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요즘 경찰에 대한 국민여론이 악화일로이다. 결정적 원인은 '16개월 영아 정인이 학대사망 사건'이다. 경찰이 3번이나 학대 신고를 받고도 정인이의 학대 사실을 확인하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비극을 막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국민적 공분(公憤)이 확산되고 있다.

김창룡 경찰청장이 지난 6일 대국민사과를 하고 제도 개선과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여론의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 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현안질의에서는  경찰의 무능을 질타하는 여야 의원들의 질의가 쏟아졌다. 이런 와중에 업친 데 덥친 격으로 최근 광주에서 경찰 간부가 연차를 내고 금은방을 터는 영화 같은 사건이 일어나 경찰에 대한 여론의 시선이 더욱 싸늘해지고 있다.

'시집가는 날 등창 난다'는 속담 처럼 새해 들어 경찰의 위상이 높아진 시점에 이같은 일이 터져 조직 내부에서 조차 탄식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오죽하면 30년 넘게 경찰에 몸담았던 전직 경찰 출신 방송인이 "경찰을 했다는 것이 부끄럽다"고 말을 했겠는가?

경찰은 문재인 정부 권력 개혁작업의 최대 수혜기관이다. 지난달 이뤄진 권력기관 개혁3법 국회 통과로 인해 지난 수십년간의 숙원이던 1차 수사종결권을 갖게 됐고, 국정원으로 부터 대공수사권까지 넘겨 받았다. 또 오는 7월 부터는 자치경찰제도 시행에 들어간다. 경찰 창설이래 가장 큰 폭의 변화이며, 바야흐로 경찰은 명실상부하게 국가의 중추 수사기관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인이 사건'은 '공룡 경찰'이 국민의 안전과 인권을 제대로 지키지 못할 수 있다는 비판여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멍자국과 몽고반점도 구분하지 못하는 수준의 경찰의 수사 능력을 믿을 수 없다는 비판은 뼈아픈 대목이다.

3번이나 정인이를 살릴 수 있었는 데도 매번 기회를 놓친 경찰의 책임은 엄히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 보다 중요한 것은 차제에 경찰의 수사권 강화 조치가 오히려 국민에게 해가 될 수도 있다는 비판에 대해 체계적인 점검과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경찰의 수사 능력이 과거에 비해 향상된 것은 사실이지만, 검찰에 비해 여전히 뒤쳐지는 것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정인이 사건' 뿐만 아니라 그동안 경찰이 무혐의 종결했던 사건이 검찰에서 뒤집힌 경우는 허다하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이관도 불안하기만 하다. 국정원 개혁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긴 하지만 과거 대공 경찰이 저지른 인권 유린과 사건 조작의 사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영화 '1987'의 소재였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대공 경찰은 고문 과정에서 살인 행위를 하고도 이를 은폐하려다 검찰과 언론에 의해 저지당했다.

한국 경찰에는 친일과 독재체제 부역 등의 흑역사(黑歷史)가 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를 고문하고 수사하던 친일 경찰과 헌병 출신들이 해방후 미군정 경무부를 거쳐 대한민국 건국이후 경찰의 핵심세력이 되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가 고문수사로 악명을 떨쳤던 친일 경찰 노덕술이 해방후 수도경찰 수사과장으로 변신한 것이 대표적이다. 반공을 내세워 인권을 유린하고, 독재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했던 것이 그리 멀지 않은 일이다. 우리 국민들이 경찰에 대해 늘 의구심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인이 사건'은 경찰의 비대화와 권한 강화가 자동적으로 국민의 인권 보호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3차례나 학대신고를 받고도 정인이를 구하지 못한 경찰의 무능한 수사력이 때론 국민의 인권을 위협할 수도 있다. 따라서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검찰 수사권 박탈 움직임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의 권력기관 개혁이 만든 '공룡 경찰'도 이제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 수사 역량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조직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국민은 다시 검찰의 수사권 강화를 주장하게 될 것이다. 극성지패(極盛之敗)의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는 경찰이 되기 바란다.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한겨레신문 기자와 청와대 정치국장을 거쳐 영남매일신문 회장과 2018평창동계올림픽 민간단체협의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양대 교수와 일본 외무성 초청 시즈오카현립대 초빙교수, 중국 외교부 초청 칭화대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와 중국 흑룡강신문 한국자문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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