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춘화 수필가

이춘화 약력: 연변대학 졸업. 할빈시 조선족 중학교 교사. 현재 정년 퇴직. 흑룡강성 조선족작가협회 회원, 중국 조선족작가협회 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시, 수필, 소설 등 다수 발표. 문학상 수상 다수.
이춘화 약력: 연변대학 졸업. 할빈시 조선족 중학교 교사. 현재 정년 퇴직. 흑룡강성 조선족작가협회 회원, 중국 조선족작가협회 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시, 수필, 소설 등 다수 발표. 문학상 수상 다수.

오늘 영어학원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대신 시장과 지오 마트에 들려 남새와 과일을 좀 샀다. 양이 많아서 두 봉투에 갈라 담고 집에 와서 냉장고에 정리해 두면서 그제야 연시가 빠진 것을 발견하였다. 지오 마트에서 산후 버스 환승하고 왔으니 장소가 갈리어서 잃은 곳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에라 단념하지! 밥 먹고 TV로 영어 프로그램 보다 나니 어느덧 오후 3시가 넘었다. 입이 심심해지면서 왠지 지금 한창 제철인 연시가 먹고 싶어졌다. 아, 그것 먹으면 지금 입안에서 몽글몽글 퍼지겠는데 … 군침이 돌았다. 혹시나 하는 호기심에 인터넷으로 지오 마트 전화번호 찾고 전화 걸어 간단히 상황 설명을 했다. 관계자가 포인터 번호와 성함을 묻고서 확인후 전화 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한 3분 지났을까? 지오 마트의 전화가 오더니 연시를 찾아가라는 것이었다. 와—이 몰려드는 포근한 감각! 나는 조금 후 마트에 찾아가서 다른 것도 더 사고 관계부문에 가서 연시도 찾았다. 결재할 때 점원이 나를 알아 보고 (다른 옷 갈아 입고 마스크도 작용했는데?...) 연시를 출구 쪽에 있는 보관 상자 앞에 흘린 것을 보고 건사해 두었다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봉투에 갈라 담다가 흘린 것이군) 드나드는 사람이 매일 엄청 많은 큰 마트에서 얼굴도 잘 모르는 고객들에게 신경 써주는 고마운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감사하다고 재차 인사를 했다. 마트의 고객관리 시스템 덕에 쉽고도 빠르게 찾은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난 한국에 와서 이런 분들을 많이 만났었다. 꼼꼼하다고 생각되는데도 빈 구멍이 많은 자신의 허점으로 인해 보게 된 한국의 따뜻한 한 모퉁이였다

일당 나간 백화점 푸드 코드에서 퇴근할 때 옷 갈아 입다가 안경을 흘리고 온 일도 있었다.  다음 날 발견하고 연락하여 아는 동생이 퇴근길에 가져다 주었다. 그 갱의 실(更衣室)은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기에 잃어버린 줄 알고 참 마음 졸이었다. 고가로 갓 산 다 초점 안경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고마운 마음도 진했다.

또 한 번은 대신 시장 야채 가게에서 고추 사고는 이미 사 들고 간 소고기를 두고 온 일도 있었다. 봉투가 여러 개니 감각이 무디 서이다. 그 가게 나와서 또 다른 가게에 들려 나물 산후 버스 타고 집에 오다가 발견하고 되 돌아가서 찾아보았다. 솔직히 어느 가게에 두고 나왔는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다행히 고추 가게 주인이 반기며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고 말했다. 나는 신선도가 보장된 소고기를 받아 들고 고객을 배려해주는 가게 주인의 선처와 세심함에 고마움을 느꼈다.

또 한 번은 신길 역에서 버스 기다리다가 회사에서 선물 받은 선물 박스를 벤치에 두고 버스 탄 적이 있었다. 버스 내린 후 알게 되었고 그 땐 이사하기 전이어서 한 개 역의 간격이라 버스 환승하고 되돌아 가보았다. 역 가까이로 가면서 버스 창문으로 내다보니 역에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10여명은 되었다. 그런데 벤치 위의 선물 박스, 그 주위는 텅 비어 있어서 신기했었다. 타인의 물건에 관심을 끄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서로 다 아는 한 동네 사람같은 이 안전한 감각은 많은 사람들의 도덕적인 습관으로 지켜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 받는 순간이었다

제일 아찔하게 감동을 받은 것은 한국에 온지 석 달이 지난 어느 늦은 밤 퇴근길 버스에서 있은 일 때문이다. 휴대폰을 손에 들고 있다가 버스에 두고 내린 후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집까지 와서야 알게 된 것이다. 당시는 나 혼자 뿐이어서 나의 폰으로 전화를 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난 무작정 버스 역으로 나갔다. 중국에서 딸애가 대학 오기전 고등학교시절 3년간 폰을 두개나 잃어버렸는데 찾을 길이 전혀 막혔던 사실이 순간 떠오르면서 눈앞이 아찔해 났다. 갓 구매한 최신 스마트폰이기 때문에도 그렇고  한국이 초면인 나 인지라 당시 폰에 입력이 된 연락처까지 다 잃어지는 줄로 알고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찾을 수 있는 실마리라고는 타고 온 버스가 영등포 04번 마을 버스 라는 점, 그리고 폰 번호 뿐이었다. 역에 도착해서 기다리니 04번 버스가 왔다. 올라간 후 기사에게 상황 설명을 했다. 한 10분 전의 일이니 앞의 버스이든가 아니면 그 앞의 버스일 텐데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문의했다. 그러니 그 기사님이 나의 전화번호 그리고 어느 위치에 앉았는가 묻고는 어디로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난 자리에 앉아 기다리었다. 기사님은 붉은 등 신호로 바뀔 때 앞 버스의 기사와 몇 번이나 전화 통화하고 이어서 폰을 찾았다고 알려준다. 앞 기사가 종착역에 도착하면 퇴근이어서 내일 아침 6시에 대신시장역에 그 버스가 도착하니 좀 일찍 나가 대기하고있다가 폰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버스 뒤에 씌어 있는 그 차 번호를 알려주었다. 불안이 싹 가셔지고 고마움이 밀려들었다. 그러는 사이 집 역에서 내렸는데 그 날 따라 날씨도 포근하고 하늘의 별들도 밝고 총총하였다.

다음날 거짓말처럼 정각 6시에 그 번호의 영등포 04번 버스가 대신시장역에 도착했고 나는 기사님에게서 폰을 받았다. 물론 고마움의 표시로 사례금도 드렸다. 나는 시간 약속 지키는 버스 때문에 규칙적인 궤도의 흐름을 감지하게 되었다. 그렇지. 우리는 그 어떤 궤적 속에 몸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얼핏 보면 물질과 물욕이 넘치 듯 많아서 복잡다단한 세상이지만 그 속에서 숨쉬는 건강한 숨결이 느껴져서 이 사회는 참 아름답고 매력적인 것 같다. 많은 것들이 질서정연하게 제 자리에서 나사못 마냥 드팀없이 제 역할을 하는 사회, 사람들이 어느 위치에서든 모두 최선을 다해 한국의 높은 위상을 위해 이미지를 구축하는 사회는 우리 이방인들에게는 참 안전하고도 포근한 보금자리로 마음속에 점차 자리잡아 가는 것이다.

갓 한국에 왔을 때는 대문도 안으로 단단히 닫아걸고 잤고 딸애가 늦게 귀가하면 역까지 마중 나가곤 했다. 간혹 일이 있어 늦게 돌아올 때 길가에 사람 하나 없으면 속으로 은근히 겁이 나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사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계속 이어지었고 어느새 나는 평온한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지하철 가게에서 가방 파는 일을 할 때는 그 많은 물건을 혼자 관리하고 판매하고 재고하고 했었다. 화장실 갈 때는 할 수 없이 모르는 사람에게라도 가게 부탁하고 다녀 오고 하면서도 물건이 잃어지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는 한국 사회의 안전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고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생기였다. 집 앞에, 때론 집 비워 며칠 복도에 택배를 방치해두어도 될 만큼 믿음의 일상이 굳어간다. 사람들이 몰리는 출퇴근시간의 지하철에서 멜 가방 지퍼도 안 채우는 사람들을 가끔 보면서 처음에는 의아해했지만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필연적이고 합리 하다고 한 어느. 철학자의 명언이 떠오르면서 나도 안전 함에 물 젖어 가는 것 같다.

우리는 한국인의 직업정신, 예절 바르고 몸에 벤 서비스 태도, 자각적인 도덕 의식, 이타적인 배려 문화에서 많은 것을 터득하고 배워나간다.

잃어진 그 무엇을 찾는다는 것은 그것이 크든 작든 간에 그 어떤 귀중함을 재 확인시키는 과정이기도 하고 자신의 허점을 꼬집어주는 힌트로도 되지만 또한 로또에 당첨된 것 같은 행운적감각을 얻게도 해서 감격적인 일로 전환되는것이다.

                                                                20년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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