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숙 수필가

홍연숙 약력: 시, 수필, 소설 다수 발표. '문학의강'으로 시 등단. 동포문학 시부문 우수상 수상.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현재 울산 거주.
홍연숙 약력: 시, 수필, 소설 다수 발표. '문학의강'으로 시 등단. 동포문학 시부문 우수상 수상.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현재 울산 거주.

울산에는 요즘 영하권에 들었다. 동천강도 물이 많이 줄었고 가끔 희끗희끗하게 살 얼음이 보이기도 했다. 추위와 겨울바람에 강은 야위어 가고 있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식당의 손님들도 줄어 들었고 동료들의 출근 시간도 줄고 있었다. 나는 5번 째의 무급휴가를 맞이하고 견뎌야 했다. 

요즘은 종일 서재에 박혀 독서를 하거나 글을 쓰며 갑자기 불어난 여유로움을 차분하게 즐긴다. 여행도 갈 수 없기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유쾌하게 보내려고 노력한다. 엊저녁에 회식을 하고 늦게 들어온 남편은 카드놀이를 구경 한 상황을 설명하느라 열을 올렸다. 담 크게 돈을 많이 거는 사람은 회수하는 것도 빠르고 돈을 잘 따기도 하는데 벌벌 떨며 조금씩 거는 사람은 결국은 많이 잃더라며 그러러 한 이야기로 한 시간을 허비했다.  "뭐나 즐기는 놈이 이기는 게 아닌감?"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갔다.  "너 그거 완전 명언인데?" 하며 남편도 공감하는 눈치였다. 어느 책에서 읽었던지 혹은 누구 한데서 들었는지 기억의 어느 구석에 박혔다가 무심결에 튀어나온 그 말에 내 스스로도 감동하며 머리를 쳤다. 직장에도 나가지 못하고 밖에도 조심스레 다녀야 하고 답답한 마스크는 계속 껴야 하고 코로나는 한마디로 비애다. 그래도 독서를 하고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 시간들은 어지러운 마음을 정리해주고 하루의 충만함을 느끼게 하고 상상으로 즐거움을 준다. 이 비상시기를 즐기다니, 이것이 바로 코로나를 이기는 게 아닌가?  

12월의 추위에도 우리집 정원의 복수초는 오돌오돌 올라오고 있었다. 아무리 들여 다 봐도 그 대로인 것 같은데 하루가 다르게 한 잎씩 늘어나는 뾰족한 것들이 보였다. 모두 세 포기 올라오는데 한 포기만은 꽃 무릇 처럼 잎은 올라오지 않고 꽃망울이 먼저 나오는 것이었다. 어슴푸레 노란 빛이 보이는 게 며칠이면 필 것만 같았다. 기다림도 확신이 있으면 더 조급해진다고 나는 짬 만 있으면 복수초를 들여 다 보는데 재미를 가졌다.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스릴이 있는 즐거움이다. 매일 다르게 보여주는 감동은 찬찬히 들여 다 볼 때에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정원에 앉아 청승궂게 떨고 있을 때 우리 집 그 작은 골목으로 택배차량들이 수십번도 더 드나들었고 힘겹게 물건을 이고 나르는 택배기사들도 자주 보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작하면서 요즘 우리집 골목에도 택배 주문량들이 많아졌다.  

오늘도 새벽부터 택배차량들이 부산하더니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발자국소리가 문 앞에서 멈추고 뭔가 놓고 나가는 듯했다. 그런데 카톡 문자가 없었다. 물건이 도착하기 전이나 도착한 후에는 꼭 문자가 오는 것이 정상적인 배송 규칙이었다. 분명히 물건은 온 것인데, 내 기억으로는 요즘 주문한 상품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이불속에서 일어나기 싫었던 지라 그냥 모른 척하고 누워만 있었다. 마침 새벽 일 가는 남편이 문을 떼고 나가다가 "이거 뭐야?",  "뭐 시켰어?" 급하게 두 마디 던지고는 출근길이 바쁜지 퍽! 방에 뭔가 놓는 소리만 나고 잠잠 했다. 그제야 나는 비실비실 일어나 거실로 나갔더니 한 아름이나 되는 택배상자가 멍청하게 구들에 올라와 있었다.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등골을 스쳤다. 의문의 상자에 대한 나의 쓸데없는 상상력이 머리를 혼란스럽게 죽죽 그어 대며 덜컥 겁이 났다. 부리나케 방의 불들을 다 켜고 밖의 벽등까지 켜고 나서야 택배상자를 사진을 찍어 폰으로 유심히 들여 다 보았다. 주소란에 쓰여 진 건 분명히 우리집 주소였다. 그런데는 그때까지도 카톡 문자가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한번 폰을 확대하여 뭔가 라도 걸리기를 기대하며 찬찬히 훑어봤다. 아니! 우리집 주소의 번지수 끝자리는 13인데 18로 쓰여 져 있었다. 그제야 수신인의 이름은 모르는 이름이고 폰 번호도 나의 번호가 아닌 게 눈에 들어왔다.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택배아저씨도 새벽의 어둠에 13과 18을 헷갈렸던 것 같았다. 나는 택배상자를 들고 나가 대문밖에다가 공손하게 모셔 놓고 대문을 닫았다. 그리고 나서 복수초가 입을 얼마나 더 열었는지 궁금해하며 꽃 구경 삼매경에 빠졌다. 

복수초 한 송이가 또 올라오고 있었다. 전 날 저녁에 물을 주는 바람에 흙이 꽝꽝 얼었다. 그런데 그 얼음을 녹이고 파란 잎을 뾰족하게 올리는게 너무나 신기했다. 미나리 아제비과 여러해살이 풀인 복수초는 눈 속에 피기 때문에 설련이라 부르고 봄에 계속 꽃을 볼 수가 있기에 장춘화라고도 부른다. 장수와 행복을 기원하는 뜻이며 꽃말은 봄의 미소, 영원한 행복이라 한다. 북한에서는 복풀이라 하고 일본에서는 새해를 시작할 때 피는 꽃이라 하여 원단화로 불리기도 한다. 히말라야 산속 만년설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데 꽃 필 무렵이면 식물자체에서 뜨거운 열이 뿜어져 나와 ‘식물난로’ 라는 ‘노드바’로 불리기도 한다. 한마디로 복수초는 행운의 꽃이다. 나는 복수초 화분을 조심스레 안아들고 햇빛이 잘 드는 양지쪽으로 옮겼다. 이제 며칠이면 새해가 돌아오는데 올해의 마지막 빛들을 한껏 받고 내년에는 좀더 화사하게 피기를 기원하면서 유치한 주문도 읊었다.

 “내 사랑을 보살펴 주시옵소서. 내 사랑을 강하게 견디게 하소서.” 

“너 머하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익숙한 소리에 대문 앞을 보니 마스크를 쓰고 모자까지 꾹 눌러쓴 언니와 형부가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살짝 당황했으나 대충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나는 대문을 열어 주었다.

“됐어. 우린 갈 거니까 이거나 받아 놔.” 

언니네는 양 손으로 들고 있던 장바구니를 대문안에다 넣어주고는 대문을 도로 닫았다. 

“아니, 들어오지 왜 그래?” 

“사회적거리두기! 글 쓰는 사람이 글을 읽지 못하면 되나?”

“ㅎㅎ 정색은? 형부 들어와요. 커피라도 한잔 하고 가셔요. 한 마을에 있어도 얼굴보기도 힘든데...”  

“됐다니까. 건데 이 앞에 물건은 뭐 고? 너 한데 온 거 아이가? “

언니는 급하단듯이 형부의 말 길을 가로채며 서둘러 갈 채비를 했다

“주소를 잘못 보낸 거야... 이제 서로 연락하고 찾아가겠지머...”

“야! 그러면 택배아저씨는 또 와서... 내가 할 게!”

언니는 다짜고짜 폰을 꺼내 들고 택배 주소란의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xxx 님이시죠. 여기 택배박스가 잘못 와서요...네...네... 거기서 오면 안돼요? 이리 가까운데 택배아저씨를 머할라꼬? 됐고요! 댁네 집이 어디시죠? 알았어요, 문 앞에만 나와요...네...네...”

언니는 다짜고짜 택배박스를 들고 형부보고 차를 유턴하라고 명령했다. 형부가 차에 타고 유턴하자 언니는 박스를 올려놓고 "갈게." 한마디를 돌맹이 던지듯이 뿌리고는 차에 털썩 올랐다. 차는 순식간에 굽인돌이 돌고 사라졌다. 나는 갑자기 뜨거운 열풍의 토네이도에 혼절한 것 같았다. 한 참 벙벙하니 서 있다가 낑낑거리며 장바구니를 집안으로 날랐다.

장바구니에는 김장김치 두 포기, 통고추장아찌 한통, 삶은 소 곱창 5인분량(나는 곱창 마니아임), 조기 12마리가 들어 있었다. 또 ‘우리 동생 생일 축하해! 사랑해!’ 라고 쓴 글과 하트까지 그려 놓은 봉투에 한화 5만원권 4장이 들어 있었다. 언니는 내 생일을 준비하여 온 것이었다. 해마다 내 생일만은 직접 차려주었는데 올해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바람에 이렇게 바람 일구며 왔다가 쏜살같이 가 버린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의 일상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모든 만남이 정지되였다. 그렇게 마음의 거리도 점점 멀어지고 있다.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작년 코로나가 시작하고 오늘까지 나는 언니와 두번의 만남 뿐이었고 전화도 별로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상은 냉정하게 질 들어가고 있었다. 그게 크게 표시가 안 나는 일이었고 또 어찌보면 개인적으로는 편한 일이었다. 그렇게 편한 쪽을 치중하다보니 모든 일상은 사무적으로 처리하는 게 정확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야만이 시끄러운 일이 없을 거라는 현실의 모든 법규에 우호적인 타협을 선호했다. 오늘 벌어진 일도 그랬다. 택배아저씨가 업무의 실수를 범한 것은 응당 본인이 책임지는 게 정당하거니와 굳이 옆에서 나서지 않아도 원만하게 잘 해결 될 일을 내가 나설 필요도 없고 나설 이유도 없다는 나의 견해였다. 그런데 그렇게 일상적인 생활만 잘 되여간다 해서 복수초가 꽃 피우듯이 격정적이지는 않다는 것도 나는 느꼈다. 나는 언니의 달아오른 얼굴을 보았고 뛰는 심장 소리를 들었고 택배상자를 전달하고 얼굴에 피여오르는 기쁨을 상상했다. 복수초가 꽃을 피우지 않으면 복수초가 아닐 거다. 우리의 일상도 뜨겁지 않으면 행복할 일도 없듯이….

나는 온 몸이 더워 났다. 아침 햇살이 창을 뚫고 거실을 붉은 빛으로 채우며 집안이 어느새 훈훈해 졌다. 바깥의 추위는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 행운의 복수초는 소박하지만 뜨거운 열정으로 겨울을 녹이고 있었다. 나는 노트북을 펼쳤다. 후끈후끈하게 끓어오르며 몸속에서 달구어 지는 언어들이 막 쏟아지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새해에는 즐거움과 뜨거움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얼음 속에서도 활짝 피는 복수초는 새해를 맞으며 더 뜨거워질 것이다.  복수초는 지금 피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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