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식 칼럼니스트
권기식 칼럼니스트

세상에 영원한 권력은 없다. 국제관계도 마찬가지다. 국가도 인간 처럼 생로병사의 순환구조를 가지고 있고, 흥망성쇠의 변천과정을 거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 처럼 대제국을 이루었던 로마제국이나,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었던 대영제국의 흥망성쇠가 그런 이치를 보여준다.

국가든 개인이든 극성지패(極盛之敗)의 길에 들어서면 이상한 조짐이 보이는 법이다. 네로 황제와 같은 폭군의 등장과 사회적 통합의 붕괴 등이 그런 것이다.

요즘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미국 패권의 시대가 막을 내린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해괴한 일들이 벌어진다.

2020 대통령 선거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승리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이를 인정하지 않아 당선 확정이 지연되고 사회적 혼란과 분열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9일 켄 팩스턴 텍사스주 검찰총장이 연방법원에 대선무효 소송을 제기했고, 미주리주 등 17개주가 지지를 선언했다. 자칭 민주주의 최고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 후진국에서나 볼 법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포와 총은 없지만 '제 2의 남북전쟁'과 같은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백악관에서 열린 '백신 최고회의'에서 미국인들이 백신을 접종할 우선권을 갖도록 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국제 방역공조를 외면하더니 백신도 미국인이 먼저 맞아야 한다는 논리인 것이다. 세계의 최고 지도국가라면 자국민 우선 접종 정책을 발표하면서 가난하고 어려운 저개발국에 대한 백신 공급 방안도 함께 발표했어야 했다. '나 부터 살고 보자'는 행태에 국제사회의 시선이 싸늘하다.

세계 최고의 도시로 알려진 미국 뉴욕 한복판에서 쥐떼가 출몰한다는 보도가 전해졌다. 뉴욕포스트(NYP)에 따르면 맨하튼 중심가의 한 유명 멕시코 식당에서 쥐떼가 출몰해 음식을 갉아먹고 직원들을 무는 등 공포스러운 상황이 계속돼 식당이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후진국 식당에서도 보기 힘든 일이 뉴욕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있다. 뉴욕에서는 수개월전 코로나19 대확산 국면에서 사망자의 시신을 제때 처리하지 못해 냉장트럭에 보관하는 일도 벌어졌었다.

한때 우리는 미국을 선망하고 신봉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고, '한미동맹'을 맹신했다. 그러나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적어도 '존경받는 미국'의 모습은 아니었다. 국제 공조와 다자우의를 외면한 '극단적 패권주의'로 무장한 미국은 지금 자국 이기주의의 민낯을 보이고 있다. 한미 방위비 협상에서 보여준 미국의 모습은 '착한 아저씨 엉클 샘(Uncle Sam)'이 아니었다. 이제 미국은 세계인의 신뢰를 잃었다.

지금의 국제질서를 'G-제로' 시대라고 한다. 특정 국가의 패권이 쇠퇴하고 혼란스러운 '무극성(無極性ㆍnon-polar)'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G1이 없는 국제 질서는 불안정하고 혼란스럽다. 가난과 질병, 환경 등 전 지구적인 이슈에 대한 국제적 협력과 연대가 어렵게 됐다. 그리고 그 피해는 저개발국 시민들이 가장 먼저 받고 있다. 마스크도, 백신도, 치료제도 없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노출된 저개발국 시민들에게 '엉클 샘'은 보이지 않는다.

조 바이든이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된다고 하더라도 'G-제로'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미국이 겪고 있는 경제난과 국론분열은 미국의 대외정책을 '미국 우선주의'로 이끌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 패권시대의 종언'을 말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에 대한 신화적 믿음을 버려야 한다. '굿바이 아메리카'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한겨레신문 기자와 청와대 정치국장을 거쳐 영남매일신문 회장과 2018평창동계올림픽 민간단체협의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양대 교수와 일본 외무성 초청 시즈오카현립대 초빙교수, 중국 외교부 초청 칭화대 방문학자 등으로 활동했다.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