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숙 수필가

천숙 약력 : 중국 벌리현 교사 출신. 집안 심양 등지에서 사업체 운영, 재한동포문인협회 수필분과장. 수필, 시 수십 편 발표. 동포문학 수필부문 최우수상 등 수상.
천숙 약력 : 중국 벌리현 교사 출신. 집안 심양 등지에서 사업체 운영, 재한동포문인협회 수필분과장. 수필, 시 수십 편 발표. 동포문학 수필부문 최우수상 등 수상.

오랜만에 김치 세 통을 담그었다. 시대의 변화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김치양념은 다소 변하지만 우리 민족의 가장 뛰어난 전통음식이고 자랑이라는 점만은 변함이 없어  중국에 있을 때부터 나는 줄곧 이렇게 김치를 직접 담그어서 먹는다. 고향에 있을 때에는 김치소에 담백하게 마늘과 생강만 넣었는데 환경이 바뀌면서 김치소에 때로는 소고기를 갈아 넣기도 하고, 때로는 북한식으로 오징어를 다져서 넣기도 하였다. 한국에 와서 궁중요리를 배운 후부터는 또 다른 양념으로 등장시키기도 하지만. 그리고는 김치독에 넣어서 잘 보관하였다. 김치독에 보관해야만이 김치는 제맛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딱딱하고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배추는 소금에 절여지고 여러 가지 양념과 잘 어울려야 부드럽고 아삭한 맛있는 김치가 된다.

소금물에 담가 낸 후 배춧잎 사이사이에 마른 소금을 뿌려 큰 대야에 담았다. 배추가 절여지는 동안 큰 냄비에 멸치다시마 육수를 내서 찹쌀풀을 만들어 식힌 후 고춧가루를 넣고 불려주었다. 그리고 쪽파와 밤을 제외한 마늘, 대파, 양파, 생강, 무우, 사과, 배, 액젓과 매실청을 믹서기에 갈아서 넣었다.

여덟시간쯤 지나자 딱딱하고 힘이 잔뜩 들어가 있던 배추는 소금간을 먹고 겸손해진듯 맞춤히 절여졌다. 물론 그 과정은 쓰리고 따가웠을 것이다. 절여진 배추를 잘 헹구어서 쟁반에  하나씩 올려 놓고 김치소를 발라 주었다. 그리고는 김치소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겉잎으로 휘감아 잘 여며주었다. 배추는 맛있는 김치가 되기 위해 또 한번의 쓰리고 아픈 고통을 거쳐야 했다.

김치양념을 버무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성격도 어쩌면 김치맛과 같다는 것을. 김치양념에 따라 다른 맛의 김치가 되듯이 사람마다 모두 각 자 자신의 특색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맛의 김치를 인정하지 않고 굳이 자신만의 양념을 고집한다면 어찌 다양한 맛의 김치를 맛 볼 수 있으랴! 김치를 버무리며 지나온 나를 반성해 보았다. 나는 잘 절여지지 않은  배추처럼 참으로 뻣뻣해서 양념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니,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단체생활을 하면서 모순이 생기면 경청을 통한 이해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흥분한 상태에서 성급한 판단부터 하는 과오를 범하기가 일쑤였다. 인내하고 기다려주면 다 해결될 것을.

아삭하고 맛있는 김치가 되기까지 김치는 많은 고통과 인내를 거쳐야 한다. 소금에 숨이 죽어야 하고 아프고 쓰려도 참아야 한다.

잘 버무려 놓은 김치는 이제 24시간이 지나면  유산균을 생성하며 맛있게 익어갈 것이다. 맛있게 익어갈 김치를 생각하면서 나도 김치처럼 그렇게 익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힘들고 아플 때 내 인생의 배추는 아직 소금에 더 절어져야 하겠구나 반성하고 겸손해지며, 겉잎 휘감아 여미듯 내 가족과 주변사람들을 잘 품어 주고, 절인배추와 양념이 잘 어울리듯이 주변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맛있는 삶을 살아가리라.

내 마음도 어느새 김치처럼  맛있게 익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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