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수 시인

허경수 약력 : 1952년 2월 3일 길림성 화룡시에서 출생,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회원, 1972년 5월 1일에 시 ‘림해의 아침에’를 연변일보에 발표, 선후하여 소설 여러편 발표, ‘내 이야기’ 5편이 한국 KBS 방송국 우수상 수상
허경수 약력 : 1952년 2월 3일 길림성 화룡시에서 출생,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회원, 1972년 5월 1일에 시 ‘림해의 아침에’를 연변일보에 발표, 선후하여 소설 여러편 발표, ‘내 이야기’ 5편이 한국 KBS 방송국 우수상 수상

잎새 없는 나무


잎새 다 떨어져 뼈만 앙상한 나무
스산한 바람속에서 떨고 있네
자식들을 멀리 떠나 보내고
동구밖에 서서
이마에 손을 얹고 멀리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인가

이제 새 봄이 오면
또 수많은 자식들이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재롱을  부리리니

찬 바람속에서 "어머니"는 후더운 바람을 기다리누나

 

겨울 밤 비


천국에서 호강살이 하던
옥동녀 누나
세상 구경하려고 준비 할 때
용감한 동생
밤 순찰을 하네

먼지 투성이 세상을 대청소하려고
분신쇄골 되면서 웃으며 낙하 한다

백설공주의 광림을 위해
명주필을 늘여주는 충신
몸이 찢겨 가루되며
암흑을 무너뜨린다

 

고무장갑


고무장갑을 사용할 때마다 
어머니 생각 납니다.
겨울에도 강변에서 맨손으로 빨래질 하시고
언 손을 호호 불며
집에 돌아오시여
소변으로 손을 씻으시고
불에 쪼이시고
담담한 미소를 지으시던 모습이
눈물 어린 내 시야에 비껴듭니다.

그 시절
고무장갑을 만져도 못 보신 어머니
크림을 사 본적 없으신 어머니

삼복염천에도
고무장갑을 사용하는 나
어머니를 회상하면
얼굴이 모닥불 벼락을 맞은듯

지금 이 불효자가 고무장갑을 하늘 높히 쌓아놓아도
구천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고무장갑을 사용하면서
하냥 어머니에게
죄책감이 듭니다.
왜 그 때엔 우리집에
낡은 고무장갑 한 컬레도 없었던지..  


김 치


타향에서 김장을 도와 주느라니
어릴적에 어머니를 도와 김치 대야를 나르던 정경 뚜렷해

고무장갑을 만져도 못 보신 어머니
손에 콩기름을 바르시고 배추에 양념을 버무리셨다.

김장을 다 하시고 배추김치 한 오리를 나의 입에  살짝 넣어주시며 
보름달처럼 환히 웃으시며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시던 모습
눈앞에 선히 떠 오른다

김치그릇을 들고 분주히 오가며
김치를 맛 보며
터뜨리던 아줌마들의 즐거운 웃음 소리 귀전에 울리는 듯


느낌의 신비


스산한 쓰레기장에서
메주덩이 같은 땀을  흘리며 일 하다가
아픈 허리를 쭈욱 펴면
거미줄이 눈앞에서 춤 춘다.
나는 거미의 교묘한 솜씨를 감상하며
곤충학가의  오묘한 경지에 소르르...
불현듯 때 아닌 칠색무지개  원무하는 듯

마당을 청소 할 때
벼이삭 설레이는 소리를 듣느라니 영감이 얼핏 떠오른다.
온갖 풀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교향곡마냥 나를 끌고 미지의 세계로 줄달음친다.

병실을 소독할 때
산소 호흡기를 코에 꽂고 숨 쉬는 환자들을 보면
숨 쉬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내 살결을 꼬집어 본다.


해빛이 오는 길에


마지막 별이 반짝반짝 추파를 보낸다.
하얀 구름이 애교를 부리며 허리에 칭칭 감겨든다.
뭇새들이 요염하게 춤을 추며 앞길을 막는다.
먼지들이 발광하며 매달린다.
비가 집요하게 사랑을 구걸한다.
눈보라가 매정하게 앞을 막는다.
온갖 기화요초가 허리를 배배 꼬며  자기들만 애무해달하고 극성을 부린다.

"혈로"를 무찌르고 어지러운 땅에 떨어져 키스를  골고루 해줄 때
개미들이 즐겁게 춤을 추건만
"잘 난 사람"들은 강물을 건너는 강아지마냥 턱으로 남산을 겨누며 기름진 배를 슬슬 만진다.


여자의 향기


하늘색  원피스자락에  부드러운  바람이  갈마들고
수양버들  머리채에  호랑나비 하늘하늘
굽 높은  구두소리 딸깍 딸깍

앞에서
웬 꼬부랑 할머니 묵직한 가방을 메고 간신히 걸어가는데
미녀는  꿀벌떼 나비떼와 열련을 하며
곁눈도  팔지 않네.

이때
쓰레기통을 뒤지던
넝마 주이꾼  절름발이 아줌마
절룩거리며  달려가서
할머니의  가방을  메고
절룩거리며 따라가누나!


옛고향의 뽐프터

 

나의  옛고향엔
온 마을에 뽐프 한 대 있었다.
겨울이면 아줌마들 코신에 몸뻬를 입고 발을 동동 구르며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겨울에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났으면...."
"영 죽기는 싫은매요."
주고 받는 롱조에 왁짜그르르...
터지는 웃음 소리
"어제 밤에 쌍가매 에미는 쌍디(쌍둥이)를 낳았다오."
"그 주정뱅이 나그내(남편)재간도 있소.
희소식에 또 터지는 요란한 웃음소리...

찧고 받고 하던 아줌마들 찰랑찰랑 넘치는 물동이를 이고 발걸음도 가벼웁다.

지금은 집집마다 수도물 콸콸 흐르건만
웃음 소리 드물고
편안하다고 춤 추는 아줌마 하나도 없네.

 

책의 향기


밤과 낮이 따로 없이
어느 때나  펼치면 향기 그윽하다
계절이 따로 없이
하냥 향기 풍긴다

나 그 향기에  취해
나비 되고 꿀벌 된다

아니, 갈매기 되어
바다를 안고
비둘기 되어
하늘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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