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올 한해 우리 국민들은 초유의 일들을 보고 겪었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삶을 옥죄는 것도, 온 나라가 '윤석열' 이름 석자로 들끓었던 것도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윤석열을 불편하게 보는 쪽도, 윤석열에 열광하는 쪽도 작금의 상황은 어색하기만 하다. 한 사람에 대한 지지와 반대는 세상 살이에 항용 있기 마련이지만, 한 때 그에게 저주와 비난을 퍼붓던 이들이 팬덤으로 돌아서고, 찬양과 덕담을 보내던 이들이 반대진영을 형성한 모습은 낯설고 불편하기만 하다.

이제 현상이 되어버린 윤석열에 대한 찬반 갈등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을 반영한다. 정치와 이념과 이익이 교직되는 교차점에 윤석열이 자리잡았다. 

일개 특수부 검사에 불과했던 윤석열을 국민 앞에 내놓은 것도, 그를 내친 것도 문재인 정권이다. 이제 윤석열을 지키겠다고 나선 이들은 과거 그를 반대했거나 중립지대에 있던 사람들이다. 한 사람에 대한 평가와 찬반이 이토록 빠르게 바뀐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코로나19로 일상의 삶이 전쟁이 되어버린 이 시대 '윤석열 현상'에 대해 몇가지 생각을 해본다.

1. '윤석열 현상'의 본질은 무엇일까? 권력다툼인가, 아니면 이념갈등인가? 

'윤석열 현상'은 권력다툼과 이념갈등의 요소를 복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면 민주적 문민통제의 마지막 치외법권 지대인 검찰의 권력을 두고 벌어지는 다툼과 갈등이라는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공정과 정의에 대한 해석과 그 대표성을 둘러싼 갈등의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애초 공정과 정의는 촛불혁명의 정신이었고, 문재인 정부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조국 사태'와 '인국공 사태' 등을 겪으면서 중도층에서 현 정부의 공정과 정의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진중권 등 일부 진보논객들이 비판세력으로 돌변하는 가운데 '윤석열'은 반대진영의 새로운 '정치적 아이콘'이 되었다. 이에 따라 '윤석열 현상'은 권력투쟁인 동시에 이념투쟁이 된 것이다.

2. '윤석열 현상'의 정치적 실체는 있는 것인가? 윤석열의 아이덴티티는 무엇인가?

최근 여론조사는 두가지 상반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먼저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 21~24일 실시한 대권후보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총장이 23.9%로 18.2%를 기록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오차범위 밖으로 따돌리고 1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26일 실시한 대선후보 지지도(적합도) 조사에서는 이재명 지사가 23.4%로 이낙연 대표(16.8%)와 윤석열 총장(15.0%)을 크게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여론조사 결과는 조사 시점이나 방식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시사점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는 윤석열이 야권 대선 후보의 위치를 굳혀가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도 아니고 정당 배경이 없는 데도 여론조사에서 전체 1위와 야권 1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지지층이 결속하고 팬덤화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 민주당 지지층의 동요이다. 윤석열이 부상하고 지지세가 확산될수록 차기 대선에 불안감을 느낀 민주당 지지자들이 승리 가능성이 큰 후보쪽으로 결집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민주당 지지층은 승리 가능성과 중도 확장성의 측면에서 이재명 지사쪽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3. 윤석열 리더십은 무엇이며, 과연 실체는 있는가?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주도한 '윤석열 죽이기'는 무모함과 전략부재로 인해 결국 실패했고, '윤석열 키우기'로 끝났다. 윤석열은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하게 복귀했고, 추미애는 쓸쓸하게 퇴장하게 됐다. 지난 1년간 두 사람의 싸움을 보면 추미애의 전략 부재와 윤석열의 전략 능력이 대비된다. 징계위원회 구성과 운영 과정은 두 사람의 전략 능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추 장관은 구멍난 그물로 윤 총장을 잡으려다 실패했다. 추 장관은 절차적 흠결로 논란을 자초하면서 징계를 정치 이슈로 만든 반면, 윤 총장은 법리적 허점을 찾아 공략해 성공했다. 법적 심판대에서 법리적 허점을 만들고 이를 정치적으로 풀어내려는 추 장관의 전략은 먹히지 않았다.

이런 결과는 추 장관의 전략 부재가 원인이기는 하지만, 윤 총장의 전략 능력과 정무감각이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가 항상 검찰개혁을 강조하고, 법치주의와 상식을 내세우는 것은 매우 전략적인 모습이다. 추 장관은 대한민국 검사들 가운데 특수부 검사들이 가장 정치적이라는 것을 몰랐던 듯 하다.

윤석열의 리더십은 '뚝심 리더십'의 전형이다. 신념을 위해 굽히지 않고 일관되게 나가는 모습은 검찰 내부의 지지와 외부 팬덤의 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가 여권의 총공세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으면 진작 무너졌을 것이다.

4. '윤석열 현상'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대권주자의 역량은 권력의지와 세력에 달린 것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고건 전 총리의 실패는 권력의지가 부족하고, 정치세력이 취약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총장이 박근혜ㆍ문재인 두 정권과 싸우는 과정을 보면 권력의지는 매우 강하다고 할 것이다. 그는 최근 주변에 "절대 사퇴하지 않는다"라는 입장을 거듭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정치세력인데, 그의 전력과 지지층을 보면 국민의힘과는 결합하기 힘들고 윤석열을 담을 제 3 정당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는 그가 검찰총장직을 완주할 수 있을 것인지, 계속된 여권의 공격과 여론 검증에서 살아남을 것인지 등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그가 평생 수사만 해온 검사이기 때문에 외교와 안보, 경제 등에 취약하고 국정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것도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그가 대선후보 여론조사 선두그룹에 6개월 이상 계속 남아 있어야만 유의미한 정치세력화가 시작될 것이다. 이 경우 '윤석열의 고향친구'를 자처하는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 등 충청권 야당 의원들이 나설 가능성도 있다.

시련에서 살아남은 자에겐 신화가 만들어지고 팬덤도 생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랬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랬다. 윤석열 총장이 김대중ㆍ노무현의 길을 갈 지, 반기문ㆍ고건의 길을 갈 지 지켜볼 일이다.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한겨레신문 기자와 청와대 정치국장을 거쳐 영남매일신문 회장과 2018평창동계올림픽 민간단체협의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양대 교수와 일본 외무성 초청 시즈오카현립대 초빙교수, 중국 외교부 초청 칭화대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와 중국 흑룡강신문 한국자문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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