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중 건양대 교수,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 자문위원)

□ 고향길 따라 여는 시

간 밤 꿈속에서
보름달을 쳐다보며
짖어대던 우리 집 누렁이가
정작 불러온 것은
나의 유년 시절이었다.

개 짖는 소리에 나가보니
나의 유년 시절이
대문 밖에서
내 팔을 이끌고
가을 운동회로 가자한다.

상으로 공책이라도 받으면 듣게 될
할머니의 칭찬 생각에
어머니가 밤새 마련한
새카만 고무줄을 두 줄이나 두른
파랑 운동 팬티를 입고
기를 쓰고 달리고 있는데
알람시계 소리에 놀라 잠을 깨니

누렁이도 운동회도 간데없고
깨진 조각달만 도시건물
한 구석에 걸려있다.
  - 이동규 시인의 시 ‘유년의 꿈’ 全文

  1. 대전 서구 흑석리 등골마을 명곡박물관

  어느 날 김현중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 자문위원이자 건양대학교 김현중 교수님과 점심식사를 하였다. 그 자리에서 김 위원님은 우리를 초대하였다.

 “모임 회원들을 우리 둥네 등골마을에 초대하고 싶어요. 회원들하고 오시어 글로벌 기념품을 전시한 명곡박물관 구경하고 가세요?”

 “네 알겠습니다. 모처럼 새해 겨울 깨우기 나들이 한 번 하지요!”

 이렇게 우연히 주고받은 일이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 대전지역 회원 몇 분이 만나 대전 서구 흑석동 등골 ‘명곡박물관(明谷博物館)’ 나들이가 시작되었다.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 제2대 이동규 대표님(시인)을 비롯하여 송미자 퓨전 국악인)한대수 언론인, 유경용 시인, 임채원 시낭송가, 김우영 작가 등이 모여 출발을 했다.

 대전의 명산 보문산 아래 중구 문화동 한밭도서관앞에서 승용차 2대에 회원들이 나누어 타고 대전 서구 흑석동 등골마을로 향하였다. 주말 오전 싸락싸락 겨울비가 조금씩 내리는 가운데 주변 산야에는 잔설(殘雪)이 덕지덕지 붙어 겨울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 대수 언론이 한 마디 한다. 그러자 이동규 시인이 말을 받는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배경을 얻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야를 갖는 것이라고 했지요.”

 “자식에게 만 권의 책을 사주는 것 보다 만 리의 여행을 시키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했어요.”

 대화를 하는 사이 서구 복수동 혜천대학을 끼고 좌회전한 나들이팀은 대전 팔경 중에 하나인 구봉산(九峰山. 높이 264.1m)줄기를 따라 등골산길로 일행은 천천히 접어들었다. 9개의 봉우리가 모두 가지런히 수려한 모습으로 솟아 있어 마치 병풍에 그려진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는 구봉산 줄기를 따라 힘차게 달렸을까? 선골마을쪽으로 가다가 이정표를 보고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은 일행은 저만치 등골마을 입구에 서 있는 김현중 자문위원님을 보고 차가 멈춘다.
  
 “어서오십시요.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 회원 여러분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저희를 불러주시어 고맙습니다.”

 집 부근 명막산 아래에 위치하여 시골의 정취가 가득 풍기는데 산골주민 20여 세대가 살고 있다는 명곡(明谷)마을은 시골마을의 아늑함을 풍겨주고 있었다.

 입구에서 조금 걸어 올라가자 옛 초옥을 개조하여 아담하게 꾸민 김현중 위원님의 자택이 보인다. 집안에 들어서자 대문도 없는 입구에 설치한 예쁜 우편함이 먼저 눈에 잡힌다. 김 위원님은 자랑스럽게 설명을 한다.

 “이 우체통 뒷 곁에 지난해 여름 아기딱새가 불법(!)으로 둥지를 틀어 6개의 알을 낳았어요. 그러더니 2주차에 부화를 하고 4주 되니까 둥지 밖 자연으로 날아갔어요!”

 그러자 평소 꽃과 자연에 관심이 많은 임채원 시낭송가가 손뼉을 치며 감동을 한다.

  “어머나? 그랬어요. 세상에나 …… !”

  김 위원님 내외는 아기딱새가 머무는 지난해 여름 4주동안 마치 시집간 딸이 친정집에 와서 아기를 낳듯이 매일 아기딱새의 건강과 활동상황 등을 관찰하느라고 잠을 설치며 보살폈다고 한다. 그리고 4주 후 어미와 아기 딱새 6마리가 자연으로 날아간 후 마치 딸을 멀리 보낸듯하여 얼마나 섭섭했는지 모른다고 한다. 김 위원님은 이 기회에 조류에 대한 책과 전문가 의견을 듣는 둥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한다.
 
 집으로 안내한 김 위원님은 집 오른쪽 한 켠에 있는 명곡박물관으로 안내하였다.

 “이곳은 예전에 부모님들이 소 외양간으로 사용하던 곳인데 리모델링하여 외교관 생활 40여년동안 세계 각국을 돌며 현지에서 받은 각종 기념품을 전시해놓은 공간 입니다. 일명 글로벌 기념관이라고도 합니다.”
 
 이동규 시인과 유경용 시인이 책꽂이와 가지런히 전시된 기념품을 보며 놀랜다.
 
 “아, 외국 대통령하고도 사진을 찍었네요?”
 “아프리카 일본, 미국, 영국 등 귀한 자료들이 많네요?”

 김 위원님의 안내로 작은 박물관을 관람한 회원들은 저마다 사진을 찍곤 한다. 김 위원님은 말한다.

 “작은 글로벌 기념관이지만 다양한 사람이 다녀갔어요. 현재 국회 박병석 부의장과 목원대학교 김원배 총장, 중국 길림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다문화가정 쉐엔초우씨를 비롯한 캄보디아 베트남 등 다양한 다문화가족이 다녀갔어요. 지난 2011년 6월 30일 일본 동경 주일 총영사를 끝으로 외교관 생활을 마치고 40여년만에 고향인 이곳으로 귀향하여 시골에서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어요.”

  유경용 시인님이 묻는다.

  “외교관으로 외국의 도시만을 살다가 이렇게 시골에 귀향하여 농사지으려니 답답하지 않으세요?“
     

  김 위원님은 특유의 편안한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아니예요? 좋아요. 근래에는 ‘아등모(아름다운 등골을 사랑하는 모임)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마을청소와 마을 입구에 표지석, 국기 게양대 등을 건립하였어요. 그리고 매년 정월대보름날에는 주민들이 다문화가정을 초대하여 전래의 민속놀이와 마을안녕 기원제를 함께 지내는 등 등골마을을 활기차게 하는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2. 산촌 등골마을에 울려퍼진 ‘하우스 콘서트’

 김 위원님은 미소를 띄우며 말한다.

 “점심 때가 되었으니 민생고 해결해야지요. 자, 거실로 들어가시지요.”

 일행은 시내에서 미리 시장을 봐 온 삼겹살과 술 등을 상에 차리었다.

 김우영 작가는 잠시 후 이어질 하우스 콘서트(The House Concert)를 위하여 이동용 마이크와 앰프설치를 하고 있다. 30여분 동안 음식이 마련되는 사이 잔잔한 시낭송 배경음악을 틀어놓으니 흑석동 등골마을 김현중 위원댁  거실에는 음악과 맛난 음식, 인정, 문화예술이 꽃 피는 새해 겨울을 깨우는 행사가 마련되고 있었다.

 펼쳐진 밥상 위로 고기와 야채, 꽂감, 막걸리와, 여기에다 김 위원님의 시모님이 아침에 조리하고 미국에서 귀국한 딸을 만나기 위해 서울로 가셨다는 토란국과 등게장이 나오자 송미자 단장이 환호성을 지른다.

 “어머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등게장이 나왔네!”
 그러자 다른 일행이 말한다.

 “여기 등게장에 상추와 마늘 삼겹살을 싸서 먹으면 전라도 지방의 삼합이 부럽지 않아요. 그리고 이 등게장은 경상북도 지역에서 주로 보리의 속겨로 만들던 장류인데 별미이지요. 일명 시금장이라고도 하지요. 메주를 만들어 왕겨 속에 묻어 구운 다음 매달아 말리고 띄우지요. 등게장은 보통 춘궁기에 된장이나 고추장이 떨어졌을 때 때 며칠만에 발효시켜 먹던 장류이지요.”

 그러자 옆에 있던 임채원 시인 한 마디 거든다.

 “역시 음식과 역사, 문학이면 문학이 삼합(三合)이지요. 허허--”
 “맞아요. 하하하--- 호호호---”
  
 이번에는 이동규 시인이 건배를 한다.

 “자, 오늘 우리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의 새해 겨울 깨우기 나들이 왔으니 다 같이 새해 덕담으로 건배하지요. 제가 먼저 선창하면 따라 하세요. 우리 모두 새해에는 좋은 일과 건강이 깃드시기를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

 “꽃을 주는 것은 자연이고 그 꽃을 엮어 화환을 만드는 것은 예술이노라!”

 “마치 태양이 꽃을 물들이는 것과 같이 문화예술은 인생을 붉게 물 들이노라!” 

 회원들은 서로의 건강과 문화예술발전을 위하며 푸짐한 음식을 나누며 우정과 친화의 정을 돈독히 했다.

 잠시 후 김우영 작가의 사회로 오늘의 하이라이트 ‘등골마을 하우스 콘서트’가 열렸다. 먼저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뮤지션 송미자 퓨전 국악인이 거실 무대로 향한다.

 "자, 오늘 여러분과 새해 겨울 깨우기 나들이를 나왔으니 하우스 콘서트를 통하여 올해 새로운 기운으로 하시고자 하는 일의 소원성취와 가내 다복하심을 기원하는 맘으로 경쾌한 색소폰 연주를 선사하여 드리지요.“
 

 그러자 일행은 좋다며 박수 쳐준다.

 “퓨전 국악인이라서 말씀도 잘 하시네요. 와와와---”

 “역시 스타 뮤지션, 파이팅!”

 “송락예술단장님을 위하여 부라보!”

 다양한 찬사가 쏟아지는 가운데 색소폰 악기에서 내품는 경쾌한 음악과 웨이브류의 매력적인 춤으로 방안 관중을 휘어잡는다. 송미자 뮤지션의 화려한  프로페셔날 무대 매너에 박수와 환호성을 올리는가 하면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는 일행도 있다. 송미자 송락예술단장은 관람석의 연령을 감안 7080류의 연주곡 ‘커피 한 잔’ '사랑아‘ ’소양강 처녀‘ ’섬머타임‘을 메들리로 들려준다.

 하우스 콘서트장이 후끈 달아오르자 김우영 작가가 미리 준비해간 통키타를 들고 나온다.

 “아, 이 작은 흑석동 등곡마을 콘서트 공간이 떠나갈 것 같군요. 이번에는 좀 쉬어갈 겸 가녀린 현악 통키타 연주와 노래를 하지요. 아는 분들은 따라  하세요. 예전에 대학가에서 많이 불렀던 가수 최백호의 노래 ‘날이 갈수록’ 입니다.”

 일행은 흥겨운 듯 박수를 친다.

 “좋아요. 좋아!”

 “들려주어요. 짝짝짝---”
 
 김우영 작가의 통키타 연주와 노래에 이어 신청곡을 함께 합창하며 즐기었다.

  3. 시낭송을 사랑해  ---

 이제는 이동규 시인님의 낭송순서이다. 맛난 음식따라 달달한 ‘유년의 꿈’ 시낭송이 은은하게 깔린다.

 “좋아요. 좋아!”

 잔잔한 배경음악에 맞추어 애절하며 절묘하게 뱉어내는 이 시인님의 시낭송에 일행은 눈을 감거나 묵상을 한다. 분위기가 잔잔히 잡아갈 즈음 김우영 작가의 진행이 이어간다. 이동규 시인이 시낭송을 마치고 말한다.

 “이번에는 지난해 11월 전남 장흥 문학축제장에서 시낭송하여 박수를 많은 시 입니다.”

 “좋아요! 짝짝짝--- ”

  이번에는 꽃의 여인 ‘임채원’ 시낭송가의 차례.  80세가 넘으신 어머니와 함께 행사장에서 모녀 시낭송으로 눈길을 끌고 있는 임채원 시인이기도 하다.

 “제가 멋지게 시낭송 할 터이니 고요로운 호숫가를 생각하기도 하고 저 명막산 잔설의 숲을 날기도 하는 등 눈을 감고 조용히 감상해보세요.”

 일행은 임채원의 시인의 주문에 따라 앉은 자리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거나 목을 뒤로 넘기고 임 시인의 낭송에 젖어 분위기에 빠졌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수준 높은 시낭송은 흑석동 등골마을 하우스 콘서트장을 달구고 있었다.

  이제 하우스 콘서트 대단원 막을 내라는 순서. 김우영 작가의 통키타로 지난 1970년 ‘라나에스포’가 불러 전 국민의 애창곡이었던 ‘사랑해’를 힘차게 함께 불렀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예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  답답한 이 세상 최적의 처방약은 문화예술

  열정과 사랑으로 가득했던 흑석동 등골마을 하우스 콘서트는 차를 한 잔 마시며 마무리 지었다. 일행은 현관 오른쪽 입구 북카페의 많은 책장 속에서 여행수필을 쓰는 김 위원님의 넓은 지식인의 숨결을 보았다. 김 위원님이 진지한 표정으로 김우영 작가를 보며 말한다.

 “세계 각국에서 40여년동안 생활하며 세 가지의 유익함을 느꼈어요. 첫 째는 타향에 대한 지식이고, 둘째는 고향에 대한 애착이며, 셋째는 나 자신에 대한 발견이었어요. 그래서 조만간 내가 사는 이곳 고향이야기와 외교관 생활을 담은 자서전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럼요. 그러세요. 옆에서 도와드리지요.”

  하우스 콘서트를 마친 일행은 이제 ‘새해 겨울 깨우기 나들이’를 마치고 명곡박물관 앞에서 기념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아직 하우스 콘서트의 여흥이 남았는지 상기된 표정으로 김현중 자문위원님이 한 마디 한다.

  “다음에 우리 명곡마을에 와서 주민음악회 한 번 열어주세요.”

 김우영 작가와 송미자 단장이 흔쾌히 승낙을 한다.

  “좋습니다. 김 위원님이 부르신다면 달려와 등골 주민들을 즐겁게 해드리지요.”

 일행은 태운 차량은 흑석동 등골마을을 뒤로하고 가볍게 빠져나왔다. 음악을 좋아하는 이동규 시인이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서 하우스 콘서트 여흥에 젖어 ‘사랑해’ 노래를 흥얼거리자 임채원 손뼉을 치며 함께 노래를 부른다. 등골산길을 휘감고 복수동을 지나 문화동으로 돌아오며 김우영 작가가 말한다.

  “요즘 아침에 신문만 보면 답답한 세상만 보이는데 우리가 아까 노래한
것 처럼 사랑이 넘치는 사회가 되면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풀려 우리나라가 잘 될 터 인데요……!”

 앞에서 운전을 하전 송미자 퓨전국악인이 웃으며 말한다.

  “맞아요. 작가님. 미국의 여류작가로 193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중국에서의 생활을 다룬 소설 ‘대지(大地)’로 유명한 펄벅(Pearl Buck 1982-1973)작가가 말했잖아요? 어둠을 불평하기보다는 단 한 자국의 촛불이라도 밝히고 사는 것이 낫다고! 그래서 우리는 노래하고 웃는 것이지요.”

 김우영 작가는 말한다.

 “악(惡)이 침범하는 것은 선(善)이 아니다. 선이 침범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악은 타락한 선 만이 침범을 받는다. 요즘 하, 수상한 이 사회의 어둠만을 탓하기보다 내 손에 봉사의 장갑을 끼고 한 자루의 촛불을 밝히는 일, 이것이 요즘 말하는 양방향 소통이 아닐까요?”

 흑석동 등골마을에서 10여킬로미터 힘차게 달리던 차량이 시내에 도착하자 보문산이 양팔을 벌리고 듯 반기는 듯하다. ‘새해 겨울 깨우기 나들이 하우스 콘서트’를 마치고 귀환한 일행을 보고 보문산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였다.

 “답답한 세상의 최적 처방약은 문화예술보다 더 좋은 것은 없지요. 국내와 해외에 다양한 문화교류를 위해서 힘 쓰는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 회원 당신들이 글로벌시대 문화예술 전도사입니다. 오늘 수고했어요. 무사귀환을 환영합니다.”
                                                          (THE END)

글쓴이/ 김우영 작가

아프리카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렘 외교대학 한국어학과 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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