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상징시는 대중적인 리얼리즘 계열의 시와는 구별되는, 환각의 흐름속에서 영혼의 새로운 질서를 찾아 상징의 조형물(造形物)을 조각해 내는, 새로운 유파의 산물로서 중국 연변에 거주하는 조선족 시인 김현순(金賢舜)에 의하여 창조되었으며 그 이론의 기초는 구조론과 상태론, 인식론, 진화론, 해체론에 두고 있다. 아방가르드 포스터 모더니즘의 후속 발전형태의 모식이기도 하다.

 

데이터/ 김현순 


그래서는 안되는 줄 번연히 아시잖아요
여자는 목 빼들고 볼륨 한 옥타브 낮추었다
약간 벌린 옷섶에서 쉰내나는 기다림이
두점 꽈리로 빨갛게 익어 있었다 
끄긍~! 사내는 마른 침만 꿀덕 삼키었다
비좁은 다방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더듬증 감아쥐고 
소크라테스, 플로톤을 카드로 뽑아든 형이상학이
고요를 육박해왔다
차탁(茶卓)이 그림자 받쳐주며 옷을 벗겼다
비는 내리고, 가을의 가는 허리가 
어둠의 엄지발가락에 걸렸다
보기만 하고 만지지는 말아달라는 채송화의 
애절한 부탁이, 밤의 배꼽에 메뉴판으로 박혀
별처럼 깜박거려 주었다
사랑의 루승은 으깨진 눈꽃의 자백이라는
시간의 입덧이 딱딱한 바닥재의 촉감으로
허무의 계단 내리 딛었다
악수~! 이래도 될가요…
마주보는 눈길 위에 지구가 미끄럼 타고 있었다
우주의 이름은 이별 그리고 상봉의 
메아리가 고독 구워 
제단(祭壇) 쌓는 작업임을
속살의 향기는 꽁꽁
네온등 불빛에 재워두고 있었다

 

늦가을/ 윤옥자
 

날아오르고 떨어지는
이분법의 길
 
어제는 숯불을 피워든
노랑치마 빨간 저고리
싸늘한 한기와 맞서더니

오늘은 포화속을 건너온
그을음 얼굴에
찢겨진 옷 펄럭인다

먼 길을 가야만 하는
야생의 통곡소리
 
영혼을 떠나보낸
초록벌레 한마리
땅이 숙명으로 삼킨다
 
 
나무/ 리순희

            
고개 쳐든 기둥
약수의 웃음에
금빛 화살 료리하여
지나가는 구름 희롱 한다

옷 갈아입는 가지
계절의 풍경소리 깔고 앉아
바람 꺾어, 우뢰 씹으며
세월 반죽하는데

꿀단지에 허우적이는 꽃향
이슬 물고 신기루에 색을 올린다

꿈자락 깍지 걸어
선인장 반기는 길목에
무지개빛 우주궁전 수놓아 간다

 

눈 내리는 언덕에 서서/ 김소연

 
하늘 만져 보고픈 마음
머리 풀어
안개 잡아타고 승천 한다
티끌 만나 짝 짓고
구름배 저어 여행길에 오르니
저마다의 향과 맛으로 어우러진
우주의 속살
견문이 이맛살 쪼프리며 새김질 즐긴다

에그야 데그야 상여꾼들의 먹임소리
저녁노을 훑어 쥐고
고혼의 안식처 찾아 간다

룡문 뛰어넘는 연어의 환고향길이
찬란한 사가(死歌) 엮어
영원을 살아가는 법, 상형문자로 새겼음을
사고(思考)는 또박또박 읽는다 

 

이별/ 김 영

 

바다 가슴에
갈매기 운다
피 묻은 창자 물고
파도 머리에 점선
긋는다
우뢰와 번개는
해심 갈기갈기 찢는데
먹장구름 심장 꺼내어
노을 흔든다

눈물이
웃는다

누드의 아픔
봄 향기  낳는다

 


인생/ 신현희

 

밤하늘이 몰래 숨겨놓은 달
길 잃은 가로등 밑을
서성거릴 때

어둠의 장막 배 터지게 거두어 싣고
영 넘어가는 바람의 그림자

별들이 반짝거리며
훈장 달고 따라 나선다

고개고개 고갯길은
향기 찢어 몸에 감고 봄, 봄...

봄이 씨앗 한 톨
생채기에 심어 싹 틔우는
소리 나는 길

 

귀/ 강려

 
산이 메아리  접어
강에 띄운다
보청기 꽂은  앉음뱅이꽃
수화 (手语) 의 언저리에 이슬
따서 얹으며
그림자에 어깨 기대어 본다
운명의 나붓김
나비 날개가 감싸
봄, 잠재운다

 
나그네의 넋두리/ 권순진


거들먹거리는 바람에
너덜너덜 찢어진 세상 한 조각
더듬더듬 헤매인다
러브스토리는 추억 속에 파묻고
머금은 눈물 감추려 애써도
버틸 수 없는 슬픔
서글퍼 끝내 울음 뱉아낸다
어슬렁어슬렁
저녁이 다가오는 소리
처마밑 고드름은 수정보다 밝고
커져가는 어둠속에
터질 것 같은 가슴
퍼마시는 술은 누구의 쓸개인가
허전한 마음 기대일 곳 없구나

 

희망/ 황희숙 


눈석임물에 노랗게 하늘 떠간다
초심 움켜 쥔 민들레 
빛 씹는 소리가
잘근…

절망이 코 고는 오아시스에
낮달의 해쓱한 얼굴 
사막이 고아낸 먼 수림 웃음소리가
송이송이 키스로 
바위를 덮는다

꽃의 향기는 
보이지 않는다 

 

인생/조혜선


고배(苦杯)들어  마시고 씹으며
고행, 그 긴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공부—

모체의 아픔 찢어
세상 놀래우며
동녘의 햇살 방글거린다

구름과 우뢰와 번개
그리고 
비바람과 눈보라 사이
빛의 결투, 정오의 정수리
달군다

익기 전에 타들어가는 
칠색무지개
치마폭에 달과 별을 싸 안고
바다에 우주가 자폭할 때

홀로 남겨진
빗살 꺾인  노을이여, 어둠 털고
회귀의 무, 그 여백에
새김질로 빨갛다
 
움켜쥔 열 손가락 비워내는  
골 깊은 숨박곡질은  결코
그렇게 
숨 편할 수는 없을 것이라 가로되...

 

나 몰래/ 정하나


대나무가 수수께끼 
방앗간에 걸어 두고
해바라기 고개 숙여 태평양 이고 간다

등진 팔자 담장 위에 먹줄 췽기어
숯검쟁이 걱정 도감
적도를 에돈다

여름에도 움츠린 자라의 목
나리꽃은 눈 감아도 피를 토하고...

린색의 틈새로 멍게
가시 펼쳔다

죽어서도  눈 못 감는 건 물고기 뿐인가
열두나 치마폭 움켜 잡은 채
구름은 또 한 고개 

아침을 
넘는다

 

발자국/ 권순복
 

백지장에 찍힌 연필의 까만 눈물
뼈를 갉아 허무의 공간 채운다
거센 풍랑을 이겨낸 조약돌
바다의 혼을 업고 노래한다
가시밭길 서러운 인생
한잔 술에 기대여
갈라터진 입술 적신다
등블이 손톱 살려 눈초리 잡아 뜯고
화산 용암에 씻긴 살결
백조의 깃털로 나래친다
벼이삭이 노을 잡고 세월의 향기 풍기니
넋을 잃은 웃음이
턱 빠진다
바위틈에 싹튼 소나무
험난 세상 추켜들고 
별을 잡고 휘파람 분다


장미/ 리성호


서정시 삼킨 호르몬  
하얀 가시 아기 그림자 찌른다
방울방울 우는 피빛 
사랑쥬피터 화살 곡성 겨눈다

이름의 존재는 
언제부터던가

바람이 쓸고 가는 언저리에
입술이 립스틱 꺼내들고
사랑이라 부르네

 

이름/ 신금화


아침노을 가루 내어
이름자 만든다

난산의 아픔, 해볕이
사근사근 담아 간다

꽃잎에 절은 새
하나의 점으로 핀다

몬나리자의 웃음소리
벽틈에서 피어난다

 

바람/강성범

 
보자기 둘러메고
걸음 재촉하는 발이 있다
 
엷은 시간 구겨 쥔
미소가
해살의 문안 받는다
 
날개의 소망
풀, 풀…
잎잎마다 풀피리 분다

 

달빛의 일기/ 신정국


달빛 마음 만져보는 구름의 속내
버드나무 가지에 걸리어
휘파람 분다

여백의 터널에 불 밝혀둔 개똥벌레의 한(恨)
낭낭십팔세가 시계추에 매달려
광대의 이름 묻는다

잠옷 속에서 기어 나오는 
아침의 볼펜

시간의 목탁소리가 
간밤의 은사(隐私) 
안개 열고 벗기어 낸다  

 

밤에 오간 대화/ 김경희


이끼 낀 차돌이 콧방아 찧는다 
성에 향기 부서지는 겨울 발바닥에 
얼음장 깔아드린다

발볌발볌...
다리 밑으로 행적 감추는 
잉꼬그림자의 숨결

생각들이 수렁 건너에, 발톱 세워 
어둠 긁는다 

기억 쓸고 가는 청소공 옷자락에
매끌매끌, 눈(眼)들이 매달려 

천사의 공간에 
메둘리 연주하고 있다

 

한때는/ 정두민


처마 밑 제비새끼들 똥으로
낙서 한 바람벽 추상화를
찾지 못했던 문안으로 간직 했다

파헤친 알맹이를 첩들에게 나누어주던
일부다처제를 고집하는 수닭마저
쓸쓸한 고독은 부러워 했다

포승줄에 묶어놓은 죽임이
한없이 즐거워 보이는
거미의 외로움은 거짓이었고

온기는 밖으로 부셔지고
떨어지는 내일은 탐스러웠지만
미련들은 배신으로 탈출을 꾀했고

흑백 울음이 다가서고
달걀 원형이 녹색으로 까 낳을 때
기적소리는 손아귀에서 빠져 나갔다

 

어머니/ 류송미


팔 벌린 햇살
두 잎 사랑 안아주고 

구름꼭지 입에 물려 
여름, 파랗게 
살찌우네

불그레 미소 짓는 
회심의 산과 들

바람 타고 덩더쿵
춤추며 가네

 

생각/ 최옥화


안개가 치마 펼쳐 새벽 감싼다
물상들의 침묵 
축축함이 슴벅 거린다

액자에서 흘러내린 시간이 
아침을 노크 하고
거실에서 들려오는 슬리퍼 소리

싱싱한 해파리의 날숨이
백사장 가슴에 
거품으로 부서져 있다

갈매기의 울음 
바위가 깔고 앉고서
일상의 비릿한 태양 
밀어 올린다

 

발견/ 김희자


창틈이 
긴 인고의 밤 풀어준다 
가려움증 기승 부리며
기지개 쭉 펴고
삭신, 참대빗에 갈퀴어 
뚝 뚝 
떨어져 나간다 

신음소리 냉가슴 차고 
가파른 절정 향해 
샛별눈 반짝인다 

봄의 맥박 
대지에 울려 퍼진다

새 처방지 휘날리며 
회색 가운 
날려 버린다 

 

칠월의 마지막 저녁/ 김춘화

 
물 찬 제비 한 마리
강물에 몸 담그고 
흰 구름 깨워 귀가시킨다
 
더위에 할딱이던 하루
빨간 너울 드리우고
어스름, 역에 내리면
 
숲속에 숨은 바람
도심 열고 들어와
흥 오른 세상사 엿듣는다
 
뿔난 지구의 회전
흔들거린다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