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설립은 통제되지 않는 권력이 된 검찰 특수부 시대의 종언(終焉)을 뜻한다. 검찰 개혁의 문제는 권력기관 문민통제의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고,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극적으로 부딪치는 국정의 핫이슈가 되었다.

한국 검찰 특수부의 롤 모델은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이다. 일본의 정관계 인사들에게 도쿄지검 특수부는 '저승사자'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 "도쿄지검 특수부에 걸리면 핏줄까지 벗겨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1949년 5월 미 군정 시절 일본군 간부들의 은닉 군수물자 수사를 전담한 '인타이조(隱退藏) 수사부'를 모태로 설립됐다. 1973년 1월 설립된 한국 검찰의 특수부는 도쿄지검 특수부를 모델로 만들어진 것이다. 지난해 반부패수사부로 명칭이 바뀌었으나, 국민들에게는 특수부라는 이름이 아직 익숙하다.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쿄지검 특수부는 1954년 내각 법무상의 지휘권 발동으로 후일 총리가 되는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자유당 간사장을 구속하지 못한 이른바 '조선(造船)업계 로비의혹 사건'으로 '권력의 시녀'라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이후 1976년 '록히드 사건', 1988년 '리쿠르트 사건', 1992년 '사가와 규빈 사건' 등 '3대 사건' 수사를 통해 국민의 전폭적 신뢰를 얻게 된다. 특히 '야미쇼군(闇將軍ㆍ어둠의 쇼군)'이라는 별명을 지닌 당시 일본 정계의 최고 실력자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를 구속시킨 1976년 '록히드 사건'은 도쿄지검 특수부의 영향력과 위상을 한껏 높여준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견제되지 않는 권력은 결국 국민을 위협하는 칼날이 되었다. 일부 검사들의 공명심과 특권의식은 탈법적인 수사와 인권유린 등 수많은 병폐를 불러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10년 발생한 오사카지검 특수부의 '증거물 조작사건'이다. 오사카지검 특수부 마에다 쓰네히코(前田恒彦) 검사가
전 후생성 국장의 비리혐의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증거물을 조작했고, 결국 해당 검사가 구속되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수사하면 반드시 구속시킨다'라는 공명심에 사로잡혀 불법수사 마저 서슴치 않았던 것이다.

이시지카 겐지(石塚健司)라는 산케이신문 검찰 출입기자가 지난 2009년 출간한 '도쿄지검 특수부의 붕괴-추락하는 최강의 수사기관'이라는 책은 도쿄지검 특수부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들춰내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저자는 순환보직 정책과 조직의 관료화 등 구조적인 문제와 함께 상부의 시나리오에 맞춰 조서를 꾸미는 '상의하달형 수사'와 악인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악인중심형 수사', 수사 정보를 언론에 흘려 여론을 조작하는 '극장형 수사' 등을 병폐로 꼽았다.

한국 검찰 특수부의 문제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권력자의 의중을 따르는 '청부형 표적수사'와 '별건 수사', '먼지털이식 수사', '여론 몰이식 수사' 등이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건의 본질과 관계없는 내용을 언론에 흘려 망신을 주는 방식은 '막장 수사'라는 국민적 비판을 받아야 했다.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에 대한 수사도 마찬가지이다. 검찰은 최 이사장의 비리를 잡기 위해 주변인물 100명 이상을 소환조사했다. 당시 조사를 받았던 이광문 전 광성개발 대표는 특수부 검사들이 "최열 환경재단 대표에게 돈 줬다는 한 마디만 해달라. 그러면 평생 검찰 올 일 있을 때 잘 도와주겠다"며 회유했다고 방송 인터뷰에서 증언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정책 반대에 앞장서온 최 이사장을 제거하기 위한 표적 기획수사였다는 것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국 검찰의 특수부는 태생부터 독재권력의 그림자가 어려있는 조직이다. 공안수사를 통해 민주화세력을 탄압하던 박정희 정권은 권력 기구의 통제와 반대 세력 제어를 위해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를 모델로 공직자와 기업인의 비리를 수사하기 위한 전담조직인 특수부를 설립했던 것이다. 박정희ㆍ전두환 독재정권의 권력유지를 위한 통치기구의 한 축을 형성했던 검찰 특수부의 흑역사(黑歷史)는 오늘날의 비극으로 연결되는 원죄(原罪)와 같은 것이다.

특권은 비리를 낳게 마련이다. 성추문과 뇌물수수 등 지금까지 불거진 특수부 검사들의 각종 비리는 무소불위의 권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내세운 촛불혁명을 통해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특수부 검사 출신을 검찰총장으로 앉힌 것은 이같은 내력을 모르고 저지른 '인사참화'이다. 특수부 검사들은 적폐청산의 칼날을 거두자 새로운 사냥감이 필요했던 것이다. '멸족' 수준으로 진행된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 대한 과잉수사가 이를 보여준다. 최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특수부 검사 출신을 검찰총장까지 시킨 것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이같은 맥락을 반영한 발언이다.

'통제되지 않는 권력은 괴물이 된다'는 말처럼 검찰권력도 이제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 권력의 원천인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헛된 꿈을 버려야 한다. 그 길이 검찰도 살고 나라도 사는 길이다.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한겨레신문 기자와 청와대 정치국장을 거쳐 영남매일신문 회장과 2018평창동계올림픽 민간단체협의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일본 외무성 초청 시즈오카현립대 초빙교수, 중국 칭화대 외교부 초청 칭화대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와 중국 흑룡강신문 한국자문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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