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모    
  
                
꽃이 부러웠던 파란 이파리
사랑하다 지쳐서 
빨간 단풍 되어
바람 타고 옛길 거닐고

하얀 봄꽃 어느새 열매로 익어
높은 가지 끝에 매달려 있지만 
닿을 수 없어
까치발로 동동거린다

아직은 여름의 녹즙이 남아있어
뛰어올라 힘써보지만
불어오는 바람을 빌려도
끝내 손끝 흔들어 하늘에 닿지 못하며.


땅의 첫사랑 색

                      
꽁꽁 언 입술로 속삭이는
땅의 밀어를 피우는 꽃
햇빛 아래 응석 부리며 흔드는 몸짓이
눈 속에 묻혀 발버둥 친다
밤이면 달빛에  
얼음 드레스 빙글거리며 춤추고
아침이면 하얀 가슴에 옴폭 파고 앉아 
노오란 분 바르는 새색시
동그란 얼굴 복수초 꽃
겨울 아침 손 두부 팔던 덕팔이의
천덕꾸러기 새색시 닮았다.


옹이 


욕심 없이 주어 온
못난 나를 닮은 무늬가 그려진 꽃씨 한 알
가시 많은 가슴에 죽도록 쓰다듬어 
노란 꽃 한 송이 피웠다

매일 똑같은 그림
단맛이 그리워 울컥하는 마음
꽃잎마다 빨간색 보라색 파란색 물감 칠해서 
수없는 만남의 길을 떠나보내던 
그 목마름이 쓰러져 
술병을 집어 든다

두 손 마주잡고 벼랑끝일지라도
남아있는 소망하나 싣고 갈 기차를 기다린다
철길에 귀를 대고 
쿵쿵거리는 몸짓을 그려보지만
바람 실은 해먹처럼 주름 잡고
두 눈 섭 사이에 실망으로 걸린다
 
세월이 물어뜯은 
이 빠진 지퍼가 보듬은 가슴에도 
때 되면 핑크빛 해조음이 노을 같고 
얼굴 내 밀며 자랑은 못해도 
창가에 서면 바다를 부른다

바다의 빛과 온도와 파도의 세기가 피운  
소용돌이 꽃은 바다 속에 떨어지지만
내 옹이에 오기로 핀 
대책 없이 가난한 꽃은
망가진 육신의 슬픈 진액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내안에 옹이의 뿌리가 자라서
발바닥을 뚫고 땅에 뿌리를 내리려한다. 


투비鬪悲                     
 
                                                           
하얀 여울목
두 발이 얼어붙은 세월의 나침반 위  
동그란 눈사람처럼 서 있는 조약돌
추위에 길 잃고 
눈꽃에 기대어 졸다가 
얼음장 밑 물소리에 소스라친다 
 
여름의 비릿한 낚시터 지나  
성에꽃 하얀 강에 얼어붙어
마음도 몸도 
앙상한 버들가지의 허기 바라보며 
벌거숭이로 남아 견디어야 한다

별을 품는 마음으로
차가운 새의 발 톱 밑
허연 분변 뒤 집어 쓴 조약돌
실금이 핏줄처럼 
햇볕에 엉켜 빨갛다
매서운 겨울 강가 조약돌의 속삭임 
슬픈 상고대로 하얗게 
내 안의 꽃으로 정겹다.


詩 재의 태몽  

                             
외할머니 집 키 낮은 담장 가
늙은 나무 등에 업힌 까치둥지에
무서리가 지나 간지 언제였던가
아버지의 더운 피처럼 영산홍 붉게 물들던 봄
어머니 등에 업혀 넘은 강보(襁褓)의 눈물 재 
 
바스러진 사랑이지만
열 손가락 흐르는 피로
사랑의 물결 건너지 못한 탯줄에 
파도가 일까 가슴 조이며
구름 재 넘어 청운을 빌어 안겨준 
고향 땅 어머니
 
시비리야 찬바람 상흔의 꽃 대신
노란 민들레 꽃 꺾어 주며 
계절로 지나가는 하늘 가득 채워주던
지금은 어느 세상에서 
딸기밭 가꾸고 계실 왈랴 마마
우유에 하얀 쌀 넣어 끓인 죽 목구멍 데이며 
나무의 별 다 헤지 못한 까닭에
고사리 꺾어 들고 울었던 재
 
김치와 된장국만으로도 
가슴속에 사랑의 숲 그리게 하는 집
어느 날인가 
가난한 영혼 하늘에 걸어 두고
죄 많은 육신은 천박한 땅에 묻어두고
이름은 詩 재에서 별을 셀 땅
멀리 계신 어머니 기도로 낯설지 않은 땅 
 
굽이굽이 돌아 제일 높은 
하늘과 땅 사이 詩 재의 전생을 이어
강 건너 푸른 밭길 열어주고
숲 속 나무 일렁이며 하늘 길 열어주는
별이 내 눈 되어
그리메로 달래 주는 시재의 바위
머리 위 하늘이 
별빛 같은 태몽을 그린다.

시인 이자영
시인 이자영

 

 

 

 

 

 

 

■ 프로필 ■

‧ 아주대문예창작과 2년수료
‧ 「현대시선」시부문 신인문학상,「문학과 비평」수필 신인문학상 
‧ 수상 : 제22회매월당문학상, 제5회영상시문학상 금상수상,20년 향촌문학회 시부문 최우수상 외 다수
 ‧ 공저 : 꽃잎편지, 하늘 꽃이 피는 날, 심상의 지느러미 외다수
‧ 현) 문학과 비평 사무차장, 경기PEN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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