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수 시인

허경수 약력 : 1952년 2월 3일 길림성 화룡시에서 출생,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1972년 5월 1일에 시 ‘림해의 아침에’를 연변일보에 발표, 선후하여 소설 여러편 발표, ‘내 이야기’ 5편이 한국 KBS 방송국 우수상 수상
허경수 약력 : 1952년 2월 3일 길림성 화룡시에서 출생,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1972년 5월 1일에 시 ‘림해의 아침에’를 연변일보에 발표, 선후하여 소설 여러편 발표, ‘내 이야기’ 5편이 한국 KBS 방송국 우수상 수상


"탕..."
새 한 마리가 유리창에 부딪쳐  "장렬히"....


방금까지  구만리 창공을  날으던 너 웬 일이냐?

유리가 너무 맑아서 못 보았더냐?


폭풍과 번개속에서도 도고히 살아왔고
엄동설한에도 웃으며 살아온 너

독수리의  주둥이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온 네가 아니였더냐?


구름송이를  입에 물고
바람을 타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던 너  갑자기 돌멩이 신세가 되다니?


보귀한  생명이 순식간에 해빛 아래 이슬이 되어버려

내 가슴이 짜릿
눈물이 핑...
산전수전을 다 겪은 네 운명이 이렇게 비참할 줄이야?

 

벤치

 

비바람과 눈보라에
겉늙었구나
오가는 자취에만
세월을 모두 쏟은 길가 벤치

 백조든 까마귀든 상관없이
오는 걸음 웃으며 반겨주고
가는 걸음 눈물로 바래주니

 이도령 기다리였던 춘향 마음
이제 알 것 같다.

 

"불 덩어리"

 

오랜만에 만난 부부
마주 서서 유리창을 닦는다.


호...호...
하....하...
입김을 뿜으며
마주 보는 두 눈길
아뿔싸!
유리가 사르르 녹아 내리네.

마지막 잎새

나뭇가지에 매달려 파르르 떨고 있는
나뭇잎 하나
뭇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다

바람은 싸늘하게 불어 스쳐가고
가지는 몸부림치건만
나뭇잎은 가지를 꼭 물고 놓지를 않네

늦둥이 막내를 꼭 품고 있는 
어머니의 마음인가
어미닭 떨어지기 무서워하는 
풋병아리의 안쓰러움인가

어느 날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치며
나뭇가지는 바람에 몸 맡긴 채  
안간힘을 쓰나 그의 곁엔 아무도 없다


벼 이삭 설레이는 소리

서늘한  바람에
벼이삭이 밤낮 셀레인다.

무심코 들으면 그저 스르륵거리는 소리뿐


그러나 귀를 기울려 세심히 들으면
속심의 말이 흘러나온다.

봄에 파랗던 우리가 이젠 노랗게 되었구나
이게 모두 농부들의 땀방울 신세야

그렇구 말구 그들은 우리의 엄마야
그런데 왜서 어떤 사람들은 농부들을 업신여길까?

참 알고도 모를 일인데
글쎄, 엄마의 젖을 먹으며 엄마를 욕하니 말이다.

 

아름다운 풍경

 

아늑한 공원에서
허리 구부정한 할아버지가
파파 늙은 할머니를 앉힌 휠체어를 밀며
느릿느릿 걸어간다.

말 없는 두 노인
멍한 눈길
주름투성이 얼굴
뭇 사람들 곁눈질도 하지 않건만

빨간 단풍이 노인들의 어깨에 살풋이 내려앉네.

 

나무 잎

 

나 연인과 함께 거닐 때
단풍잎 하나 호르르 어깨에 떨어지면
축복을 받는듯

저벅저벅
낙엽을 밟으며 걸을 때
아름다운 반주를 들으며 
혼례청에 들어서는듯

방금 정결하게 쓸어놓은 마당에  또 낙엽이 한 벌 덮혔을 때
전쟁판의  파편을 보는듯

 

신음하는 “어머니”

 

 “어머니”에게는
자식들이 65억이나 된다.
자식들은 태어나서부터 
어머니의 젖을 극성스럽게 빨아먹고 있다.

이젠 어머니의 젖은 말라들었다.
유두가 닳아떨어졌고 유방이 껍질만 남았다.

그래도 자식들은 어머니의 피를 빨아 먹는다.
어머니의 기름을  한사코 빨아 먹는다.
어머니의 골수를 악착같이 빨아 먹는다.
어머니의 살점을  결사적으로 뜯어 먹는다
어머니의 뼈를 아삭바삭 갉아 먹는다.


어머니는 이젠 누워 있을 맥도 없다

그래도 65억의 입은  어머니의 온몸에  이빨을 박고 있다. 


하늘이 내려다 보다 못해
눈물을  하염없이 주루룩…주루룩......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해수욕장에서
낯 모를 흑인 남성이 허리를 굽석하며 인사를 한다.

나 엉겁결에  머리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불현듯
가슴이  뻐근


지금도
내 귀전을 애무해주며 훈향으로 가슴속의 구름을 밀어내네


"안녕하세요?"
검은 사나이의  웅글진 목소리
황인  노인의 가슴을 울려준다.

우리 말의 향기가 온 세상을 부드럽게 애무해주는듯


"안녕하세요?!"
오늘은 새벽 별이 고운 입을 연다.
오늘은  새벽 노을이 화려한 입을 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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