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권기식 칼럼니스트
권기식 칼럼니스트

등산은 올라갈 때 보다 내려올 때가 더 위험한 법이다. 권력의 길도 그렇다. 집권 전반기 보다 후반기가 더 힘들고 위험하다.

정치 전문가들은 국정 안정을 위한 대통령 지지율의 마지노선을 40%로 잡는다. 임기 후반 대통령 지지율이 40% 아래로 떨어지면 공직자들과 권력기관들이 눈치를 보고 몸을 사리게 된다. 한마디로 영(令)이 서지 않는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30% 중반대로 하락해 집권후 최저치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로 지난 7~11일 닷새간 전국 18세 이상 253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긍정평가)은 전주 보다 0.7%포인트 하락한 36.7%로 나타났다.  부정평가는 0.8%포인트 올라 58.2%를 기록했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들을 보면 중도층의 이반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 개혁의 우군이었던 중도층의 이반은 무엇 때문일까?

대다수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부동산 문제와 추미애ㆍ윤석열 갈등, 코로나19 사태 악화 등을 핵심 원인으로 꼽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원인들 보다 위험한 것은 권력 시스템의 오작동과 '팬덤 정치'에 대한 의존이다.

부동산과 코로나19 등 각종 국정 현안에 대한 당ㆍ정ㆍ청의 대응이 부실하고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인식이 중도층 민심을 흔드는 것이다. 정기국회 운영과정에서 보여준 민주당 지도부의 리더십은 능력 있는 거대여당의 모습이 아니었다. 개혁을 속도감있게 처리하는 모습도 보여주지 못했고, 정부를 이끌어 가는 책임 있는 여당의 모습도 찾아 보기 힘들었다. 민주당은 정부의 지원부대와 같은 역할에 머물렀다. 부동산과 코로나19에 대한 정부의 잘못을 질타하고,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든든한 여당'을 기대했던 중도층이 실망하고 돌아설 수 밖에 없다.

국무총리와 장관 등 정부는 청와대의 눈치만 보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 폭등세가 멈추지 않는 데도 마땅한 대응책을 내지 못하고, 코로나19 방역에서도 '경제'와 '방역'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며 우왕좌왕하다 사태를 악화시켜 온 국민이 힘들게 이뤄낸 'K 방역'의 성과가 물거품이 될 위기를 자초했다.

이런 와중에 총리실은 '코로나로 힘드실 땐 총리에게 푸세요'라는 제목의 3컷 만화를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가 여론의 강한 질타를 받았다. 이 만화에 대해 "사퇴해 주세요. 그러면 제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릴 것 같아요" "국민 비하로 읽힌다" 등의 댓글이 잇따르자, 총리실은 서둘러 만화를 삭제했다. 부동산 대책과 추미애ㆍ윤석열 갈등에서 가뜩이나 존재감이 없던 총리실이 더 초라해 보이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민주당 윤미향 의원의 부적절한 처신은 더욱 가관이다. 윤 의원은 길원옥 할머니 생일파티를 빙자한 와인파티 사진을 소셜 미디어에 올려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이런 사람을 공천해 국회의원을 만들어준 민주당에 대한 실망이 중도층의 이탈로 연결되는 것이다.

여론조사의 흐름을 보면 대통령과 민주당을 떠난 중도층이 당장 야당으로 가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투쟁력이 역대급으로 약한 '생활형 야당'이자 '도련님 야당'인 국민의힘으로 가기는 미덥지 않은 것이다. 그나마 여권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심은 지금 청와대와 대통령을 보고 있다. 무기력하고 무능한 정부와 여당에 대한 기대는 접었지만 대통령과 청와대는 무엇인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아직 갖고 있다. 그래서 이탈한 중도층이 야당으로 가지 않고 중립지대에서 머물고 있는 것이다.

이제 '대통령의 시간'이 다가왔다. 부동산 폭등과 코로나19 사태, 추미애ㆍ윤석열 갈등, 침체된 내수경제, 동면기의 남북관계 등 각종 국정현안에 대해 대통령과 청와대가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국민은 또다시 '실패한 대통령'을 보고 싶지 않다. '대통령의 실패'가 '국민의 실패'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한겨레신문 기자와 청와대 정치국장을 거쳐 영남매일신문 회장과 2018평창동계올림픽 민간단체협의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양대와 일본 외무성 초청 시즈오카현립대 초빙교수, 중국 외교부 초청 칭화대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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