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철 칼럼니스트

이남철 프로필 : 경제학박사, 서울사이버대학교 객원교수, 전 파라과이 교육과학부 자문관.
이남철 프로필 : 경제학박사, 서울사이버대학교 객원교수, 전 파라과이 교육과학부 자문관.

1983년 유○○ 작사, 젊은 가수 전○○이 부른 노래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라는 유행가가 있다. 노래 가사는 다음과 같다. “꿈으로 가득찬 설레이는 이 가슴에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사랑을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
처음부터 너무 진한 잉크로 사랑을 쓴다면 지우기가 너무너무 어렵잖아요. 필자는 20대 말 이 노래를 들으면서 남녀 간의 만남과 헤어짐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연필 같은 존재로 인해 전 세계에서 이혼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최근 필자는 ‘연금술사’(1988년)로 세계적인 작가로 알려진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의 산문집 ‘흐르는 강물처럼’의 ‘연필’에 대한 글을 감명 깊게 읽었다.  코엘료는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고 삶의 본질적 측면을 다루는 소설을 써서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신비주의 작가이며, 극작가, 연극연출가, 저널리스트, 대중가요 작사가로도 활동하였다. 1947년 8월 24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1970년에 법과대학을 중퇴하고 멕시코, 북아프리카, 유럽 등지를 여행하였다. 1972년에 브라질로 돌아와 대중음악 가사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 가운데 몇 곡은 브라질의 유명한 가수인 엘리스 레지나(Elis Regina), 라울 세이시아스(Raul Seixas) 등이 불러서 큰 인기를 얻었다. 1974년에는 브라질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활동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잠시 투옥되기도 하였다.  

코엘료는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고, 고등학교 때는 시, 연극 경연대회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그가 엔지니어가 되기를 원했고, 어머니는 그가 작가의 길을 걷는 것을 보고 낙담하였다. 부모님과 갈등은 계속되었고 그의 청소년기는 우울증과 분노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는 정신과 치료를 받기 위해 세 번이나 병원에 입원했었다.

‘연필’의 내용은 할머니가 손자에게 준 5가지 교육적인 이야기이다. 할머니가 편지 쓰는 모습을 보던 소년이 물었다. “할머니, 혹시 제 이야기를 쓰고 계신 거예요?” “그래, 너에 대한 이야기야. 이 할머니는 네가 이 연필 같은 사람이 되면 좋겠구나.” 소년은 의아한 표정으로 연필을 주시했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없었다. “하지만 늘 보던 거랑 다를 게 하나도 없는데요!” “그건 어떻게 보느냐에 달린 문제란다. 

첫째, 네가 커서 큰일을 할 때 연필을 이끄는 손과 같은 존재가 네게 있음을 알려 준단다. 우리는 그 존재를 신이라고 부르지. 그분은 늘 너를 당신 뜻대로 인도하신단다.”

“둘째, 가끔 쓰던 걸 멈추고 연필을 깎아야 한다는 거야. 당장은 좀 아파도 심을 더 예리하게 쓸 수 있지. 너도 그렇게 고통과 슬픔을 견뎌 내는 법을 배워야 해. 그래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어.”

“셋째, 실수를 지울 수 있도록 지우개가 달린 점이란다. 잘못을 바로잡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오히려 우리가 옳은 길을 걷도록 이끌어 주지.”

“넷째, 연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무가 아니라 그 안에 든 심이야. 그러니 늘 네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렴.”

“다섯째, 연필이 늘 움직인다는 거야. 마찬가지로 네가 하는 모든 일 역시 흔적을 남긴다는 걸 명심하렴. 우리는 스스로 무엇을 하는지 늘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 거란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각 지자체 문화원에서 글쓰기 강좌가 남녀노소 관계없이 인기가 높다. 할머니는 글쓰기에 대해서 의미 있는 말을 손주에게 던져주고 있다. 연필은 늘 움직이면서 모든 일을 하며 흔적을 남긴다는 걸 명심하라고 한다. 

고 법정 스님은 “인생에서 무엇이 남습니까? 집? 예금? 명예? 아닙니다”라고 했다. 그럼 무엇이 우리 후세에 남겠는가? 우리들이 다른 세상으로 정착한 후에도 글은 남는 것이 아닌가? 

필자는 연필에 지우개는 실수를 지울 수 있도록 해서 잘못을 바로잡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오히려 우리가 옳은 길을 걷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라고 말한 한 할머니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공자는 사람들이 수양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과오를 고칠 수 있는 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공자는 잘못을 뉘우치고 이를 고치는 행동은 그 자체가 성숙된 성장을 향한 중요한 과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요즈음 정치인과 사회지식인들이 지우게 달린 연필 같았으면 하는 바램이 크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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