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홍연숙 수필가

홍연숙 약력: 시, 수필, 소설 다수 발표. '문학의강'으로 시 등단. 동포문학 시부문 우수상 수상.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현재 울산 거주.
홍연숙 약력: 시, 수필, 소설 다수 발표. '문학의강'으로 시 등단. 동포문학 시부문 우수상 수상.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현재 울산 거주.

태화강의 생태공원까지 왕복 4시간이 걸렸다. 자전거를 타면 한 시간도 걸리지 않을 길을 오래 걸으면서 사진을 많이 남겼다. 종지나물, 패랭이꽃, 냉이꽃, 벼룩나물, 토끼풀, 꽃마리, 프랑스국화, 금낭화, 쥐손이풀, 물칭개나물, 자주달개비, 금창초, 박태기나무, 이팝나무, 서양수수꽃다리, 크리스마즈로즈, 빈카, 금어초, 금계국들로 남쪽나라 답게 봄 꽃, 여름 꽃들의 천국이었다. 나는 오늘도 꽃 길을 걸었다.

꽃을 싫어 할 사람이 있겠냐 만은 나는 꽃을 극성스레 좋아한다. 성격이 까칠한 편이지만 꽃에 대해서는 별나게 관대하고 앙증맞은 괭이밥부터 꽃집에서 파는 아마릴리스까지 다 좋아한다. 3년전에 히말라야에 갔었다. 가는 곳 마다 병풍처럼 펼쳐진 설산들의 웅장함은 너무나 멋 졌고 “세계의 어머니”라 불리는 주무랑마봉 앞에서는 감동에 북받쳐 눈물까지 흘렀었다. 돌아와서, 척박한 산중턱에 피어난 하얀 풀꽃들이 자꾸만 생각나는 건 요상한 내 마음이었다. 시 “히말라야의 풀꽃”이 그때의 마음을 담았다. 

"참았던 울음들이 빙하로 굳어지고/따가운 햇살에 하얀 미소로 부서진다/쌓아 둔 말들이 산으로 침묵하고/지나가는 비에 하얀 바람으로 일어선다"

꽃은 먼지가 날리는 도로 옆에 피거나 꺾어 꽃병에 꽂힌 거나 그 자체로 아름답다. 꽃의 아름다움은 황홀한 색상이나 뿜어져 나오는 향이라고 보통 말하지만 그러한 각양각색과 다종다양을 만들어내는 꽃의 오묘한 마음에 있다고 감히 말한다. 단지 수액과 햇빛으로 그런 과감한 발상을 일으켰다는 비밀 따라 들여다보면 굳어진 내 마음이 움직여 자아를 상실하고 무아의 경지로 빠져든다. 나는 꽃을 들여다보며 우주의 신비함에 다가가고 순결해지는 시간을 가진다. 고로 꽃은 아름답다.

생일 축하로 꽃 길만 걸어라 던 친구는 꽃 길만 걸었다는 나 더러 웃기지 말라 했지만 사실이다. 어릴 적에 친구와 싸우고 홀로 학교 가는 길에는 제비꽃들이 많았다. 친구 안 해도 된다는 말은 진짜 바보 같은 말이었다고 솔직하게 털어 놓고 친구와 손잡고 오던 길이었다. 언니의 브래지어를 슬쩍 입어 봉긋한 가슴을 감추고 중학교로 달려가던 길에는 라일락 향기가 진했다. “나는 17살이예요” 살랑살랑 부르며 첫 사랑 키스로 황홀했던 길이었다. 고중을 중태하고 돌아오는 마을 길에는 낙심할 정도로 나쁜 상황은 아니라며 위로 하던 개여귀 꽃들이 있었고 대과(代课) 교원으로 86원의 첫 월급을 받고 오던 길에는 “쨍하고 해뜰날”을 들어주었던 씀바귀 꽃들이 있었다. 

사랑에 영혼을 뺏기고 혼전 임신까지 저질렀지만 결혼과 출산은 낭만적인 일은 아니었다. 애를 들쳐 업고 마을 뒤 민들레 꽃 길을 많이도 걸었다. 풍성한 꽃이 삭히고 바래어 하얗게 가벼워지고 날리는 모습은 그처럼 비장했다. 꽃이 사라지는 그 의연함 앞에서 허물어져가는 나를 지키려고 애를 썼다. 술에 취하고 춤 추러 다니고 도박을 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는 백일홍들이 누렇게 떡잎지고 꺾이고 널브러져 있었다. 지리멸렬한 삶의 허무와 절망의 끝에 백일홍은 꽃씨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누구나 밥벌이는 놓을 수 없다. 타향에서 식당아줌마로 20년째다. 견뎌내고 견뎌내도 지난함은 살아 있다는 실감이 들지 않았다. 왜 이러고 있지? 하면서도 그대로 끌려가는 마음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휘청대고 뛰쳐나가려 했다. “거미가 되었다가 그 다음에는 날파리가 되었어요.” 영화 “트루 스크릿”에서 연하남과 사랑놀이에 빠졌던 50대 여교수의 말이다. 누구에게나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이 숨어 있다. 순백의 목련 꽃잎들이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에 섞이려고 그대로 몸을 던지는 행위는 계획한 것이 아닌 본능이었다. 지나가는 구두발에 밟히고 길바닥에 들러붙었다. 그것은 조용하게 이루어지는 의식 같은 거였다. 슬로우모션으로 눈앞에 펼쳐졌다. 조금도 비참하지 않았고 오히려 경건했다. 목련 꽃잎들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는 열매들이 달릴 것이고 딱따구리, 직박구리의 좋은 먹잇감이 될 것이다. 꽃은 떨어지고 썩어서 사라져 완성이 되어가는 것이다. 실패 없는 삶은 완전한 삶이 아니다.
 
 30년만에 만난 친구는 꽃을 좋아하면 기가 빠진다고 했다. 자기는 꽃 화분은 키우지 않고 언제나 푸른 나무 화분만 키운다고 했다. 그는 확실히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주름 하나 없이 반질반질했고 그 옛날의 다닥다닥했던 주근깨도 사라져 말끔했다. 너 얼굴이 그게 뭐니? 왜 이리 팍 늙었어? 안쓰러워하는 친구 앞에서 나도 할 말을 잃었다. 그녀처럼 1일1팩을 할 만큼 정성이 없었고 주기적으로 미용실에 가서 잡티를 제거할 만큼 경제적이지도 못하고 매일 수영과 에어로빅댄스로 운동을 하고 자원봉사로 애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결혼으로 모든 것을 갖추고 해마다 외국여행을 하는 그녀가 여태 일을 쉬어 본 적 없는 나의 삶을 이해하는데 머리 아프게 고민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가 연애 한번 안 해 보고 이리 튕기고 저리 튕기며 남자를 고르는 30대에 나는 벌써 얼굴에 검은 딱지가 앉기 시작했고 농사일, 식당일에 거칠어진 손등에도 검버섯이 나기 시작했다는 걸 굳이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꽃이 좋은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월세 집 좁은 마당에는 작약, 무스카리, 백합, 꽃무릇, 로즈마리, 라벤더, 복수초, 하이신스, 마농, 돌단풍, 튤립, 수선화, 왕장미, 미니장미, 할미꽃, 송엽국, 카라, 사랑초, 철쭉이 줄을 지어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일년 사계절을 쉬지 않고 나에게 아름다운 꽃의 완성을 선물한다. 출근할 때는 일찍 나가 태화강변을 돌며 꽃들을 만나고 퇴근할 때는 늦어 들어오며 꽃들을 사진 찍어 모멘트에 올린다. 감탄하는 이들도 있고 언짢아 하는 이들도 있다. 왜 그딴 거 자꾸 올리냐? 봐 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관심이 많다. 누구에게는 하찮겠지만 나는 이를 통해 마음이 쉴 수 있는 여유를 찾고 보람을 느낀다.

꽃은 몸으로 이 세상과 소통한다. 꽃은 나의 시로 쓰이고 수필로 쓰이고 소설로 쓰인다. 47살에 시작한 글쓰기다. 다들 늦었다고 하지만 나는 시작을 했기에 다행이라 생각한다. 나의 몸도 쓰인다. 어쩌다 쉬는 날에는 배낭을 메고 꽃을 찾아 길을 떠나기도 한다. 울산에는 산이 많아 나의 발길을 재촉했다. 휴가를 내고 백두산, 한라산에도 갔었고 마니산에도 갔었다. 

꽃은 나의 스승이고 친구이고 애인이다. 나는 꽃을 사랑한다. 내가 가는 길에는 언제나 꽃들이 있었다. 봄에는 매화꽃, 진달래꽃, 산수유, 벚꽃, 사과꽃, 모과꽃, 복사꽃, 조팝나무를 찾아 다니고 유채꽃, 광대꽃, 주름꽃, 자운영, 골담초, 물수레국화 등 들꽃들을 찾았다. 여름에는 능소화, 무궁화, 참나리, 붓꽃, 연꽃, 메꽃, 찔레꽃, 개망초, 엉겅퀴, 접시꽃, 달맞이꽃, 도라지꽃, 해바라기꽃, 배롱나무, 탱자나무, 명자나무, 병꽃나무, 조선금대화, 덩굴장미를 찾아 즐겼다. 여름의 계절은 하나의 꽃밭이었다. 이름 모를 꽃들이 많았고 그 이름들을 글로 다 쓸 수 없을 만큼 넘쳤다. 보고 보아도 꽃은 질리지가 않았고 볼 때마다 감동을 선사했다. 가을에는 대국, 산국, 쑥부쟁이, 감국, 뇌향국화, 구절초, 개미취, 벌개미취, 금불초, 해국, 갯국화들이 내 마음을 훔쳤다. 그 짬에도 다알리아, 각시취, 미역취, 방아꽃, 바늘꽃, 분꽃, 댕강나무, 코스모스들도 나를 불렀다. 물론 갈대꽃, 억새 꽃도 안개처럼 나를 감쌌다. 겨울에는 동백이 피었다. 내가 살고 있는 울산에는 일년내내 동백꽃이 피고 지고를 쉬지 않았다. 나의 일탈은 동백꽃길을 걷는 거였다. 가슴을 활짝 열고 반기는 동백, 노란 꽃술의 간절한 떨림에 심장이 떨렸다. 마음이 하나로 되는 순간 퍽! 동백꽃이 추락했다. 쿵! 심장이 떨어져 나갔다. 송이채로 떨어지는 모습 앞에서 우울하고 슬퍼하는 게 아니었다. 동백꽃은 시들어 무너지는 게 아니었다. 땅에 떨어져도 붉어 있었고 진 붉은 색은 토양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동백꽃길은 신생으로 나아가는 내 삶의 흐름이었다. 
 
 나의 앞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꽃 길이 펼쳐져 있다. 나는 꽃을 찾아 가는 길을 멈추지 않는다. 그 곳에서 나는 나를 다시 만난다. 불완전한 내 안의 모든 언어들을 다 끄집어내어 활짝 피우고 어느 손에 허리가 꺾이고 어느 구두발에 짓뭉개 지더라도 추하고 냄새나는 검은 속살을 굳이 숨기고 싶지는 않다. 풍상 고초는 꽃이 되는 과정이었고 늙어가는 건 소멸이 아니라 꽃으로 완성되어가는 길인 것이다. 천박한 모습이라도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것은 그 것이 꽃이 되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추구하는 삶이 어디에 내 놓지 못할 만큼 형편없거나 그 노력이 부질없는 짓거리라도 나 다운 나로 완성되어 아름다운 죽음으로 우주에 가 닿는 위대함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나고 살아오면서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용기 있는 선택이지만 적극적으로 나만의 색깔로 나만의 향기로 나만의 꽃이 되는 것은 멋진 일이다.
 지금 당신의 앞에 꽃 길이 펼쳐져 있다. 당신은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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