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경애

한경애 프로필: 목단강시조선족소학교 교원,  흑룡간성조선족창작위원회회원, 중국소수민족작가협회회원,수필, 단편소설, 동화, 시,동시 등200여편(수) 발표,전국조선족교원수필응모대상,전국녀성수필백일장 대상 등 수상.
한경애 프로필: 목단강시조선족소학교 교원, 흑룡간성조선족창작위원회회원, 중국소수민족작가협회회원,수필, 단편소설, 동화, 시,동시 등200여편(수) 발표,전국조선족교원수필응모대상,전국녀성수필백일장 대상 등 수상.

수필

그때 그 시절 그 사람

 

살면서 일어난 대부분의 일들은 흘러가는 구름처럼 기억 속에서 가뭇없이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그중에는 흐른 세월의 길이와 반비례 되게 더욱 새록새록 해지는 기억들도 있음을 살면서 터득하게 되었다.
 
내가 열 살쯤 되였을 때의 어느 여름날의  그 일은 거의 반세기를 지난 지금까지 어제 일처럼 너무나 생생하다. 날이 갈수록 더욱 새록새록 하다고 해야 마땅할 것 같다.

“삥굴-, 삥굴-, 삥굴…”

삼복 철 여름날 점심때 무렵이면 앞마을의 곱사등이 얼음과자 장수가 어김없이 나타났다. 자전거 뒤 안장에 솜옷을 입힌 나무상자에 우유 빛 나는 얼음과자를 싣고 와서는 온 마을의 골목을 빠짐없이 누벼가며 얼음과자를 팔았다. 나는 그 “삥굴-”소리가 나면 더럭 겁부터 났다. 매번 얼음과자 장수가 나타나면 엄마가 또 떼쟁이 막내 때문에  곤혹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여동생한테 시달림을 받을 일을 생각하면 얼음과자 장수의 입을 틀어막거나 동생의 귀에 솜을 틀어막고 싶었다. 그런데 얼음과자 장수의 목소리는 어찌나 높은지 마이크를 대고 소리치듯 온 동네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귀가 벌쭉해진 여동생이 또 떼를 썼다.
 “엄마, 삥 굴 사줘! 엄마- 삥굴-”

집에서 돈 1전 한 푼 찾아보기 어려운데 엄마가 무슨 수로 5전짜리 얼음과자를 사줄 수 있으랴만 여동생의 억지떼는 한 급 상승하여 귀청을 찢는 울음으로 번졌다.
 “엄마, 삥굴 사줘, 아-”
 “엄마 돈이 없는데 손가락 빼서 사주겠니?”
 “엉-엉- 돈 없으면 종이로 사줘! 삥굴 사줘-”
 “이 가시나 왜 이렇게 말 안 들어? 엄마가 돈이 없다는데…”
 얼려도 닥쳐도 안 되자 엄마는 빗자루를 들고 동생 엉덩이를 한 대 때렸다. 그러자 동생이 울면서 맨발 바람으로 뛰쳐나가서는 마당에서 데굴데굴 구른다.
 “아-아- 삥 굴 사줘- 삘걸삘굴 사줘-”

철이 없는 동생은 막무가내로 계속 마당에서 마구 뒹굴었다. 화가 난 엄마는 빗자루를 들고 쫓아 나와 동생의 엉덩이를 때렸다. 내가 달려 나와 엄마의 빗자루를 빼앗았다. 떼를 쓰는 동생이 한편으로는 얄밉고 한편으로는 불쌍했다.
 “엄마, 그만 때리오!”
 이때 우리 집 옆을 지나던 박 씨 할머니가 마당에 들어왔다. “삥굴,삥굴…”하면서 땅바닥에서 뒹구는 동생을 보더니 고무줄 바지춤 속옷 깊숙한 호주머니에서 5전짜리 동전 한 잎을 꺼내셨다.
 “막내야, 빨리 일어나! 오늘은 할머니가 하나 사주마!”
 그 말에 바닥에서 뒹굴던 동생이 발딱 일어나 제꺽 돈을 받아 쥐더니 맨발 바람으로 소리 나는 쪽으로 바람처럼 달려갔다.
 
 얼음과자를 먹기 아까워서 살살 빨아먹으며 걸어오는 알록달록한 동생의 얼굴에는 언제 울었나 싶게 달콤한 웃음이 찰랑거렸다. 나를 보고 배시시 웃으며 “언니, 한 입만 먹어!” 한다. 나는 동생이 아까워 빨아먹는 얼음과자를 한입 작게 떼여 먹었다. 혀끝이 쨍하게 시원하고 달곰한 그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떼가 사촌보다 낫다는 속담이 맞아떨어진 날이었다. 동생이 먹는 동안 나는 저도 모르게 달걀 군침만 꼴딱꼴딱 삼켰다.
 
박씨 할머니가 바지춤에서 돈을 꺼내던 모습이며 커다란 박 바가지에 능금을 한 바가지 가득 따다 주던 일이며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웃집 박씨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도 사십 년이 넘지었만, 세월의 흔적을 파문처럼 새겼던 인자한 그 모습이 보는 것처럼 선하다.
그때 그 시절 “5전” 추억은 오늘도 내 인생에서 가장 따듯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내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준다. 그 때 그 시절 그 할머니와의 추억은 죽으면 잊혀 질까?

2020.2.26

 

 

백목련      

 

파란 하늘 무대에서
아슬한 줄타기 하듯
가는 목 빼들고 발돋움하는 백설공주야
누구를 애타게 기다리느냐
 
네 모습에 넋 잃고
먼 길 날아온 벌들과
언덕 너머 쉬었다 온 호랑나비
불청객 저들끼리 자리 다툼 분주한데
넌 본숭만숭 무관심이네
 
세상이 고이 잠든 깊은 밤
별들과 뜨겁게 입 맞추며
활짝 열리는 가슴으로
천년의 사랑 만년의 정으로
아침이 오면 주렁주렁 달리는
진주이슬로 영롱하겠다

 


나무의 정신

         

마음이 부산할 때마다
산이 나를 부른다
 
개암나무, 싸리나무, 봇나무, 굴참나무.....
키 작고 날씬한 관목들
키 크고 웅장한 교목들
키 크다고 건방 떨지 않고
키 작다고 주눅 들지 않는
언제봐도 오손도손 정다운 나무네 가족들
 
산들바람 불어오면
우우, 어깨 겯고 노래 부르고
세찬 바람 휘몰아치면
형은 몸으로 바람 막아주고
동생은 형이 넘어질세라 밑둥을 받쳐준다
사나운 홍수가  들이닥치면
깊숙이 내린 뿌리들은
강강수월래 하듯 손에 손잡고
젖먹던 힘 다해 흙 웅켜잡고 버틴다
 
나무네 동네에는
옴니암니 아웅다웅 다투는 일 없고*
손톱 세워 갉히는 일 없고
동족상잔의 피비린 전쟁도
국경을 긋고 철조망 세우는 일도 없다
 
겉으로는 덤덤해보이지만
웅심 깊은 배려로
상생의 푸른 물결 출렁이며
변덕도 조화도 없이
나무의 정신 이어갈 뿐이다
 
산속에 서면
나도 한 그루의 봇나무가 된다
가난한 내 마음도
나무처럼 싱그러워진다

 

엄마의 고추타래

 

처마밑에
고드름이 매달리듯
마디굵은 손길따라
타래되어
빨갛게 타오른다

아이고, 내 허리야로
푸념 널어놓으시는 엄마
밤이 되면 달님과 수다 떨고
낮이 되면 지나가는 바람 잡고
매운 이야기로 잠재웠다

봄에는 흙의 몸 빌려 싹 틔우고
여름엔 천둥과 소나기의 질책 달게 받고
가을에는 황금 햇볕의 세례로
붉게 타오른 심장

처마밑에 주렁주렁 매달린
고추타래 저들끼리 약속인양
주렴 되어 말라간다


길 고양이의 겨울

 

한때는 “홍매엄마”의 보배둥이로
세상에 부럼없이 호강했었다

찬바람이 창문을 허비는 밤
참새의 울음마저 잠들고
바늘 되여 찌르는 강추위로
긴긴 밤  뜬 눈으로 지새며
나락으로 추락하는 가슴 웅켜잡고
야옹- 야옹- 구슬피 울었다

이마전을 스치던 향긋한 입김도
바리바리 챙겨주던 값비싼 미식도
포근하고 안온했던 보금자리도
모두 알뜰히 구겨진 과거뿐인데
들춰봐야 가슴에 구멍만 숭숭해진다

뉘네 버린 낡은 쏘파에
웅크리고 앉으니
정오의 따슨 해볕에
밀린 잠이 와르르 쏟아졌다

추위가 사나와질수록 간절해지는 기다림
언제나 밤일수 없듯이
앙상한 나무가지에
복사꽃 팡팡 터뜨리는
따슨 봄은 오고야 말겠지

호강했던 추억은
겨울바람에 알뜰히 헹구고
얼어드는 가슴에 씨앗 한톨 묻는다
이젠 온전히 길고양이로 살아가는거야

어금이 지그시 깨물고
사뿐사뿐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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