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숙 시인

홍연숙 약력: 시, 수필, 소설 다수 발표. '문학의강'으로 시 등단. 동포문학 시부문 우수상 수상.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현재 울산 거주.
홍연숙 약력: 시, 수필, 소설 다수 발표. '문학의강'으로 시 등단. 동포문학 시부문 우수상 수상.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현재 울산 거주.

1. 털갈이

 

지저분한 털을 달고 어슬렁대는 똥개가 보일 때면  
나의 추문들을 꺼내어 읊는다

반백의 나이에 추해진 몰골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아직도 하고 싶은 짓거리가 너무 많아
떨어지는 꽃을 찬양하는 것도
세월에 어쩔 수 없이 누추해짐을 기억시키는 것 보다
시들어감을 붙잡아
견고해지기 위해서이다

길 가다가 수캐를 보면
남들이 있던 말던
그대로 흘레를 붙는 것도
지당한 일이라고 깨달았으니
이 만큼 살아진 것도
가다 오다 만났던 가벼운 인연들이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음을 안다

쌍년인 내 몸에 달려  
한오리 씩 희어지다가 
한오리씩 빠지고
다 빠지더라도
유명하다는 털을 도적질하지 않도록 
나의 역사는 더 더러울 것이며
누구도 감히 나를 잡종이라 놀리지 못하도록
내 털 한오리는 끝까지 지킬 것이다

 

2. 나비

 

계획없는 방랑자여

할 일없이 빈둥대는 저 자신감은 어디에서 오는지
부지런한 꿀벌은 알기나 할까

흔들리는 금빛의 리듬
스치는 은빛의 섬광
다채롭고 정제된 문자로
이꽃 저꽃 쫓아 다니며
으시대고 유혹한다

늘어나는 건물들
멸종위기의 동물들
이 땅에 벌어지고 있는 모든 환란과
누르고 있는 무거운 것들이
그 짓거리에 가벼워진다

지는 꽃이라
이내 사그라지지만
경이로움은
영원히 빛난다

지속하고 변치 않는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우리는 피로에 지쳐가고 있지 않는가

잠간 듣는 음악에
금방 끝나는 사랑에
이 세상의 고단한 삶들이
견디고 있지 않는가

만약에
나비가 없다면
가벼운 날개짓이 없다면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시인이 없다면
우린 살아갈 수있을까

 

3. 시

 

아무도 없는 빈 집에
다소곳이 머리숙인 불쌍한 짐승이
먹지도 못하고 
싸지도 못하고 
가쁜 숨만 헐떡인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어도 
짖지도 못하고
뛰지도 못하고
땅만 뚜졌던 미련한 짐승이
딱 한번 발설했다가
평생 그 죄로 
칼을 쓰고 살을 녹이고 뼈를 갈았으니

애비도 알아보지 못한
개종된 년이
개같이 짖어대며
크으억 숨 넘기는 소리속으로
수컷이 빠져나간 가죽에 글을 새긴다

 

4. 꼬막

 


짬뽕 한 그릇 시키고 고명으로 앉은 꼬막을 집었다

새 같어!

분명 한마리 새였다
옹송그린 태아의 모습으로
한번의 변화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였다

너는 왜 날지 않았는가

날개를 포개고
한없이 자신을 가두어
진흙속에 감춘 시간들이
썰물에 버젓이 드러나
뼈대없이 흐르는 몰골을
기어이 날개밑에 쑤셔 넣는다

한 낱 세상의 안주로
날개는 점점 굳어져 가고
너는
비릿내 나는 바닥만 긁고 있다

추락하는 것들은 날개가 있다*


*잉게보르크 바하만

 

5. 길가의 목련

 

1
딱딱한 바닥에 무릎 꿇고
오래동안 기도하며
무엇때문에 기도하는지 모르고
태어나니 그 자세였어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2
하늘이시여
하늘은 한번도 굽어보지 않고
올려다보며 끝없는 하늘만 따라가고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모르고
뒤돌아 본 적 없고
멈출 수 없고

교과서의 가르침대로 싸워서
이겨야 했고
죽여야 했고 
살아 남아야 했어

인생은 한방이라고
순간에 피었고

이렇게 잠깐인줄 알았더라면
꿈도 꾸지 않았을 텐데
밀리고 밟히고 죽어나간 얼굴들이
자꾸만 찾아와 괴롭히지 않았을 텐데

툭~
비명도 지를 새 없이
꼰지박히며

 

3
불러도 돌아보지 않는
죽기살기로 오르는 것들이
어차피 꼰드라질 것들이
누렇게 병 들어
병원의 쪽문만 내내 쳐다보다가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숨져 갈 것들이

고고한 순백은 몸 안에 머물지 못하고
말라서 갈색으로 부서져 흩어지고
인사불성이 되어 
느슨한 괄약근 사이로
헛 소리들만 지저분하게 새어
밟히고 쓸리고 사라져가는 허명들이

길가에 
발톱을 세운 목련이

 

6. 한 알의 사과

 

이 가을에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물이 가득 찰 만큼 
사과가 익었다

사과의 고통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으리라

한 입 물리고 씹히고도 모자라 
질식할 정도로 부패되어 
똥이 되어가는 그 고통만큼 
사과는 익었다

개 돼지 소 닭이 지르는 똥을
알몸으로 다 받아 들이고
거름은 원래 썩은 내 난다며
견뎌온 사과는 
상큼하게 익었다

아프리카의 배고픔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우리 잘못이냐고
분쟁으로 고립된 난민들의 아픔을 우리가 해결할 수 있냐며
전쟁으로 강간당하는 여자들의 고통은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할아버지가 일궈 놓은 땅 좋고 물 좋은 곳에서
단물만 빨아 들인 사과는
빨갛게 익었다

크게 한입 물다가 꿈틀대는 삼시충에 
기절 할 만큼

 

7. 단풍구경

 


단풍놀이 끝나고
우수수 쓸려오는 낙엽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식당으로 들이 닥친다

허구 헌 날 밥 푸며 밥벌이 하는데
밥 한 때 먹기가 이렇게 버거워서야
밥 떠 놓고 앉았다 섰다
왔다 갔다
 
먹어치우기의 단순함이
미련하게 피와 살을 녹이고
후줄근히 젖은 옷이 의자에 쓰러진다

하늘이 설핏 거리고
구름이 언뜰 하더니
뉴스 하나 없는 먹통인 테레비에
가을을 구겨넣고 활활 태운다
불 붙은 나무들이 머리채 흔들며 쌍둥이 호수로 뛰어든다

밥 먹자

젖은 옷이 소슬소슬 일어나
단풍잎들이 사르르 쏟아지고
밥 맛이 익어가며
가을 향이 넘친다

 

8. 쓰레기

 

소설가는 쓰레기로 되는 중이다
밑 바닥까지 내려오지 않으면 
아무 것도 쓸 수 없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소설가는 
구린내나는 구뎅이만 파고 다니며
왕창 썩어 갈 거다

쓰레기속에는
부자들이 돈 때문에 싸우거나
시인이 미투에 걸리거나
여교사가 미성년자를 추행하는 
냄새가 완전 수준급이다

소설가는 더 깊이 썩어 들어가
부자는 재산을 지키는 어려움이 있고
시인은 자유를 선호하고
여교사는 사랑이 넘친 거라며

쓰레기는 사회발전의 산물이라고
쓸고 쓸어도 자꾸만 생기는 거라고

내조의 여왕 엄마도 늦 바람에 집 나가고
기업의 제왕 아버지도 횡령죄로 감옥으로 가고  
친 형제도 푼 돈에 개 처럼 물고 뜯고 싸운다고

털면 다 나온다는데 
목사도 대통령도 피할 수 없다는데

너도 한번 털어 볼까

 

9. 겉절이

 

하기 어렵지 않아
다들 귀찮다고 하는데 그게 생각밖에 쉬워
한번도 안해본 초짜들은
순을 죽인다는 게 물을 너무 많이 빼거든
폴싹 죽었다고 당황하지 말고
물에 넣어봐
아삭하게 살아나는게 보여
그때 바로 꺼내고 대구 문대야 혀
아래 것을 우로 올리며 치대고 
휘떡 뒤집고 또 문대고
입에 넣고 씹을 때
그 귀맛 댕기는 소리, 
씹는 입안에도 물이 다 찬다니까
별거 없어 
다 손 맛이야
여자는 손이 빨라야 혀
나도 술만 마시면 그게 은근히 생각나
남편은 집에 들어서자 바람으로 나를 부른다니까
귀찮더라도 해줘
여자가 사랑받는 비법이 따로 있나 뭐
그거면 다여
시시때때로 해줘
쉽다니까

여보~

아참, 남편이 또 어디서 한잔 걸치고 왔나벼
얼릉가서 이 손 맛이나 보여줘야지

 

10. 눈에 때가 끼었어

 

눈에 때가 끼었다고
진단이 단마디로 나오는 그놈의 안과
약 보다 비누로 씻으라는
처방이 똑 같은 그놈의 안과
의사가 반 말을 찍찍 해대싸는 그놈의 안과

더러워서  원

도대체 머가 더럽다는 건지
때 낀 년이 때 안 낀 놈한테
때를 떼질 쓰며 
때 낀 눈을 비비적 대며
때 낀 입으로 싸댄다

하긴 
잘 보이지 않은 눈구녕은 그렇다 치고
남 말 들어오지 않는 귀구녕은 씻었는지
탁한 세상 걸러 내는 코구녕은 
사랑 하나 들이지 못하는 가슴구녕은

어메~
이러구 보니
이 몸뚱이에 구녕이 장난 아니게 많이 뚫렸는데
때들이 덕지덕지 붙어 
구녕이란 구녕은 다 막혀 버리고
고독을 씹는다며
구녕에 빠진 날들로 허송세월 하는 
대가리 틀어박고 구녕만 줄기 창창 씻어대는
쌍년이

 

11. 더덕구이

 

나는 산속에서 발견 되었다
은둔자의 삶을 청산하고
시장통 할매 손에 넝마를 벗기고
알몸으로 부끄러워 할 새도 없이
단돈 만원에 팔렸다

소금의 세례로
바닷물이 꽃을 피운 존엄을 알아가는 만큼
무릎이 오그라들도록 쫄아야 했고
억겹의 세월을 인내한 돌의 무게를 감당할 만큼
머리를 수그려야 했다

세상이 정해진 입맛 대로
고추장을 덧바르고
달궈진 기름에 뛰어들면서도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바보짓은 저지르지 않았지만
잘 삶아진 닭과 함께 식탁에 오르고 말았다

 

12. 벼룩나물

 

말라죽은 때죽나무 아래 
벼룩나물들이 꽃 피우느라 바쁘다 

세상이 부르는 원치 않는 이름으로
파랗게 물 들이며
감히 이 땅에 하늘의 별을 수 놓는다

위대하지 않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이
살아 내고
살아 있다

 

13. 고장난 벽등

 

아이가 어른이 되는  길목에
예수도 모르는 등신(燈身)이
못 박혀 있다
늦 사랑에
처진 가슴 드러내고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거라며
세상을 다 얻은 것 처럼 지줄댄다

밸 빠진 년!

아이들이 줄레줄레 나오는 골목에
부처도 모르는 등신(燈身)이
합장 하고 있다
늦 바람에
처진 배 두드리며
생의 마지막이라며
세상을 다 가진 것 처럼 지껄인다

밸 빠진 놈!

 

14. 강

 

1
저 강의 비밀을 아냐구
외롭다고  힘들다는 이놈 저놈 별놈까지 끌어 들인 걸
아냐구
그 중에 장난삼아
에라 한번쯤이야 하고 발목까지 담갔다가 
감기는 물살에 후닥닥 뛰어가는 놈도 있고
풍덩 빠졌다가 겨우 살아 남아 기어가는 놈도 있고
손만 넣고 휘휘 젓다가 
코 풀고 힝 가버린 놈도 있었다는 걸 아냐구

2
맑은 물이 흐르고
향기가 흐를 때는
해와 달이 몸 담그고 질그덕이며
물비늘로 출렁이고
매끄러운 수초사이로 
비린 봄 냄새를 실어 오는
그 깊은 속살을 
호시탐탐 노리는 낚시군들이 
시도 때도 없이 걸터 앉는다

3
야심찬 수컷들은
전쟁을 끊임 없이 일으키고
죽는다고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지르면서도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며
기어코 마지막 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땅이 하늘이 뒤집혀 다 죽어
죽은 놈은 말이 없고
죽음의 강은 영문도 모르고
게우듯이 철철 흐르기만 하는데
넘어진 갈대들만이 못 다한 이야기를 조신하게 펼쳐간다

 

15. 꽃감

 

나는 엄마의 껍데기를 보지 못했다
엄마의 속살에 기생하면서
풍만한 살이 쪼글쪼글 마르다가
양똥처럼 새카만 꽃감이 되는 것을 보았다
엄마는 보이지 않았고
나는 엄마를 잊었고
낮이나 밤이나 꽃감만 먹었다
남들이 다 하는 그 흔한 엄마 생각도 나에게는 없었다
원흉은 꽃감이었다
우뢰울고 번개치는 날이면
꽃감은 단 맛이 더 진했고
별도 달도 없는 깜깜한 밤이면  말랑말랑하게 입안으로 감겨 들어 꿈속에서도 나는 웃었다
그 많은 꽃감이
나의 입으로 들어가
나의 살이 되고
피가 되고도 남아 돌아 아깝지도 않았고
달달이 월경으로 흘러보냈고 트럼으로 방구로 각질로 비듬으로 심지어 똥으로 오줌으로 마구마구 써버렸다
영원할 것만 같은 나의 꽃감이
꼭지만 달랑 남아
꽃감 생각에 엄마를 찾았더니
내가 끌고 다니던 부대(負袋)에서 바람 새는 소리만 들렸다

 

16. 석류의 장례식

 

할 말도 못하고 가버린 문드러진 생이여
태풍에도 끄떡 없더니
향기를 다 잃고 풍장을 치른다

목구멍까지 차 올랐던
알알히 박힌 말들이
연어알 처럼 새롭게 탄생되어
세상으로 퍼졌을 말들이
뱉지도 못하고 괴질이 났다

어떤 웨침이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죽었을까

말이 죽었다
수많은 말들이 죽어
억겹의 돌이되어 바람에 날린다

저 단단한 것이
바람처럼 가벼운 것은
말이 풍화되어 모두의
마음속으로 흘렀기 때문이다

 

17. 창을 열고 보는 것은

 

이 늦 가을에
활짝 핀 장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습니다
1년 전의 내가 밑둥의 가시에 박힌 것 같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저 뿌리끝에 박힐 것만 같아
해마다 베여지는 장미를 바라 보고 있습니다

겨울에도 멈추지 않고 자꾸 자라는 줄기를
나도 모르게 무성해지는 잎들을
이른 봄에 더 퍼지기 전에 잘라내야 했습니다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은
나를 길 들이기 위해서입니다

어쩔 수 없는 욕구로 뻗쳐오르는 나를 잘라야 합니다
의미있는 나로 되는 건
잘린 것들이 가시로 박히는 겁니다
장미의 가시는 스스로 찌른 거라는 걸 아시는지요
남을 찌르기 전에
먼저 나를 찌른 답니다

매일 창을 열고 보는 것은
떨어져나간 몸의 상처들이
아파오기 때문입니다
그 상처에
꽃이 피기 때문입니다

 

18. 새야
-유리창에 충돌한 새의 죽음을 보고
 

푸른 창공 아래
단풍나무들이 화끈 달구고
국화꽃들도 무리지어 마구 피고 있었지
꾸밈없는 자연은 확신을 주었고
너는 그 공간 속으로
힘차게 돌진했겠지

모든 것이 깨지고 있는 그 순간에도
너는 날개를 멈추지 않았고
유리*보다 투명한 영혼은
풀위에 떨어진 짧은 생을
땅속으로 천천히 보냈겠지

놀란 풀꽃들이
소스랑 소스랑 이슬을 떨구며
굳어져 가는 너의 푸른 시간을 배웅하는데
가을의 아침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나는 잠시 죽음에 대해 생각했지
캔 맥주를 홀짝이면서
한 손으로 주머니**를 뒤적거렸지
 

*버드 바게트 - "인생은 앞 유리를 통해서 보라" 에서

** 찰스 부카우스키의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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