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방] ‘외통령’으로 불리는 해외동포지원센터 김봉호 회장

김봉호 해외동포지원센터 회장
김봉호 해외동포지원센터 회장

[서울=동북아신문]해외동포지원센터는 중국동포와 국내체류 외국인이 일상에서 필요한 각종 생활정보 지원은 물론 불법체류, 비자신청, 가정불화, 교통사고, 행방불명 문제 등을 해결해주고 출입국업무, 노무, 법률, 세무 등 전문분야까지 종합적으로 지원해 주는 단체이다. 해외동포지원센터 김봉호 회장은 2007년 비영리법인 해외동포지원센터를 설립, 현재까지 중국동포와 외국인들의 고충 400~500건을 해결해주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외국인들의 대통령, ‘외통령으로 불리고 있다.

사업가에서 외통령으로 불리기까지

김봉호 회장은 대학을 졸업한 후 1983년 국내 최초로 전통탈을 원형 그대로 축소, 상품화해 판매하는 회사 오성종합상사를 설립한다. 그는 86 서울 아시안 게임, 88 서울 올림픽, 2002한일월드컵 등 대규모 국제대회에서 휘장상품을 독점생산 및 판매하는 휘장사업과 이벤트 사업 역량을 축적하게 된다.

한중수교 전인 1990년도 북경 아시안게임이 열렸다. 김봉호 회장은 북경 아시안게임 휘장사업 라이선스를 획득하면서 그때부터 중국을 오가기 시작했다. 북경 아시안게임이 끝난 이후인 1993년도에는 천진시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중국 전체 휘장사업 라이센스를 따내 대회 마스코트 와 마크를 이용한 기념품 등을 생산 및 판매하는 사업을 하면서 한족은 물론 중국동포들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2000년도에는 심양시에서 아마존 박람회를 개최했다. 당시 아마존박람회는 심양시 정부와의 계약에 따라 브라질의 아마존 원주민을 데려오는 등 남미 최대의 강 아마존의 원시림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심양시에 재현하는 야심 찬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이 사업으로 많은 손해를 본 김봉호 회장은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중국에서 장기간 사업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출입국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도움을 요청해왔어요. 한중 수교이후 많은 중국동포들이 코리안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 물밀 듯이 한국으로 밀려오면서 발생한 현상인 거죠.”

그때부터, 김봉호 회장은 동포들의 출입국문제와 한국체류를 지원하기 위한 활동에 뛰어들게 된다. 그는 동포들의 출입국문제, 고충처리 해결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위해 2007년 비영리단체 해외동포지원센터를 봉천동에 설립했다.

김 회장은 중국동포들을 돕는 일을 하면서 휘장 사업, 이벤트 사업에서 발휘했던 자신의 장기를 살려 이번에는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노동자, 다문화 가정 등 소외계층을 위한 행사를 꾸준히 개최한다. 2007년에는 다문화가정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동행이란 행사를 개최하고, 2008년에는 외국인이주노동자박람회를 개최한다.

2008해외동포지원센터는 중국동포들의 접근성을 고려해 동포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대림역 5번 출구 앞으로 이전한다.

중국동포들과 한족을 비롯한 국내 체류 외국인들의 고충처리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김 회장은 2010년 몸이 좋지 않아 찾은 병원에서 위암이라는 뜻밖의 진단을 받게 된다. 수술을 위해 입원해 투병 생활을 하면서,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된다. “위암수술후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주변에 있는 환자들의 아픔을 알게 되면서 그들을 도와주고 싶어진 거죠. 과거에는 일을 하면서 금전적인 걸 주로 추구했지만 수술후 사랑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김회장은 눈을 해외로 돌려 중국 몽골,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등 외국인 환자 유치사업을 시작한다. 사업차 이 나라들을 다니면서 조금만 치료를 받으면 완쾌될 수 있는데도 낙후한 의료수준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해외동포지원센터 김봉호 회장이 2018년 10월 2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글로벌자랑스러운인물대상조직위원회로부터 국제의료환자 봉사부문 ‘2018글로벌 자랑스러운 인물대상’을 수상했다.
해외동포지원센터 김봉호 회장이 2018년 10월 2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글로벌자랑스러운인물대상조직위원회로부터 국제의료환자 봉사부문 ‘2018글로벌 자랑스러운 인물대상’을 수상했다.

 

몽골인 중증 간질환 환자 건강 회복시켜

김 회장은 외국인 환자 유치사업을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사례도 소개했다.

“2014년이었는데요. 몽골사람으로 중증 간질환 환자가 있었습니다. 수일 내로 간이식을 안 하면 사망한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대병원에서 간이식 수술을 하기로 했습니다. 간을 제공할 사람을 찾기 위해 출입국과 몽골영사관의 협조를 받아 환자의 딸들과 환자 남동생 모두 5명을 3일 만에 입국시켰습니다. 입국 당시에도 앰뷸런스를 공항에 대기시켜 바로 서울대병원으로 후송하여 수술하게 한 뒤 환자가 건강한 몸으로 몽골로 돌아갈 수 있게 했습니다.”

한국에 와서 치료받고 완쾌돼 자기 나라로 돌아간 사람들을 그 나라에 가서 만나게 되면 완전히 귀빈 대접을 받게 됩니다. ‘내가 참 좋은 일을 했구나크게 보람을 느끼게 되면서 이 일에 중독되는 것 같습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사례도 소개했다.

중국동포인데 간암으로 중국에서 3개월 이상 못산다고 했습니다. 이 환자의 마지막 소원이 한국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과거 불법체류문제로 비자를 못 받는다 하여 우리가 법무부의 도움을 받아 의료관광비자로 입국시켜 삼성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했습니다. 그 환자분이 3개월은 넘기고 약 1년 정도 사시다 돌아가셨습니다. 완치돼서 좀 더 오래 사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습니다.”

이외 여러 가지의 의료봉사활동으로 해외동포지원센터 김봉호 회장은 20181021일 대한민국 국회의원회관에서 글로벌자랑스러운인물대상조직위원회로부터 국제의료환자 봉사부문 ‘2018글로벌 자랑스러운 인물대상을 수상했다.

산재보상, 초기 대응이 중요

해외동포지원센터는 전례가 거의 없는 외국인전용 원스탑 통합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특히 어려움에 처한 중국동포들의 문제들을 많이 해결해주어 동포들의 만족도가 아주 높은 편이죠.”

김봉호 회장은 해외동포지원센터가 해결한 대표적인 몇 가지 사례를 소개했다.

중국동포 윤OO(사망당시 55)씨는 2016310일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중 과로로 인한 뇌출혈로 의식불명이 되었고, 응급후송 되어 치료하다가 3일후 사망했다. 유가족들은 같은 해 320일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보상금으로 유족보상일시금 및 장의비를 신청했으나 629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불승인이 났다.

윤씨의 가족은 산재 보상을 포기하고 있었으나 지인에게서 외통령으로 불리는 해외동포지원센터 김봉호 회장을 찾아가 보라는 소리를 듣고 같은 해 8월경 김 회장을 방문해 도움을 요청했다. 윤씨의 가족은 김 회장의 도움을 받아 같은 해 9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보상 재심사를 신청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73월 근로복지공단에서 재심사 신청도 불승인이 났다.

윤씨 가족은 20174월 망인의 원청회사 및 하청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금 신청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회사의 도움을 받는 것을 조건으로 같은 해 6월 원청회사 및 하청회사에 대한 손해배상금 신청을 취소하고, 2017724일 서울행정법원에 근로복지공단을 피고로 유족보상일시금 및 장의비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많은 준비를 했기에 김 회장과 윤씨 가족은 승소를 예상했다. 그러나 1년 가까운 심리 끝에 201867일 서울행정법원이 내린 판결은 원고 패소였다.

김 회장은 이에 굴하지 않고 낙담해 하는 가족을 설득해 620일 서울고등법원에 유족보상일시금 및 장의비지급을 요구하는 항소를 제기했고, 13개월여의 심리 끝에 마침내 지난 911일 서울고등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근로복지공단은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에 따라 20181015일 유족보상일시금으로 현금 약 15,000만원, 연금으로 매월 110만원을 배우자가 사망하는 날까지 지급하는 것으로 산재보험금 결정을 받고 이들 가족에게 희망을 주었다

산재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초기대응이 중요합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한번 불승인 난 산재 건을 뒤집어 보상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처음에 윤씨의 부인과 딸이 센터에 찾아와 도움을 요청할 때 이길 수 없다. 포기하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두 사람이 닭똥 같은 눈물을 한참을 흘리다 돌아가는 걸 보고, 우리 가족이 만일 같은 경우를 당하면 어쩔까라는 생각이 들어 지하철을 타려는 사람들을 붙잡아 다시 사무실로 데려왔어요. ‘이길 수는 없지만 마음에 한이 안 남도록 장례비라도 받아낼 수 있도록 한번 해보자고 해서 시작한 일이지요.”

세계지도 앞의 김봉호 해외동포지원센터 회장.
세계지도 앞의 김봉호 해외동포지원센터 회장.

또 한번은 한족인데 불법 체류자로 10여년을 대구에서 일하다 숙소에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산재 보상은 근로복지공단에서 불승인이 났다. 그의 부인이 해외동포지원센터의 도움으로 비자를 받아 한국에 입국했다.

한족의 부인은 돈도 없고 잠잘 데도 없기에 고시원을 얻어 잠자리를 해결해주고 센터의 직원이 점심 저녁까지 대접해줬어요. 그리고 재신청해서 끝내 산재 승인을 받아낼 수 있었지요.”

이밖에도 해외동포지원센터가 중국동포와 외국인을 지원한 사례에는 고령의 어머니가 한국에 계신데 절도로 강제퇴거 되어 입국규제로 못 들어오는 아들을 입국시켜 국적취득을 하게 한일, 음주운전으로 집행유예 받은 중국동포를 법률규조공단에 도움을 요청하고 간절한 탄원서를 제출하여 벌금 500만원으로 낮춰 한국체류가 가능하게 한 일, 형사처벌 등으로 강제추방될 위기에 처한 동포들을 인도적 사유로 국내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도록 한 여러 사례, 캄보디아의 언청이들을 국내로 데려와 아주대병원에서 무료로 수술시켜 준 일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김 회장은 평소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동포들과 외국인들의 권익보호에 앞장서 국가 이미지를 향상시키겠다고 말해왔다. 이처럼 중국동포와 외국인에 대한 열정적 지원활동이 김봉호 회장으로 하여금 외통령으로 불리게 만든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김봉호 회장이 외통령으로서 거침없는 발길을 이어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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