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한경애

한경애 프로필: 목단강시조선족소학교 교원, 흑룡간성조선족창작위원회회원, 중국소수민족작가협회회원,수필, 단편소설, 동화, 시,동시 등200여 편(수) 발표,전국조선족교원수필응모대상,전국여성수필백일장 대상 등 수상.
한경애 프로필: 목단강시조선족소학교 교원, 흑룡간성조선족창작위원회회원, 중국소수민족작가협회회원,수필, 단편소설, 동화, 시,동시 등200여 편(수) 발표,전국조선족교원수필응모대상,전국여성수필백일장 대상 등 수상.

할빈 문학 행사에 참가하기 위하여 목단강에서 할빈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네 시간 남짓이 달려 드디어 할빈역에 도착하였다.

간 밤에 눈이 내리고 한겨울의 추위로 꽁공 얼궈버려 렬차출입문 계단은 꽤나 미끄러워보였다. 내 앞에서 60대로 보이는 바깥노인이 조심조심 첫계단을 내리딛자 오른쪽에 섰던 승무원이 왼손을 쑥 내밀어 노인을 부축해주었다. 30대로 보이는 남성승무원이었다.  말쑥하고 서생티가 나는 단정한 얼굴에 옅은 미소가 어려있었다. 내가 그 뒤를 따라 문어구에 이르자 그 승무원은 먼저 나의 캐리어를 받아 내려놓고는 마찬가지로 왼손을 쑥 내밀어 나를 부축해주었다.

“조심해서 내리세요. 땅이 미끄럽습니다.”
목소리도 엄청 부드러웠다. 굽높은 구두를 신은 내가 위태로와 보였던지 한 마디 조언까지 곁들었다. 코끝이 쨍하게 눈보라가 휘날리며 찬바람이 쌩쌩 부는 한겨울이지만 마음만은 따스한 봄날이었다. 열차승무원이 내민 그 손이 너무 따스해 온 몸이 훈훈하기만 하였다. 그 열차승무원이 못내 고맙기만 하여 다시 뒤돌아보니 그 열차승무원은 여전히 똑같이 내리는 매 손님의 손을 잡아주며 하차를 돕고 있었다.
“아청이, 홍은이, 할빈 렬차승무원들 복무태도가 언제 이렇게 좋아졌다오?”
나는 격동을 주체하지 못해 웃으면서 일행인 두 문우에게 입을 열었다.
“그래 말입니다. 정말 신사 같습니다.”
“네. 정말 멋집니다. 다시 보게 되네요.”
아청이와 홍은이도 맞장구를 쳤다.

출구를 향해 구름다리를 가면서 다른 차바곤의 열차승무원을 살펴보니 다들 무표정한 굳은 얼굴로 목석처럼 차렷자세를 하고 서있을 뿐이였다. 그러니 우리가 내린 차바곤의 렬차승무원만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손님들에게 풀 써비스를 하는 것이었다.
( 참 멋진 사람이야!)
나는 속으로 감탄을 하면서 다시 한 번 그 열차승무원을 뒤돌아 보았다.

살면서 넘어진 사람에게,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것은 일종의 배려이다. 그런 배려가 마음에 온정을 주고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

따뜻한 사람을 만나니 자연 또 수십 년전 중학교시절에 있었던 솜옷 한벌 사건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세월을 거슬러 1983년의 어느 겨울날밤이였다. 잠결에 너무 뜨거운 열기가 느껴져 눈을 번쩍 떠보니 숙소의 불아궁이쪽 구들에서 불길이 활활 치솟고 있었다. 당시 숙소는 중간에 거님길을 두고 량쪽에 구들을 놓았는데 석탄불을 때서 방을 덥혔다. 그런데 구들에 불길이 잘 들지 않아서 불아궁이쪽은 너무 따갑고 구들 끝쪽으로는 너무 찬 량극분화가 심한 상태였다. 그러다보니 불아궁이에 멀리 떨어져 있는 위치에 누운 숙사생들이 불을 너무 때는 바람에 불아궁이쪽 구들은 손을 대지 못할 정도로 따가웠다. 그래서 아궁이쪽은 비워놓고 잤는데 불을 너무 많이 때는바람에 장판지가 타면서 불이 난 것이었다.
“불아야! 불이야!”
내가 덴겁하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한 숙소에서 깊은 잠에 빠졌던 숙사생들이 다 놀라서 화닥닥 일어났다.다행히 이튿날 아침에 세수하려고 줄줄이 대야에 받아놓았던  물이 있어서 련속 끼얹어 불은 인차 꺼졌다.

그런데 그 옆에 벗어놓았던 나의 솜옷과 솜바지에까지 불이 번져서 타버렸다. 물에 흠뻑 젖은 절반 타다 남은 나의 솜옷을 보니 눈앞이 캄캄해나면서 눈물이 났다. 그 엄동설한에 당장 래일 입을 솜옷이 없이 어떻게 학교에 가지? 걱정이 태산같았다. 그리고 솜옷 한벌 장만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였다. 지금처럼 솜옷도 몇벌씩 갖추고 살면 한벌쯤이야 아무걱정도 없으랴만 그 때 그 세월에는 솜옷 한벌로 한겨울을 나야 했었다.

이 상황을 알게 된 우리 학급의 최승화담임선생님은 이튿날 당장 학급 학생들을 동원하여 모금을 하였다. 그리고 그날로 솜과 땡땡이 순면천을 사서 재단사에게 솜옷을 맡겼다. 그렇게 나는 선생님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새 솜옷 한벌을 갖게 되였고 그 겨울을 따뜻이 보낼수 있었다. 가장 따뜻한 겨울을 보냈다. 지금도 하늘색 바탕에 하얀 땡땡이 천으로 만든 그 솜옷이 눈앞에 선하다. 그 솜옷을 떠올리면 가슴이 따뜻해난다. 그 솜옷이 작아져서 입지 못해도 기념으로 남겨두지 못한것이 못내 아쉽다. 그 솜옷 한벌 덕분에 난 그 겨울 따뜻한 겨울을 날수 있었을뿐만아니라 그 따뜻한 겨울 추억으로 내 한생을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갈수 있게 된것 같다. 그 솜옷 한벌이 나에게 이 세상은 따뜻한 세상이라는 느낌을 락인처럼 찍어주었기에 나를 따뜻한 세상을 살아가도록 한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되는 나의 집을 마련할 때도 형제들한테도 빌린 돈 2만원하고도 선불금 3만원을 내려면 돈 만원이 부족했다. 고민 끝에 체면을 불구하고 동료인 옥화선생님한테 겨우 입을 열었다.
“나중에 천천히 갚아도 괜찮소. 잘 생각했소. 대출해서라도 집을 사면 내 집이 생기지만 세집을 살면 남한테 그저 돈을 주기만 하는 격이니 잘한 선택이요”하면서 자신이 집을 사기라도 하는 것처럼 기뻐하였다. 그러는 옥화선생이 눈물나게 고마웠다. 사실 15년전, 친형제도 돈을 잘 빌려주지 않는 세월에 싱글맘에게 돈을 빌려준다는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하다고 생각했고 죽을 것처럼 힘들었던 그 때,  지는 사람 얼굴에 종이붙이기를 하면서 밤새도록 트럼프를 놀아주던 친구들이 잊혀지지 않는다.동창이자 동료였던 경춘이랑 미란이랑 곁에 있으며 씨비리아 사막보다 삭막했던 내 마음을 달래주고 온정을 주었기에 넘어진 자리를 딛고 일어설수 있었다. 죽고싶을 정도로 슬퍼서 눈물을 흘릴 때면 함께 울어주는 친구들이 나에게는 커다란 위안이 되고 힘이 되고 용기가 되었다.

고금이래 우리 주위에는 이렇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 많고도 많다.북송의 유명한 문학가이며 서법가이고 화가인 소동파는 삼기삼락의 비운의 인생들 살았지만 9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많은 백성들이 “동파육”이라는 음식으로 그를 기억하며 그의 미덕을 대대손손 전해가고 있다. 소동파가 정치 개혁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벼슬길마저 막혀 남으로 쫓기고 쫓겨갔다. 그때 항주 지주로 있으면서 막힌 물길을 소통시키고 서호물을 끌어들여서 항주 사람들의 음료수문제를 해결해주었다. 항주의 미목인 서호를 다스리기 위해 “소제”라는 제방을 쌓았고 “안락방”이라는 최초의 국립병원을 설립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별을 무료로 치료해주기도 하였다. 소동파는 일명 관리로서 적자지심 변함이 엇이 오직 백성들을 위하고 백성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기에 그 따뜻한 사랑이 메아리가 되여 돌아온 것이다. 그러고보면 소동파는 참 행복한 사람이 틀림없다.

내민 손에는 따스한 향기가 머문다. 그 향기는 천리 만리로 흘러넘쳐 이 세상을 향기롭게 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넘어지지 않고 아프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가? 내 가족,내 친구, 내 이웃 , 내 주위에 있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민다면 이 세상은 정말 살기좋은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이라 믿어 마지 않는다.
나는 참 사람 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지금까지 나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왔다. 내가 넘어졌을 때나 힘들 때나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내 옆에는 늘 손을 내밀어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까지 늘 남의 도움을 받고 살아왔으니 이제부터라도 나도 누군가에게 스스로 따뜻한 손을 내미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야겠다.

그리고 그 열차승무원처럼 자신의 직업을 진정으로 사랑하여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보람을 느끼는 동시에 참 행복할 거라는 생각이 반짝인다.

나도 내가 하는 일에 응부가 아닌 책임을 초월한 사랑으로 임하리라. 내민 손끝에는 따스한 향기가 머물고 따뜻한 사람냄새가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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