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옥천 군북 이백리 고궁박물관)

(경매를 하고 있는 전인철 관장)              

□ 들어가는 시

(전인철 시인의 시집 '날개')

아름다운 것이
어찌 노을 뿐인가

눈부신 언어로
지상을 수 놓았던

꽃의 낙하
세상 속으로
흘러다닐 때

구름의 행간속에는 나신(裸身)의
꽃처녀가
봄을 부른다
       - 전인철 시인의 시집『마운틴 오르가슴』‘낙화 봄을 부른다’ 전문

(전인철 시인의 소설집 '리비도')

 1. 옥천 이지당(二止堂)말의 고궁박물관을 찾아서

  ‘바보는 방황을 하고 현명한 자는 여행을 한다’고 했던가! 송화가루가 날린다는 춘사월호시절(春四月好時節)을 맞는 첫 날. 정지용 시인의 향수에 고장으로 잘 알려진 충북 옥천 나들이를 하였다. 이곳 군북면 이백리에서 고궁박물관(古宮博物館)을 운영하는 전인철 시인의 초대를 받았다.

  고궁박물관하면 서울에 있는 국립박물관이나 영국 런던의 국립박물관, 대만 타이완 고궁박물관을 생각한다. 특히 중국 대륙에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모든 역사적 가치있는 유물을 다 옮겨놓았다는 타이완 고궁박물관을 생각하며 전인철 시인이 운영하는 옥천 군북면 사립 고궁박물관을 향하였다.

  문득,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라는 말이 생각이 난다.

  ‘도자기문화’의 시원(始原)은 토기(土器)와 석기(石器), 철기(鐵器)문화이다. 한낮 질흙으로 구워시작한 도자기라고 치부할 일이 아니다. 인류문화 시원인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문화의 빗살무늬 토기가 있어 찬란한 유업이 지금에 이르고 있기에 그렇다.

  인류가 처음 토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대략 서기 1만년에서 6000년경 사이이며, 우리나라에서 토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서기 6000∼5000년경이었으니 어찌보면 우리나라 역사는 토기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깊고 넓은 도자기문화의 시원이 바로 중국 홍산문화(紅山文化)아며, 한(韓)족과 동이족을 연관하여 볼 때 볼만한 역사적 가치가 있었다.

  전인철 시인이 운영하는 고궁박물관이 있는 이백리(二栢里)는 면사무소와 우체국, 농협 등 행정기관과 금융기관이 모여 있어 군북면 중심지 구실을 하고 있고, 1966년 축조한 갯골소류지가 있다.

  원래 옥천군 군북면 증약리에 속해있던 마을로서 후에 증약리(增若里), 자모리(自慕里), 이백리로 나누어 현재에 이른다고 한다. 이백리라 부르게 된 것은 자연마을을 합쳐 새로운 리동을 만들면서 이지당(二止堂) 마을의 이 자와 백석(白石)의 백 자를 잣백(栢)자로 고쳐 이백리라 부르게 되었단다.

  이지당(二止堂)은 금 씨, 안 씨, 조 씨, 이 씨가 세운 각신서당(覺新書堂)이 있었는데, 조선조 조헌(趙憲) 선생이 후학들을 가르친 서당으로 유명하며,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선생이 ‘이지당’이라 이름 지어주면서 마을 이름도 이지당말이 되었다.

 2. 고궁박물관 개관 1주년 기념 문화행사와 도자기 경매

  충북 옥천군 군북면 이백1길 19-10(258∼5)번지에 소재한 ‘古宮博物館’이 2019년 4월 개관 1주년을 맞아 문화행사와 도자기 경매를 한다. 대지 400여평, 건평 3층 200여평의 박물관에 가득한 도자기 유물만큼이나 인맥이 빼곡한 전인철 시인이 서울과 대전 등 다양한 유명인사 100여명이 방문하였다.

  내빈석에는 서울대학교 대전충남총동문회 회장이자, 한중일친선교류협회 오응준 이사장, 대전대학교 영문학과 김용재 교수, 중국 칭화대 한국캠퍼스 이종만 원장, 오광전 전 KBS 기자, 성악가이자 혜천대 배명배 교수, 국제라이온스 356-B지구 김동원 총재, 전 국회의원 김홍만 의원, 최헌 가수, 홍덕표 가수 등과 지인들로 자리를 꽉 매웠다.

  평소 인정많고 맘 좋은 전인철 관장 사모님이 준비한 중식뷔페가 소담스 러웠다. 참가자들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며 식당으로 갔다. 막 삶아낸 돼지고기 수육과 막걸리, 홍어무침, 식빵구이, 김치, 국수 등이 푸짐하여 맛깔스런 음식으로 허기를 해결하였다.

  중식뷔페를 마치고 전직 아나운서 출신의 굵직한 목소리를 지닌 사회자의 인사로 제1부 문화행사 문을 연다. 오응준 이사장과 김홍만 전 의원의 축사와 전인철 관장의 인사말이 있었다.

  이어 성악가와 가수의 축하 무대로 실내를 가득 메우는 성악과 경쾌한 대중음악, 추억의 올드팝송이 불리어져 관객을 즐겁게 하였다. 성량과 기량이 풍부하고 뛰어나 식당 조리실에서 일을 보던 여인네들이 앞치마를 집어던지고 뛰어나와 박수와 앵콜을 외쳤다.

  이곳이 KBS 열린음악회인가? 착각할 정도로 격조있게 노래를 잘 불렀다. 또 중간에 국제라이온스협회 356∼B지구 김동원 총재는 즉석 시낭송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객석의 갈채를 많이 받았다. 노래와 경쾌한 음악이 있는가 하면 감미로운 시낭송이 가미된 양질의 고급 고궁문화행사였다.
 
  제2부에서는 전국에서 온 도자기 소장가와 애호가, 박물관 관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흥미진진하게 경매가 이루어졌다. 소장하고픈 작품, 전시작품으로 알맞은 도자기, 소중한 지인에게 보내어질 선물용 도자기, 훗날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작품 등이 마땅한 임자를 만나 손에 손을 거쳐 전국 경향 각지로 분양되었다.

  충북 옥천군 군북면 이백리에 소재한 전인철 관장 운영의 고궁박물관 개관 1주년 문화행사와 경매는 성황리에 마쳤다. 참석자는 서로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아쉽게 작별을 하고 헤어졌다.

  3. 옥천 고궁박물관의 비젼

  옥천 고궁박물관 전인철 관장은 이곳을 앞으로 아세아 역사 유물박물관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동북아의 중심 중국 홍산문화(中國 紅山文化)의 사초(史草)였던 대한민국에 아세아 역사유물을 소장 전시보급하므로서 고고한 문화유적 국가로 변환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전인철 관장은 앞으로 운영방향을 이렇게 말한다.

   “고고한 문화유물 박물관 운영으로 국가 문화브랜드를 국제화로 승화시키는 한편, 지역문화예술 축제와 함께 아세아 역사 유물박물관의 홍보로 365일 관람객 유치하여 우리나라를 문화강국으로 끌어올리고자 합니다.”

  중국, 한국, 일본 등 다양한 기기묘묘한 유물 1만여종은 시가로 수 조 원 대 로서 고액 도자기 유물이 가득 한 전인철 시인 운영의 옥천고궁박물관 은 후손에게 오래 전해져 역사에 빛 날 것이다. 

  송화가루 날리는 춘사월호시절(春四月好時節)옥천 나들이. 가치있는 여행은 힘과 사랑을 돌려준다고 했던가! 마음의 길을 따라 열리는 그 곳을 가보라! 그 길은 찬란한 빛이 쏟아지는 역사의 통로처럼 아는 만큼 많이, 그리고 멀리 보일 것이다.

  4. 고궁박물관 꽉 메운 중국 홍산문화 (紅山文化)소산은 도자기

  중국 홍산문화(紅山文化)는 만주지역의 신석기문화를 말한다. 1935년경에 발견되었으며 채도(彩陶)와 세석기(細石器)가 공존했던 신석기시대문화이다. 1954년경 ‘홍산문화’로 명명되었다.

   홍산문화의 위치는 현재 중국 내몽고 적봉시를 북단으로, 요녕성 조양시, 하북성 북부지역을 남단으로, 요녕성 통료시, 금주시를 동단으로 하는 지역이다. 지금의 요하 서쪽, 북경의 북쪽지방이 된다.

  중국 내몽골 자치구 적봉시 동북쪽에 홍산(紅山)이라는 산이 있다. 몽골사람들이 ‘우란하따(烏蘭哈達)’라고 부르는 이 붉은 바위산 인근에서 학계를 놀라게 한 거대한 제단(壇)과 신전(廟)`적석총(塚) 등 거대한 후기 신석기 문화가 발견됐다. 100여년 전 일이다. 중국 요녕성과 내몽골, 하북성 경계의 연산(燕山)남북, 만리장성 일대에 널리 분포된, 국가체제를 완벽하게 갖춘 이 유적을 일명 ‘홍산문화’라고 부른다
 
  홍산문화의 발견은 일본 고고학자 도리이류조(鳥居龍藏)였다. 1906년 적봉일대 지표조사를 하던 중 많은 신석기 유적과 적석묘 등을 발견했는데 동북지방과 만주, 한반도 일대에서만 발견되는 무덤 형태다. 1955년 이를 ‘홍산문화’로 이름 붙였는데 이후 1982년 요녕성 뉴허량(牛河梁)에서도 같은 유적이 대거 발굴되자 각국 언론들은 ‘5천 년 전 신비의 왕국’이라며 대서특필했다.

 황하문명보다 앞선 기원전 3천 500년경으로 추정되는 홍산문화는 통상 청동기시대에나 출현가능한 분업화가 이뤄진 국가형태를 띠고 있다. 특히 가면과 옥(玉) 장식 등에 곰 형상이 투영된 유물이 대거 발견돼 국내 학자들은 곰 토템을 지닌 웅족과 고조선(청동기 시대) 이전 한민족 원류 중 하나인 배달국(신석기 시대)이 자리했던 곳이라고 주장한다. 즉 홍산문화는 단군조선 건국의 토대일 가능성이 높은 유적이다.

  이 홍산문명이 바로 한(韓)민족인 고조선 중심지로 인정되는 요녕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한국학계의 일부에서도 홍산문명을 보고 고조선이 실제로 BC. 2333년에 건국이 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게 되었다. 또한 이 부근에서 발원한 부여와 고구려의 역사 또한 고대 황화중심의 한(漢)족이 아닌 환(桓)족, 즉 한(韓)민족에 가깝다는 것이 중국 사학계의 터부시 되는 고민이다. 이 문명은 또한 강단 사학계를 '반도중심의 식민사관'이라 비판했던 사학자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다.
 
  홍산문명은 황하문명보다 먼저 고대국가를 형성한 유적으로 성곽과 왕궁터가 발견되므로 고조선의 건국 전에 이미 고대국가의 발판을 만들었다는 사학자들의 주장을 뒷받침 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홍산문화 유적지가 중의 황하문명보다 앞섰다는 것을 말한다. 현재 중국은 문명공정이라하여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중국 황하 문명이 인류 문명의 시초라고 역사를 재작성 하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요하 문명인 홍산문화를 자신들의 것이라 하는 이유이다.
 
  홍산문화 문명의 특징은 고고학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가 묘장법인데 죽은 사람의 장례의식은 오랜기간 변하지 않는 그 민족 고유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석묘계(石墓系) 돌무덤인데 돌을 쌓아 묘실을 구성하는 적석총(돌무지무덤)과 돌판을 잘라 묘실벽을 짜는 석관묘(돌널무덤)가 대능하 상류지역 요녕성 우하량유적에서 발굴되었다.


  반면에 중국의 화하족은 땅을 파서 묘실을 만들고 시신과 유물을 안장하는 토광묘가 유행하였고 주(周)나라시대에 들어서 나무로 관을 짜서 묘실을 만드는 목관묘가 유행한다.

  역사에서 홍산문명과 동일한 석묘계의 묘장법을 채용하고 있는 나라가 고조선이며 고조선의 전단계인 홍산문명은 고조선의 선조들이 이룩한 문명이라고 볼 수 있다. 돌을 이용해 구조물을 축조하는 방식이 고조선 이후 부여, 고구려 그리고 백제에도 계속해서 계승되는 한(韓)민족 고유의 풍습이기도 하다.

  홍산문명의 발견은 한국과 중국의 고대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로 파장이 크다. 홍산문명의 주인공이 동이족이므로 한(韓)민족의 선조들이 중국의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고 하북, 산동의 동이족이 한민족의 선조였다는 근거가 된다.

  그래서 중국학자들도 산동문화의 주인공인 동이족이 동북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느 민족인지 밝히기를 꺼려하고 있다. 전백찬 같은 중국학자의 일부가 개인적으로 고조선(古朝鮮)이 동이족의 중심지였다고 주장을 하고 있을 뿐이다.

  홍산문명은 고조선의 선조가 일으킨 문명이고 그 당시에 화하족은 하북성과 산동성을 넘어가지 못했다. 홍산문명의 주인공이 동이족이라는 것은 중국학계도 인정하고 있고 그 동이족이 고조선이다.

  현재 한국학계에서도 고조선의 중심을 평양에서 요서, 요동의 요녕지역으로 보고 있으며 한(韓)민족의 기원도 요녕지역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중국문화에 중요한 획을 그었던 홍산문명이고 그 주인공은 동이족이 된다.

  이 홍산문명의 주인공이 고조선을 건국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를 중국이 자신의 역사로 편입시키려 하고 있다.

  충북 옥천군 군북면 이백리 소재의 고궁박물관을 이해하는 계기로 살펴본 ‘중국 홍산문화’를 생각하며 문득, 신화와 전설은 태양에 바래고 달빛에 물들면 역사가 되고 진실이 된다는 말을 새겨본다.
 

□ 나가는 시

어느 날 흠칫
백발이 거울을 노려보고 있었다
노 교수는 수 십 년을 한 연구실에서 지냈다
그는 마치 깨알의 이력서처럼 촘촘히
구멍 난 벽의 못자국들을 바라보았다


그 속에 머물다 간 가을의 심지
옥수수처럼 실하게 박힌 알곡들이
실타래처럼 너풀대는 흰 머리칼로 남아있다

잎 하나로 봄날 꽃 하나의 반짝임으로
남아있던 햇살의 투명함
그의 텃밭에 차 오르던 푸른빛을 향해
미로에 뒤덮힌 희망을 거두러
개미 떼처럼 낯선 지하철을 함께 타고 온
나날들 참 실하다
어쩜 사막 같은 시간의 고삐를
이끌고 달려온 노 교수

이제 가을은
황금빛으로 남은 꿈의 무대다
그가 지나온 시간들은
이미 바라보기도 아까운 땀의 연주다
가을이 붉게 탄다

사랑, 증오, 지상의 허상들이
그가 던진 혼불에 실려 있다

하늘에서 들에서 암반 속에서
생명의 소리가 새벽을 부스며
새순처럼 차 오른다

  - 2019년 4월 1일 옥천 고궁박물관 개관 1주년 기념 전인철 관장 낭송시 ‘노 교수’

(충북 옥천 군북면 전인철 관장님과 김우영 작가)

◎ 전인철 관장 소개

  시인은 소설가이며 옥천 고궁박물관 전인철 관장은 그간 비영리 국제문화나눔봉사단체 12년 역사의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 제1대 대표와 중부권 중심의 16년 문학전통을 자랑하는 대전중구문학회 제2대 회장과 대전중구문화예술 자문위원, 한중일 친선교류협회 부회장을 장기간 맡으며 우리나라 중부권 문화와 아세아 문화진흥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특히 근래에는 아세아 도자기문화에 심취하여 충북 옥천 군북면에 고궁박물관에 중국과 한국, 일본의 도자가 1만여점 수 조 원대의 고가작품을 수집 보관 전시하며 중국홍산문화의 동이족 문화연구를 하고 있다. 그간 출간한 작품집은 시집 ‘마운틴 오르가슴’과 장편소설집 ‘리비도’ 외 다수가 있다.  (끝)

글쓴이 / 김우영 작가

대전중구문인협회 회장

아프리카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렘 외교대학 한국어학과 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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