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순 소설가

류재순 약력: 중국작가협회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공무원문인협회 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 명예회장. 중단편소설집 북경민족출판사/서울'과학과 사상사' 출판 . '도라지' 해외조선족 문학상', '설원문학상'소설대상 등 수상 다수
류재순 약력: 중국작가협회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공무원문인협회 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 명예회장. 중단편소설집 북경민족출판사/서울'과학과 사상사' 출판 . '도라지' 해외조선족 문학상', '설원문학상'소설대상 등 수상 다수

어느 날, 밤 창문에 갑자기 껌처럼 달라붙은 박쥐를 발견한 것 같은 공포의 코로나 팬데믹 시간이 흐르고 있다. 원래의 일상이 다 휘발된 현실, 독소가 가득한 그놈의 박쥐를 바라보며 많은 것이 셧 다운되고 집 콕을 하는 숨 막히는 우리들의 일상ⵈ.

그날 나는 맡겨둔 짐을 가지려 친구의 집에 갔다. 친구는 나와 함께 차로 짐을 싣고 집까지 실어가 주겠다고 하였다. 다섯 살 난 친구의 손자 애가 집에서 놀고 있었다. 우리는 짐을 먼저 차에 싣고 정리가 다 된 다음에 애를 데리고 내려와 같이 차를 타고 가려 했다. 우리가 한창 차안 정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빌라 계단에서 자지러지는 애의 울음소리가 울렸다. 우리는 허둥지둥 소리 나는 계단으로 뛰어가 올려보았다. 바로 그 다섯 살짜리 손자 애가 맨발로 막 달려 내려오고 있었다. 자기만 집에 떨궈놓고 어른들이 떠나는 줄 알고 놀라며 달려 내려오는 중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놀라지 말라며 큰소리로 상황을 알려주려 할 때 그 애는 갑자기 뒤도 안 돌아보고 다시 계단을 뛰어올랐다. 뒤에서 보니 애는 얼마나 놀랐었던지 맨발로 뛰어 내려오고 있었다. 조그만 놈이 맨발로 다시 뒤뚱거리며 뛰어오르는 속도가 너무 빨라 우리가 다급히 계단에 같이 뛰어오를 쯤엔 애는 벌써 3층 집안까지 들어갔다 나오고 있었다. 아마 신발을 찾아 신으려 저렇게 되돌아 뛰었구나 하며 얼굴에 미소를 올리려는 순간 우리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저 계단 위에 우리 앞에 선 애의 발은 아직 맨발 그대로인데 얼굴엔 없던 마스크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는 안심한 듯 타박타박 우릴 향해 계단을 내리고 있었다. 세상에! 우리는 잠시 멍했다. 할 말을 잃었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그 집 손자는 평시에 얼마나 깔끔한 체하는지 방바닥을 걸어 다니다 발바닥에 작은 부스러기 같은 거 좀 묻어도 그 발을 번쩍 들고 털어달라고 ‘방정’을 떤다고 말한다. 그런 애가 이런 급작스레 집을 뛰쳐나오는 상황에 부딪히자 맨발의 신보다는 민얼굴의 마스크가 더 필수라는 비상식적인 강박 관념에 각인되어 있다는 정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나의 친구는 손자를 덥석 끌어안고 말한다.“너, 너 맨발이야 신을 신어야지!”할머니 품에 안긴 아이는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할머니 목을 와락 끌어안으며 제 발을 내려다보는 것이었다.언제부터 이런 비상식적인 개념이 어린애들까지 꽁꽁 묶어 놨을까?

2020년, 이 신기한 아라비아 숫자의 조합으로 된 새해를 맞이할 때 우리는 서로 축복의 신년인사를 나누며 얼마나 흥분에 들떴던가. 하얀 쥐해라, 생쥐 머리같이 생긴 겹쳐진 두 개의 2와 보물창고 같은 두 개의 0, 이 신비한 숫자의 조합은 어쩐지 뭔가 신비로운 일들이 많이 튀어나올 것 같은 기대감에 가슴을 부풀게 하였다.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직은 새해의 벽두라고 할 수 있는 1월 20일, 종래로 경험해 보지 못한 ‘신종 바이러스’로 중국 武漢이 봉쇄 되었다는 소식이- 지옥의 단말마적 같은 괴음이 전세계로 울려 퍼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그것의 검은 그림자가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을 다 뒤덮어 버리리라고는 상상 못 했다. 그러나 강 건너 불 보듯 하던 우리의 시선도 얼마 못 가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던 ‘신천지 교회’의 31번째 교인의 武漢 패렴 바이러스 감염 사실이 밝혀지면서 전국이 긴장하기 시작한 2월 19일, 정식으로 한국 방역 전이 시작되었다. 코로나 19 –이 낯선 괴물, 태양을 가려가는 거대 구름 덩이 같은 것이 세상을 잠식하고 있었다. 사람을 놀래는 빅뉴스들은 세계 방방곡곡에서 하루가 다르게 들려오고 세상은 뒤죽박죽 일상을 강탈당하며 억겁을 이어온 ‘인간생명’이라는 이 신성하고 강인한 물체가 얼마나 나약하고 대책 없이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공포 속에서 지켜보게 되었다.

올해도 봄 여름 가을은 있었던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고 당연하게 누리던 그 계절마다 피크닉 낭만, 자유분방, 얼싸 즐거움의 만남, 마음껏 웃고 떠들던 환희ⵈ 우리는 어느 하나 제대로 향수해 보지도 못하고 마스크를 얼굴에 붙인 체 진달래도 벚꽃도, 푸른 바닷가의 해수욕장도, 알록달록 단풍잎들의 사연도, 어느 하나 제대로 만끽해 보지 못하고 뺏겨버렸다. 너와 나는 멀찍이 거리를 두고 바라만 보는 미증유의 원격 생활에 익숙해야 했다. 겨울눈이 풀풀 내리는데, 그리고 한해의 낭만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라는 축제의 불빛이 다가오는데 우리는 지금 꽁꽁 묶여 다가온 이 겨울이라는 이해의 마지막 무대 속에서도 집콕을 하고 텔레비전의 뉴스를 바라보며 가슴을 조이고 있다. 우리 삶의 라운지들은 계절과 함께 얼어붙었고 삶에 틈입되어 온 팩닉 상태는 식상하니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다.

마스크 쓰기와 거리 두기를 거부하며 자유분방한 일상을 고집하던 미국이나 유럽들, 지금 미국의 코로나 사망 수는 제2차 세계대전 시 전사한 사망자 수를 훨씬 초과하고 있다고 한다. 유럽의 상황도 어질어질하다. 어느 날 뉴스엔 프랑스 대통령도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팬데믹은 사람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정말 “공정”하게 닥치는 대로 주파수 안에 것을 다 흡입해 버린다. 한국은 그래도 방역의 안전성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았었다. 올해 칠월인가 어느 SNS에서“코로나 19가 드러낸 한국인의 세계-의외의 응답 편”이라는 설문조사를 본 적이 있다. 시사 LH와 KBS 공동 기획 대규모 웹 조사라고 하였다. 마스크를 꼭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내가 확진자가 될까 두렵다’가 64%, ‘주변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칠까 봐 두렵다’가 86% ‘마스크 안 쓴 사람은 이기적이다’가 85%, ‘내가 잘 지킨다.’가 96%였다. 이 조사 결과를 보고 당시 나는 한국인의 도덕적이고 자숙적인 국민성에 은근히 놀랬다. 내가 확진자로 될까 두렵다 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칠까 봐 라는 응답률이 더 높다니,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의 코로나 전염은 지금처럼 2.5단계까지는 격상되지 않았었다) 이런 책임감을 기본으로 하는 우수성은 세계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래서 한국은 지금도 앞으로도 선진국이 될 수 있으며 펜데믹 사태를 꼭 성공적으로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다졌었다.

다섯 살 난 어린애의 머릿속에까지 문을 나설 때의 일 순위가 마스크 쓰기라는 개념이 철같이 각인된 시국, 물론 세상은 천태만상이니 외려 어른들이 이 ‘엄정’한 사태를 무시하며 ‘자유’를 고집하며 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그리고 오랜 시간의 집 콕과 셧다운, 너와 나의 거리를 두기로 만나지도, 모여 즐기지도 못하는 상황의 지연은 사람들에게 피로와 막연함, 탈출욕망의 분출구를 헤집는다.

그래서인가? 요즘엔 한국에도 하루 확진자가 천 명대를 오가고 있다. 감염력이 배가 되는 영국발 ‘변이 코로나’ 확산으로 유럽 주변국들이 교통편 봉쇄 조처를 한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ⵈ2020년, 이 이상한 아랍 숫자의 조합에 흥분과 기대에 찼던 한해가 이렇게 대재앙을 인류에게 몰아오며 곧 마무리하게 된다. 한해는 다 가는데 닥치는 새해에 축복의 태양은 떠오를 것인가? 어떨까? 어떨까? 2021년, 한 숫자가 더 불은 새해는 우리에게 무엇을 안겨 줄까?문득 김신용 작가의 한마디 말이 떠오른다. Ⲻ‘살아 있는 날들의 의미’내 생명이 아직 겁나게 뛰고 있음에 감사를 느껴보자.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아있는 날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새로운 체크무늬를 도안해 보자. 그러면 저 밤 창가에 달라붙은 듯한 박쥐의 실루엣도 어느 순간 한 오리 밝은 빛의 흐름 이였음을 발견하게 되리라.

2020, 12, 22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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