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호박

 

 

“연초를 부산하게 보내고 숨을 고르고 보니 70령 고개에 앉아 있구려. 휴, 어이 할꼬! 허나 기는 죽지 말세”

학교장으로 정년퇴직한 친구가 휴대폰으로 보낸 신년 메시지다. 그는 다재다능하고 사교성도 좋아 주변에 남녀 친구들이 많이 몰렸다. 나도 어쩌다 어울려 몇 차례 즐거운 시간을 보낸 추억이 떠오른다. 퇴직 후 자주 만날 기회는 없지만 마음으론 이심전심 친근한 사이다. 신년 하례 메시지를 받고 보니 그때 그 시절 다시 못 올 추억이 떠오르고 참 반가웠다. 한편 이 친구, 늙음의 허전함과 소외감으로 정신적 공황을 겪고 있는 느낌이 들어 안쓰럽기까지 했다. 유유상종의 위로를 해주고 싶어졌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은 법이 자연의 이치인지라 현직에 있을 때 지위가 높고 영향력이 컸던 친구들일수록 퇴직 후 심리적 공허감이 더 클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퇴직자들에게 여기저기서 “지난날 갑옷은 훨훨 벗어 던지고 베옷 입고 어서어서 자연인으로 돌아가라”고 귀가 아프도록 충고들을 했는가보다. 자연인으로 돌아가면 “어이 할꼬” 탄식할 것도 없고 기죽을 일도 없기 때문이다. 자연인은 그대로 목욕탕안의 벌거숭이다. 귀천도 없고 기세부릴 일도 없다. 모두가 평등하다. 공직자들의 퇴직 후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반갑습니다. 자연의 순리인 생로병사를 즐겁게 맞이합시다. ‘늙은 호박’이 비싸던데……”

나는 황금빛 호박죽을 좋아한다. 창밖에 눈이 내리고 있는 날 오후, 집 안은 온통 달큼 향긋한 호박죽 냄새로 군침이 돈다. 아내가 호박죽을 쑤어 주었다. 달콤한 그 맛 굵은 팥알이 씹힐 때마다 혀의 감촉은 호박죽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천하의 일미다. 아내는 늙은 호박을 좋아한다. 해마다 가을걷이를 할 때면 으레 고구마와 함께 늙은 호박을 서너 덩이 사서 겨우살이 준비를 한다. 늙은 호박은 현관 입구에 진열해 놓아 장식품이 되기도 한다. 노란 늙은 호박이 집 안을 풍성하게 한다.

어릴 적 겨울에 시골 초가집 방안 윗목에는 수수깡으로 엮은 큰 둥우리에 고구마가 가득 채워져 있었고 늙은 호박이 방안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느 집이나 비슷한 겨우살이 방안 풍경이다. 눈 내리는 날 부엌에서 호박죽을 쑤면 괜스레 신이 나기도 했었다.

설날이 다가오나 보다. 모래내 전통시장 길이 붐빈다. 아직 길가엔 눈이 쌓여 있는데 애호박 단호박은 물론 딸기며 토마토, 상추 등 봄여름 야채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다. 내 어릴 적엔 상상도 할 수 없는 겨울 시장풍경이다. 그러나 늙은 호박은 보이지 않았다. 내심 늙은 호박은 우리 집밖에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각종 즙을 짜내는 건강원 안에 늙은 호박이 있었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한 덩이에 2만 원이라고 한다. 아내는 7천 원에 샀다던데 세 곱절이나 오른 것이다. 2~3천 원이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애호박이나 단호박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값진 고품격 상품인 것이다. 늙은 호박은 관상용이요, 고급식품이요, 부기를 가라앉히는 약용이기도하다. 실로 지혜와 경륜과 덕을 갖춘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와도 같다.

늙어서 값진 것이 어디 호박뿐이랴. 박물관에 가 봐라. 오래된 것일수록 더 비싸고 귀하다. 어디 박물관뿐이랴. 나무도 나이가 많을수록 보호수로 지정되어 깍듯이 대접을 받기도 하고 당산나무 같으면 제사상도 받는다. 사람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수명 100세 시대에 살면서 겨우 나이 70에 “어이 할꼬!” 탄식하고 있을 일만은 아니다.

지난 18대 대선 때 전주시 완산동 투표소에서 102세 허윤섭 할아버지가 “기분 좋게 한 표” 라는 연합뉴스를 보았다. 그런가 하면 한 TV 채널에서는 102세 최영손 할머니가 100년 된 하모니카로 ‘형제별’을 연주하는 모습을 방영하여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어디 그뿐이랴. 올해 103세인 일본인 ‘시바타 도요’ 할머니는 만 99세에 《약해지지마》첫시집 을 내어 150만부가 팔렸고 이듬해 다시 제2시집《100세》를 출간하여 일본 열도를 뜨겁게 감동시켰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출판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모두 ‘늙은 호박’ 같은 값진 인생들이다. 어디 이 분들 뿐이랴. 현재 전국 노인 복지관에는 재능기부 자원봉사자 어르신들이 꽤 많다. 이 분들이 곧 우리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늙은 호박이 아니겠는가. 우리 집엔 아직 늙은 호박이 두 덩이나 있어 좋다.

 

베풂 없는 베풂

 

물은 맛이 없다. 가장 좋은 물이란 맛은 물론 색깔도 냄새도 없는 물이다. 그럼에도 지친 나그네가 길가 옹달샘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야! 물맛 좋다.”고 감탄사를 터뜨린다. 맛없는 맛을 본 것이다.

깊은 산 속 암자에서 수행 중인 한 노스님이 한겨울 녹차가 떨어졌는데 눈이 쌓여 구하러 나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맑은 청수를 끓여 녹차 잔에 따라 마시면서 “녹차 맛이 은은하다.”고 했다는 일화를 읽은 적이 있다. 물맛을 녹차 맛으로 착각한 것이다.

물은 맛이 없지만, 모든 음식에 맛을 내준다. 만일 물에 맛이 있다면 음식이 제 맛을 낼 수 있을까? 결국 모든 음식은 물맛이다. 좀 지나친 발상일지 모르겠다.

베풂도 이와 같다. 진정한 베풂은 ‘베풂 없는 베풂’이다. 연말연시 이웃돕기 성금을 비롯하여 독거노인 도시락 배달, 자원봉사 활동, 적십자회비 납부 등 베풂이 있어 그래도 살 맛 나는 사회가 유지된다. 종교 집회는 물론이고 명사 초청 강연장마다 ‘베풀어라, 남을 배려하라.’고 힘주어 외친다. 신문지상에는 연일 베풂의 선행자들의 모습이 자랑스럽게 실려 있다.

참으로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다. 베풀고 배려하는 사회야 말로 꿈꾸는 선진사회다. 베풂이 많을수록 행복한 사회다. 그만큼 베풂과 행복한 사회는 비례한다. 국가차원의 복지사회와는 또 다르다. 아무리 복지혜택이 잘 갖추어진 나라라 할지라도 개개인의 베풂이 부족한 나라는 결코 행복한 나라라고 할 수 없다.

우리 전주는 천사마을(노송동)이 있어 자랑스럽다. 얼굴 없는 천사가 20여 년 가까이 매년 연말이면 성금을 기부한다. 총기부액이 5억여 원이 넘는다고 한다. 20여 년간 계속했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얼굴 없는 천사’라는데 더 큰 의미를 둔다. 드러나지 않게 하는 베풂이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베풂은 드러나지 않아야 진장한 의미의 베풂이라할 수 있다. 생색내기 위한 베풂은 이미 베풂이 아니다. 생색이라는 대가(代價)를 받았기 때문이다. 성서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고 불가(佛家)에서는 어떤 대상에도 집착 없이 베푸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가르치고 있다. 곧 마음에 머무르지 않는 보시를 하라는 것이다. 모두가 생색 내지 않는 베풂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꼭 얼굴 없는 천사처럼 남모르게 하는 큰 베풂이 아니더라도 나도 모르게 하는 베풂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사실 우리 생활 자체가 베풀고 살게 되어 있다. 우리 주변에 흔히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 좋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다 무주상보시를 잘 실천하며 살고 있는 분들이다. 물질적인 도움이나 가르침으로 또는 노력봉사 등으로 베푸는 일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에게 두려움이 없도록 해주는 것도 큰 베풂이라고 한다.

골목길이 깨끗하면 동네가 돋보인다. 큰 베풂이다.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지 않는 것 침 뱉지 않는 것 아무데나 쓰레기 버리지 않는 것 주차를 반듯하게 하는 것도 결코 작은 베풂이 아니다. 국기 다는 날 국기 다는 것도 국민으로서 베풂이다. 이 모든 일상적인 일들이 베풂 없는 베풂이다. ‘베풂 없는 베풂’이 행복사회를 이루는 가장 큰 베풂이다.

수필가 은종삼
수필가 은종삼

 

 

 

 

 

 

 

 

 

■ 프로필 ■ 
• 마령고등학교장 정년퇴임 
• 저서 ; 칼럼·수필집《청와대의 침묵》《행복은 제정신》
• 수상 ; 전북교육대상(2004), 행촌수필문학상(2017)
• 전) 안골은빛수필문학회장, 행촌수필 편집국장
• 현) 전북문협이사, 전북수필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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