내리는 속에

조용히 세월만 맡기고 서서

 

지금 눈이 헤매고 있는

천년의 허공은

눈송이로 부서져 내리고 있다

 

이토록 가볍게 몸의 무게를

하얗게 부셔 내리는 일은

겸손하고 겸손한

 

모든 포기한 듯이 오시는 눈에

적막의 공간을 마음속에 넓혀간다

안에 마음을 만들어간다

 

하얀 버선발 사뿐 디뎌 찾아 겨울

온몸으로 부딪치며 내리는

은총이 빛나는 눈이여!

눈이 녹으면 흰빛은 어디로 가는가

 

 

심우도

 

 

이마에 고향을 떠날

수레길이 나있다

 

알겠다 이마에

길이 올라온 뜻을!

 

하늘에 가는

수레길엔 소가 없다

 

누런 추억을

철철 흘리는 소를 찾아

 

우화등선 탈속한

보이지 않는 소를 찾아

 

워낭소리 따라

하늘길에 오른다

 

아버지를 따라간 소야

아버기로 소여!

 

 

박장길 약력 : 1960년 2월 생.
북경로신문학원 제11기전국중청년작가 고급연구반수료
국가1급작가
중국작가협회회원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회원
연변작가협회리사

아리랑문학상. 두만강여울소리 시탐구상. 해란강문학상. 정지용문학상. 가야하문학상. 장백문화상. 두만강문학상. 진달래문예상. 중앙급가사창작1등상 등 30여 차 수상. 서정시 50여수 일어로 번역되어 일본에서 발표

시집 (매돌).( 찰떡).(짧은 시. 긴 탄식).( 너라는 역에 도착하다).(풀)
동시집 (소녀의 봄)
가사집 (부부사이는 춘하추동)
수필집 (어머니 시집 가는 날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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