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식 수필가

김춘식 칼럼니스트
김춘식 수필가

요번에 사흘연휴시간을 이용하여 나는 글을 쓰는 짬짬이 머리도 쉴 겸해서 몇 해 전 중고서점에서 산 후 둬 번밖에 읽지 않았던 <우리 한시 삼백 수: 칠언절구편>을 다시 한 번 훑었다. 비록 말 타고 꽃구경하는 식으로 읽긴 했지만 그래도 새로이 머리에 들어오는 것이 퍼그나 많았고 감회도 깊었다

여적 중국에서 살다 보니 두보, 이백 등 시성들의 시를 비릇하여 <당시3백수>는 어려서부터 다소 알고 있지만 우리 한민족의 선조들이 지은 우리 한시를 접하기는 한국에 들어와서부터다. 처음엔 가끔가끔 신문들에 실린 우리 한시들을 한 수, 두 수 감상하면서 재미를 붙였는데 후에 우리 한시에 관한 책들을 한 권 두 권 사서 읽으며 완전히 매혹되어 한동안은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눈길이 가장 먼저 가는 곳이 한시 진열장이기도 했다.

나에게 있어 일반 한문에 비해서 우리 한시는 혼자 읽고 이해하기가 많이 어렵다. 한국에서 쓰는 한자에 익숙하지 않으니 우리 한시가 어려운 것도 당연하고 설사 한자를 잘 안다 하여도 우리 한시는 수천 년에 걸쳐 만들어진 복잡한 형식과 특유의 표현기법 때문에 어려운 편이다.그리고 나를 놓고 말할 때 한국의 역사나 역사인물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었다.즉 옛 시만이 가진 감성이나 그 시대의 지식을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 하기에 우리 한시를 한자 그대로 적어놓은 것보다는 한글 번역문도 따르고 해설도 따라주는 책을 즐기는 편인데 그 중에서 <우리 한시 삼백 수:5언절구편>과 <우리 한시 삼백 수:7언절구편>가 내 취미에 퍼그나 맞는 책이다. 당시 삼백 수가 당조 때의 수십만 수의 시중에서 그 정수라고 할만한 것들을 골라 묶었듯이 이 두 권의 책도 삼국시대부터 근대까지 한민족의 5언절구와 7언절구중 알맹이라 할만한 시를 각각 삼백 수 뽑고 이를 풀이했다.

우리 한시는 읽을수록 맛이 있다. 그만큼 어렵기도 하지만 그 읽는 맛, 보는 맛에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부터 전해 내려온 우리 한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현대에 사는 우리들에게도 큰 공감과 감동을 준다 .읽다 보면 우리 한시가 우리들의 생활과 거리가 결코 멀지 않음을 느끼게 되는바 시대가 변했어도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 한시에는 인간세상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이 소용돌이 친다. 우리 한시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생의 낭만을 이야기한다.그 중의 단연 으뜸은 일상의 한 순간에서 얻은 빛나는 깨달음이다.살고 살아 감내해야 인생의 의미가 조금씩 보이듯 한시는 보고 또 보며 곱씹을 때 그 의미가 새롭다. 

멀건 죽 한 그릇 내놓는 주인에게, 그래도 죽 속에 구름이 담겨있어 좋다고 말하는 여유와 풍류가 담긴 방랑시인 김병연의 ‘죽 한 그릇에 비친 구름’ , 
홀로 보내는 겨울 밤의 막막한 시간을 잘라 베어 님과 함께 지내게 될 봄밤에 이어 붙여 길게 보내겠다는 애틋하고 절실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을’… …
이는 모두 내가 평소 즐겨 읊는 한시들이다. 

죽 한 그릇에 비친 구름/ 김병연

四脚松盤粥一器/天光雲影共徘徊/主人莫道無顔色/我愛靑山倒水來

네 다리 소반 위에 멀건 죽 한 그릇
하늘에 뜬 구름 그림자가 그 속에서 함께 떠도네.
주인이여, 면목이 없다고 말하지 마오.
물 속에 비치는 청산을 내 좋아한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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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달 기나긴 밤을 /황진이 ’

截取冬之夜半強/春風被裏屈蟠藏/燈明酒煗郞來夕/曲曲鋪成折折長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사랑하시는 님 오시는 밤 굽이굽이 펴리라

그리고 언녕 한시 하나에 꽂혔다. 바로 한민족 한시 중 송별시의 최고작이라 일컫는 고려 때의 시인 정지상이 지은 <<임을 보내며(送人)>>이다 

임을 보내며/ 정지상

雨歇長堤草色多/送君南浦動悲歌/大同江水何時盡/別淚年年添綠波

비 갠 긴 언덕에는 풀빛이 짙은데
남포에서 님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대동강 물은 언제나 다 마를 것인가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보태는데.

남포는 이별하는 곳이니 해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별을 할 것인가, 그들이 흘리는 눈물이 강물을 보태어서 물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니, 님을 보내는 자신의 슬픔은 강물처럼 끝없이 흐를 것이라는 이별의 한을 보여준 이 시는 지금껏 내가 외울 수 있는 몇몇 안 되는 한시 중 하나요, 읊을 때마다 전율이 이는 최고의 작품이다. 아~아, 나도 살면서 이런 작품 하나만 써낼 수 있다면 평생 후회 없는 삶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나는 짬짬이 하나하나의 한시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면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한시의 매력에 조금씩 빠져들게 되었다. 우리 한시는 옛 선조들의 삶에 깊이 녹아들었은즉 그들에게 한시는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과 같은 일상이었고 삼라만상을 담는 그릇이었다. 사랑과 죽음, 자연과 인간, 일상과 현실 등은 우리 한시의 가장 보편적인 소재들이라 우리 한시들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거나 인생의 낭만을 전하는 것도 있으며 부조리한 사회를 비판하거나 불우한 삶을 하소연하는 것도 있다. 현대의 시와 소설, 수필들이 우리네 삶을 보여주듯이 우리 한시도 그러하다. 천천히 한시를 읽노라면 옛 선조들이 살았던 시대와 삶의 애환과 정경을 보는 듯 하면서 당시의 모습과 지금의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는듯한 느낌이 새록새록 하기만 하다. 그래서 우리 한시는 어렵지만 내 마음에 와 닿는 것이리라. 

한시 공부에 열을 올리다 보니 주위로부터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를 많이 보내온다. 나이 60이 넘어 그런 것을 배워 뭘 하느냐다.배우기도 어렵거니와 배워봤자 어디에 써먹지도 못할 것을 가지고 말이다.더구나 젊은이들도 배우기 어려워하고 꺼려하는 한시니깐.늙은 나이에 무슨 ‘한시타령’일까 싶겠지. 하지만 나는 이것을 별로 개의치 않는다. 나이와 상관없이 아직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거기에 푹 빠지고 싶다. 

김춘식 프로필:

1955년 흑룡강성 연수현에서 출생. 대학학력.  38년 교령에 흑룡강성 연수현 조선족중학교에서 고등학부 조선어문 교사로. 공청단서기,공회주석,부교장으로 사업하다 2015년에 정년퇴직. 
연변작가협회, 흑룡강조선족작가협회.재한동포문인협회, 한국<문예감성>문인회 회원으로 글쓰기 40년에 여러 쟝르의 작품 수백 편 발표. 송화강수필문학상(2020년). 중국조선족소년보 아동소설공모전 대상(1986년), 연변인민출판사 동화우수상(1984년) 등 수상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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