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렬 시인

변창렬 약력:  재한조선족 중견시인, 재한동포문인협회 고문, 두만강문학상, 동포문학 대상 등 수상 다수.
변창렬 약력: 재한조선족 중견시인, 재한동포문인협회 고문, 두만강문학상, 동포문학 대상 등 수상 다수.

예순고개  
               

한 바퀴 도는 것은 허무한 계산법이다
구구단에 예순이란 입말은 없다
겉옷을 벗어 던지고
속옷으로 겉치레하는 나이는 싫다

가을마다 못 본 척했던 풀도
남의 일이 아님을 느껴지는 나이다
귀밑을 당당하게 단속한 흰머리카락
딸 하나만 낳았으니 섭섭한 구석이 있다
낳아야지 하면서 미루고 온 거짓말
제대로 지켜 온 약속은 하나도 없다

뜀박질해야 먹고 살길임을 알기에
몸 아끼는 것은 부끄러운 짓이다
뼈가 다슬어 소리가 나도
누울수 없는 진실이 핑 도는 눈물이다

얼마나 큰 반경인지는 모르나
반 바퀴는 더 돌고 살아야 겠다
짧아도 길게 사는게
내게 남아 있는 할일이다

한 숟가락 밥을 맛나게 먹어 줄 나이가 좋아
때시걱이 즐거운 하루를 만들고 산다
나이가 무늬로 고개를 만드는 나이가 좋다


신호등


해바라기가 서 있다

까만 씨앗이 빛으로 다가오기에
발길이 끊기였다
나도 눈동자까지 까맣게 탄다

고개 숙인 해바라기가 가로저을 때
눈물이 핑 도는 것 같아
난 주저앉고 싶었다

하늘에 계셔서 해바리기 되신 어머니
까만 눈동자는 별 뿐이 아니다

테두리를 두른 엄한 눈초리는
노랗게 익어 나를 꾸짓고 있다
하늘의 빛을 봐도 눈에 익은 빛이 였네

잊을수 없는 뒷모습으로
나를 등지고 가신 하늘길에
새로운 착각이 더 진한 눈물을 만드는 것은
엄마의 눈이 빛을 잃고 계셔서 아닌가

하늘에서도 별빛을 품고 있는 엄마
내가 갈 길에
달빛을 끌어오시는 엄마
목을 빼들고 나를 지켜보는 해바라기

난 누구의 해바라기로
누구를 지켜왔는지 엄마는 무서웠다
엄마의 눈빛은 하늘에서 나만 바라보는 신호등


물과 자갈의 풍경선  


흘러가는 물소리를
무늬로 가로채는  고달픔이 더 아팠기에
자갈은 이끼를 뒤집어 쓰고 숨는다

물은 흐르다가
자갈을 굴리며 잔주름 만들 때
자갈은 엉치를 살작 옮겨 놓으며
물의 속도를 조절하고 있어 더 출렁해 진다
누군가 그리울 때는 이런 곳이 좋다

물은 아프지 않다
자갈을 씻어주는 끈질김으로
아픔을 참고 뒤척이기에 쉴수없었다

나무가지 하나가 떠내려 가다가
물의 흐느낌에 기댈수 없어
자갈과 사이를 두고 물을 지켜 본다
말라 들어서 물이 더 그리워진 나무였다

하늘을 물속에다 줄여 놓으면
자갈은 물속의 구름이다
그래서 지는 해도
물속으로 숨는 남다른 풍경을 만들었다

나도 누군가의 눈물속에
자갈의 눈빛을 감추고 싶다

 

비탈길


소가 등을 부비는 언덕받이에
꽃의 눈물이 시로 그득하다
소가 새김질 할 때마다
풀냄새는 시의 즙으로 흘러 넘어 갔다

가늘게 흔들리는 풀이 있어
소가 힘겹게 오를 수있는 언덕길
영각소리조차 풀의 몸짓으로 시가 된다

소가 꼬리를 저으면
풀도 덩달아 흔들어 주며
비탈의 높이를 끄당겨 온다

높은 곳에 피는 꽃은
해와 가깝다고 요란스레 떠들지만
비탈에 핀 꽃은 소퉁방울 눈을 본뜨기에
소발통 크기로 시를 닮는단

소똥에는 풀냄새가 있어 구리지 않다
풀은 소가 좋아하는 시의 냄새로
비린내를 삭혀 버린 꽃으로 탈바꿈했다

소는 풀의 비탈이고
풀은 소의 시 였다
굽인돌이마다 시로 에도는 비탈길
내가 소를 따라 오르면
시는 나를 따라 뽀족한 잎으로 서 있다


동백꽃


우거진 꽃은 다 같으나
피면서 얼면서 엉키는 꽃은 너 뿐이다

속살만은 얼구지 않으려고 오무린 꽃잎
진붉게 앙다문 어금니만 보드럽다
삼키는 설음이 나약해져 빨갛게 떨어지는 눈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묵세기기 힘겹구나

온다 간다 기별도 없이
훌적 떠난 당신
뒷모습도 남기지 않은 엄동설한을
나에게 던져주구나

그많은 꽃속에 당신 혼자만 붉다
난 당신을 꽃이라 부르지 않고
동백이라 울고 싶다

 

동백꽃 2


바람소리가 애처롭다
엄동설한에 귀먹은 가냘픔이다
하늘에서 내리 부는 서러움에
땅에서 올리 부는 괴로움이
허공에서 맞 부딪힌 꽃상여

서로가 낯 붉히는 교차점에서
점만 우거지게 찍어 놓고 운다

떨어 진 동백꽃 한 송이
하늘을 향해
땅을 향해
속쓰린 절정으로 일으킨 바람이여
더는 붉지말자
혼이란 전생에는 왜 희였더냐

 

새해는 주름으로 새롭다


태어날 때 해를 본 이는 없다
눈 뜰 때
엄마의 눈동자가 해였다

그믐날 저녁에는
엄마의 눈동자가 그리워 울고 싶으나
엄마를 닮지 않으려고 살아 온 한 해를 마무리 한다

해는 떨면서 뜰거다
엄마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나온 빛으로
웃으며 반기던 그 새해 맞을가

새해를 싫어 했다
기운 옷으로 입혀야 할 설
다듬이 소리로 밤새운 그믐아닌가
섣달의 긴 밤으로 깊어진 엄마의 주름이여

엄마는 눈을 감고 갔다
눈을 뜨면
엄마의 주름을 닮아가는 아들의 꼴이 보기 싫어서겠다

못 본 척하는 삼신할머니는
엄마의 감은 눈을 봤을가
그 속에 말라버린 눈물이 오늘밤 어둠이다

새해는 주름이 더 깊다
나의 주름이다 아니
엄마의 그림자다


발은 죄수이다


나의 발은
감옥속에 갇혀 묵묵히 걷기만 한다
밑바닥의 수치로 살아 온 순수한 죄
깊어지는 발무늬는 죄증의 서류이다

흙과의 가까운 거리에서
순종만 알았지 반항은 모른다
신의 밑바닥이 삐뚤게 다슬어도
거절이란 한번도 한적 없는 나의 발

수없이 자라나는 발톱은
길만큼 길어도 걸어 온 길은 재여본적 없다
잘려지는 버릇에 길들여지기 전까지
양말에 구멍 내는 것으로 부끄러워 했을 뿐이다

숨어서 사는 나약한 존재이기에
빛과 아무런 족보도 없다
무좀이란 잔꾀로 빛을 반길때는 있으나
맨발이란 괴로움은 늘 낯설었다

머리와 몸체를 받들어 모시고
시키는 데로 따라야 할 착한 죄수
감옥살이 말고는 아무것도 할줄 모른다

집에 와서 손으로 씻어 주면
윤기도는 민낯으로 모든 피로를 잊어 버렸기에
발가벗은 맨살에 장알이 더 굳세였다

내일 떠나야할 길이 있어
발톱을 좀 씩 키우며
죄수의 흔적을 남기려는 꿈을
양말안에 구린내로 새겨두는게 기록이다


눈물은 소리가 없다


첫눈이 오는데 소리가 난다
꼿꼿한 자세를 부러 뜨리고
흩날리는 자세 탈바꿈하는
그 소리가 넘 차갑다

온 몸을 태워 연기로 사라진
엄마
마디마디를 어떻게 부수었기에
소리가 없지
눈꽃은 엄마를 닮지않았다

내 귀는
엄마가 훔쳐 갔나
눈이 오는 소리는 들려도
녹는 소리는 못들었다


낙엽

 

아버지는 회초리를 자주 드시며
살아 갈 길은 흙길 뿐이라고 귀뜸하셨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나약함은
땅이 가까워서가 아니라
흑백사진으로 자신을 오려내는 것이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미처 몰랐다
살아가면서 생기는 반골도
떨어지기 전에 방정식이 따로 있다는 것을

고집이란 유희놀이에도
고개숙여야할 자세 하나는 쉽지 않다
햇빛과 아귀다툼 않으려고
뛰여내리는 절벽길은 고집길이다

살아 갈 숨소리로 도박한다면
풀어 버린 손맥으로는 답을 찾을수 없다
죄를 벗으려고 떨어지는 자는 없다
대를 이어 갈 흙 만들려고 죄를 다시 진다

썩은후에라도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벗어날수없는 핏줄이다
아버지 회초리는 흙보다 더 부드러워
주름으로 말라드는 자화상을 오려낸다

-연변문학 8호 발표.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