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 사이에서 하는 말言

          

이보다 더 아름다운 표현의 말
또 있으랴 싶다
이만큼 살아 뱉어내는 숨소리
스스로 뜨겁게 만족할 줄 알며
맨몸으로 태어나 맨몸으로 떠날 줄 아는 
이 좋은 곳에서 살고  있으니
그래서 허한 마음의 공간이 메꿔 지고 채워지고
아름답게 만들어지고 있으니
세상 필연의 궁합이 있는 공간에서
바람, 물, 공기, 사랑과 만족으로
행복한 화욕의 불 지피며 살고 있으니
비록 태어 날 때는 울고 태어났더라도
죽을 때는 후회 없이 잘 살았더라고
웃고 죽어야겠다는 비밀 한 가지 쯤 
지킬 수 있는 삶을 알게 했으니
좋다마다 참말로 나는 좋다마다
인생, 삶, 사랑 공간 이 생과 저 생 사이
여기
틈.


봉정사 패랭이꽃무리

     
봉정사 대웅전 댓돌 오르다
처마 끝 패랭이꽃무리더러
부처님 안에 계시냐고 물었더니
나즈막이 날 올려보고 있던
패랭이꽃무리 말
무시무종無始無終 이고
심즉시불心卽是佛이니
그대 주먹을 펴고 또 쥐어 봐요
그 손 누구 손입니까
잠시 조금씩 달리 보였을 뿐
여전히 손의 주인은 본인입니다
그렇지요
그대 손으로 법당 문 열어보고
부처님 계신다고 생각하면 계시고
그대님이 아니 계신다고 생각하면
아니 계시는 것 이지요
그리고는
빙그레 웃으며 법당 문 가르키던
그날 그 패랭이꽃무리들
아! 나는 정중히 합장했어야 했었는데
그때 생불生佛이였음을 눈치 챘더라면.

*봉정사: 경북 안동시 서후면 천등산(天燈山)에 있는 사찰


귀거래혜歸據萊兮

         

가리다 고향으로
어쩌자고
여기 남아
이리
험 하게만 살런가

돌아가서
벌레소리 즉즉 우는
마당가에 묵혀둔
술 찰찰 익을 때를 기다려
순한 아내랑
강가 물새 같이 마주 앉아선
요요히 흔들리는
풀잎사귀나 쳐다보며
정담情談이나 나누며 살리라

울도 담도
내 손으로
돌 맹이 주워 만들고
삽 작길 따라 꽃도
온갖 그림으로 수놓으며
그러다
간혹 조용한 마을에
후둑후둑 비라도 내리면
앞뜰에 말려놓은 고추나 걷어 들이다
비 설 거지에 옷이라도 흠뻑 젖는
그런 고향으로 가리라

살 냄새 타는 도회지
낯 설은 情이 싫어서
나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구두


낡은 구두 밑창으로
오늘 분주하게 만났던 흙들이 묻어있다
출근을 서둘며 신었던 구두가 집으로 돌아왔다
주름 접힌 중년의 얼굴하나 구두 위에서 오버랩 된다
찰라!
사람이 태어나 살고 살다가 눈 감는다는 것이
또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에게로
인생, 삶, 등등 무수한 생각들이 떼거리로 달겨든다
중년의 家長인 내가 보인다.


무고舞鼓에 넘어갔다

 
아름답고 화려한 나비 춤 유혹
홀딱 빠져들지는 말자 마음먹었는데
내 딴에는

청·홍·백·흑 날개 펼쳐 숨 막히도록 안달 나게
저 만큼 달아났다 사뿐 나 풀 다시와 안겨서는
사람 혼 죄다 쏙 빼 놓고선
꿀처럼 달콤한 사랑이라 속삭이지를 않나
그도 모자라 가슴 뜨겁게 달궈는 몸짓으로
내 눈 맞춰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는 맵시하며
채의彩衣 선線 기묘한 허리 돌림 아 사사 보드랍게
얼매나 꼬드기는지

당최 사내마음 들었다 놨다 가슴 벌렁 이게 하는 바람에
지 깐들 뭐 별 수 없이 안 넘어가고 못 배겼다
나는 결국에.

*무고舞鼓 : 큰 북을 치면서 춤을 추는 궁중무용.

시인 박병일
시인 박병일

 

 

 

 

 

 

 

■ 프로필 ■

‧ 경북 영덕 영해출생
‧ 1993년 월간 ‘문학세계’신인상 등단
‧ 저서 : 시집 ‘아내의 주량은 소주 한 홉이다’ 등 3권 출간
‧ 수상 : 경북문학상, 대한민국 환경문화대상 문학(시)부문 대상, 쌍매당 이첨문학상 시 부문 대상외 다수  
현) 한국문협, 경북문협, 영덕문협 회원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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