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수 시인

정성수 시인
정성수 시인

1)왠지 쓸쓸한 달 그믐달은, 새벽녘에 걸터앉으면 더 쓸쓸하다. 나도향의 그믐달만 봐도 그렇다. 직유법과 은유법을 쓰고 있는 문장들은 그믐달을 가냘프고 애절한 느낌을 주는 달이라며 여성에 비유하여 표현하였다. 작가는 서산 위에 잠깐 떠 있다가 지는 초승달은 독부가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 같은 달이지만 그믐달은 온갖 풍상을 겪고, 원한을 품은 채 애처롭게 통곡하는 원부와 같은 애절한 맛이 있다고 했다.

자정을 훨씬 넘어 귀가하는 술주정꾼이나, 노름을 하다 오줌 누러 나온 사람이나, 어떤 때는 도둑놈이 본다는 그믐달은 또한 정情 많은 사람이 바라보거나, 한 있는 사람이 바라보거나, 무정한 사람이 바라보기도 한다고 했다. 그런가하면 정든 임 그리워 잠 못 드는 사람이나, 못 견디게 쓰린 가슴을 안고 사는 사람이 아니면 그믐달을 보아주는 이가 별로 없어 외로운 달이라는 것이다. 그믐달은 초승달의 반대 모양으로 크기가 작은 달이다. 왼쪽이 둥근 눈썹 모양의 달로 새벽녘이 되서야 나온다. 새벽 동쪽 하늘에서 잠시 볼 수 있어 일반인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보기 힘들다.

나도향의 ‘그믐달’은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달 중 그믐달을 독특한 시각에서 분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러 비유 대상을 끌어들여 애절함과 한스러움을 표현했다. 이 글은 앞부분은 느린 호흡으로 작가 자신이 그믐달을 사랑하는 이유를 열거하고 마지막 문장에 자신의 생각을 압축하여 표현하고 있다. 또한 단정적인 표현으로 글 전체의 통일성을 부각하고 있다.

작가 나도향은 외롭고, 쓸쓸하고, 애절하고, 한스럽고, 슬픈 정서를 느끼게 하는 그믐달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처지를 그믐달을 통해 드러낸 반면에 비수와 같은 싸늘함과 냉정함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장례식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죽은 사람은 떠나기 전에 산 사람에게 식사를 제공한다.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일이 식사를 대접하는 일이다.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삶을 잠시 펼쳐보고 몇 잔의 술에 취기가 들면 자기들의 세상 속으로 사라진다. 밤하늘에는 망자가 못다 한 말들이 별이 되어 떠 있다. 돌아오는 차속에서 김정수시인을 생각했다. 시인의 월남전이 떠오르고 그의 고엽제병이 밤하늘에서 지상을 덮쳐오는 동안 불현듯 떠난 그가 나를 읽고 있었다. 그 동안 시인과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김정수시인은 입버릇처럼 말한 대로 대전현충원에서 한 송이 꽃으로 피어 날 것이다.

김정수시인이 못 다한 시의 언어들이 밤하늘 별로 떠 있다가 지상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그가 있는 시문들이 부드럽게 들린다. 그믐달이 떴다. 그와 먹었던 추어탕에서 미꾸라지들이 꼬리를 흔들면서 물속으로 사라진다. 미꾸라지들은 드디어 자유롭다.

나는 밤새 잠을 못 이루고 그믐달은 나를 위해 새벽하늘을 지키고 있다. 시인이 떠나면서 한 그릇의 밥을 준 것처럼 나는 산사람들에게 먹이는 일을 해야 한다. 김정수시인의 시집을 천천히 읽으면서 자꾸만 아름다운 시인으로 부활하고 싶어진다.

김정수 시인이 그믐달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이 영정사진이 되어 밤하늘에 그믐달이 되어 걸려 있었다. 

정성수 : 시인은 전주대학교 사범대학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전주비전대학교 운영교수,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향촌문학회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시집 <공든 탑>, 동시집 <첫꽃>, 동화 <폐암 걸린 호랑이>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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