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만난 사람)경상도 사나이 최대순 시인의『푸른 도마의 전설』킬리피시로 부활!

 □ 들어가는 시

  몇 겹의 인고가 쌓여
  눈 덮힌 외로운 세상

  외투 깃을 세운
  신음하는 갈대소리에 이끌려
  바람 속으로 걸어가는 수 많은 번민들

  저물다
  햇살 닿아 피어오르는 비릿한 사랑

  지난 겨울 얼어붙은 생채기의 흔적
  봄을 잉태하는 강에게 밑거름으로 던졌다
    - 최대순 시인의 시 ‘저문 겨울강’ 전문

 1. 30년 전에 만났던 최대순 청년과 약속?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그러니까 1990년의 시대적 상황은 노태우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였고, ‘새 질서 새생활 운동’이라는 캠페인을 벌이면서 다가오는 21세기를 위해 변화된 국민의식을 계몽했다.

  대외적으로는 소련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이루어져 역사적인 국교수립이 성사되었으며, 독일의 동서독이 통일을 이루게 되었다.

  당시 국내 TV에서는『자니윤 쇼』와『대추나무 사랑걸렸네』가 인기리에 방영되어 안방을 차지했으며, 영화분야는 한승원 소설가의 원작『아제아제 바라아제』와 개그맨 심형래의『영구와 땡칠이』이가 눈길을 끌며 객석을 꽉 채웠다. 문학작품으로는 연세대학교 마광수 교수의『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와 박완서 작가에『휘청거리는 오후』가 낙양의 지가(洛陽紙價)를 올리고 있었다.

  이 가운데 한국문학 최고의 유산이라는 박완서 작가의 소설집『휘청거리는 오후』에 착안한 30대 혈기방장한 겁 없는 ‘김우영 작가’는 한양땅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도전을 위하여 에세이집『휘청거리는 술잔』을 출판을 위하여 서울에 들랑거렸다.

  “나도 책 하나 잘 써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리자!”

  1990년 평자(評者)는 충남 당진에서 온양으로 직장을 옮겨 자리를 잡을 때 였다. 평자가 야심만만하게 준비한 에세이집『휘청거리는 술잔』은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던 도서출판 대림기획(발행인 홍영환)에서 11월 15일 출판되었다. 이때 만난 사람이 도서출판 대림기획 최대순 과장이었다. 경상도 청년으로서 생각이 맑고 진취적이며 술을 좋아하여 평자와 호형호제(呼兄呼弟)로 서울과 온양을 오가며 잘 지냈다.

 

  도서출판 대림기획 홍영환 발행인과 최대순 과장이 각종 방송과 신문에 홍보하여 평자의 에세이집『휘청거리는 술잔』을 야심만만하게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도전했으나 보기좋게 낙마했다. 불과 5천여 권 팔리는 데 그쳤다. 속으로 자책을 했다.

  ‘젊은 놈이 베짱도 좋지? 어디 서울대학교 국문과를 수학하고『아주 오래된 농담』『친절한 복희씨』등을 출간하여 한국문학작가상, 만해문학상 등을 휩쓴 1980∼90년대를 대표하는 박완서 작가 대열을 꿈꾸었단 말인가? 하하하--- 허허허---’

  충청도의 이름없는 30대 젊은 작가의 좌절된 꿈과 용기를 주며 어깨를 두드렸던 분이 바로 오늘 이야기하고자 서울 을지로 도서출판 대림기획사의 최대순 과장이었다.

  “형, 용기를 내소마? 아직 새파란 젊음인데 무얼 그리 걱정하노?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책 읽고 좋은글 쓰소마!”


  “음, 그래 아우야 노력하마. 박완서 작가만큼은 못되어도 적어도 그 반이라도 작가의 꿈을 꼭 이루마.”

  “자, 형 건베이 하자카이!”

  “좋아, 아우야. 한 번 도전해보자.”

  “형, 내는 말이다. 출판사 하나 크게 차려 사장될끼라예?”

  “그려 좋아. 나도 응원을 하마!”

  “자, 오늘 맘껏 마셔불제이?”

  “좋다아. 우리 최 과장이 최 사장이 되자!”

  1990년 어둠이 까아맣게 내려앉는 서울 을지로 인쇄소 골목 ‘퍼마 선술집’에서 찌그러진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입에 대고 퍼 마시며 30대 젊은 날 힘차게 다짐했던 약속? 그 후 30년이 지난 2020년 지금은 어떠한가? 최대순 대표이사를 만나면 어떻게 말할까?

  “형, 30년 전 을지로 ‘퍼마 선술집’ 약속은 우찌 되었노?”

  “아우야. 약속을 지키지 못하여 미안하다. 그렇치만 한국문단 등단 30년에 34권의 저서를 출간한 중견작가로 열심히 살아간다네.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나 이제 철(鐵)들었지? 허허허--- 하하하---!”


  “형, 진짜 제대로 철 들었네 예!”

  “허허허--- 하하하---”

  1992년 최 과장은 을지로 대림기획을 그만두고 뜻한데로 1992년 ‘도서출판 개미’를 마포에 창업하고 대표이사로 취임하였다. 최대순 대표이사가 운영하는 ‘도서출판 개미’는 2020년 현재 전국의 시인과 작가의 책 1천여 권을 출간하여 서점가에 인기도서를 공급하는 중견출판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런 도서출판 개미 최대순 대표이사가 시인으로 또 한 번 변신했다며 첫 시집『푸른 도마의 전설(128쪽, 10,000원, 도서출판 개미 刊, 전화 02-704-2546』을 출간하고 우편으로 평자에게 보내왔다. 당시 서울 을지로 출판사에 근무하였지만 문학에 대한 식견이 탁월하였다. 훗날 시인의 길을 갈 것 같다는 예감을 했었다.

 요컨데, 1990년 당시 30대 김우영 작가는 2020년 현재 아직도 이름없는 변방 작가방에 머물러 있지만, 최대순 아우는 출판사 대표이사와 시인의 벼슬을 얻었다. 30년 전 서울 을지로 인쇄소 골목 ‘퍼마 선술집’에서 찌그러진 막걸리 주전자 약속은 평자의 패배로 결판이 났다. 그러나 아우야 이 말 한 마디는 꼭 하마.

  “경상도 사나이 최대순 아우야. 비록 이 형이 패하기는 했지만 이 말만은 해주마. 인생은 짧다. 그러나 이 찌그러진 술주전자를 비울 시간은 아직도 충분하단다!”

  2. 최대순 시인의『푸른 도마의 전설』킬리피시의 부활

  그럼 출판업 30년. 시인으로의 변신한 최대순 시인의『푸른 도마의 전설』에 실린 시 몇 편을 함께 살펴보자. 아래의 시는 시인의 시 ‘비 젖은 플렛폼’ 전문이다.

  1호선 인천역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
  누군가 적색 깃발을 흔들고 있다

  비는 플렛폼을 적시고
  시간은 내 등을 떠밀고 있다

  추억은 한 움큼씩 쌓이고
  갈 수 없는 곳
  그러나 가야 할 그 곳
  가난한 사람은 말이 없다

  어둠은 플렛폼을 삼키고
  막차는 소식이 없다
  긴 그림자 끌고가야 할 남은 길에서
  바람으로 비껴도
  다시 만나지는 말자

  너무 그리우면 말을 잃지
  기다림에 지친
  비 젖은 플렛폼
    - 최대순 시인의 시 ‘비 젖은 플렛폼’ 전문

  ‘1호선 인천역/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 누군가 적색 깃발을 흔들고 있다//’에서 갈 수 없는 목표 지향점에 대하여 적색 깃발이라는 이분론을 장치하여 메타포(Metaphor)로 승화시키고 있다. ‘비는 플렛폼을 적시고/ 시간은 내 등을 떠밀고 있다//’비와 플렛폼과 내 등이라는 시공속 델레카시(Delidacy)로 펼쳐간다. ‘추억은 한 움큼씩 쌓이고/ 갈 수 없는 곳/ 그러나 가야 할 그 곳/ 가난한 사람은 말이 없다// 어둠은 플렛폼을 삼키고/ 막차는 소식이 없다/ 긴 그림자 끌고가야 할 남은 길에서/ 바람으로 비껴도// 다시 만나지는 말자/ 너무 그리우면 말을 잃지/ 기다림에 지친/ 비 젖은 플렛폼//’

  비와 깃발, 등, 막차, 바람의 전령사를 차용하여 누군가를 그리며 기다림에 지친 비 젖은 플렛폼이라는 엘레지로 시인의 마음을 내려 놓는다. 시의 전개에 있어 특별한 기교나 에드립 없이 자연스럽게 풀어가는 시력(詩歷)의 감동적인 레토릭(Rhetoric)이 돋보인다.

  다음은 시인의 시 ‘푸른 도마의 전설’이다. 함께 감상해보자.

  횟집 뒷골목에 버려진 나무 도마 위로
  빗방울이 가득 알을 슬고 있다
  움푹 파여버린 뱃속은
  얼마나 많은 물고기를 떠나보냈을까
  점차 흐려지고 있는 음화(陰畫)그림 속으로록
  물고기 한 마리 파닥거리며 자신을 노출한다
  나무에게로 와서 물고기로 살던 킬리피시가
  갈라진 나뭇결에 대고 가쁜 숨을 몰아쉰다
  말라버린 웅덩이를 빠져나와 동면에 들어간 성체를
  도마는 지느러미가 되어 긴 시간 품어 주었을 것이다
  물고기들이 모두 떠나간 뒤에도 도마에게는
  아직 버리지 못한 감정이 남아 있었다
  덜컹대는 간판 아래 사내의 삶이 반 토막 났던 것처럼
  그 사내의 몸에서 보고픔이 지독했던 것처럼
  도마에게 비린내는 자신이 사랑한 것들의 향기였다
  도마는 한쪽 밑둥이치에서 썩고 있던 냄새를 맡고서야
  자신이 거대한 나무였음을 기억해 내었다
  그에겐 지워지지 않은 초록의 감정이 있었다는 것을
  한때 자신에게 와서 부화되고 떠나간 새들이 있었다는 것을
  도마는 옆구리에 문신처럼 새겨진 물고기들을 지워본다
  어느새 나타나는 나이테의 깊어진 울음
  달빛이 민물처럼 쏟아져 내리는 날에는
  제 울음마저 토막 내었던 생각 때문에 온몸이 아려왔다
  나무 위에서 도마가 자랐고 도마 위에서 물고기가 살았듯
  모두 떠나간 몸뚱이에선 비린내가 그리움처럼 풍겼다
  태양이 나뭇가지에 던져놓은 낚싯대가 팽팽한 여름
  건기의 강가에서 살던 전설의 물고기가 뒷골목을 떠돌고 있다
   - 최대순 시인의 시 ‘푸른 도마의 전설’ 전문

  시인의 시집 제목으로 차용된 ‘도마’. 왜 하필 도마 라는 모티브(Motif)로 삼았을까? 하고 의아해 했다. 허구많은 소재중에? 그러나 위의 시 ‘푸른 도마의 전설’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마는 순우리말로서 어법상 명사이다. 칼로 음식의 재료를 썰거나 다질 때에 밑에 받치는 것이다. 도마는 두꺼운 나무토막이나 널조각, 플라스틱으로 만든다.

  그런데 도마는 우리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작이자 기반이다. 도마 위에서 음식이 만들어져 사람의 입으로 옮겨져 영양이 보충되어 생명력을 유지하게 된다. 즉, 도마는 생명이고 원천이다. 이렇게 중요한 부엌의 도구를 우리는 소흘하게 대하였다.

  ‘횟집 뒷골목에 버려진 나무 도마 위로/ 빗방울이 가득 알을 슬고 있다/ 움푹 파여버린 뱃속은얼마나 많은 물고기를 떠나보냈을까/(中略) 시인은 도마 위로 오기 전에 원초적인 변질의 곡절에 의미를 부여한다. 또한 조리행위에 대하여 연민과 아픔의 중첩으로 치환(置換)유희로 끌어올리고 있다. 도마의 모티브는 본질과 현존이라는 이분론적 대치와 교집합이 시의 운률로 만나고 있다. ‘덜컹대는 간판 아래 사내의 삶이 반 토막 났던 것처럼/ 그 사내의 몸에서 보고픔이 지독했던 것처럼/ 도마에게 비린내는 자신이 사랑한 것들의 향기였다//’라며 종장에서는 킬리피시 존재를 지향하며 조화로 시인의 따뜻한 시선에 우리는 공감을 한다.

  작품속에 등장하는 킬리피시(Killifish)는 지난해 평자가 체류했던 아프리카의 짐바브웨와 모잠비크에 서식하는 고유종인 열대 송사릿과(科)의 담수어이다. 수명이 1년 정도인 킬리피시의 알의 휴면기간은 5∼6개월이 되는데, 그 기간은 10개월 이상 2년에 이르기도 한다. 이 물고기의 수명을 계산할 때 휴면기간은 빼고 계산한다. 킬리피시는 다른 휴면 동물과 달리 휴면기간 나이를 먹지 않는다. 아마도 시인은 수명보다도 긴 휴면기간 노화를 막는 메커니즘 의미를 킬리피시 부활로 어피일하고 싶었을 게다.

  3. 전생에 화가라고 된 듯 시화(詩畫)의 명징성 크로키(Croquis)로 테어나

  다음은 최대순 시인의 시집 제3부에 수록된 ‘아라빛섬’이란 시이다. 함께 살펴보자.
 
  운염도 펄에
  비가 내린 오후
  아라빛섬 노을이
  비에 젖고 있다
  오래된 인연 한 조각
  꺼내 들쯤
  섬과 섬 사이
  쌍무지개 뜨고
  한여름 지나온
  서 마지기 논배미
  나락 익어가는 소리
  노랗다
   - 최대순 시인의 시 ‘아라빛섬’ 전문

  ‘운염도 펄에/ 비가 내린 오후/ 아라빛섬 노을이/ 비에 젖고 있다/ 오래된 인연 한 조각/
꺼내 들쯤/ 섬과 섬 사이/ 쌍무지개 뜨고/ 한여름 지나온/ 서 마지기 논배미/ 나락 익어가는 소리 노랗다// (中略)

  시 ‘아라빛섬’ 전편을 살펴보면 한 편의 풍경화가 펼쳐진다. 시인의 눈에 들어오는 인천 중산동 영종대교 쪽에 있는 작은 운염도(雲廉島)의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시로 조탁된다. 이를 시어로 건져올려 가지런히 배치하는 언어의 결이 곱다. ‘시는 곧 그 사람이다!’ 라는 말처럼 가지런한 시인의 고요한 마음은 운염도의 쌍무지개가 정서진의 아라빛섬으로 조망된다.

  끝으로 최대순 시인의 시 ‘벚꽃지는 밤’을 보자. 다른 시편에 비하여 서정성 짙은 작품이다.

벚꽃 지는 밤이다
무언가 아쉬워 서러운 봄밤이다

오늘밤은
어느 흐린 주점에 앉아
내게도 있었던
아름다운 때를 생각한다

초승달 비켜선 가지 끝에
먼 길 돌아온
밤새는 울음조차 없다

벚꽃 지면 봄도 진다
이렇게 또 한 번
내 인생에 봄날은 떠나고 있다
   - 최대순 시인의 시 ‘벚꽃지는 밤’ 전문

  시인의 시 ‘벚꽃지는 밤’ 서정성의 벚꽃물이 들어 주르륵 떨어지는 기분이다. 시인은 아마도 전생이 화가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시화(詩畫)의 명징성이 크로키(Croquis)로 테어난다. 벚꽃 지는 밤 지난 일을 회억하며 초승달과 밤새를 불러들여 흐린 주점에서 한 잔의 봄술을 마시고 있다.

  4. 인생에 봄날 우리가 만나

  그러나 최대순 시인이여! 무에 그리 걱정하시오? 벚꽃 지면 봄도 지는 법이고, 인생에 봄날 떠나는 길목 ‘퍼마 선술집’에서 찌그러진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이내 몸 기다릴 터. 우리 만나 퍼 마시자구요.

  “인생은 짧다. 그러나 이 술을 비울 시간은 아직도 충분하느니!”

□ 나가는 시

  기적 같은 봄날

  꽃비 내린다

  떠나야 겠다
  - 최대순 시인의 시 ‘봄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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