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숙 시인

김화숙 약력: 중국 심양 출생. 길림사범대학 철학과 졸업. 중국 길림조중 교원 역임. 월간 『문학세계』 등단. 대한민국통일예술제 해외작가상(2015). 제12회 세계문인협회 세계문학상 해외문학상 시 부문 대상. 동포문학 해외작가상 시 부문 최우수상. 제3회 『도라지』 해외조선족문학상. 연변작가협회 회원. (사)세계문인협회 일본지회장. (사)재일본조선족작가협회 부회장. 시집 『아름다운 착각』 『빛이 오는 방식』 『날개는 꿈이 아니다』
김화숙 약력: 중국 심양 출생. 길림사범대학 철학과 졸업. 중국 길림조중 교원 역임. 월간 『문학세계』 등단. 대한민국통일예술제 해외작가상(2015). 제12회 세계문인협회 세계문학상 해외문학상 시 부문 대상. 동포문학 해외작가상 시 부문 최우수상. 제3회 『도라지』 해외조선족문학상. 연변작가협회 회원. (사)세계문인협회 일본지회장. (사)재일본조선족작가협회 부회장. 시집 『아름다운 착각』 『빛이 오는 방식』 『날개는 꿈이 아니다』

 

3

 

아직 잎을 갖지 못한 가지들이

새벽 안개비속에서

땀처럼 눈물처럼

은구슬 촘촘히 글썽인다

성큼 그 나무속으로

걸어 들어가니

삶의 회의 걱정 불안은

실핏줄 같은 가지 끝으로 불려가

조롱조롱 물방울로 맺히고

나무의 맥박소리 듣고있다가

푸르른 수액을

눈알이 파랗게 되도록 마셨고

새잎 고개 드는 소리가

온 우주를 깨우는 것을 보았다.

 

 

슬픈 봄

 

언 땅 뚫고

튤립 새싹 밀어올리고

깡마른 가지 끝에

산수유 터질듯 달려있고

봄아

너는 이미 와있는데

사람들은 거위처럼 긴 목을 하고도

너를 보지 못하는구나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쓴 마스크는

입과 코만이 아닌

눈과 귀와 손과 발을 죄다 가두었나봐

사람들 마음은

언 땅과 마른 가지를 넘어

철근콘크리트가 되었구나

봄아 미안해

보슬비 마른땅에 스미듯

나에게 스며들어와

나를 장악해줘

튤립 되어 잎 티우고

산수유 되어 꽃 피워

! 너를 알릴게.

 

 

차 한 잔 어때요

 

참새 한 마리 날아올라도

쨍하고 깨져 내릴 것 같은 하늘

깡마른 몸으로

통성기도 자세로 서서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나무

바람도 은밀하게 오가는 아침

여행 온 선배와 여행간 후배가 올린

단톡방 글에서

여행의 주도권을

딸과 남편한테 맡긴 그들을 보며

나는 나의 주도권을 선뜻

누구에게 넘긴 적이 없음을 알았다

부초와 같은 삶의 흐름에서

순간의 쉼을 외면하고

외줄 타듯 살아온 나에게

따뜻한 녹차 한 잔 하자고

정중히 권하는 새해 아침.

 

 

지리산 시인

 

산을 탈줄 모르는 나는

지리산 시인의 시집을 읽고

내 안에 지리산을 들여앉혔다

세상으로 향한 눈을 감고

고요히 앉아있으면

내 안으로의 눈이 열린다

그곳에서는 우윳빛 물안개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이름 모를 새들의 인사가

아침을 불러오고

풀들이 몸을 뉘어 만들어진

산길을 붙잡고 올라가면

띄엄띄엄 묘지들이 보이고

계곡물 흐르는 소리도

간간히 들려오고

산신령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길

걷는 나는 보이지 않고

안개가 된 사람 하나

숲속을 헤집고 다니다가

덜컥 맑은 햇살을 만나면

증발하듯 사라진다

운 좋아 지리산 시인을 만나면

산신령을 만난 듯

소주 한잔 올리고 싶다.

 

발에게 키스해

 

추한 것을 먹기도 하는

입이 아니고

더러운 것을 만지기도 하는

손도 아닌데

사람의 몸에서

발은 더러운 곳으로 치부된다

뽀송하게 잘 말린

양말에 싸여

질긴 가죽신으로

보호받고 살지만

발 담근 물로

얼굴 씻는 일 없고

입이나 손처럼

키스를 받은 적 없다

이제라도 나를

지탱하고 떠받혀주고 있는

발에다 진하게

키스를 해줄 일이다.

 

귀가 멀어도 좋다

 

세상은 불안에 떨고 있지만

자연은 봄의 박동으로 우렁차다

봄은 오로지

생명과 젊음과 희망을 끌어올려

부지런히 잎 달고

삶의 감동과 환희를 선물한다

불편부당한 자연처럼

봄의 정신으로 산다면

세상 두려울 것 없다

바야흐로 그 봄이 오고 있다

나태와 무감각으로

장작처럼 메말라가던

나를 통째로 들어올려

봄의 품으로 뛰어든다

내 몸 곳곳

잎 티우는 소리에

한 시절 귀가 멀어도 좋다.

 

나목의 봄맞이

 

나의 피가 수액보다 뜨겁고

나의 호흡이

나무의 심장보다 빨라

나는 쉽게 흥분하고 상처 받는다

벗은 몸뚱이로

얼음 같은 하늘을 떠받치고 사는

겨우내 고요한 나무에게서

인내와 기다림을 배운다

서둘러 봄맞이 간다고

호들갑 떨지 않고 나목처럼

오늘을 온몸으로 살며

봄이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못된 손

 

해가 바뀌어도

나는 늘 그대로였다

커피 마시고 일하고

밥 먹고 자고...

창밖의 나무들이

자신의 옷을 입고 벗는 동안

나는 입은 옷 무게가

계절만큼 바뀌었을 뿐

늘 그대로였다

어느 날 새치 돋아나듯

나의 늙음은

내 안으로부터 밖으로의

확장이고 도발이었다

잠깐 졸고 있는 동안

어느새 내 안에 들어와

늙음을 조작하는

못된 손이 있었다.

 

콩나물 키우듯

 

어릴 적 겨울이면

엄마는 콩나물을 키웠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나는 짬만 나면

콩나물에 물을 주었습니다

물을 자주 주지 않으면

콩나물은 잔뿌리만 가득해

엉키며 자리다툼을 벌였습니다

 

어른이 되면서 나는

콩나물에 물을 주듯

틈만 나면 책을 읽습니다

읽은 내용은 기억에 남지 않고

콩나물 물 빠지듯 달아나지만

잔뿌리 같이 기생하던

번뇌며 불안도

커지거나 엉키지 못하고

함께 씻겨내려 갑니다.

 

생각의 무게

 

생각의 무게가 있다면

딸은 내가 보내는

생각의 무게에 눌려서

나보다 먼저

등이 휘어졌을 것이다

산책을 해도 식당을 가도

보이지 않는 딸과

늘 동행을 한다

이대로 칭칭 동여매

먼 내생에도

함께 다녔으면 좋겠다

출처  『도라지』 2020년 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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