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연초 부터 나라가 어수선하다. 확진자가 1천명이 넘어선 '서울동부구치소 집단감염 사건'과 '16개월 영아 정인이 학대사망 사건'은 국민의 분노와 불안을 자아내고 있다. 정부가 관리하는 1급 교정시설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것은 법무부와 교정당국의 무능과 무책임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뒤늦은 전수조사와 확진자 관리의 허점으로 구치소는 아비규환의 패닉상태를 보이고 있다. 수용자가 구치소 창살 밖으로 '살려달라'는 내용의 글귀를 써서 흔드는 사진은 후진국의 감옥에서나 볼 법한 충격적인 것이었다. '세월호 데자뷰'인 듯한 모습에 여론은 악화되고, 그토록 자랑했던 K-방역의 성과도 무너지고 있다. 정세균 총리와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뒷북 사과는 들끓는 민심을 달래지 못하고 있다.

'16개월 영아 정인이 학대사망 사건'은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입양후 양부모로부터 지속적인 학대를 당한 정인이는 국가 시스템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 경찰은 3차례나 학대신고를 받아 수사를 하고도 무혐의 종결을 함으로써 정인이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국정원 정보기능 이관으로 '공룡'이 된 경찰의 무능한 모습은 걱정스럽기만 하다.

이 두가지 사건은 '권력의 무능이 때론 부패보다 무섭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패는 공동체를 서서히 무너뜨리지만 무능은 한순간에 망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무능이 부패 보다 무섭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국가의 무능이 국민에게 어떤 고통을 안겨주는지 똑똑히 보았다.

국가와 정부의 제 1 기능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 국가가 관리하는 교정시설에서 수용자가 감염되고 사망했다면, 3차례나 경찰에 학대신고를 했는 데도 16개월 영아가 학대에 따른 다발성 늑골 골절와 장기 파열로 사망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정부의 책임이다.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과 청와대는 국정에 무한책임을 느껴야 한다. 우리가 세월호에 분노하고 촛불을 들었던 것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국민의 생명권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실책에 더 분노하는 것이다.

대통령제는 '대통령 정책(presidential policy)의 수행을 통해 국정을 운영하는 제도이다. 그래서 청와대에 정책실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는 정책 보다 정치에 더 많은 힘을 쏟아왔다. 청와대가 적폐청산과 개혁작업의 전면에 나서 야권과 갈등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의 정책조정 기능과 정부 관리기능이 약화돼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부동산 정책과 방역 관리의 실패는 청와대 조정능력의 오작동과 맞닿아 있다.

최근 대통령 지지도가 급락하고, 중도층이 이반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대통령과 청와대에 대한 실망감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연초 난데없이 불거져 정국을 어지럽혔던 '전직 대통령 사면 논란'도 당청의 소통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올해는 문재인 정부가 일 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해이다. 정국은 자연스럽게 차기 대선정국으로 흘러가고, 오는 4월로 예정된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로 국정의 동력은 약화될 수 밖에 없다.

부동산 문제 등 민생의 성과없이 임기를 마치는 대통령은 불행하다. 차기 대선에서도 여권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현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둑이 터지듯 총체적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최근 청와대가 신임 비서실장에 정치형이 아닌 정책형 인사를 기용한 것은 이같은 위기감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때마침 청와대가 신년을 맞아 '정책 청와대'를 표방하고 문 대통령의 새로운 PI(President Identityㆍ대통령의 정체성) 재설정 작업을 추진한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이제 청와대는 인적 청산 논란과 정치과잉의 청와대에서 벗어나 '정책형 청와대'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여야 영수회담 등 다양한 대야(對野) 및 대사회(對社會) 대화 등을 통한 사회통합의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부동산과 방역, 경제에 집중하는 청와대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이탈한 중도층을 다시 불러들이고 대통령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이다.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한겨레신문 기자와 청와대 정치국장을 거쳐 영남매일신문 회장과 2018평창동계올림픽 민간단체협의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일본 외무성 초청 시즈오카현립대 초빙교수, 중국 외교부 초청 칭화대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와 중국 흑룡강신문 한국자문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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