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윤석열 징계 드라마가 1막을 내렸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임무를 완수한 여전사 처럼 전격적으로 사의표명을 했으나, 사퇴설이 오래전부터 나돌았던 터라 예견된 수순 처럼 보여 극적인 효과는 없었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이러려고 코로나19 와중에 그 난리를 쳤나?' 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는 1박2일에 걸친 마라톤회의 끝에 지난 16일 새벽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정직 2개월'의 징계를 의결했다. 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추미애 장관은 기다렸다는 듯 이날 오후 3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권력기관 개혁 3법' 관련 관계부처 장관 합동브리핑에서 '검찰개혁 완수 선언'을 한 뒤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윤석열 총장 징계보고를 하고 사의를 표명했다. '추다르크'라는 별명 처럼 검찰개혁의 성전(聖戰)에서 승리한 장수의 이미지를 만들려고 한 듯 하다. 아울러 윤석열 총장에게 동반사퇴의 압박 메시지를 보내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추 장관의 행보는 절묘하게 기획된 것 처럼 보이고, 윤 총장에 대한 징계는 '신의 한수'인 듯 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과연 그럴까? 추 장관의 기대와 달리 사태의 진전과정과 여론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듯 하다. 그는 여권의 핵심 지지층에게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중도층과 보수층으로부터는 '법치주의 파괴자'라는 비판을 받게 됐다.

징계위는 수많은 논란 속에서 마치 '군사작전'하듯 심의를 강행한 끝에 재판부 분석 문건의 작성 및 배포 등 4가지 징계 청구사유를 인정해 '정직 2개월'의 징계를 의결했다. 당초 예상은 정직 3개월 또는 면직이 유력했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징계 수위가 예상보다 낮은 것으로 나왔다.

당장 여권 핵심 지지층에서는 강한 반발과 비판이 나왔다. 팟캐스트 '나꼼수'를 진행했던 김용민씨는 페이스북에서 "장고 끝에 악수였다. 징계위원 명단이 드러나고, 회의가 길어지면서 윤석열의 활동공간을 넓혀준 꼴이 됐다. 노골적인 쿠테타를 하고도 정직 2개월이라니 이게 나라냐? 분하고 열받는다"라며 반발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도 "예측 중에 가장 낮은 수위의 징계"라며 비판했다. 검사 출신으로 검찰 비판에 앞장서온 이연주 변호사도 "내가 징계위원에 들어갔다면 최소 면직은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추 장관이 주도한 윤석열 총장 징계에 대해 여권내에서 조차 만족스러운 반응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대통령 지지율 하락과 여론 반발을 의식해 지나치게 과도한 정무적 고려를 했다는 비판이다. "이런 어정쩡한 징계는 안하느니만 못하다" "이러려고 그 난리를 쳤냐"는 등의 비난여론이 여권과 진보진영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야권과 윤석열 총장측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김예령 국민의힘 대변인은 "오직 '윤석열 죽이기'를 위해 존재했던 역사상 최악의 법무부장관"이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총장측도 소송 등을 통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윤석열 총장 징계는 앞으로 다양한 정치적 후폭풍을 불러올 듯 하다.

우선 '정치인 윤석열의 탄생'이다. '윤석열 밀어내기' 과정이 진행되면서 '윤석열 팬덤'이 만들어지고, '검사 윤석열'은 무기력한 야당을 대체할 희망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윤석열은 이미 정치세력이 됐고, 중도층과 충청권에서 강고한 지지층을 형성하고 있다. 

당분간 한국 정치는 '윤석열 정치세력화'의 폭풍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여권은 '충청 대망론'의 부활을 경계해야 하고, 야권은 '윤석열 태풍'에 지붕이 날아갈까 긴장해야 할 처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운명'을 얘기했다. 권력의 길은 원한다고 이뤄지는 것도 아니지만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꿈도 꾸지 않았던 대통령의 길을 걸었고, 문재인 대통령도 피하고 싶었던 권력의 길을 걸었다. 그래서 운명인 것이다. 시대와 국민의 부름이 있으면 외면할 수 없는 '외통수의 길'이 정치이며, 그래서 정치가 무서운 것이다.

'맞으면서 큰다'는 말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박정희 정권의 핍박 속에서 성장했고,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도 백인정권의 탄압 속에서 정치적 위상이 커졌다.

윤석열 총장은 얼마전 측근에게 "이제는 물러서고 싶어도 물러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것은 '정치의 길을 걸어갈 수 밖에 없다'는 고백처럼 들린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윤석열 징계의 후폭풍이 어떤 결과를 몰고 올 지 알 수 없다. 적폐청산의 동지였던 윤석열 총장이 '살아 있는 권력 수사'에서 여권의 적이 되었듯, 한국 정치는 이제 예측하기 어려운 길로 들어섰다. 윤석열 변수가 한국 정치의 '태풍의 눈'이 된 것이다. '정직 2개월'이라는 윤석열 징계가 '장고 끝의 악수'가 될 지, '신의 한 수'가 될 지, 그것은 오로지 국민의 선택에 달렸다.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한겨레신문 기자와 청와대 정치국장을 거쳐 영남매일신문 회장과 2018평창동계올림픽 민간단체협의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양대와 일본 외무성 초청 시즈오카현립대 초빙교수, 중국 외교부 초청 칭화대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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