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난세(亂世)는 '전쟁이나 무질서한 정치로 어지러워 살기 힘든 세상'을 말한다. 어지러운 세상에는 도둑이 들끓는 법이니 백성의 삶은 고달프기만 하다. 난세의 백성은 '태평성세(太平聖世)를 꿈꾸고 자신들을 구원해줄 영웅을 열망한다. 그것이 '메시아'이다.

"앞날을 걱정하는 건 태평성대(太平聖代)에나 할 짓이다. 전시(戰時)에는 그날 안 죽는게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걸 모르면 그걸 아는 자의 짐이 되기 싶상이다." 고(故) 박완서 작가는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라는 제목의 소설에서 난세의 삶을 이렇게 묘사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태평성세는 짧고 난세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 같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그릇된 욕망은 전쟁과 혼란을 불러오고 영웅은 난세를 평정해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그것이 인류의 역사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난세를 몰고 왔다. 지구 곳곳에서 감염의 공포와 폭력이 난무한다. 우리가 그동안 문명 선진국으로 알고 동경했던 미국이나 일본, 유럽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났다. 그 나라들도 별 것이 아니었다. 사재기와 폭력, 차별 등이 일상화되는 모습은 후진국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IMF 환란 보다 더 한 경제적 고통과 사회적 갈등, 법질서의 오작동, 권력의 무능 등이 세상을 어지럽게 한다. '서울동부구치소 집단감염 사건'과 '16개월 영아 정인이 학대사망 사건' 등은 사회적 질서가 흔들리는 조짐이다. 이 와중에 부동산 투기를 일삼는 공직자의 모습은 '난세의 악(惡)'에 다름 아니다.

난세의 명약(名藥)은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하는 국가별 차이는 지도자의 리더십과 깊은 상관관계를 갖는다. '난세형(亂世形) 지도자'를 만난 국가는 코로나19 위기를 잘 극복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지도자를 만난 국가는 전대미문의 대재앙을 겪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과 중국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시종일관 안이하게 생각하고 땜질식 처방으로 대처해 대재앙을 초래했다. 미국은 6일 현재 2천만명이 넘는 누적 확진자와 35만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반면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초기에 '우한 봉쇄'라는 초강력 조치를 하고 인민해방군을 포함한 국가자원을 총동원해 상황을 조기에 안정시켰다. 그 결과 중국은 6일 현재 누적 확진자수 8만7천여명에 사망자수 4천6백여명, 일일 확진자 33명 수준으로 안정화되었다. 이는 경제에 그대로 반영돼 중국은 코로나19 패데믹에서 가장 큰 경제성장을 구가(謳歌)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차이는 리더십의 차이였다. 그리고 그 리더십 차이는 백성의 삶과 죽음을 갈랐다.

난세의 지도자가 지녀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위기 상황을 인정하는 겸허함과 솔직함이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제럴드 다이아몬드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명예교수는 '대변동(Upheaval)'이라는 책에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첫 단계는 위기를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어리석은 지도자는 위기를 인정하지 않고 호도한다. "코로나19는 별 것 아니다"라는 말로 국민을 호도했던 트럼프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둘째는 사회 통합능력이다. 위기는 공포와 혼란을 몰고 온다. 그리고 사회 질서가 흔들린다. 이 경우, 사회적 통합이 잘 이뤄진 국가는 조기에 안정을 되찾는다. 그것은 '사회통합의 복원력' 때문이다. 반면 분열된 사회는 위기의 원인에 대한 책임 전가와 대응책에 대한 이견으로 반목하고 갈등하며 혼란을 심화시킨다.

셋째,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확립해야 한다. 공정과 정의는 '사회적 신뢰자산'의 기초이다. 기초가 흔들리면 건물은 금이 가거나 무너진다. '인국공 사태'나 '의사 국가고시 재시험 허용' 등은 공정의 가치를 크게 해쳤다. '공정'을 국정의 브랜드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아이러니하게도 '불공정'으로 사회통합을 위한 신뢰자산을 훼손한 것이다.

셋째,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내 편에 관대하고 상대에게 가혹한 법은 권위를 상실한다. 그리고 권위를 상실한 법은 사회적 갈등을 통제하지 못한다. 코로나19 와중에 부동산 투기를 하는 세력과 사재기 사범은 사회적 공적으로 간주해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넷째, 신속함이다. 정확한 상황 진단에 기반해 신속히 대처하는 것이 사태를 조기에 안정시키고 지도자에 대한 신뢰를 가져오는 지름길이다. 최근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대선후보 지지율 상승은 빠른 결정력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다섯째는 안정감이다. 지도자의 흔들림 없는 모습은 대중의 공포심리를 가라앉힌다. 반면 지도자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대중은 더욱 극심한 공포감에 휩싸여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보여주는 안정감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주는 불안정한 모습과 대비된다.

여섯째는 자신감이다. 지도자가 무한 긍정의 에너지로 강한 자신감을 보이면 대중은 공포감에서 벗어나 안정을 되찾고 희망을 갖는다. '우리는 이 위기를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는 지도자의 메시지는 대중에게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안정제가 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대공습으로 공포에 떨었던 영국 국민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자신감 넘치는 처칠 수상의 BBC 라디오 연설이었다.

바야흐로 다시 대선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많은 정치인들이 자신만이 이 난세를 극복할 유일한 지도자라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지도자를 참칭(僭稱)하는 자들도 있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대들은 난세의 지도자가 될 덕목을 갖추었는가?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참칭(僭稱)의 지도자인가?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한겨레신문 기자와 청와대 정치국장을 거쳐 영남매일신문 회장과 2018평창동계올림픽 민간단체협의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일본 시즈오카현립대 초빙교수, 중국 칭화대 방문학자 등으로 활동했다.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와 중국 흑룡강신문 한국자문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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